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본 글은 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의* 본 글은 그다지 객관적이지 못합니다.(카더라 통신)
본 글은 이전 캐릭터들의 모습에서 변한 부분, 변하지 않은 부분을 다루고자 합니다. 필요에 따라서 제 나름의 짧막한 해석과 함께 그 외적인 것들도 같이 언급하면서 본 글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따로 언급하지 않은 떡밥이나 부분들은 제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는 글이 이미 올라왔거나, 혹은 제가 아직 갈피를 못잡아 언급하지 않았거나, 혹은 제가 까먹고 정리를 안했거나 셋 중 하나입니다.
본 글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작성하려고 노력하지만, 꽤나 주관적인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글이고 하니 평서체로 가겠습니다.
You can(not) change & ETC.
(서와 Q의 상황은 초반부부터 대조적이다. 이렇듯 서,파와 상황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Q에서 좀 더 있으니 찾아보시라.)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것이 신이라고 불리우던 용의 이름이다.
그러나 사자의 정신은 '나는 하고자 하는 것을 한다'이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신지가 예전 찌질이로 돌아갔다."라고 할 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분명 변했다.
미사토가 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냐는 말에 서에서는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허나 Q에서는 어떻던가. 알려주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 단정짓고 이미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 서 초반부와 달리 모르니까 물어본다.
물론 여전히 스스로 행동하기 보다는 남이 시키고 그것을 하는 것에 익숙해 있는 신지지만, 물어보는 것과 물어보지 않는 것.
이는 사소하면서도 거대한 차이다.
그것은 위 스샷에도 나와있다.
항상 순종적이던 신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비록 작품에서 우리가 보기에 신지의 행동이 그릇됐다 할지라도
신지는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제 글을 쭉 읽어왔던 분들이라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충분히 알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한 모습 속에 우리가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게 된 것은 아마도 '책임감의 부재'일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위해 행동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려고 한다.
신지를 보는 입장에서 짜증이 났던 건 이런 회피하려고만 하는 모습은 변하지 않았기때문이다.
허나, 예전의 신지를 생각해보자.
분명 책임은 남들에게 떠넘겨오면서 "어쩔 수 없이 에바에 타는 거다."라고 생각하며 타왔던 신지가
자신의 의지로 에바에 탑승한 결과가, 웅크려있던 자신을 일으켜 혼자의 힘으로 처음 마주한 현실의 벽이
"세컨드 임팩트는 니가 원인."이라는 무겁고, 참혹한 진실이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레이를 구했다.'라는 사실이었지만, 이것마저도 부정당했다.
다시 주저앉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카오루가 희망을 보여주었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절망 그 깊은 밑바닥에서 '희망'의 메세지를 들려준다는 천사 이야기. 한번쯤 들어본 분들이 계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카발라에서 네페쉬-루아흐의 관계를 의미하며, 카오루가 루아흐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 이야기는 언젠가 '데미안'과 같이 헤르만헤세 쪽으로 넘어가서 카발라와 함께 자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그 다음 가장 많이 변화한 것 같은 인물은 미사토다.
그녀가 Q에서 보여준 무모한 성격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허나 본질적인 부분에서 뭔가 반전된 것 같다.
서와 파에서 그녀의 무모함 속에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 더 나아가서는 '사랑' 같은 것이 느껴졌다면,
지금 그녀의 무모함은 그런 것이 결여돼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서와 파에서는 신지와 같이 생활하면서 신지를 가장 많이 옆에서 지켜본 인물이었으니
Q에서 초반에 보여준 그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서에선 왜 신지에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냐고 물었던 미사토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는 신지에게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이전의 겐도를 떠올리게 한다.
여담으로 겐도 역시 구에바의 제레 의장의 느낌이 난다.
역시 여담으로 인류는 사도에 대항하기 위해 아담과 닮은 에반게리온을 만들었다.
'적을 이기기위해, 적을 닮는다.'
천적을 닮아가며 진화하는 방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던 진화 방식 중 한가지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런식의 진화 혹은 변화는 14년이라는 단시간 내에 이루어 질 수 있는 방식이 아니다.
1977-2004 / ??????-?02004
니체가 영혼회귀를 통한 반복은 10만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10만년에 한번씩 똑지만, 똑같지 않은 삶을 반복하게 된다.
즉, 10만년이 1주기다. 이는 지구의 1주기(빙하기~간빙기)인 12만년~13만년을 생각해보면 상당히...신빙성이 있어보이긴 한다.
어쨌든 카오루는 "의지는 정보로서 세계를 따라 바꿔나간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인물들의 변화를 보면 파와 Q는 최소 1주기 이상 차이가 벌어져있어야한다고 본다.
"그 후로 14년이 지났다."
분명 작품 내에선 이런 말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 말을 "신뢰해도 좋은 건가?"하는 의문을 가지신 분들이 있을 거라 본다.
내 생각부터 말하자면 내 대답은 "그것은 알 수 없다."이다.
예를 들어보자.
1. 클론을 만들어 주는 회사가 있다.
2. 이 회사는 무작정 클론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죽었을 때 클론을 만들어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가게 만들어준다.
3. 따라서 기억의 연속성을 위해 일정 주기로 방문해 기억을 저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약간의 수면상태에 들어간다.
4. 한 남자가 이 회사에 등록하고 DNA 저장 밑 기억 저장을 위해 수면상태에 들어갔다.
5. 남자가 눈을 뜨고 회사에서 나오자 마자,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한다.
6.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남자는 한 여자를 만나 이런 말을 듣게 된다.
"14년 만이로군요?"
이때 14년은 정말 14년인가?
정황상으로 봤을 때 남자는 클론회사에 DNA등록 밑 기억을 저장하고 나와 일련의 어떤 행동을 했고, 죽었다는 것 정도는 유추할 수 있다.
눈을 뜬 것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클론이라는 것도. 그 클론은 예전에 자신이 한 짓을 모른다는 것도.
허나 이와 같은 유추에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할 요소가 있다.
남자는 과연 첫번째 클론인가?
남자가 첫번째 클론이라면 14년이 흐른게 맞다. 하지만 남자가 2번째, 3번째, 4번째 클론이라면?
여자가 마주했던 남자가 오리지널이 아니라 넘버링이 붙은 클론이라면?
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반전기법이자, 독자들을 함정에 빠트리는 기법 중 하나로 '미스리딩'이라 불린다.
이는 마술의 '미스디렉션'에서 따온 용어인데, 이것의 핵심 전제는 '관객은 당신이 이끄는 곳을 보게 된다.'이다.
관객들의 이목을 다른 쪽으로 끌어서 진짜로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하는 '심리마술'이다.
능숙한 거짓말이 이에 해당되는데,
모 애니에서도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있는 상황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놓고 봤을 때 서와 파 그리고 Q가 모든 동일 선상에 일어났다고 보기도 힘들어졌고,
그렇다고 서와 파, Q가 각각 다른 주기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도 힘들어졌으며,
서와 파, Q 사이 다른 어떤 주기의 이야기가 낑겨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따라서 루프물에 대한 가설들과 루프물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가설 모두가 설득력을 얻음과 동시에 상실한다.
단지 필자는 영원회귀에 따른 루프의 가능성을 전제로 글을 쓸 뿐이다.
#1에서는 마리가 니체가 말하는 '어린아이'단계같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파에서부터 등장하는 마리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
"뭐가 저리 즐거울까?"
니체가 말했던 정신성장 3단계인 '어린아이'는 기존 질서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과 사고방식으로 생, 삶을 즐기면서 스스로 새로운 가치관과 색다른 것을 추구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똑같은 삶의 반복과 자신의 죽음조차도 긍정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과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무한한 긍정은 동료의 죽음조차도 그...긍정하나?)
모든 일들이 새로울 것 없이 반복된다면, 인간이 인과에 얽매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는 지 이미 정해져있을 터다.
그래서 니체는 "오래 살려 하지말고 위험하게 살아라."고 말했다.
위험하고 도전적인 삶이 내 목숨을 위협할 지라도 어자피 우리가 언제 죽을 지는 이미 결정돼있기 때문이다.
작품 내에서 마리는 이름 그대로 '희망'의 울림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항상 재미있어보였고, 항상 즐거워보였다.
신지에게는 "그렇게 웅크려있어봐야 즐거운 일은 생기지 않아."
혹은 "그렇게 웅크려있어봐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라는 조언을 해주지 않던가?
물론 그녀의 안풀린 비밀들이 몇가지 있기는 하지만, 그런 요소들을 제외해놓고 봐도
그냥 나오면 나오는 내내 즐겁다는 표정, 즐겁다는 목소리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던 센트럴 도그마 그 심장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를 그 중심에 있음에도 여유롭기만 하다.
오히려 흥미있는 말도 해준다.
신경쓰이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바빌론은 무너지고 귀신들의 거처, 온갖 더러운 영의 소굴, 더럽고 가증스러운 새들의 집이 됐다는 구절이 있다.
뱀 혹은 용. 이 두 생물은 '신에게 대항하는 신', '저승의 신'이나 '지옥의 신'으로 '신'에게 대항하는 존재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악마는 바알이나 사탄이다.
사탄의 삼위일체의 요소가 뱀(용)+짐승+거짓선지자 임을 생각하면
짐승을 제외한 나머지 두 존재 중 하나가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말하는 마리.
성삼위일체에선 성부+성자+성령 임을 생각하면 거짓선지자는 악령(귀신)으로 생각할 수 있으므로
저 대사를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짐승'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이미 세계에 현현한 '짐승'이 뭔지는 조금 생각해볼 부분이다.
two sides of the same coin
(양성일체)
니체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니체가 생각했던 신의 존재는 선과 악이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일체화된 존재다.
바로 EOE에서 카오루와 레이가 합쳐진 그 모습이 그것을 의미한다.
생성과 창조는 항상 도태와 파괴가 전제되고 도태와 파괴는 생성과 창조가 전제된다.
이러한 것을 알고 긍정하는 것.
절망은 희망이 전제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것을 알고 다가올 희망을 위해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느끼는 절망조차도 즐기는 것.
이것이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다.
아폴론적인 것이 전제된 디오니소스적이라는 의미로, 다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아래 도표로 열거해놨다.
아폴론적인 것 |
디오니소스적인 것 |
빛과 의술의 신 |
포도주와 광기, 열정의 신 |
창조 |
파괴 |
이성과 질서, 규제 |
의지와 무질서, 자유 |
회화나 조각 |
음악 |
꿈 |
도취 |
고정, 의식 |
변화, 무의식 |
양 |
음 |
희망 |
절망 |
이성과 지성 |
본능 |
우리가 어떤 것을 생각했을 때 그 이면들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원론이라고 이해해도 좋다.
허나 이러한 것들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하나로서 같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릴리스가 있는 센트럴 도그마 최하층이다.
게마트리아에서 E는 H와 함께 묶어서 숫자값이 5일 경우도 있고 8일 경우도 있다. 똑같이 발음이 e(단음, 장음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헬라어로 예수(JESOUS)가 가지는 숫자값은 888이라다라고 많이들 알고 계실 것이다.
J(10)+E(8)+S(200)+O(70)+U(400)+S(200) = 888
그럼 이 888은 다시 EEE나 HHH로 표현할 수 있음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소문자로 eee를 표기했을 땐 뒤집으면 666이라는 숫자가 되지만, 여기까지 깊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극장판 : 서 에서 신지는 마치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박힌 릴리스를 보게 된다.
인류의 속죄를 위해 죽은 예수.
그와 똑같이 십자가에 못박혀있는 릴리스는 언젠가 인류가 속죄하겠다는 '제레'의 의지였을 지도 모른다.
몇가지 의문인건 릴리스가 쓰고 있는 가면이 구에바와는 차이가 보이고, 십자가를 자세히 보면 머리 부분과 몸통부분이 이어져있지 않다.
이는 인간의 신성실락을 의미하는데, 이 부분에 관해서는 고양이렌즈님이 자세하게 설명해두었으므로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자. 예수를 상징하는 숫자 888이 나왔다. 그럼 생각나는 숫자들이 두개 더 있을 것이다.
백코드 더 비스트(666)과 트리플세븐(777)이다.
설명하기에 앞서 플러그심도와 색상에 대해 설명코자 했으나 이 역시 엄디저트님과 고양이렌즈님이 설명해두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코자 한다.
이 모드를 개방하면 에바의 눈과 파일럿의 눈은 초록빛을 띠는데, 플러그 심도는 하강한다.
눈은 마음을 비추는 창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파일럿의 상태 자체는 플러그 심도로 따지면 상승해야한다.
인간의 영역이 초록색을 의미한다면 모르겠지만, 빛의 삼원색(빨-노-파)으로 봤을 때 인간의 영역은 노란색이 맞다.
*색의 삼원색은 빨-초-파인데, 색의 삼원색은 섞으면 검은색이 되므로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근데 파일럿은 사도쪽으로 가까워지면서도 에바의 형태는 오히려 짐승에 가깝게 변한다.
짐승을 뜻하는 [더 비스트]보다 [트리플 세븐]모드가 더 짐승 같은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666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숫자로, 인간의 신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777은 그 윗단계의 숫자로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존재. 에반게리온에선 사도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혜의 시작(Beginning of Hokmah)'이라는 의미를 가진 111과 부합되는 숫자로
777은 '지혜의 길(Road of Hokmah)'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이 '지혜의 길'은 카발라에서 케테르로 이르는 32개의 길이고, 그것을 인도하는 것이 각 세피라의 대천사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카발라에서는 신을 마주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신을 만났다고 생각된 존재는 신의 대리자인 천사를 만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던가.
신 앞에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천사장 '메타트론'과 '사탄' 뿐이었고,
인간이 신과 마주해 살아남으려면 세피라 비나와 세피라 호크마의 도움이 필요한다.
예수도 "나를 본 것이 곧 하나님을 본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AAA분더에서 AAA가 가지는 숫자값이 111이라는 점은 역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돌아와 비스트 모드보다 트리플세븐의 모습이 왜 더 짐승같은지는 엄디저트님의 2번째 글에서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다.
'천사를 닮고자 했던 인간은 짐승을 닮아버렸다.'
자, 아까 마리는 '어린아이'라고 언급 했다. 이는 자기 자신만이 이 세계에서 유일한 '나'이며 신을 부정하고 '나'를 긍정한다.
기독교에서 보자면 니체가 주장한 '어린아이'의 상태. 즉, 초인, 위버멘쉬는 짐승의 숫자를 의미하는 그 자체의 인간이다.
때문에 마리의 2호기의 백코드는 '더 비스트'를 넘어서지 못한게 아닐까 싶다.
트리플세븐 모드라는 걸 알고 있어도 어쨋든 마리 자신은 인간이고 싶기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전 [귀신이 나올지, 뱀이 나올지-]라는 대사에서 짐승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짐승은 이미 자기자신임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다음은 아스카다.
확실한건 얜 인간의 범주를 넘었다는 것.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넘긴다.
여기서 다시 '동전의 앞면과 뒷면의 공존'을 상기하고 플러그 심도와 모순되는 눈의 색과 2호기의 상태를 생각해보자.
느껴지는 게 있는가?
니체가 말하길 "인간은 짐승과 초인사이에 걸친 하나의 밧줄이며, 하나의 심연 위에 걸쳐있는 밧줄이다."라고 말했다.
플러그 심도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던가?
인간이 심연 깊숙히 몰락했을 때 비로소 삶의 구조를 파악하고 상승하고 다시 몰락함을 반복하며 위버멘쉬가 된다고 말했다.
영원회귀 역시 상승과 몰락의 운동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몰락은 동시에 상승이 전제돼있다.
플러그 심도도 이와 같지 않던가?
플러그 심도 깊숙히 하강한 신지가 만난 색은 붉은 색이 아닌 푸른 세계다.
카발라에서도 1번 세피라는 10번 세피라와 다르지만 '같다'고 표현한다.
1번 세피라의 대천사 메타트론과 10번 세피라의 대천사 산달폰은 쌍둥이가 아니던가?
카발라에서 말하는 인간의 원형 '아담 카드몬' 역시 남자도, 여자도 한 몸에 품은 양성일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모순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하지만 누군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인간만큼 모순적인 존재도 없다."
대조적인 장면이다.
릴리스의 목이 있는 곳엔 목이 없는 인피니티들이, 릴리스의 몸이 있는 곳엔 인피니티의 두개골로 추정되는 것들이 나뒹군다.
자, 아까 인간의 신성 실락을 잠깐 언급했었다.
실락으로 인해 인간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신과 소통할 수 없고, 다가갈 수 없다면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간단하다.
역으로 하강하면 된다.
신의 영역이 보라색을 의미한다고 했을 때 보라색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색을 섞어야하는 지 생각해보라.
인간의 실락으로 플러그 심도를 상승시켜 파란색 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면, 플러그 심도를 하강해 붉은색 세계에 도달하면 된다.
세피로트와 클리포트가 만나는 접점은 10번계 말쿠트이기도하지만,
우주의 심연이자 우주를 비추는 거울 '마법의 거울'이라고도 불리는 숨은 세피라 '다트'도 있다.
신지는 거기다 '신'을 부정한 바 있다.
피라미드는 세피로트 나무를 상징한다고 알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그런 피라미드 형태의 네르프 기지를 밟는 신지는 그 꼭대기를 마구 밟으며 겐도가 내린 결단에 분노하지만
그 상징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간절한 염원을 들어주지 않은 신에 대한 분노이자, 모독 행위이다.
니체는 인간이 '신'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정하게 되면.
그러니까 우리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낳은 법칙이나, 개념, 도덕적 윤리관, 여러가지 체계 등을 부정하게 되면
거기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고 인간은 거기서부터 몰락한다고 말한다.
'신'에게 대항하기 때문이다.
심연에서 자기 자신을 마주한 레이
"당신이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 보면, 심연 역시 당신을 들여다 본다."
심연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진정한 '진실'이다. 우리가 세상에 '진실'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딱 하나 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할 지라도 '나'. 나 자신에 대한 존재만큼은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니체는 인간이 몰락하므로서 자신의 삶의 구조를 파악하고 어린아이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몰락하는 자는 건너는 자다.
인간이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는 세계를 아우르던 이른바 '성인'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공통으로 입을 모아 말하지 않았던가.
삶은 그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으로 이르는 여정의 과정 하나 하나를 즐기는데 있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을. 그런 자들이야말로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텅 빈채로 가득 차 있었고 몰락 이후 그들의 표정은 숭고했다. 나를 뒤 흔드는 작품들은 절정의 순간에 바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들은 왜 중요한가. 몰락은 패배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라.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돌볼 목자는 없고 가축의 무리가 있을 뿐! 모두가 평등하기를 원하며 실제 그렇다."
우리 현대인들에게 가하는 일침같은 말이다. 참으로 씁쓸하게 느껴지는 문장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줄타기를 하는 광대가 등장한다.
이 사람의 본분은 안전하게 탑 속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탑과 탑 사이를 단 하나의 줄에 의지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광대의 본분은 그 줄타기를 하며 아슬아슬함을 우리에게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있다.
배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항구에 묶여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사자는 우리 안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것이 아나라 펼쳐진 광야에서 사냥감을 쫒고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것에 목적이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니체는 말한다.
인간이 삶을 즐기고 환희를 느끼는 것은 아무것도 변할 것이 없는 탑 안에서 안전한 삶을 영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광대처럼 줄타기를 하며 그 줄타기를 즐기는데에 삶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이다.
밑에는 언덕이 있고 냇물도 있고 진흙도 있다
걷기 평탄한 길만 있는 게 아니다
먼 곳을 항해하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 조용히만 갈 수는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차라리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
풍파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니체-
영원회귀. 그 큰 원에 한 부분을 찍어보라.
그 점은 현재일 수도 있으나, 원이라는 특성상 그 점은 과거이며 동시에 미래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접점이다.
니체는 그 현재의 삶을 가장 충실하게 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나' 자신을 세우라!"
건버스터 OST - 시간의 강을 넘어서 -
Zero or One
에반게리온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정말 맨 처음이다. 에반게리온 TVA가 아닌 그 이전의 시작.
(안노 : 이 모든 설정에는 의미가 없다.)
안노는 에반게리온의 모든 설정에 의미가 없다고 말한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의미가 없는가?
아니다.
안노 감독은 자신이 설정을 말해줌으로서 보는 사람들이 '신'을 믿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어떤 설정에 대해 "이것은 이러합니다. 해서 요렇게 해석하면 됩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것 외에는 생각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안노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작품을 해석해보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석하려 한다.
누군가의 해석을 보고 설득당하거나 반대하고, 설득당해도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기 나름의 생각을 반복하고 그 해석이 맞는지, 틀린지 다시 생각해본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 나아가 자신만의 해석을 시작하기도 한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자기 자신이 도출해낸 결과나 생각과 다르기에 반대하거나 회의적일 것이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은 일을 나 자신의 의지로서 행한다.
왜?
즐거우니까.
재미있으니까.
누군가는 나에게 고작 애니 하나에 목숨 건다며 한심하다고 말하며 경멸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다.
왜?
즐겁기때문이다.
재미있기때문이다.
거기에 이유는 없다. 나 자신의 의지이며, 내 마음의 울림이다. 여러분의 의지이며, 여러분들 마음의 울림이다.
고작 애니일뿐이라고 생각해도 에바를 해석하려 노력하고 여러 사람들의 해석글을 읽어보며
나 자신의 결론을 도출하고자 하는 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의지이자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다.
그렇다. 안노가 말했던 "설정에 의미는 없다."라고 말한 것은 바꿔 말해서 우리들 모두의 해석을 긍정하겠다는 말과도 같다.
그렇기에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야 했고, 난해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이나즈마킥!)
가이낙스 작품들을 마치 동일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 처럼 보이려고 연출했던 안노의 이 고집은 어쩌면 그래서 일지도 몰른다.
우주왕립군부터해서 나디아, 에바TVA, EOE, 건버스터, 그렌라간까지.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마저도 포용하기 위해서다. 물론 누군가는 오마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확률이 0%가 아니라면 오마쥬로 보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도 결국 맞는 해답이 될 수도 있다.
(-INFINITY- 윗사진은 건버스터2기, 아래는 그렌라간)
왜냐면 세계는 무한히 반복되며 우리의 영혼들과 함께 진화해가기 때문이다.
그것을 노골적으로 그려냈던 작품은 그렌라간인데, 너무나도 격한 '열혈'에 감춰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필자의 1~4편을 모두 보아온 이들이라면, 건버스터 2기와 그렌라간을 다시 한번 감상하는 것도 추천한다.
분명 처음과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에반게리온이나, 그렌라간이나, 건버스터나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비슷하기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설정에 의미가 없다고 했기에 사람들은 틀에 잡히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관점으로 에반게리온을 보게되고, 에반게리온을 해석한다.
하지만 이런 우리들의 해석 역시 안노가 "설정엔 의미가 없다."라고 했으므로 그 의미를 잃는다. 누구의 해석도 옳으면서도 옳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결과가 아니다. 에반게리온 자체를 해석하려하고 그것 자체-그 과정을 즐기는 우리들의 모습이 중요한게 아니던가?
우리가 니체가 말한 몰락하는 자이면서도 건너는 자가 되버린 것이다.
누군가가 "설정엔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던 안노의 말로 이 모든 것들을 부정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들이 부정할 수 없는 단 한가지는
우리가 에반게리온을 해석하면서 느낀 즐거움. 그것만은 절대 부정하지 못한다.
니체는 이런 우리들을 사랑하노라 말하지 않았던가?
이 세계(에반게리온)을 사랑하기에 이 세계(우리들의 세계)를 사랑하게 되버린 것이다.
니체는 인생에 단 한순간이라도 즐겁다, 행복하다, 아! 순간이여! 하고 느낀 적이 있다면
우리는 이 반복되어질 삶을, 세계를 다시 살아가고 싶어한다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안노는 어쩌면 에반게리온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 세계를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이다.
ㅡENDㅡ
후아, 제 모든 긴 글들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남깁니다. 마지막글이니 만큼 좀 더 완벽하게 다듬어서 올리고 싶었지만, 공모전 준비로 슬슬 빠듯해져서 중간에 다듬다 관둔 흔적들이 틈틈히 보입니다 ㅠㅠ 철학적으로 접근한 이상 좋은 소리 들을 각오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예상외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서서 힘내 적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합리화하기 좋은 수단이죠.. 정작 안노 본인은 그런 코멘트를 남긴적이 없지만
안노 : 에반게리온에 아무 의미 없습니다. 오덕들은 그걸몰라요 ㅋㅋㅋㅋㅋ
에반게리온큐보고 BD디스크 부셔버렸음
후아, 제 모든 긴 글들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남깁니다. 마지막글이니 만큼 좀 더 완벽하게 다듬어서 올리고 싶었지만, 공모전 준비로 슬슬 빠듯해져서 중간에 다듬다 관둔 흔적들이 틈틈히 보입니다 ㅠㅠ 철학적으로 접근한 이상 좋은 소리 들을 각오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예상외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서서 힘내 적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학사 학위 논문을 니체 가지고 썼었는 데 반갑네요. 인물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이런 접근이 꽤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헉, 논문을 쓰신 분이 계실 줄이야...ㅠㅠ 왠지 부끄럽네요
아..진정 마지막인가요. 확실히 해석하는 맛이 있는 작품이죠.. 다시 좋은글로 뵙길바랍니다
언젠가 다른 글로 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_~
감사히 잘 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야 말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디저트님 글 이후로 가장 재미있게 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되는 에바 관련 글이었습니다... 좀 더 연재하셨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딱 여기까지 연재하는 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다른 관점으로 본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삭제된 댓글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OST 중 하나죠. 건버스터 1기와 2기를 부합시키는 곡이기도 해서 헤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왠지 Fly me to the moon이 떠오르는군요 리뷰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에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끼리의 교감이라고나 할까, 그런게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잘 볼게요~
좋은 리뷰 잘봤습니다 왠지 가슴벅차네요
그 기분 꼭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했어요!
다른 교수님이 나타난거같다
교수라고 하기엔 너무 적은 분량의 글이기떄문에 헤헤, 그래도 감사합니다.
마리의 저 "鬼が出るか、蛇が出るか" 는 사실 그냥 일본 속담이긴 합니다만ㅋㅋㅋㅋㅋ그렇게 풀이할 수도 있겠네요. 영원회귀, 영혼회귀....근간 읽은 에바 리뷰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이론이었어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에 와닿았다니 다행입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찌찌 'ㅅ'
뽕
에바 학회 부회장 맡으셔도 될 거 같아요
이미 부회장은 김교수님이 계시기때문에, 조수직 정도...?
이게 뭐야
난다 고레
안노 : 에반게리온에 아무 의미 없습니다. 오덕들은 그걸몰라요 ㅋㅋㅋㅋㅋ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합리화하기 좋은 수단이죠.. 정작 안노 본인은 그런 코멘트를 남긴적이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_~
십수년 전 취미가에서 분석하기를 정 골아프면 다른건 다 떼고 신지의 성장만 놓고 보면 사춘기 소년의 성장드라마가 된다고 하던데... 그거 초딩시절 읽어도 이해가 되던뎁쇼?
네 다음 관심종자병님 ~ 여기서 이러면 안된다고 말 했어요 안했어요?
그렇죠 설정을 파는것도 재미죠
감을 못잡는 떡밥이 너무 많아서 문제지만요(...)
태클? 일지 모르겠지만 빛의 삼원색이 빨,초,파 이구요 색의 삼원색은 yellow magenta cyan입니다.
헉, 제가 착각하고 있었네요 ㅠㅠ 아 이러면 다시........
철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해주셨는데 굉장히 이해가 잘되네요.. 에반게리온의 분석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결국 모든 작품의 목적은 메시지를 남기는것, 세피로트 등 수많고 복잡한 배경지식들은 결국 수단이고 중요한건 그 뒤에 숨겨진 철학적 메시지들이죠. 잘봤습니다.
네. 저도 설정이 이렇다 저렇다가 아니라, 이런 설정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가 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엄디저트가 하니까 따라하는 짭인가? 하고 왔는데 이건 뭐... 님 짱 여기는 취미갤러리! 엄디저트 나와라!
엄교수님 짱짱맨
잘 읽었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워... 강력크 합니다. 여러번 읽었네요
반복해서 읽어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머싯졍
뫄이쪙
삭제된 댓글입니다.
베스트 올라갈 줄은 저도 몰랐는데, 어쩐지 죄송하네요...
하. 링크 타고 들어와서 4번 글만 보았는데. 에반게리온 관련 얘기는 넘기고서라도. 건 버스터 OST. 정말 오랫만에 듣는군요. 잊고 있던걸 기억해낸 느낌입니다. 저에게 정신적으로 충격을 준 애니 「건 버스터 & 다이 버스터」「무한의 리바이어스」「에반게리온」 다른것도 더 있겠지만. 현재 생각나는 건 세개 밖에 없군요. 단순한 유흥거리를 넘어 마음을 뒤흔들 정도로 큰 감정의 변화를 준 애니메이션 들이죠. 뭐.. 일반인 한테 이래 말하면 이해를 못하곤 하지만. 멘붕물이라 해야할지.. 대작이라 해야할지.. 애니메이션이 애니메이션으로 보이지 않게 해 준 작품들입니다.
아, 그 기분 저도 되살아 날 것 같네요. 제가 그 기분을 처음 느낀게 아마 '라제폰'을 접하고 였는데, 라제폰 보고 나서 뭔가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각이 좀 바뀌게됐죠.
추천 박아요 ~~!! 그런데 빛의 삼원색은 빨 초 파 이고 색의 삼원색은 빨 노 파 인데 실수로 잘못 적으신거 같아요
네. 그렇게 될 경우 눈이 초록색을 띄는 건 아직 인간의 영역을 넘지 않았다는 뜻이 되겠네요. 단 아스카는 한쪽눈이 푸른색으로 빛이 나니....
귀중한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읽는 내내 니체 생각도 나고, 데카르트 생각도 나네요. 그리고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마지막 장면도 살짝 떠오릅니다.. 기실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글쓴이분의 생각에 정말 공감합니다. 한 번 더 감사합니다^_^
니체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느낌이 들긴합니다. 그리고 철학이 가지는 근본적인 요점은 누가 어찌됐건 '내가 나 자신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것'에 있으니까요. 저야 말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엄교수님 글과 이 글을 보다 문득 든 생각인데 14년이 흘렀다는 얘기가 의미심장하게 들리네요. 여기 나오는 운명의 아이들 나이도 전부 14살이었던 것 같은데...
14라는 숫자는 다윗(혹은 다비드)의 숫자값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어로 표기하면 DVD(=D4+V6+D4)가 됩니다. 다윗은 메시야의 모형에 가장 가깝다고 칭송받는 인물이었으니, 운명의 아이들 나이가 전부 14인건 그들 전부가 메시야 적인 존재임을 나타내는 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기는 합니다
요컨데 신의 힘을 이용해서 신을 강등시킨다?? 이런건가요? 신이 있다고 가정하에 그 힘을 이용한다는 건데 그러면 그 "신"이 가만히 있을라나? 신지는 벌받겠군요
이미 영원히 고통받고 있는 신지(...)
('' 이번엔 구원이 되겠져 ㅜ.ㅜ
에반게리온은 도대체 언제 까지 나올려나,처음 본게 고등학생때 인대 말이죠,강철에 걸플랜드 게임도 그때였고,
제가 에반게리온을 처음 접한게, 초등학교때 비디오로 접했으니...정말 오래됐긴 했죠
에바 내용을 발판으로 철학 싹을 틔워내는데,.. 에바 내용만 좀 ..
제가 보는 에바 내용이 이러했으니까요.
확실히 내용전달에 있어서는 불친절한 감독이군요..
불친절 했기에 더 재미있는 것이 에반게리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_~
재미있는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에반게리온큐보고 BD디스크 부셔버렸음
으엌 ㅠㅠ 절 주시지
그런대 신지가 일으킨것은 서드(니어)임팩트가 아닌가요 ?
그게 발단이 됐다고 작중에 카오루가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우 빢쳐
큽...뭐가 그리 ㅠㅠ
나에게 있어 신극장판은 경악과 공포 기존의 에바에 대한 내 추억을 한순간에 무너트렸다.. 정말 일반 b급 애니보다 못한 쓰레기라고 감히 말한다. 신극장판은... 일단 96년에 나온 tv판보다도 그림체부터해서 전부다 하향... 내용은 산으로 가고... 차라리 tv판에서 나온 꿈부분을 내놨으면 이렇게 실망도 안했을거다..
그렇게 보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사실 니체의 철학이야말로 저런 설정과 그에 대한 해석을 부정하는 방향인걸 고려할때, 제법 아이러니한 느낌이 드는 글이네요. 잘 봤습니다.
저도 쓰면서 좀 아이러니 했습니다.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에서 보여주는 상황도 꽤나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으니까요.
뭔가 내용을 만들어내고자 한 작품들은 아무리 작품을 만든이와 만든이들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봐를 정확히 밝혀낸다 해도... 본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라는 건 물론이고,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자기 안에 내포 해두었던 생각. 그러니까 뭐 사실상은 말 그대로 의미 없는 생각이죠. 좋은 장면이라는 느낌에 만들어진 부분도 있을 것이고... 제가 좀 잡 소리도 하는 거 같네요... 뭐 어쨌든 생각을 짜내 만든 작품이라면 아무리 만든이들이 보는 이들에게 내용의 목적을 밝힌다 해도 그 안에 내포 하고 있는 의미는 방대할테니까요. 따져보면 작품 해석을 가볍게 여긴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작품 내용 해석이란게 유희니까요. ㅎㅎ
그쵸. 그 유희가 중요합니다.
카발라 철학은 알면 알수록 불교와 비슷하네요. 개인적으로 신 극장판은 너무 깊어져서 구판에 정이 갔는데 에반게리온에 대한 담론은 글쓴이분의 말대로 참 즐겁네요.
고뇌하는 것조차 즐거운 몇 안되는 일 중 하난 것 같습니다.
저 님 몇십년전부터 유명해서 어릴때라면 누구나 다 봤었을 드래곤볼의 피콜로나 봉신연의의 태공망을 기억하시나요?;; 보면은 둘다 외계인인 신인 백과 검은색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모두 하나에 있다는 설정인데 조로아스터교나 조로아스터교 이전의 아수라 신화랑 매우 비슷합니다. 이게 기독교쪽이 조로아스터교랑 매우 비슷하고 유태인 역사를 보면 조로아스터교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고요. 세계 기록상 천사나 세계멸망과 구원의 신 기록이 나오는데 비해 기독교 옛날의 유태인 이야기에서는 천사가 오랫동안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이미 조로아스터교는 사산왕조쪽과 함께 이슬람교에 의해 멸망하고 흰두교에게 채이면서 많이 남지도 않았지만요. 이번에 나온 극장판에서 4개의 팔과 2개의 날개가 나오는데 꼭 아수라 신화에서 표현되는 팔 6개와 두개의 영혼을 표현한것 같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른 기독교 신화와 비슷한 신화로 디오니수스가 아닌 오르페우스 신화를 예로서 생각해야만 합니다. 제가 무얼 보고 꿈을 꾼건지 한번 꿈해몽 때문에 조사해 봤는데 오르페우스 신화가 기독교인들이 옹호하면서 보호 할려고 했던 신화였었는데요. 이 이유가 오르페우스 신화가 유대교, 크리스트교등 같은 기독교들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한데 유일신 , 성욕에 대해 탐욕적이지 말아야 한다 , 윤회사상 , 부활과 희망을 의미하는 오르페우스의 알을 의미 합니다. (유대교는 사제가 개로 환생 했다고 세계적인 소동이 있었는데 윤회 사상을 믿는다고 들음)
그리고 제가 읽은글에서는 듣기로는 옛날부터 제우스를 믿는 사람이 여러곳에 있었는데 이 제우스 신화중 아틀란티스의 토트 신화를 보면은 루시퍼가 포세이돈이나 제우스로 불린다고도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여러개가 짬뽕된 신화들이 많은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인드라가 데우스로 불리는데 데우스가 아마 불어인가? 제우스로 읽는다고 하는데요. 이 인드라인 deva쪽과 적대 관계인 존재가 아수라신과 아수라신쪽의 천사라고 조로아스터교쪽에서 표현이 됩니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이 토트가 기독교 신인것 같다고 말이 많이 들었는데 사이비 종교에서도 토트가 화신으로 세상에 다른 이름과 다른 모습으로서 세상에 있다는 말 때문에 이 신화를 쓰는 경우가 많아 보이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전 무신론자이지만은 대충 평범한 상식과 지식들로 생각하면요. 조로아스터교쪽이 기독교에 비해서 천사나 세계 멸망과 구원의 신이라는 단어들이 오래전부터 나왔다는 것과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에 있었던 옛날의 신이 이야기라는 유태인의 이야기 기록쪽에서는 천사나 구체적인 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에 없는것을 보면은 매우 이상하게 보일수 밖에 없습니다;;
음...제 글을 정독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에반게리온에서 디오니소스 를 말한 것이 아니라 니체가 말하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말하고 니체의 철학과 에반게리온을 연관지어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삭제된 댓글입니다.
저도 이 글이 베스트에 올라갈 줄은 몰랐습니다 ^^
꿈보다 해몽이라고... 사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판단케 하는 설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노가 "나의 모든 것을 담았다."라고 말했으니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만들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가져다 놓은 게 아닌 이상에야, 아무 설정 없이 만들어 지는 이야기는 없죠... 가만히 있는 돌도 환경과 세월에 의해서 깍여 나가는데 말입니다...
에반게리온은 이런글을 봐야 제맛
게마트리아를 아는 사람이 다 있네. 오컬트 좀 아시는 듯.
개인적으로 신극장판은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퇴색한 그림. 흔한 양산형 저가 그래픽과 쓸대 없는 등장인물 추가... 산으로 가는 내용... 개인적으로 진짜 에반게리온 타이틀 없었으면 망했을 거다..
원문과 관계없는 개인적인 감상은 따로 적으심이 어떠신지요.
국민학교때 접하고 충격에 싸여서 평생가슴에 남아있는 애니................................. 레이가 훌라후프 사도한테 당하는 장면이 충격적이였지........ 그리고 중학교때 접한 데스앤리버스 극장판도..................... 결국 작가는 아무의도가 없다고했구나.. 그시절 서핑도 해가며 나름 열심히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담겨진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는데..ㅎㅎ
이거 엄청나네요 ㄷㄷ.. 에반게리온을 철학적으로 이렇게까지 해석할수 있다니. 잘 보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노감독 왈 -------------------- 애니메이션의 팬들은 자존심이 없는 현실 도피자들.. -------------------- Q에반게리온의 성공에 대한 생각… A안노: 모든 상품은 경제적인 문제일 뿐이다. 에반게리온이 그렇게 히트한 건 이상한 현상이다. 거기 목매는 놈들은 다 미친 놈들이다!(오역수정)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정신병자들인데! / ------------------------ Q 에반게리온을 해석하겠다고 지금도 머리를 짜내는 열성팬들에게 한 말씀. A안노: 뭐 그런 멍청이들이 다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