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1757년) 6월부터 경모궁의 화병이 더해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때 당번내관 김한채라는 것을 먼저 죽이셨다. 그 머리를 들고 들어와 내인들에게 효시 하였다. 내가 그때 사람 머리 벤 것을 처음 보았는데 흉하고 놀랍기가 이를 데 없었다. 사람을 죽인 후에야 마음이 조금 풀리시는지 그때 내인을 여럿 죽였다.”
“경진년(1760) 이후엔 내관과 내인이 상한 일이 많아 다 기억하지 못한다. 두드러진 예는 내수사 차지 서경달이다. 소조(사도세자)께선 내사의 일을 느리게 한일로 서경달을 죽이고 출입내관도 여럿 상하게 하고 선희궁에 있는 내인 하나도 죽이셨다. 점점 어려운 지경이 됐다.”
"네가 왕손(王孫)의 어미를 때려 죽이고, 여승(女僧)을 궁으로 들였으며, 서로(西路)에 행역(行役)하고, 북성(北城)으로 나가 유람했는데, 이것이 어찌 세자로서 행할 일이냐? 사모를 쓴 자들은 모두 나를 속였으니 나경언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왕손의 어미를 네가 처음에 매우 사랑하여 우물에 빠진 듯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마침내는 죽였느냐? 그 사람이 아주 강직하였으니, 반드시 네 행실과 일을 간(諫)하다가 이로 말미암아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또 장래에 여승의 아들을 반드시 왕손이라고 일컬어 데리고 들어와 문안할 것이다. 이렇게 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죽을만 해서 죽었다..로 귀결됨 아빠의 학대 때문 아니냐고? 연쇄살인마가 어릴적 학대 받아서 죽였다고 변호하면 봐줄거임?
몇백명을 고문 살해 했는데도 왕이 움직여야만 처벌할 수 있었던ㄷㄷㄷ
대천록이였나? 정조가 살펴보기까지 했다던 사도세자 사건 정리 기록에서 나온 살해숫자가 무려 100명이었다던 ㄷㄷ
죽을만 해서 죽었다..로 귀결됨 아빠의 학대 때문 아니냐고? 연쇄살인마가 어릴적 학대 받아서 죽였다고 변호하면 봐줄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