태조(조조)가 당도하여 사수(泗水)에서 남녀 수만 명을 갱살(坑殺)하니 이 때문에 강물이 흐르지 못했다. 도겸이 그 군사를 이끌고 원무(팽성 원무현)에 주둔하자 태조는 진격할 수 없었다. 군사를 이끌고 사수 남쪽을 따라 취려, 수릉, 하구의 여러 현들을 공격해 모두 도륙하니, 닭이나 개조차 다 없어지고 폐허가 된 읍에는 다시는 행인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 삼국지 순욱전 주석 조만전
曹瞞傳云:自京師遭董卓之亂,人民流移東出,多依彭城間。遇太祖至,坑殺男女數萬口於泗水,水為不流。陶謙帥其衆軍武原,太祖不得進。引軍從泗南攻取慮、睢陵、夏丘諸縣,皆屠之;雞犬亦盡,墟邑無復行人
한나라 초평(初平) 4년, 조조가 도겸을 쳐서 팽성의 부양(傅陽)을 격파했다. 도겸이 담성(郯城)으로 물러나 지키니, 조조가 이를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고, 이에 되돌아갔다. (조조는) 지나는 길에 있던 추려(取慮), 저릉(雎陵), 하구(夏丘)를 함락하여 모두 도륙(屠戮)했다.
初,曹操父嵩避難琅邪,時謙別將守陰平,士卒利嵩財寶,遂襲殺之。初平四年,曹操擊謙,破彭城傅陽。謙退保郯,操攻之不能克,乃還。過拔取慮、雎陵、夏丘,皆屠之。
아니 같은 논리면 조조의 학살에 쓰인 이 屠자도 같이 성을 함락시켰다는 용어로 쓰면 되지 않을까나
뭐 광무의 '屠'는 따로 성 함락시키는 '屠'고, 조조의 '屠'는 학살이라는 용례가 따로 있음?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잔륙했다 하고 끝임 다른 묘사 없음 무제기엔
주석서에도 나왔네 多所誅殺曰屠。주살함이 많은 것을 도屠라고 한다.
아니 뭐 조조 학살이라는것도 그냥 저정도 수준 기록인데 경엄이랑 유수랑 다를게 뭐임?
조조 묘사 보긴 함?
범엽이 묘사를 간결히 했다고 屠가 없는 일이 되는게 아닌데.
ㅇㅇ 그러니까 한단 멸망시키고 재기 못하도록 밟은 다음에 업을 대신 지역중심지로 키워줬다는거지; 한단은 춘추전국시대부터 내려온 수도 입지라 본래라면 한단 대신에 업 같은게 성장하면 안되는 거임;;;
권중달 교수도 자치통감에서 도는 일괄적으로 도륙했다고 번역하던데. 통상적인 함락은 성을 뽑았다고 표현하고
권중달 교수도 자치통감에서 도는 일괄적으로 도륙했다고 번역하던데. 통상적인 함락은 성을 뽑았다고 표현하고
아니 중국 사서에서는 학살을 저질렀으면 그 뒤에 어떤 학살을 적었는지도 다 적는다고 당장 300여 개의 성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는 경연의 경우에는 원문에 300여 개의 성을 도성했다 빼고는 어떤 학살을 저질렀는지가 기록에 안 나오는데 당장 오자병법만 봐도 도성은 그냥 성을 함락했다는 의미로 나오지, 학살한다는 의미로 쓰이지가 않았어
같은 한자가 지금까지 조조 까는데 사용됐는데
아니 뭐 조조 학살이라는것도 그냥 저정도 수준 기록인데 경엄이랑 유수랑 다를게 뭐임?
중국 사서라고 학살 내용 일일히 적지 않음 그냥 죽였다고 넘기는 경우도 수두룩
그러니까 도성한 이후에 무슨 행동을 저질렀는지를 기록하는데 그런 내용이 있냐고 오한같은 경우에는 성을 점령한 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학살을 했는지 기록하고 그 행동으로 인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도 나오잖냐
중국사 기준에서 뭔 큰 일임. 그냥 광무가 학살했다는데 적당히 덮는 거지.
경엄은 300성을 도성했다 하고 넘어가지만 오한의 경우에는 촉에서 학살한 거까지 적었는데?? 최소한 문제가 될 만한 학살은 기록하고 넘어가는 데 300개 성을 학살한 거면 중국사 기준에서도 큰 일인데 그걸 기록 안하고 넘어간다고??
학살은 중국사에서 걍 빈번한 일이고 죽이면 죽였다고 적으면 될 일임 조조도 학살 관련해서 기록 엄청나게 심플함
저 서주 문제 같은 경우만 봐도 서주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폐허가 되었다, 등등 이후의 묘사가 나오잖아 그래서 경엄의 경우 300여 개 성을 학살했으면 그런 식의 학살 이후의 일을 표현하기 마련이데 그런 내용이 있냐고
asdfghhas
범엽이 묘사를 간결히 했다고 屠가 없는 일이 되는게 아닌데.
오한의 경우에는 촉에서 사람을 죽여댄 일 때문에 비판도 받고 문책도 받고 이런 묘사가 있는데 300여개 성을 도성한 경엄은 그런 표ㅕ현이 없는 거 자체가 이상하지 않냐??
asdfghhas
조조 묘사 보긴 함?
asdfghhas
그냥 잔륙했다 하고 끝임 다른 묘사 없음 무제기엔
夏,使荀彧、程昱守鄄城,復征陶謙,拔五城,遂略地至東海。還過郯,謙將曹豹與劉備屯郯東,要太祖。太祖擊破之,遂攻拔襄賁,所過多所殘戮。
한단 같은 경우는 춘추전국시대에서 전한까지 엄청나게 번영하던 도시가 (장안, 낙양하고 동급임) 屠 이후에 완전히 언급도 안되는 수준으로 변해버림
구글 지도만 봐도 한단하고 린장현(업성)의 위치는 매우 가까운데?? 한단이 초토화되면 한단 지척인 업은 북서쪽이 폐허가 되었다는 건데 그런 곳이 기주의 중심지가 될 수 있냐??
asdfghhas
ㅇㅇ 그러니까 한단 멸망시키고 재기 못하도록 밟은 다음에 업을 대신 지역중심지로 키워줬다는거지; 한단은 춘추전국시대부터 내려온 수도 입지라 본래라면 한단 대신에 업 같은게 성장하면 안되는 거임;;;
그리고 서주 학살은 조조 본기에는 제대로 안 나와도, 조조와 싸웠던 다른 인물들 본기와 열전에는 기록되는 건데 이런 식으로 당사자 본기에는 기록이 안 되어 있지만 다른 사람 열전에서 기록이 나오는 경우 중국 사서에는 흔한 일인데??
게다가 원래 업은 전국시대부터 치수가 안되어서 잘 못크던 도시고, 몰락도 황하 범람 문제 때문에 치수 안되어서 망한건데 까놓고 한단 있으면 굳이 키워줄 이유가 없는 곳임ㅋㅋㅋ
후한 재건한 반신반인 광무제니까 걍 간략히 쳐죽였다고 쓰고 적당히 덮어버린거지 명백히 屠자를 썼는데 왜 부정해.
? 그런 식이면 개봉도 같은 이유로 수도가 될 수 없는 도시인데 송나라건 금나라건 수도로 썼는데??
광무제 이놈이 확실히 학살을 안한 것도 아니고 익주에서는 200년 넘게 기록에 남을 학살파티를 벌였고 한단은 영원히 재기불가한 도시가 되버렸는데 屠는 학살이 아니다? 이러면 조조도 그냥 격파의 거센 표현이라고 해버릴 수 있지...
광무제의 屠 이후로 후한에서는 갑자기 한단이 언급이 안된다고;; 전한까지는 낙양 장안 완하고 동급임;;;
개봉도 몽골이 갈아버린 이후 지금까지 개깡촌임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애초에 한단이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었으면 업이 어떻게 크냐고 업이 커진 게 다른 지역과의 연결성 때문인데 지척인 한단이 초토화되었으면 업이 어떻게 크는데?? 오히려 이후 중국사에서 한단 지척에 대명부같은 대도시가 계속 들어서는 거만 봐도 한단 일대가 번성했다는 근거지 몰락했다는 근거가 되냐??
한단이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는데 입지 자체는 지역의 중심이라 뭐가 들어설 입지니까 지척인 업이 자라난거지; 한단이 초토화가 안됐으면 왜 업이 자라나고 한단 언급이 뚝 끊김?
한단이 초토화가 안 됐으면 주변부에 있는 업 같은 게 갑자기 치고 올라올 일도 없어 춘추전국시대부터 전한까지 700년 넘는 세월동안 지역 수도 역할을 해왔는데 그 한단이 광무제의 屠 이후에 갑자기 언급이 뚝 사라지고 대안도시가 자라나는데 이게 어떻게 한단이 멀쩡하다는 근거가 되겠음??
개봉이 복구불가 수준으로 망한 건 이자성의 난 때임
삼국시대 가면 똑같이 언급이 없는 제나라의 고도 임치도 있는데 그럼 임치도 광무제가 학살 저질러서 존재감 없는 거냐??
임치는 屠 언급이 없지만 한단은 屠 언급 이후로 싹사라진다는게 차이지?
사서에 명백하게 屠 언급이 있고 조조 학살기록도 간략한 건 똑같고 전적 없냐고 하면 익주대학살 있고 부정할 이유가 없는데 왜 계속 부정하는 거임??
그리고 임치가 왜 언급이 없음??? 지금 검색해보니까 한창 조식 총애받던 시절에 조조가 준 자리가 임치후임;;;;
나는 익주에서 학살 일어난 거 부정한 적은 없는데?? 경엄 등이 300여개 성을 학살했다는 주장이나 한단을 학살했다는 주장을 부정하는 건데??
그러니까 屠 기록 명확히 있다니까? 삼국시대에 임치는 규모 크다고 후한서 경엄열전에 언급되네 한단 이런거 있음?
그런 식이면 한단도 조조가 원상을 공격할 때 저곡이 지키던 한단을 공격해 점령했다고 언급된다
거의 깡촌인거지, 한단 완전히 재건된건 북송 이후임
한단이 깡촌이면 업을 방어하려고 한단에 저곡을 주둔시켰겠냐 방어거점으로서의 기능을 하니까 주둔한 거지 아예 깡촌이면 주둔조차 못 한다
?? 한단은 업 지척이라 방어시킬 수 있는데? 임치는 규모 크다는 언급이 있고 총애받던 조식이 임치후라니까 뭔소리임???
그냥 屠 부정하고 싶어서 단어 뜻 바꾸다가 이제는 주둔했으니까 큰 거점일것이다 이러고있네;;
한단은 屠 당한 이후로 언급이 거의 사라지고 대안도시가 생겨나고 후한부터 중요한 언급 못받는데 임치는 屠 기록도 없고 크다는 기록도 있고 총애받던 자식한테 임치후 자리를 주기도 하는데 이게 어떻게 앞뒤가 맞는 말임??
asdfghhas
주석서에도 나왔네 多所誅殺曰屠。주살함이 많은 것을 도屠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