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숭정 12년 홍이포, 구경 80mm, 전장 1.7m)
"뭐. 17세기 동양권 전쟁과 화포를 다루면서 매일 홍이포 홍이포 노래하더니 지자총통보다도 구경이 작네? 이 정도면 걍 버틸만 하지 않나요?"
청황제,
숭덕제 아이신교로 홍타이지
"... ..."
"커져라. 얍."
이미지 : 영화 남한산성
"숭덕 8년 신위대장군 홍이포 (청군 사용), 구경 130~145mm, 전장 2m 60cm~3m (현 북경소재)
"엥."
"우리만 이런 대구경 홍이포를 쓴 게 아니라 명군 역시도 사용했다.
애초에 홍이포라는 건 서구식 대구경 화포, 특히 캘버린에 대한 대명사화되어서 구경과 전장도 천차만별이었어.
야. 너도 해봐."
명 요동전봉총병 조대수
"ㅇㅋ"
이미지 : 웹툰 칼부림
숭정 15년 정요대장군 홍이포 , 전장 3m 60cm, 구경 100mm, 현 요녕성 박물관 신관 소장
"해당 홍이포의 경우 구경은 우리가 주조한 홍이포 중 현존하는 신위대장군포 유물 보다 구경은 작지만 전장이 훨씬 길지.
이런 식으로 홍이포는 수성에 쓰일 만한 수준도, 야포 수준도, 공성용으로 쓸 만한 녀석도 존재했다.
당장 조선의 천지현황 총통의 경우와, 명, 조선의 불랑기 1~5호의 전장과 구경 차별화를 생각해 보면 간단히 나오는 거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걸 어디에 쓰시려고..."
"남한산성."
'졷같은 오랑캐 새끼...'
"뻥이야.
실물로 남아있는 홍이포들이 1643년 주조된 거라 차후 명군 공격에나 쓰였을 걸로 추정된다. 특히 내가 죽은 뒤 도르곤의 입관전에도 가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지."
"그럼 이걸 맞을 사람은..."
이자성
"이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참고자료 : 尹晓冬, 2014, 『16-17世纪西方火器技术向中国的转移』, 山东教育出版社
Yong Liang, 2020, The Wealth of a Rising Empire: The Manchu Acquisition of Currencies, People, Lands and Industries before the Conquest of China (1583-1643), Eberhard Karls Universität Tübingen 박사학위논문.
구범진, 2017,「병자호란 시기 강화도 함락 당시 조선군의 배치 상황과 청군의 전력」, 『동양사학연구』141, 동양사학회.
국립민속박물관/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한국 전통무기 조사-도검, 화기류-』,2003, 국립민속박물관
『청태종실록』
그외 黃一農의 논문 다수
이자성ㅋㅋㅋㅋ
천운 특 결국 다 이유가 있음
그런데 역저격 당해서 포대째로 날아갔잖ㅅ.....읍읍
이자성ㅋㅋㅋㅋ
저 남한산성이 청입장에서는 천운이 따른 결과지 청나라는 진짜 나라자체가 천운이 타고나서 태어난 나라급이라
라인시에르
천운 특 결국 다 이유가 있음
하지만 그 천운 탓에 지금 만주족은 동화되어 사멸단계를 밟고 있지
인조가 남한산성말고 더남부나 하다못해 강화도로 피신후 남부로 내려갔으면 청은 ㅈㅈ 고대로 망함 원숭환 안죽였어도 말라죽음 심지어 이작성이 북경 약탈 안하고 오삼계 가족 안건들었으면 산해관고 못뚫어서 ㅈㅈ 진짜 운빨 오졌지
그런데 역저격 당해서 포대째로 날아갔잖ㅅ.....읍읍
“그들의 화포를 살펴보니, 참으로 대적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전군(全軍)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 수사(水師)로 하여금 와서 모이게 했더라도 진실로 대적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구굉 전투 초반 역저격이 성공한 사례 말고는 오히려 남한산성이 두들겨 맞아서 군대 사기 개박살남
구굉의 해단 발언 같은경우 강화도를 지칭하는 거긴 한데 '그들의 화포를 살펴보니'의 경우는 홍이포 자체를 지목한 것
저게 일찍 나왔으면 남한산성은 터로만 볼 수 있었을려나...
문제는 저게 병인양요나 신미양요 때에도 쓰여졌다던데;;
청성립후 화기에 대해 극히 민감해 해서 화기류 발전이 엄청 더뎌짐 오죽했으면 나선정벌때 조선포수들 데려갔을정도라
나선정벌의 조총수 기용은 그런 문제가 아님
포수가 부족해서 부른게 아니었음???
청의 주력전선은 어디까지나 남명쪽이었고 그렇기에 대부분의 병력이 강남전선에 투입되는 와중에 요동의 닝구타 방어군과 일부 증원병만으로 상대하기에 힘든데다가 화기부족이 겹쳐서 이전의 입관전 조선군을 명원정에 동원하던 사례를 차용해 조총수를 증원받은 거. 물론 조선의 화기능력을 우수하게 보긴 한 건데 청이 이 때 까지 화기 발전이 더뎠냐 하면 그건 아님
적어도 조선이랑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는 생각은 했는데 청이 여력이 없는 국가도 아니고
야포 자군
북경을 점령하는 이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