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 Marshall Bruce Mathers III
Birth : 1974.10.17, 캔자스시티
소 속 : Interscope Records
Youth :
태어난 지 5개월만에 아버지가 집을 떠났고, 고향과 디트로이트를
전전함 12살 때부터 디트로이트에 정착
Favorite Artists :
Beastie Boys, LL Cool J, Run DMC, NWA
Family :
현재 그의 노래의 소재로 자꾸 쓰였던 비운의(?) 여성 Kim과 재혼
1996년 태어난 Hailie Jade scott란 딸이 있음
Former/Current Group Activity :
D12, Outsidaz, The New Jacks, Sole Intent
Discography :
INFINITE (Web Entertainment/1996)
SLIM SHADY EP.(Web Entertainment/1997)
SLIM SHADY LP. (Aftermath/1999)
THE MARSHALL MATHERS LP (Aftermath/2000)
1974년 10월 17일 미주리주 캔자스 시티.
동네 밴드의 리드 싱어였던 데비 넬슨(Debbie Nelson)은 15살이 되던 해
역시 같은 밴드 멤버였던 마샬 브루스 매더스 2세(Marshall Bruce Mathers II)와 결혼했고,
곧 아이를 출산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아버지를 따라
마샬 브루스 매더스 3세(Marshall Bruce Mathers III)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아이가 생후 6개월이 채 되기 전에 어디론가 떠나 버렸으니까.
아버지에 대한 나쁜 기억 때문인지 어머니 데비는 이상한 병에 시달렸다.
아이가 항상 아파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정신 질환을 앓게 된 것이다.
지독히도 가난한 생활과 함께 어머니의 병은 아이의 유년기를 어둡게 했고
대신 아이는 삼촌 로니 폴킹햄(Ronnie Polkingham)을 비롯한 친척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그 중 아이가 가장 잘 따르던 삼촌 로니는 랩 음악 매니아였다.
로니는 아이를 위해 비트박스를 해주고 잘 나가는 랩 음악과
자신의 랩을 모아 테이프에 녹음해주기도 했다.
아이가 5살이 된 이후로 어머니와 아이 둘은
미시건 주의 디트로이트와 캔자스 시티를 오가는 부랑자 같은 생활을 계속한다.
그러던 와중에 1987년 아이가 13살이 되던 해 비로소 가족은 디트로이트에 정착하게 된다.
아이는 학교에서 왕따 같은 존재였다.
그러한 현실은 2-3달을 주기로 학교를 옮겨야하는 생활의 연속으로 나타났고
친구 하나 변변하게 사귀기 힘들어 점차 학교에서 도태되어갔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에도 아이에게 유일한 꿈을 꾸게 했던 것은 바로 랩이었다.
13살이 되던 해부터 아이는 직접 랩 가사를 적고 녹음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자신의 예명을 이름 마샬 매더스의 두 앞 글자인 'M&M'의 발음에 착안
에미넴 (혹은 에메넴) 이라고 정했고.
자주 가는 학교는 아니었지만 점심시간에는 얼마 되지 않는 친구들 앞에서
랩 배틀(Rap Battle)과 공연을 했고 에미넴이라는 이름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랩은 유일하게 아이가 세상에 인정받는 창구가 되었고
음악 그 이상의 존재, 혹은 그의 전부였다.
12살 때 에미넴은 미래의 부인이자 그의 노래 'KIM'과 'Just The Two Of Us' 등에
단골로 등장하는 비운의 여인 킴벌리 스코트(Kimberly Scott)를 만나게 된다.
랩 음악 이외에는 별다른 낙이 없던 그에게 학교 생활은 답답함 그 자체였고
결국 17살이 되던 해 그는 다니던 링컨 고등학교(Lincoln High School)를 그만두게 된다.
그 후 디트로이트의 클럽을 전전했고 이내 지역 내에서는 꽤 유명한 래퍼로 자리매김되었다.
랩을 업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던 중 삼촌 로니가 권총 자살을 하게 되고
에미넴은 충격으로 한동안 랩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95년 3월, 킴벌리 스코트는 에미넴에게 아이를 가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1995년 크리스마스 에미넴의 딸 헤일리 제이드(Hailie Jade Scott)가 태어난다.
The Wonder Years
미시간의 링컨(Lincoln) 고등학교는 에미넴에게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캔자스 시티와 디트로이트를 오가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그가 결국 17살이 되던 해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흑인(Afro-American)이 아니란 이유로
그는 학교에서 단지 흑인들의 머리스타일이나 흉내내는 힙 합 워너비(wanna-be)로
낙인이 찍히며 한물간 바닐라 아이스(Vanilla Ice)와 비슷한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그 시절 그들의 흑인 집단 이기주의(negritude)는 비록 흑인 못지 않게
훌륭한 랩 스킬을 갖추고 있는 에미넴일지라도 감당하기 힘든 편견의 벽이었나 보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에도 그에게 꿈을 꾸게 한 유일한 것은 랩이었고,
학교를 그만둔 후에도 디트로이트의 클럽과
여자 친구 킴벌리와 함께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후 일을 도모했다.
하지만 로컬 신에서 발매한 처녀작 [Infinite](1997/Web)와
그가 속해 있던 그룹 소울 인텐트(Soul Intent)의 싱글 'Fucking Backstabber'는
뉴욕의 QBC(Queens Bridge Clique) 스타일을 모방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 정도였고,
이는 오리지널리티를 중시하는 힙 합 필드에서 ‘역시 백인은 안 된다’는 선입견만을 심어줄 뿐이었다.
게다가 킴벌리는 딸과 함께 어려운 생계를 탓하며 떠나버렸고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As Eminem Turns Slim Shady
자신을 슬림 셰이디라 명명한 후 그에게 마술처럼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갱스터 랩이 종언을 고한 ’90년대 중반 이후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힙 합 신의 헤게모니를 차지하려는 세력들간의 알력이 어느 정도 조정 국면에 접어들 즈음
대중은 새로운 자극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가장 적절한 대안이 되었다.
’97년 LA 랩 올림픽 2위 입상, 캘리포니아의 저명한
힙 합 라디오 방송 [World's The Most Famous Wake Up Show] 출연,
2003년 [Detox]란 앨범으로 돌아 올 닥터 드레(Dr. Dre)와의 만남,
[The Slim Shady EP](1998/Web) 발매, 그리고 [Lyricist Lounge] 투어 참여 등
슬림 셰이디로 벌인 일련의 행적들이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어두웠던 유년기와 무명 시절의 기억을 단번에 날려버린
[The Slim Shady LP](1999/Aftermath)와
데뷔 첫 주에 176만장을 팔아치운 [The Marshall Mathers LP](2000/Aftermath)가 준 충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힙 합이 더 이상 소수(minority) 문화 혹은 흑인의 전유물이 아님을,
지금까지 백인 음악인들이 힙 합을 체화하는 과정에서 도식화된
어설픈 백인 지상주의(White Supermacism)에의 오마주(hommage)와는
180도 다른 방향에서 접근된 슬림 셰이디 스타일은 흑인들에게 쿨(cool)한 의식 전환의 경험을,
백인 청년들에게는 1990년대 두 번째 대안의 물결이자
그들의 찬가(anthem)로의 추앙과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 냈다.
아이들 스타, 스타 시스템이 지배하는 업계의 폐부를 질시하는 한편
사이코 드라마 이상의 파격적 질료와 에토스(ethos)가 난무하는
그의 가사와 뮤직 비디오는 대중에게 언제나 유쾌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또한 닥터 드레의 [2001](1999/Aftermath)에서는
1992년 스눕 독(Snoop Dogg)이 맡았던 것 같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자신의 레이블 [Shady]를 [Interscope] 산하에 편입시킴은 물론,
디트로이트 로컬 신에서 함께 활약했던 더티 더즌(D-12)과의 데뷔작을 발표하고 이어
[Up In Smoke] 투어에 참여하는 등 활동의 고삐를 늦추려 들지 않았다.
[제43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아일랜드 밴드 U2에게 내줌에도 불구하고,
2년에 걸쳐 5개 부분에서 수상한 일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제발 한국에도 내한공연했으면~^^
에미넴!!! ㅊㅊ
ㅊㅊ 내한 공연 굽신굽신
퍽퍽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