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이 겜 자체가 대놓고 사회 비판적 메세지를 날리고 있죠.
버스의 좌석구분이나 사람들의 안드로이드에 대한 태도는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이구요.
제가 2회차를 하면서 새롭게 느낀 부분은 마커스와 칼의 대화에 관한 건데요.
초반에 마커스에게 시비를 거는 그룹은 안드로이드에 의해 직업을 뺏긴 하류층입니다.
반면에 칼은 현대미술로 큰 명예와 부를 거둔 최상위층이죠.
게다가 사교 모임조차 귀찮을 정도로 윗 동네의 삶에 익숙해져 있어요.
그런 칼은 안드로이드에게 적개심을 표출하는 사람들을 잘못됐다 말하고 오히려 마커스에게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토드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 하층민들은 무수히 많은 실업자가 탄생했고 가정도 파탄되는 등 막장이에요.
길거리에 심심찮게 보이는 노숙자들도 죄다 안드로이드에 의해 직업을 뺏긴 사람들이구요.
하지만 칼은 이런 삶과 거리가 멉니다.
그에게 안드로이드에 의해 직업이 뻇긴다는 건 '예술가' 라는 직업 특성상 현재도 가장 늦게 기계가 대체할 것이라 예상되는 분야에 속하거든요.
그로 인해 벌어들이는 재력과 그의 인맥은 하층민의 무너져가는 삶들을 생각할 여지조차 없게 하죠.
이 장면을 다시 볼 때 현재 한국 사회가 떠오르더라구요.
상류층에겐 접할 일도 없는 위협과 왜 싫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반 서민들의 반발.
그런 사람들은 다 이기적이고 멍청한 자들이야 라고 쉽게 단정내리고 오직 '정의로움' 그 자체인 발언들을 쉽게 내뱉죠.
물론 안드로이드에 의해 직업이 사라지는 건 안드로이드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삶이 무너져내린 사람들 또한 그런 상황에 떨어질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닙니다.
하지만 칼의 대사를 들어보면 그에게 하층민이란 그저 나쁘고 도태된 존재처럼 생각하는 게 보입니다.
어쩌면 마커스에게 계속해서 주체성을 갖도록 부채질한 건 마커스가 하층민들보다 나은 존재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이런 점에서 칼이라는 캐릭터의 설정을 잡는데도 퀀틱드림이 꽤 많이 신경쓴 것 같단 인상을 받았습니다.
실시간으로 타인의 삶이 피폐해져가는 시대에 나름 연륜이 쌓였을 나이임에도 전혀 하류층이 겪는 문제를 이해 못 할 만큼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이기에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마커스에게 자아를 가져라, 너가 그들보다 부족할 게 없다 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적절했던 게 아닐까요?
조금이나마 하층민들의 고통을 공감했다면 그리 쉽고 편하게 마커스에게 조언하지 못했을거에요.
심지어 아들인 리오조차 (물론 지가 막장인 것도 맞지만) 아들이라는 지위를 마커스에게 뺏꼈다고 느껴서 분노하는데 말이죠.
흥미로운 점은 초반부에 칼의 아침을 줄 때 마커스로 피아노를 칠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연주하죠.
그리고 칼의 작업실에서 마커스는 엄청난 퀄리티의 그림을 그려냅니다.
전 이게 예술 분야조차도 안드로이드가 우월해질 수 있다는 암시로 보였어요.
칼은 과연 그런 마커스의 능력을 보면서 어렴풋이 위기감을 느꼈을까요? 궁금한 포인트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