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이 약하다.
얼마나 약하느냐, 앵간한 사람들이라면 소주 한두병은 기본이겠지만 난 반병만 먹어도 만취한다. 소위 말하는 술집가서 안주만 열심히 주워먹는 부류다.
그렇기에, 오랫만에 친구놈 집에서 얻어마신 기X스 흑맥주 반캔에 하이텐션이 되어버리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단 말이야.
'그 전쟁' 이후로 나름대로 살기 좋아졌다곤 하지만, 아직껏 이 마을의 치안은 개판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멀쩡한건 허우대밖에 없는 부족한 나란 놈이 지휘관자리를 해먹고 있는 거지만.
길거리를 걷다 보면 아직까지도 불법 해체꾼들이 숨어서 인형을 납치한다느니 하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다.
개같은 놈들. 덕분에 내 휘하 전술인형들까지 피를 볼 뻔 했단 말이야.
쥐새귀들같이 잘도 빠져나가서 못 잡은게 아쉬울 뿐이지만, 다시금 만난다면 내 손에 다 죽을 줄 알어...
알싸한 머리로 그렇게 생각하며 골목길에 들어선 순간, 골목길 한구석에서 뭔가 눈에 밟히는 광경이 있었다.
건장한 남성 대여섯 명이 어딘가 익숙한 검은 머리의 여성을 둘러싸고서 린치를 가하는 모습이었다.
"하하, 이거 오늘은 재수가 좋구만? 저항도 못하는 전술인형 하나를 잡다니 말야!"
"그러게 말이다! 오늘 껀수가 아주 확실하단 말이야! 꼬라지 보니 확실히 '구 철혈공조' 소속이니까, 보상금은 두둑히 받겠는데?"
전술인형...? 구 철혈공조...?
시X. 재수 옴 붙었네. 최근 우리 지휘부에 전근 온 녀석이잖아!
하지만 내 몸은 이미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그놈들 중 한 녀석의 뚝배기를 돌려차고 있었다.
"이런 우라질 자식들이!"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놈의 몸이 허물어졌다.
군용 워커를 맨날 신고 다니는 게 도움이 될 줄은. 아무튼간에...
"괜찮냐, 스케어크로우(scarecrow)! 어쩌다 혼자 와서 이 봉변이야?"
"윽.. 당신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냐... 정신 좀 차려 보..."
빡! 하는 소리와 함께 내 후두부에 강렬한 통증이 일어났다. 무언가 단단한 것이 내 머리통을 친 게 틀림없으리라.
하지만 난 그 정도로 기절할 놈이 아니란 말이지. 니토 그년에게 24시간을 구타당해도 멀쩡한 게 내 몸뚱아리인데. 자백제 약빨엔 좀 약했지만.
뒤를 돌아보자 예상대로, 비실한 놈 하나가 한손에 벽돌을 들고서 날 보고 놀라고 있었다.
"이거... 사람이야...?"
"사람이다. 이 새귀야."
그놈의 면상에 니킥을 꽂아서 입을 다물게 하고는, 다시금 봉변당한 스케어크로우를 살폈다.
그녀의 옷은 군데군데 찢어져 있고, 방독면 마스크 대용으로 쓰던 마스크는 이미 찢어져 맨얼굴이 드러나 있었으며, 군데군데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구 철혈공조 전술인형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가 없다는 규칙이, 그녀 자신을 지키지도 못하는 것에 머리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으으... 지휘관...?"
차츰 정신을 되찾아가는 그녀에게, 내 코트를 덮어줬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5분만 가만히 있어줘."
근처에 견고한 무쇠덩어리가 있어서 망정이지.
다시금 떠올려보니 저 놈들. 내가 잡으려다 못 잡은 불법 해체업자 패거리였네.
술도 깰 겸, 저놈들 좀 족쳐야겠다. 그리고 한 놈은 끌고 가서 남은 패거리들 끌어모으는 데 써먹어야지.
"자, 이 새X들아. 단죄 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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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TV 애니메이션 죠죠의 기묘한 모험 <황금의 바람> OST : Vento Aur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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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관의 심부름을 받아, 잠시 지휘부를 떠나 마을로 내려왔던 스케어크로우. 하지만 호위하는 사람 없이 혼자 나온 댓가는 참혹했다.
마을에서도 악명이 자자하던 불법 해체업자들에게 갑작스레 납치당하고, 망할 규칙 때문에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었던 그녀의 입장을 악용한 그들은 구 철혈공조 출신이었던 그녀를 마구잡이로 대했고, 그녀의 마인드맵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셧다운되었다.
술먹고 돌아가던 자신의 임시 상관이 그곳을 지나쳐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자신은 그대로 해체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리라.
그녀의 몸을 눈으로 더듬던 모히칸 머리의 해체업자가 후두부를 정통으로 차버리고서, 지휘관은 그녀를 살피러 왔다.
"괜찮냐, 스케어크로우! 어쩌다 혼자 와서 이 봉변이야?"
아직껏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녀를 흔들어서 깨우려다, 비실한 외모의 해체업자가 벽돌로 그의 뒤통수를 내려찍었다.
하지만 그는 정신을 잃지도 않았고, 오히려 역으로 비실이의 얼굴을 니킥으로 후려쳤다.
스케어크로우의 마인드맵이 재기동을 시작했고, 눈앞에 린치를 가하고 있던 해체업자들이 물러나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 조금 뒤였다.
"으으... 지휘관..?"
그녀가 깨어난 것을 확인한 지휘관은 그가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그녀에게 살포시 덮어주었고는 근처에 있던 쇠몽둥이를 집어들었다.
머리가 깨져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지만, 지휘관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맑았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5분만 기다려줘."
그리고, 흉포했다.
코트를 덮어주고서 일어나 몸을 돌린 지휘관은, 담담한 목소리로 험한 말을 내뱉었다.
"자, 이 새X들아. 단죄 타임이다."
스케어크로우는 생각했다. 어째서 적이었던 자신을 감싸는 것인가.
이미 철혈공조는 사라지고 그곳에 소속했던 대부분의 인형들이 그리폰 사로 흡수되었지만, 세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으리라.
그걸 알고서도 그는 왜, 자신들을 감싸고 그들에게 맞서는 걸까.
일 대 육의 싸움이었고, 이미 머리가 깨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지휘관은 멀쩡해보이기만 했다.
오히려 어설프게 무기를 휘두르는 해체업자들에게, 한 대씩 한 대씩 그들의 신체에 쇠몽둥이 맛을 선사하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전쟁이 끝나고서 전투력이 퇴보하기는 커녕, 그 시절 자신들에게 맞섰던 지휘관이 재림한 것만 같아 보였으니까.
다수와 소수의 싸움은 다수가 유리할 터인데, 그 시절마냥 소수의 입장에 서 있던 그는 다수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 특유의 황금의 바람과 함께.
그렇게 대여섯 명의 망할 해체업자를 조져놓고, 그 중에서 상태가 나름 반반한 놈 하나를 따로 떼어놓고 나서 나는 스케어크로우에게 다가갔다.
"맞은 덴 좀 괜찮아, 허수아비 쨩?"
정신을 차린 스케어크로우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도... 도와줘서 고맙다. 그리폰의 지휘관."
"또 그런다. 그냥 지휘관이라고 부르라니까."
"그... 그런데 왜 날 도운 건가..? 아무리 그리폰 소속이 되었다 할지라도 난 철혈공조 출신인데..."
"왜긴 왜야. 굳이 그걸 물어볼 필요가 있는 거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스케어크로우에게 웃으며 답해준다.
"친구잖아?"
"아..."
"친구를 돕는 데 이유가 필요해, 허수아비 쨩?"
예상대로 스케어크로우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보이지만, 뭔가 얼굴은 더욱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 반응에 만족하며, 기절한 해체업자 한 놈을 들쳐매고서 스케어크로우를 이끌었다.
내가 근처로 가자, 그녀는 갑자기 날 불렀다.
"....지휘관."
"왜?"
"...술 냄새난다."
아, 맞다. 나 술먹었지.
벽돌에 맞아 머리에서 피가 빠진 탓에 잠시 잊고 있었네.
복귀한 이후, 스케어크로우는 수복실, 나는 의무실 신세를 져야만 했다.
칠칠치 못하게 스케어크로우 혼자 마을에 심부름시킨 카리나를 갈구는게 먼저였지만.
붙잡아둔 해체업자 한 놈에게서 정보를 캐묻는 건 그 다음이다.
이 새개끼들. 건수가 보이면 바로 소탕작전 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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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술먹고 음악 들으면서 싸지르는건 처음이네요.
처음 시작할때는 분명 하이텐션인데, 쓰면 쓸수록 텐션이 내려가는게 느껴집니다.
참고로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X네스 반캔 말인데, 사실 제가 1시간 전에 먹은 거에요.
이 소설은 곡괭이 시키칸이랑 같은 세계관이긴 한데, 인물까지 동일하진 않습니다.
처음엔 가면라이더 패러디식으로 써볼까 싶었는데, 올려놓은 음악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금강불괴지만 일처리는 더럽게 못하는 시키칸으로 노선 변경했습니다. (적갈색 더벅머리에 안경잡이이긴 한데, 보이는 인상하곤 다르게 인텔리가 아닙니다.)
근데 왜 구하는게 스케어크로우냐고요?
제가 좋아하는 소녀전선 캐릭터가 그리폰 쪽에선 솦모챠, 철혈 쪽에선 허수아비쟝이니까요.
마지막의 문장은 차기작 떡밥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전 군바리가 아닌 전 공익 시키칸이라 군사작전은 1도 몰라용.
인형들을 불법 헤체해서 어디다 써먹는지 설정이 궁금해지군요. 사이보그를 만드는건가 싶기도 하고...
부품 뜯어내는데 쓰이겠죠. 인게임에서도 불법해체 이야기가 종종 보이기도 하니까 그걸 소재로 좀 해봤습니다.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스케어크로우 이거 좋네요
좋아하셔서 다행이네요. 술깨고 지금 보니 전 오글거려 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