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일단 제 일천한 게임 경력을 이야기해야 보시는데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저는 테일즈 오브 시리즈는 판타지아 데스티니 데스티니2 리버스 정도 해봤으나, 그나마도 게임을 클리어해본 적은 없고 게임잡지 공략집이나 다른 방식으로 스토리를 아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외전인 GBA용 나리키리던전2는 다 깼었습니다. 당시 고딩이었는데 이불 뒤집어쓰고 GBA용 사제 조명을 달아서 새벽까지 했던 추억이 있지요.
3D화된 테일즈 시리즈는...손조차도 잘 안 가더라구요. 전투 손맛이 좀 맥빠지는 느낌인 데다가 3D의 장점을 잘 못 살린다는 인상이 들었거든요. 제 편견일 수는 있습니다.
이번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는 세컨드 난이도로 90시간 이상 플레이했습니다. 엊그제 엔딩을 봤고 좀 전에 이세계랑 보스 연전 퀘스트도 클리어 했습니다. 서브퀘스트는 후루루 몇 마리 모자란 것 빼고는 다 했고, 여러 컨텐츠 중에서는 낚시를 제대로 안 했습니다. 앞으로 알펜 말고 다른 캐릭터의 조작법에도 좀 익숙해지고 싶습니다.
제가 애초에 테일즈 오브 시리즈에 손을 댔던 이유는 강한 캐릭터성과 격겜을 연상시키는 전투 시스템 때문이었기 때문에, 이번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는 만족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몇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 소감을 써 볼게요. 아, 저는 최대한 장점 위주로 좋게 좋게 써보겠습니다.
1. 캐릭터.
성격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어쨌건 주연급 캐릭터들 각각의 성격과 그렇게 된 이유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고, 이러한 개성을 잘 살린 수많은 스킷(대화 이벤트)을 제공하여 캐릭터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캐릭터와 캐릭터가 엮일 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보여주는데 이게 제법 재미와 감동을 줬기 때문에, 엔딩 이후 후일담이나 번외편이 게임이든 혹은 라디오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등의 형식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전엔 이런 게 잘 나왔었는데 요즘은 잘 안 나오는 것 같아 아쉽네요. 여튼 이건 역대 테일즈 오브 시리즈가 갖고 있던 바람직한 전통이고, 코믹스 스타일로 잘 계승시켰다고 생각해요.
2. 전투
전체적인 인상과 손맛이 좋았고 계속 전투만 해도 재밌을 것 같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전투 매커니즘이 잘 짜여 있습니다.
1)기본 공격으로 적의 내구도를 깎아 브레이크 상태(적이 반항하지 못하고 두들겨맞거나 띄워지는 상태)를 만든 뒤,
2)다양한 기술로 연속기를 먹여 대미지를 누적시키고 스트라이크 게이지를 채운 다음,
3)스트라이크 뭐시기...그 합동공격(?)으로 추가 대미지를 주거나 상대의 체력을 0으로 만드는 방식이 기본 운영인데,
4)여기다 적의 공격을 짧은 타이밍 안에 저스트 회피나 방어하는데 성공하면 무적시간과 대미지, 경직치 측면에서 통상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5)공격 중 플레이어 캐릭터를 교체하거나 별도 지시(기술/마법 사용)를 내리는 방식으로 콤보를 유지할 수 있으며
6)킹오파의 스트라이커마냥, 각 캐릭터로부터 몬스터의 각 특성(돌진기술/비행형/마법사용/스피드형/방어형 등)에 대응하는 서포트 공격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돌진 방어/비행/마법캔슬/회피 차단/방어 붕괴/무적&대경직 부여)
7)또한 각 캐릭터는 성격에 맞는(아닐 수도?) 액션 상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주인공 알펜은 자기 체력을 깎아 크게 한 방 먹여줄 수 있고, 격투가인 로우는 일정 횟수 안 맞고 때리면 능력치 파라메터가 올라가죠.
대략 이런 흐름인데...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던 대로, 보스전은 이 매커니즘이 1)부터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좀 어려웠습니다. 물약빨로 버티며 진행했네요.
다만 저스트 회피와 특성에 따른 지원공격은 유효하기 때문에 적극 활용하니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걸 설계상의 문제라고 볼 수는 있는데...선의로 해석해 보면 '보스'의 격에 맞는 압도적인 강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는 거너벨트전이 그런 점에서 좋았는데(!), 인디그네이션을 한 방 맞고 몰살당할 뻔한 다음 다시 발동되기 전에 보스를 죽이기 위해 열심히 때릴 때의 박진감과, 다시 터지기 직전에 겨우 잡았을 때의 쾌감은 간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라 기분 좋았습니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보스전이 이런 식으로 진행돼서 긴장감이 넘쳤습니다. 특히 볼랑과의 1부 전투 때는 라이프보틀 다 쓰고 다른 다섯 동료가 다 죽은 상태에서 알펜으로 한끗 차이로 겨우 막타를 쳐서 잡았어요...
그리고 일반 전투와 보스전 사이에 기간트 몬스터와의 전투가 있는데, 손맛으로 치면 기간트 몬스터전이 제일 좋았습니다. 다크소울이나 몬헌처럼 패턴 파훼형이라 그런가 싶어요. 패턴이 좀 더 다양했으면 좋겠고 혹 이후에도 콜라보 퀘 등으로 추가하기도 어렵지 않으니 개인적으로는 추가몹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클리어 후에는 렙업도 잘 돼서 긴장감이 좀 떨어지긴 했습니다만, 다른 캐릭터를 조작하면서 악세사리 파밍을 하면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리하면 전투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게임 직전에 밀린 몬헌 라이즈를 클리어했는데, 어라이즈의 전투는 몬헌과는 다른 호쾌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3. 비주얼
처음 게임을 실행했을 때 가장 인상에 남았던 건 배경의 아름다움입니다. 마을을 나섰을 때 눈에 들어오는 초원의 아름다움, 타오르는 화산의 열기, 시스로디아의 설원, 메난시아의 푸르름과 니즈의 묘한 정경, 볼랑 성(이름이?)의 압도감 등등, 모든 장면이 눈을 즐겁게 해줬습니다. 캐릭터는 카툰 기반의 디자인이었지만 어색하지 않고 배경과 잘 어울렸습니다.
색감도 상당히 좋았는데, 배경도 배경이지만 전투 중 막타 칠 때 발동하는 버스트 스트라이크의 효과는 색채 면에서도 다채로워서 아름다웠습니다. 알펜+린웰 조합은 4속성의 색이 다 나와서 특히.
다만 이렇게 잘 만들어놓고 활용을 못하는 게 아쉽더라구요. 포토모드를 만들던가 POV를 조절하는 옵션 정도는 넣어줬어야 했다고 봅니다.
4. 음악
길게 쓸 말은 없습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기 때문에 아쉽습니다. 좋은 쪽으로 귀에 걸리는 BGM도, 나쁜 쪽으로 귀에 걸리는 BGM도 없더라고요. 돌이켜보면 남은 게 없음.
작년에 파판7리메이크할 때는 음악이 너무 좋아서 황홀해하며 게임을 했었는데 말입니다...
5. 세계관과 스토리, 메시지.
1부와 2부의 간극이 상당히 크고, 2부에서 급히 마무리지은 느낌이 있지요. 스토리도 압축적으로 '설명'되고, 전투도 압축적으로 연달아 치러지고.
그래도 뭐 저는 괜찮았습니다. 어쨌건 떡밥을 풀고 마무리를 지어줬기 때문에...해피엔딩이니 용서했습니다ㅋ
얼핏 개발자 인터뷰를 봤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한 사람이 세계관과 스토리 작업을 도맡아서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세계관을 표현하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치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세계관을 드러내는 요소로써 NPC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하는데요, 거의 모든 NPC와 대화를 하며 게임을 진행했는데 각자 주어진 상황에서 실제로 있음직한 생각과 표현을 하더라고요. 이런 인간 군상의 모습 때문에 감정이입을 잘할 수 있었습니다.
스토리는 다들 전형적인 왕도형 진행방식이라고 하시는데,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이야기를 진행해가며 성장하는 형식의 RPG에서 왕도형은 기본이라 특별히 부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라이즈는 마모루? 와도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알펜은 자신을 '벽을 부수는 자'라고 끊임없이 정의하고 노력했지요. 지킨다는 표현을 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정의한 거라고 봅니다.
저는 개발자들이 캐릭터들이 가진 서사를 통해 '성장'이라던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좀 더 깊이 짚으려고 노력한 흔적에 눈이 가더라구요.
가령 1부의 경우, 5령의 생활상은 정치체제의 여러 일반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령은 폭력으로 지배하는 체제, 2령은 정보통제와 상호불신을 조장해 분열시키는 체제(divide and rule?), 3령은 지배자 1인의 선의에 의한 (불안정한) 지배, 4령은 광복 후 한반도와 같은 체제의 혼란기, 5령은 신정일치나 개인숭배의 극단적 형태.
2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레네기스의 지배구조는 능력주의의 탈을 쓴 신분제 체제였고 레나는...초월적인 존재의 말을 듣다 종족이 멸종에 다다랐지요. 제 지식이 짧아 정확한 분류는 어렵습니다만, 어쨌건 1부뿐만이 아니라 2부 또한 다양한 지배의 형태 속에 주인공들을 놓은 다음, '중요한 것은 체제가 아니라 개인의 주체성'이라는 메시지를 일관적으로 던지고 있습니다.
이건 전형적이고 클래식한 내용이지만, 최소한 1부에서는 매 령마다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이러한 주제를 표현했기 때문에 몰입이 잘 됐었습니다.
(*묘하게 1~4령까지의 흐름이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혼란기의 우리나라를 보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걸 하다보니 처음 은하영웅전설을 봤던 중고딩때 생각이 나더라구요. 이 게임은 어쩌면 은영전 이후 중2들에게 추천해줄 만한 정치학 입문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결말의 원기옥 엔딩은... 엔딩 후 서브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니 실마리가 되는 퀘스트가 있더라구요. 각지의 소리를 녹음해 악사에게 전달하는 퀘스트입니다. 그걸 먼저 진행했다면 그래도 좀 더 개연성 있게 결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 같아요. 여튼...저는 스토리는 이쯤 했으면 됐고 후일담이나 좀 더 디테일하게 나오면 좋겠습니다. 세 커플(?)이 꽁냥거리는 거 좀 더 보고 싶네요.
6. 결론.
작년에는 파판7이 갬성에 불을 지르더니 올해는 어라이즈가 마음을 설레게 하네요. 올해는 개인사 때문에 게임이 손에 잘 안 잡혔는데 이 게임으로 힐링했습니다.
음악이나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어설픈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90시간 이상을 정말 행복하게 보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재밌게했다는소감에 베르세리아어쩌고하는 진상은 왜저러는걸까요? 본인이 재미없으면 남들도 재미없어야하나? 어휴 ㅋ
초반진행중인데 엔딩후 파고들 요소나 컨텐츠같은건 괜찮나요???
저는 엔딩 보면 게임 끄는 스타일이라 비교하기 어렵네요;; 그래도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만...제가 엔딩을 본 시점에서 레벨이 60이 좀 안 됐고, 남은 컨텐츠는 훈련장 클리어하기, 각 구역 낚시, 기간트몬스터 20마리 다 잡기, 성당->이세계 클리어해서 마검무기 획득, 보스러쉬(+추가보스?) 서브퀘, 악세사리 파밍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냥 각 캐릭터 조작에 익숙해지고 콤보 만드는 걸 목표로 이것저것 해보는 것도 좋더라구요.
플레까지 50시간~60시간 사이면 충분합니다 그닥 파고들 요소는 많지 않네요
그냥 이런글엔 추천!
감사합니다!
아... 글쓰신분 어라이즈평가가 왜이리 좋으신가 했더니 베르세리아를 안해보셧구나...
베르세리아도 해보고 싶어요. 어라이즈보다 좋았나 보군요??ㅇㅅㅇ
기간트 즈굴은 대놓고 몬스터헌터 모션 따라해서 헛웃음치면서 잡았네요 ㅎㅎㅎ 멧돼지는 도스팡고, 날개 달린 비룡은 레우스나 크샬, 네 발 달린 늑대는 진오우거, 카멜레온은 오오나즈치, 원숭이는 라잔, 공룡은 디노발드, 소드 댄서는 티가렉스 패턴이랑 흡사하더라구요. 브금은 나쁘진 않은데, 뭔가 귀에 계속 감기는 멜로디 하나가 없는 거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대신 ost는 좋았네요. 스토리도 서사가 불충분하고 중요한 내용을 대사로만 연출해서 아쉬운거지 소재나 메시지, 세계관 묘사 등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메인퀘의 부족한 부분을 스킷이나 서브퀘로 어느정도 매꿨다고 봅니다. 볼랑은 좀 더 멋진 악역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디렉터는 볼랑의 안티가 분명합니다. ㅎㅎ
이런 류의 게임이 몬헌이나 소울라이크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볼랑은 저도 좀 아까웠습니다. 같은 개인주의라도 알펜과 블랑은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데요, 알펜이 공존가능한 개인주의라면 볼랑은 자신만을 지키려는 이기주의자의 모습이었지요. 알펜바라기보다 더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면 좋았을 텐데요. 개인사도 만들어 주고.
재밌게했다는소감에 베르세리아어쩌고하는 진상은 왜저러는걸까요? 본인이 재미없으면 남들도 재미없어야하나? 어휴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