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권율 : 나말인가?. n권율이 왜 히데요시 가문의 몰락에 큰 영향을 줬냐하면행주대첩에 참여한 왜군과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여한 인원을 비교하면 n행주대첩에 참여한 인원들이 그대로 세키가하라의 서군에 n들어가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그래서 여러 추측이 있는데1. 행주대첩에서 주요병력과 장교급이 죽으면서 병력 자체의 수준 저하2. 행주대첩에서 개쳐발려서 지휘권이 안 먹힘.정도로 그 영향을 추측함. n즉 행주대첩에서 권율이 승리한 것이 그대로 세키가하라의 서군이 약화되는데 영향을 줬다는 거
도요토미 가의 몰락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도쿠카와 이에야스 아니었어?!
히데요시가 조선에 꼬라박지 않앗으면 도쿠가와를 견제할 장치들이 히데요시 사후에도 정상적으로 돌았을거니까. 히데요시의 삽질이 맞지.
사실 이시다는 저거빼도 인망이 없어서 지휘력 ㅂㅅ이긴하다
행주대첩은 이시다와 우키다 콤비가 무능하다는 사례를 하나 더 만들어준 정도고 이게 세키가하라 전투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은 적다고 봄.
그리고 에시당초 행주에서 장교진의 대량 전사로 타격을 입었을 만한 다이묘는 구로다와 모리 정도인데. 모리는 세키가하라에서도 간 거하게 보던 양반이고 구로다는 동군임.
헉 도요토미 가문의 몰락에 관여했다길래 풍신수길일줄
일본측에선 왜란승패의 분수령이 이치전투라고 보고있고 권율장군 본인도 자신의 제일전공은 이치전투라고 하심. 행주대첩은 대승이기도하지만 적 총대장이 패주한 전투라 선전용으로 띄운감이 있고 서군전력 감소를 말하자면 저기 행주대첩도 반절은 동군 내지는 동군에 내통한 애들이고 동군목록도 반절은 임란 파병출신 그것도 토도같은경우 수군이었음.(와키자카는 동군내통자) 결론은 행주대첩하곤 크게 관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