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6은 대답 대신 적들의 발치를 향해 위협사격을 가했다. 방패를 들고 있는 USAS를 제외한 나머지 인형들은,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회피했다.
역시나 방패를 든 샷건은 그리 쉽게 물러나 주지 않았다. 하지만 방어를 굳히게 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USAS씨, 떨어져요!"
M16이 왼손을 살짝 움직인 것을 어떻게 캐치한 것인지, 적 소대의 대장은 USAS에게 자리를 이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거슬리는 방패병에게 스턴 그레네이드를 먹인 뒤 대장인 K-2를 속공으로 제압할 생각이었으나, 상대는 만만치 않은 눈썰미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쳇."
M16은 혀를 차며 지금 막 꺼낸 그레네이드를 적들의 머리 위를 향해 던졌다.
이미 수단을 읽혔다고 해서 완전히 무효화가 된 것은 아니다.
"이히히, 내 차례당~"
푸른 머리의 전술인형이 실실 웃으면서, 재빨리 파란 색의 유탄을 자신의 무기에 장전했다. 그리고는 날아오는 그레네이드를 조준한다.
-쿠왁
뭔가 이상할 정도로 답답한 소리를 내며 녀석의 무기는 유탄과 함께 흰 연기를 뿜었다. 그러자 그 뒤를 이어'탱'하는 소리가 들리며, 스턴 그레네이드와 녀석의 유탄은 열차 밖 평원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유탄으로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스턴 그레네이드를 비스듬하게 맞춰 튕겨낸, 말 그대로 묘기에 가까운 짓이었다. 그것도 열차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일부러 폭발하지 않는 연습용 유탄을 써서 말이다.
저런 상황판단 및 묘기가 평범하게 가능한 녀석이라면 대단한 것이고, 만약 임기응변으로 해낸 것이라면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저 멀리로 날아가 터지는 그레네이드를 뒤로한 채, 열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객실에서의 큰 움직임은 없었다.
탄두와 탄피가 몇 번이고 열차의 지붕을 두들기는 소리를 내었지만, 바위산 근처를 달리는 열차이다 보니 굴러 떨어진 자갈이 지붕에 맞아 튕겨나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사태가 워낙에 빈번했기 때문에, 인간들은 거기에 대비해서 특별히 튼튼하고 두꺼운 합금으로 열차 지붕을 만들어 두었기도 했다.
그리고 동료인 에이전트가 이미 해킹으로 CCTV에 손을 쓴 뒤였다. 기관사가 아무리 확인해 봐야, 열차 지붕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그녀와 그녀의 일행들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우선, 지금 그들에게 있어서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존재가, 지금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다. 당연히 곁에 붙어서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에 반드시 한 명이 전력외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는 전력의 큰 손실을 의미했다.
둘째로, 지금 그들은 다른 일행들이 있는 곳을 향해 비밀리에 이동 중이었기 때문에 눈에 띄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폰 따위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엄청난 전력을 가진 정규군이었다.
열차 안의 모든 인간을 학살한 뒤에, 해킹으로 열차를 움직이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낙석 등의 자연 재해가 많은 구간을 지나가는 노선이기 때문에, 차장은 시간 단위로 다음 역에 현재 위치를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에 하나라도 수상한 부분을 정규군이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군부대에서 출격한 전투기나 헬기의 미사일 폭격에 의해 일행은 열차 채로 박살나 버릴 것이 분명했다.
또한, 쓸데없이 강력한 공격을 해서 열차의 파손이나 전복, 탈선 등을 일으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동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열차가 멈춘 지점과 그 이유를 추적하러 온 정규군의 추적부대가 들러붙게 되는 것 또한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이렇게 여러가지로 그녀의 발목을 잡는 요소가 몇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가벼운 핸디캡일 뿐이었다.
적들도 대규모로 움직일 수 없는 이 상황을 굳이 선택해 들어왔으며, 자신들의 더미도 데려오지 않은 채 소수정예로 침입해 왔다.
이 쪽이 최대화력의 공격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건 인간의 안전을 지켜야만 하는 저 쪽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쪽은 저들의 모든 전투력을 넘어서는 능력과 전투경험이 있다. 물론 저 쪽의 멤버들을 지휘하는 대장과, 자신의 카피라는 녀석의 능력이 변수가 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 너희들은 꽤 실력에 자신이 있는가 보군. 하지만!"
M16은 USAS의 왼쪽으로 빙글 돌아 들어갔다. 상대는 아마 방패로 몸을 가리지 못하는 오른쪽으로 공격이 들어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그 쪽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M16은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요정과 합체한 커다란 방패를 든 왼쪽을 일부러 파고든 것이었다. 무게가 상당히 나가는 만큼, 반응도 느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애송이들일 뿐이야."
"엇?!"
M16의 비아냥과 USAS의 짧은 비명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그 뒤를 이어 USAS의 왼쪽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M16의 뒷발차기가, 그녀의 무릎 뒤에 정확하게 꽂혀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M16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개머리판의 바닥 부분이 뒷발차기 공격을 뒤이어 USAS의 뒷목을 향해 날카롭고 빠르게 날아갔다.
소총탄으로 제압이 불가능한 상대였지만, 풍부한 전투경험을 가진 M16은 그런 상대를 쓰러트리는 방법 정도는 얼마든지 알고 있었다.
그것도 철혈이나 정규군의 괴물같은 정예인형이 아닌 민수용의 개조품에 불과한 그리폰의 인형이라면, 가벼운 충격 몇 방만 먹인다면 충분히 기절시킬 수 있었다.
"어억?!"
두 번째 짧은 비명이 터져나오며, M16의 공격에 정신과 중심을 잃은 USAS의 몸이 열차의 가속도 때문에 허공에 떠올랐다가 장비의 무게 때문인지 곧장 열차 지붕 위에 떨어졌다.
하지만 중심을 잃은 탓에 열차 지붕 위에서 바닥을 향해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K-5!"
적측 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는 소총탄과 권총탄의 견제사격이 M16을 향해 쏟아졌다.
그런 콩알탄이 M16에게 먹힐 리는 없었다. M16의 총탄이 USAS에게 먹히지 않는 것처럼, 다른 인형의 소총탄도 M16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그녀는 USAS같은 샷건 유저는 아니지만, 그리폰에 있었을 때에는 방탄판을 장비하고 모두의 앞에 나서서 적의 공격을 몸으로 막아내던 그런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순간, 상당히 빠른 움직임의 그림자가 M16의 곁을 슥 하고 지나갔다.
검은색과 노란색 투 톤의 광선이 그녀의 옆으로 지나간 느낌이었다. 조금 전만 해도 그녀에게 권총을 쏘던 금발의 녀석이다.
금발은 정신을 잃은 USAS가 열차 바깥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순간에 USAS의 손목을 낚아챈 후, 그녀와 합체하고 있던 방패요정에게 명령을 내려 분리시켜 밑에서 USAS를 받쳐올리라고 명령한 뒤, 온 힘을 다해 낑낑거리며 끌어올리고 있었다.
M16은 순간 망설였다. 지금 저 금발을 공격해 떨군다면 두 녀석을 확실하게 끝낼 수 있다. 그리고 남은 세 명을 보다 손쉽게 상대하면 된다.
말하자면 절호의 찬스였다.
하지만 M16은 그 둘에게서 등을 돌리고 남은 세 명을 향해 덤벼들었다.
정정당당한 싸움이 하고 싶어서? 아니, 애초에 그리폰에 있었을 때도 그녀는 특수임무를 맡았던 인형이었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전부 사용해서 적을 몰살시키고, 적들을 지휘하는 인형들을 암살했다.
갑가지 옛 정 때문에 자비심이 생겨서? 설마. 저 녀석들은 그녀가 아꼈던 AR팀도 아니다. 그리고 CCTV를 조작 중인에이전트가 보고 있다.
그러면 왜? 역시 적들의 대장을 빨리 제압해서 이 싸움을 끝내려고?
그럴 지도 모른다. 이 싸움을 질질 끌어봐야 좋은 것이 없다. 일초라도 이 귀찮은 것들을 빨리 치워버려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자꾸만 적들의 대장이 아닌 녀석에게 눈이 가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실실 웃으며 주먹을 날려오는, 자신과 똑 같은 얼굴을 한 저 녀석에게 말이다.
-빠악!
두 인공피부의 마찰음이 동시에 울렸다.
M16과 603K, 둘은 거의 같은 자세로, 소총을 든 오른팔로 상대의 왼손 주먹을 막아내고, 왼손으로 상대의 코어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다 상대의 오른손에 막힌, 서로가 크로스 카운터에 실패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 대장한테 관심있나? 날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 섭섭한데."
"번거로운 녀석."
정말이지 상대는 M16에게 있어서 번거로운 녀석이었다. 마인드 클라우드를 저장할 수 없는 M16이기 때문에 그리폰에서 M16의 모든 기억을 카피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별도로 기록된 M16의 전투데이터를 유용한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M16과 거의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펙 면에서는 그녀가 한참 우위일지는 몰라도, 녀석은 동료들의 백업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나 M16의 메모리에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저 신형 녀석들은 603K의 능력과 조합될 경우 얼마든지 변수가 될 수 있었다.
진짜로, 정말이지 번거로운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잘했어 K-5! USAS씨랑 같이 뒤로 빠져! 정신이 들 때까지 지지해주고 있어 줘!"
"네 대장!"
견제사격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더니 어느 새 적들은 정신을 잃은 동료를 구해서 그들의 후방으로 빼돌린 모양이었다.
아니, 지금 자신과 603K가 얽혀 있는 상황이니 일부러 프렌들리 파이어를 할 리는 없겠지만서도.
그때였다.
"언니, 물러나요! 모두 방어태세! K-5, USAS씨 챙겨!
K-2의 다급하고 당황한 목소리와 동시에 M16의 등 뒤에서 공기를 찢어발기는 굉음이 들려왔다.
"뭣?"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 하지만 당황해대는 적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이건 그들이 노리던 공격이 아님이 분명했다.
603K는 M16과 얽혀 있던 그녀의 팔을 풀어내고, 자신의 팀을 감싸기 위해서인지 M16에게서 등을 돌리고 동료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M16은 사태를 완전히 이해하고는 방어자세를 취한 뒤 공격이 날아오는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지금 이 공격을 퍼붓고 있는 주인이 누구인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슈쾅!
온 몸에 격렬한 통증이 느껴진다.
이 강력한 빔 공격은 그리폰이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정규군의 공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지휘하는 인간이 어지간히 쓰레기가 아닌 이상 사람들이 타고 있는 열차의 앞에서 빔 공격을 해올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아무리 M16이 그리폰의 인형들과 싸우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해도, 저런 특수공격이 가능한 새로운 인형을 싣고 온 수송기가 열차 쪽으로 날아오는 것을 놓쳤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어이, 신입. 지금 이렇게 바쁜 와중에 옛 동료들이랑 노닥거리고 있는거야? 역시나, 한번 배신자는 영원한 배신자라 이건가?"
악의가 잔뜩 느껴지는 표정을 지으며, 거대한 총기를 든 어린 소녀가 히죽거리고 있었다.
"드리머...!"
어느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당사자를 제외한 모두의 입에서 그 인형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무슨 짓이지? 난 이 녀석들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그건 너희들도 잘 보고 있었지 않나?"
M16은 드리머의 기습을 받아 온 몸에 퍼지고 있는 고통을 아랫입술을 깨물고 억지로 참으며 대꾸했다.
"하앙? 내 레이저 공격을 네녀석이 받아버리는 바람에 네 뒤쪽에 있던 저 녀석들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어. 그리고 지금 네 등짝을 보고 있는 저 녀석들도 너한테 기습을 걸고 있지 않고. 이게 바로 내통의 증거가 아닌가?"
"어이, 어린아가씨. 물론 약해진 적의 등을 공격하는 건 전장에서라면 합리적인 판단이야. 하지만, 우린 전사이기도 하다."
603K는 앞으로 나서며 드리머의 말에 반박했다.
"저 녀석의 의도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저 녀석은 우리 동료의 죽음의 위기를 한 번 눈감아 줬다. 그렇기에 우리도 한 번은 녀석의 위기를 눈감아 준 거지. 너희 철혈 지휘관들도 그 정도 전사끼리의 예의는 알고 있을텐데?"
"풉, 저언사아? 웃기고 있네, 마이너 카피 녀석. 저 녀석이 너희들을 감싸준 것이 아니라면, 어째서 너희는 그렇게 멀쩡한 거지?"
"아군한테 등 뒤를 기습당할 줄 몰랐을 테니까, 최대한으로 방어한 거겠지. 그 덕에 우리들에게 원치 않게 벽이 되어준 거고. 너의 공격이 기습이 아니라 사전에 합의된 작전이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603K가 드리머와 말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숨을 몰아쉬던 M16은 자신의 현재 손상도를 체크했다. 치명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대략 60%의 기능 저하가 있었다.
평소의 40%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심각하게 능력이 다운되었다는 결론이었다.
저 녀석도 어느 정도 열차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절해서 빔을 쏘았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적들에게는 충분히 치명적인 위력의 공격이었다.
물론 그것은 M16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드리머는 그리폰의 인형들과 함께 M16을 날려버리려 한 것이 분명했다.
"야, 뭐하는거야? 말려, 말려!"
"아, 지금이라구요! 지금 큰언니한테 정신이 팔린 사이에 저 두 년의 머리통을 유탄으로 날려버리자구요!"
"K-11! 큰언니가 멋진 말 하면서 폼 잡고 있는데 분위기 좀 봐 가면서 설치라고!"
"아 왜! 저년도 우리 기습했잖아! 귀찮은데 그냥 다 공중폭발탄으로 쓸어버리자고요! 사람들 안 죽이고 열차 조금 박살내는 걸로 충분히 끝나요!"
"야, 그랬다가는 일 커져! 뒷처리하기 번거로운 짓 만들려 그래? 지금 손에 들고 있는거 얼른 내려 놔!"
603K가 나서서 드리머랑 대치하고, M16이 한숨을 돌리는 사이, 그녀들의 등 뒤에서 그리폰 인형들끼리 나사가 빠진 것 같은 말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 지금 저런 녀석들하고 목숨 걸고 싸우고 있던 거였나..."
피는 튀지 않지만 치열한 싸움이네요 열차에서 떨어지면 한 방에 끝인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