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
당신이 사랑한 사람과
당신이 미워한 사람 사이
눈이 나린다
눈은 마을의 세모난
지붕들과 함께 하늘로 오르고
데카브리스트의 후예인 어린 딸이
등불 아래서 농부인 아비와 함께
소냐의 이야기를 읽는다
눈은 밤새 쌓이고
보라색과 연두색과 분홍색 등을 켠 마을의 집들이
눈보라 속 하늘로 날아오르는 동안
멈춰 설 역 이름을 잊어버린
밤열차가 마을을 따라 하늘로 오른다
당신이 사랑한 사람과
당신이 미워한 사람 사이
자작나무는 자란다
당신이
당신이 아닌
그 모든 것을 사랑할 시간이
지금 하얀 천사의 옷을 입고
인간의 마을로 걸어온다
* 눈 덮힌 상트레테르부르크에서 눈사람을 보았다. 눈사람은 큰 눈덩
이 위에 작은 눈덩이를 올려 만드는데 이곳 사람들은 세 개의 눈덩이
로 눈사람을 만들었다. 이유를 물으니 동그라미가 두 개일 때보다 세
개일 때가 위태롭지만 그 셋이 모여야 진짜 평화가 온다는 말이 돌아
왔다. 동그라미 셋이 나와 너, 우리를 상징하다니. 밤새 내리는 눈이
자작나무 등피의 거친 상채기들을 따뜻히 안아주었다.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곽재구, 문학동네시인선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