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는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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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레이는 평소 제 상처를 돌보지 않던 자기 습관을 내심 후회했다. 길 반대편, 보이는 것이 없건만, 날카롭다 못해 사납고 난폭하기 짝이 없는 그 기운이 무엇인가. 생각할 머리가 없는 그도 매우 잘 아는 것이었다.
마창사끼리 만나면 무엇이 벌어지는가. 특히 전투 앞에서 이성이 불타오르는 자들끼리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그가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답지 않게 약간 생각이란 것을 하고 있었다.
지금 그는 피로했다. 길을 잃은 탓에 무턱대고 걸은 것이 벌써 며칠째였고, 길 가다 본 몬스터들을 쪼개버리다 생긴 상처들을 내버려 둔 것도 며칠째였다. 그가 아무리 멍청하다 해도,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덤벼들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하지만 건너에서 쏘아지듯 느껴지는 기운이, '지금 당장 네 기운을 뽑아내 주마.'라고 하는 듯한 그 기운이 계속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 직감했다. 이제 와서 방향을 돌리는 것도 할 수 없다고.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굳게 창을 쥐고서 상대가 눈에 보이기를 기다리는 정도뿐.
길 반대편, 그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그 상대임을 확신했을 때, 붉은 짐승이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땅을 가르며 치고 나간 정직한 돌진은 가볍게 빗나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서 날아오는 창날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쇳덩이와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리. 두 쇳덩이 중 먼저 움직인 쪽은 상대방의 것이었다.
그는 창을 높이 쳐들고는 곧장 강하게 내리쳤다. 큰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는 창을 휘둘러 흙먼지를 걷어냈지만, 반으로 갈라져 있는 레이의 모습 같은 것은 없었다. 자욱한 먼지 속에 몸을 숨겨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허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모가지를 물어뜯으려 하는 그 사납기 그지없는 기운이 어디로 가겠는가.
상대는 창을 고쳐 쥐고 곧바로 뒤쪽으로 휘둘렀다. 다시 한번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창이 부딪히자마자 곧장 단단히 붙잡은 뒤 그대로 밀어 올려쳤다. 역시 힘이 모자랐는가. 생각보다 쉽게 레이의 몸은 뒤로 튕겨 나갔다.
비틀거릴 시간도, 몸을 다잡을 시간도 그리 아까웠나. 발이 땅에 닿기가 무섭게 곧장 박차고 달려나가 크게 휘두른다. 반격의 가능성을 생각할 여지는 없었다. 그저 온 힘을 다해 휘두르고 휘두른다. 하지만 한 합, 한 합 부딪히는 족족 밀려나기만 할 뿐이었다.
이다지도 불리한 싸움이었나. 하지만 그가 보는 것은 패배가 아니었다. 애초에 전세가 불리한 것이 패배를 가리키는 것조차 아니었다. 지금 그들의 행위는 결투 같은 고상한 것이 아닌, 그저 이기면 그만인 전투였으니까.
전투 앞에서 피가 끓는 자들의 싸움은 간단하고 치열하다.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싸움. 끝까지 살아남아 상대의 힘을 잡아 뜯기 위한 싸움.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도 싸움의 끝의 끝까지 살아남게 된다면 이긴다.
제아무리 강한 자라 할지라도 죽으면 약자가 된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레이를 쫓아 그가 달려들었다. 그런 그를 향해 한 줌 흙먼지가 날아들었다. 그사이에 섞인 작은 돌들이 그의 얼굴에 맞아 튕겨 나갔고, 자잘한 모래 먼지가 그의 눈을 찔러댔다. 그로 인해 머뭇거린 그 잠깐 사이에 그의 배에 묵직한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물론 그 정도로 넘어질 리는 없었지만, 비틀거리는 그 순간만으로 충분했다. 곧장 레이의 창끝이 그를 향해 쏘아졌다. 짧은 신음. 간발의 차로 창이 그의 배에 꽂혔다. 분명 좋은 시도였을 것이다. 그가 창을 강하게 붙잡지만 않았다면.
지극히 명백한 실수. 찌르는 것이 아니라 베었어야 했는가. 좀 더 치명적인 곳을 찔렀어야 했는가. 당장이라도 레이를 향해 창이 날아들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당장 손을 놓아야 한다고 그의 얼마 없는 이성이 외쳤다. 하지만 창을 쥔 두 손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격통이 레이의 배를 찔렀다. 날아든 것은 창이 아닌 매서운 발차기였다. 어째서? 레이는 놀랐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평범하게 짜증이 쌓인 듯한 표정. 레이는 그의 표정보다는 그가 자신의 창을 놓아주었다는 것을, 반대편 손에 힘을 들어가 있다는 것을 먼저 봐야 했다.
갑작스레 쏘아진 창끝이 레이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소름 끼쳐 할 새도 없이 레이는 몸을 날려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 뒤를 쫓듯이 응축된 기운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공기를 찢고, 갈아버린다. 거리를 벌리려던 자의 등도 사정없이 갈아버렸다.
고통스러웠는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다가 곧 쓰러져버렸다. 간신히 땅을 기는 그 뒤쪽으로 사나운 기운이 다가왔다. 죽이기 위해 다가온다. 일어나라. 일어나. 죽고 싶지 않다면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 맞서야 한다. 맞서서 죽여야 한다.
죽고 싶지 않다면 죽여야 한다.
상대가 창을 내리친 순간, 레이는 몸을 굴려 빠져나왔다. 창을 다시 고쳐 쥐고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 고통에 허우적대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새빨간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붉은 것이 달려든다. 두 손으로 창을 굳게 쥐고서, 크게 휘두른다. 그 끝자락이 아슬아슬하게 상대의 몸통 앞을 지나갔다. 그는 곧장 응대하듯 창을 비틀어 쥐며 두 번 베어냈다. 창대로 막아냈지만, 대체 어떻게 베어낸 것인가. 창이 떨리며 레이의 두 손이 저릿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멈출 수는 없었다. 가볍게 뛰어 체중을 실어 내리친다. 상대에게도 두려움은 없는가. 흙먼지를 뚫고 날아든 창날은 운 좋게 몸통과 팔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그 뒤를 이어 흙먼지 속에서 팔이 튀어나와, 그대로 레이의 옷깃을 잡아 바닥에 내리꽂으려 들었다. 그 짧은 순간, 그 역시 상대의 옷자락을 단단히 붙잡았다. 나 혼자 바닥으로 떨어질 성싶으냐. 그의 눈빛은 그리 말하는 듯했다.
나란히 땅바닥을 나뒹군다. 급히 일어나려는 자의 발목을 향해 창날이 달려들었다. 비록 정말 발목이 끊어지진 않았지만, 상대가 비틀대는 이 좋은 순간이 또 언제 찾아오겠는가?
베어낸다. 베고 또 베었다. 십수 번을 벤 난무 끝에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진 자는 비틀거렸다. 그저 비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쓰러질 듯 휘청이던 자는 창대의 끝을 단단히 붙잡고는 크게 돌리기 시작했다. 사정거리 안에 있는 것을 전부 베어내기 위해서.
그 공격을 피하기엔, 둘의 거리는 너무나 가까웠다. 한 바퀴 돌 때마다 아직 육신이 하나라는 것에 감사하며 견딘다. 마지막 크게 베어내는 것에 뒤로 크게 밀려난다. 재정비할 새도 주지 않겠다는 듯, 짐승처럼 그 뒤를 쫓아 달려들었다.
누구 하나가 쓰러지기 전까진 전투가 끝나지 않는다. 쓰러지더라도 끝나지 않는다. 한 명의 숨이 멎을 때까지, 상대의 창에서 서슬 퍼런 기운을 뽑아낼 때까지 절대 끝나지 않았다.
한 합, 한 합. 강해지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절대 밀리지 않는다. 땅이 갈라지고, 뒤엎어진다. 발밑이 불안정해져도 멈추지 않는다. 서로의 창끝이 집요하게 서로의 목숨을 노린다.
어느 순간 누구 하나의 창이 눈에 보일 만큼 강대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창을 뒤덮고도 계속 뻗어 나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땅에 닿고도 그 밑으로 파고들었다. 지켜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의 기운에 상대는 온몸이 오싹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기운에 질 수는 없었다.
상대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전부를 내어, 자신과 함께 땅마저 갈라버릴 듯한 기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속 빈 강정이 된 창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붉은 짐승은 텅 빈 창을 땅에 묻어주려 했지만, 곧 제 몸 상태가 그런 자비를 베풀기엔 영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창을 나무에 기대듯 앉혀준 뒤, 제 몸을 끌고서 어디론가 향했다. 어디론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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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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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약 2년 반 전 글 리메이크
소설 보시는 분들 살아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