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게을리하지 않아서, 일찍이 경미한 병환이 있을 때에도 오히려 독서를 그치지 아니하므로, 태종(太宗)께서 작은 환관을 시켜서 그 서책을 다 가져다가 감추게 하고 다만 구소수간(歐蘇手簡)만을 곁에 두었더니, 드디어 이 책을 다 보시었다. 즉위하심에 이르러서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비록 수라(水剌)를 들 때에도 반드시 책을 펼쳐 좌우에 놓았으며, 혹은 밤중이 되도록 힘써 보시고 싫어하지 않으셨다.
"내가 궁중에 있으면서 손을 거두고 한가롭게 앉아 있을 때는 없다."
"내가 서적을 본뒤에는 잊어버리는 것은 없었다."
임금이 특히 서적만을 한번 보고 문득 기억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무릇 수많은 신하들의 성명(姓名)·내력(來歷)·세계(世系) 등을 비록 미세한 것이라도 한번 들으시면 잊지 않으셨으며, 한번 그 얼굴을 보시면 비록 여러 해를 만나 보시지 못했더라도 다시 보실 때에 반드시 아무라고 성명을 부르셨으며, 사물의 정밀하고, 소략하고, 아름답고, 추악한 것에 이르러서도 한번 눈에 접하시면 반드시 그 호리(毫釐)의 차를 정밀히 분변하셨고, 성음(聲音)의 청탁과 고하(高下)도 한번 귀에 들어가면 그 윤리(倫理)를 심찰하시었으니, 그 총명과 예지(睿智)가 이와 같으시었다.
세종실록 22권, 세종 5년 12월 23일 경오 1번째기사
실록에서도 확인 가능
* 할아버지의 경우
어~ 사관은 들어오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