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수도원
나는 담배를 피워 물고 나의 내면을 생각한다, 그
러니까 이건 실제적인 것이다
푸른 전등의 새벽, 이 푸른빛은 어디서 오는가, 고
요한 침묵의 사다리를 타고 나의 다락방으로 스며드
는 이 새벽의 전원은 어디서 오는가
그러니까 이건 실제적인 것이다, 아무리 봉쇄해도
봉쇄할 수 없는 내면의 푸른빛
나의 글은 그 푸른빛에서 와서 태양이 불을 밝히는
시각에 사라진다
목이 마르고 열어둔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작
은 화분의 푸른 잎들을 스치며 지나간다
나는 새벽마다 목이 마르고 목이 말라 냉장고로 가
면 거기에는 아직 식지 않은 차가운 샘물들이 남아
있다, 그러니까 이건 실제적인 것이다
유령의 거울들, 내가 중얼거릴 때마다 나를 따라하
는 내 그림자의 유령들
그림자들, 지겨운 그림자들, 태양이 꺼진 시간에도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지긋지긋한 지구의 망령들
내가 그녀의 입속에 한 모금의 물을 건네줄 때도
악착같이 따라와 나를 흉내 내는 귀신들
물을 마시면 가슴에 가득 샘물이 고인다, 그러니까
이건 실제적인 것이다
물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나는 나의 내면을 생각
한다, 아무도 들여다본 적 없는 내면의 밤은 깊다, 그
러니까 이건 실제적인 것이다
태양이 사라진 지구의 한편에서 달의 전구를 밝혀
놓고 고요히 밤을 적어나간다, 밤은 태양이 남겨둔
기억의 그림자, 그림자를 밟으며 고독하게 유령이 걷
고 있다
그러니까 이건 실제적인 것이다, 그대의 눈동자들
바라보며 세계의 미래를 읽어본다는 거
점치는 여인들도 낡은 천막으로 돌아간 저녁이면
그대 어깨에 걸쳐진 푸른 담요를 보며 눈 내리는 지
구의 허약한 천막을 보수해야겠다는 생각
너무 오래 흩날린 깃발들이며 우리의 바람벽을 환히
비춰주던 환등기도 이제는 좀 손을 봐야겠다는 생각
동쪽에서 떠올라 추억의 서쪽으로 가느라 밤마다 달
은 분주할 테지만, 오늘은 또 서쪽으로부터 바람이 불
어오고 내일은 부는 바람에 눈발 흩날리며 주전자 속
찻물은 그렇게 단 하나의 열망으로 끓어오를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실제적인 것이다
생선을 굽는 말라가의 선술집과 페드로갈레 호를
스쳐 지나가는 오후 여섯 시의 바람
내가 기르는 작은 스파트필름, 몇 방울의 물, 바람,
자갈, 꽃잎
담배 연기 속의 호랑이
체 게바라 라이터, 휘발성의 영혼들, 공기들, 오래
된 스웨터, 굽이 닳는 가죽 부츠, 검고 딱딱한 기타
케이스
기타 케이스 속 봉인된 음악들, 퍼덕이는 작은 새, 별
빛, 두꺼운 책들, 아무도 읽지 않는 중독된 고독의 삶
갓산 카나파니, 말라가의 푸른 술집들, 그러니까
이건 실제적인 것이다
내가 리스본에 당도했을 때, 테주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는 포르투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나의 내면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실제적인 것이다, 하나의 성냥불이
켜지고 세계가 잠시 밝아질 때, 그 희미한 밝음의 힘
으로 지구가 조금 자전했을 때, 몇 마리의 새가 안간
힘으로 지구의 자전을 거슬러 오르고 있을 때, 나는
잠시 내 영혼이 정박했던 그대라는 항구를 생각하고
있었다
페르난두 페소아, 알베르투 카에이루, 그러니까 이
건 실제적인 것이다
가출, 혹은 여행의 사람, 희미한 공기처럼 세계의 골
목을 떠돌다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죽으려
했던 나의 꿈이, 이렇게 상처 입은 짐승처럼 내면의
푸른 기억을 적어나가는 새벽이면 가장 먼 곳에서 반
짝이며 나를 부르는 골수분자 같은 삶, 질기고도 비
린 유전자의 집, 나는 유령이었고 사는 동안 나는 끝
내 유령일 테지만
새벽 네 시 나는 드디어 나에게 갇힌다, 봉쇄 수도
원, 그러니까 이건 실제적인 것이다
삶이라는 직업
박정대, 문학과지성 시인선 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