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의 "진짜 맛"이라고 부를만한 "통일된" 실체가 있을거라는 착각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18세기 평양을 그린 "기성전도(箕城全圖)"에는 "향동냉면가(香洞冷麵家)"라는,
냉면집에 거리 하나를 차지하고 줄지어 있는 '냉면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저 위치에만 거리 하나를 채울 정도로 냉면집들이 많았다는 것이고,
냉면집들이 향동냉면가에만 있었을 리는 없으니 다른 곳들에도 냉면집들이 있었을 거라 가정하면
18세기 시점에서 이미 평양에는 적어도 십여곳, 많게는 수십곳의 냉면집들이 있었을 것이고,
심지어는 냉면집들이 배달까지 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음식 소리를 들을 정도이니,
냉면은 생각 이상으로 훨씬 보편화되어 있는 음식이었다는 것.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기준 평양 전체도 아니고, 저 냉면가에서 일하던 사람들만 105명이었다고 하니
이 시기쯤 되면 냉면집이 얼마나 많이 있었을지 짐작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그러면 여기서 중요한 의문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저 많은 냉면집들이 과연 다 맛이 비슷비슷했을까?"
저 정도로 많은 냉면집들이 장사를 하고, 심지어 거리 하나를 차지하여 '냉면 거리'를 형성할 정도였다면,
그 많은 가게 주인들이 전부 바보가 아닌 이상
다른 집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맛을 차별화하려는 이런 저런 시도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여러 냉면집들이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냉면집들이 비슷비슷한 레시피로 비슷비슷한 맛을 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비상식적이지 않은가?
실제 조선시대 기록들을 보면, 재료에서부터 돼지고기를 얹는게 오히려 흔한 형태였으니 쇠고기를 주로 쓰는 오늘날의 레시피와는 다른데
일제강점기에 냉면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던 김남천이라는 사람은 정작 꿩고기 냉면을 평양 냉면 중 최고라고 치고 있으며
1924년의 조리서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닭고기를 쓰는 레시피도 소개되어 있다.
이렇게 쓰는 고기의 종류부터 다양한데, 맛이 다 비슷비슷할 리가 있을까?
그러니까 평양냉면은 이런 맛이다!!라고 부를만한 명확한 실체와 기준이 있을 거라는 전제 자체가 틀린 것이다.
평양냉면은 17세기부터 보편화되기 시작하여 18세기에는 평양에 냉면 거리를 따로 형성할 정도로 발전했고,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발전은 더욱 가속화되어 수많은 냉면집들이 난립하여 경쟁했으며,
그 경쟁 과정에서 여러 냉면집들이 차별화를 위해 연구와 개량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냉면집마다 레시피와 맛이 다양해졌고
이 중 어떤 것이 콕 찝어 "원조"라고 할 수 없기에, 적어도 18세기부터 이미 평양냉면의 맛은 "다양했다"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오늘날을 기준으로 해도
탈북자 출신의 기자가 현재 북한의 평양냉면집들도 서로 다 맛이 다르다고 이야기하고,
그 중 어느 집을 특정해 원조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뭐가 진짜 원조 평양냉면의 맛이냐?"라는 질문 자체가 애초에 잘못된 것.
이건 마치 "뭐가 원조 된장찌개의 맛이냐?"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다.
된장찌개는 들어가는 재료부터 쓰는 된장의 종류, 조리하는 과정까지 너무나 다양하고
그 중 어느 맛을 찍어 "이게 원조 된장찌개의 맛이다" "이게 된장찌개 본연의 맛이며 다른 것은 사도다." 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평양냉면도 마찬가지.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기록들에 등장하는 평양냉면들은
동치미국물만 쓴 것, 돼지고기를 쓴 것, 닭, 꿩, 소를 쓴 것,
면 반죽의 배합과 뽑는 방법, 고명의 종류 등등이 기록마다 다르고 대단히 다양하며
평양냉면 맛에 대한 기록 또한 슴슴한 맛이라는 평부터 진한 고기 육수의 맛이라고 하는 평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그 중 어느 하나를 찍어 "이게 원조다" "이게 진짜다" "이게 맞다"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한국민속대백과가 정의하고 있는 이 문장이 평양냉면의 본질이다.
1. 동치미 국물과 고기(어느 고기인지 중류는 무방) 육수를 섞어서
2. 차갑게 식힌 국물에
3. 메밀로 만든 면을 말아서 먹는 요리
이 3가지 조건에만 해당한다면 그것은 평양 냉면이다.
육수맛이 슴슴한지 연한지, 메밀향이 강한지 약한지, 고명을 뭘 올렸는지, 겨자와 식초를 치는지 안 치는 지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다.
평양 냉면의 맛에 원조따윈 없다.
조선시대부터 이미 수십가지의 레시피가 난립하며 냉면집마다 서로 다른 맛을 내던 음식이 평양 냉면이다.
애초에 전통이고 원조고 나발이고 걍 맛이 없어.
부대찌개라하면 생각나는 디폴트값이 있듯이 지금의 평냉도 그런거지 뭐
그냥 다른 얘긴데 어떻게 조선시대 때도 찬 냉면을 먹었나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조선후기 때는 상업이 발전해서 나라에서 운영하는 빙고보다 사빙고가 더 많아서 동네 정육점에서도 얼음을 썼을 정도였다네 옛날에도 생각보다 얼음을 잘 썼네 ㅅㅂ ;; ---- 조선 전기에는 국가에서 관리했지만, 상업이 발전한 후기에는 '사빙고'라고 해서 민간에서 관리, 운영하는 석빙고도 많았다. 오히려 사빙고에 저장된 얼음이 국가 소유의 석빙고보다 몇 배나 더 많아서 조정에서는 이를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 빙계라는 조직을 구성하였다고 한다. 이 시절 얼음 보관량이 얼마나 많았던지 어물전이나 정육점에도 얼음을 사용하였고, 빙어선이라 하여 화물칸에 얼음을 채운 냉장선까지 만들어 생선을 내륙 깊숙한 곳까지 운송하였다. 조선후기엔 서울에서만 관영빙고와 사빙고에 저장된 얼음이 3백만정(丁)~5백만정이 되었다고 하는데 현대기준으로는 6만톤에서 10만톤의 얼음이 저장된 셈이니 그 성세가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