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대규모의 흑사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아이작 뉴턴은 자신의 고향인 링컨셔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그의 나이는 23세로, 대학 졸업식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학교가 임시 폐교를 선언하면서 뉴턴의 졸업도 사실상 늦어지게 되었다.
울즈소프 마을의 모습은 자신의 어릴 적 보았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넓은 초원을 배경으로 작은 오두막들이 군데군데 놓여 쾌적한 곳이다. 특히 날씨가 좋으면 시원하게 부는 바람의 세기와 고향의 냄새는 과거의 시간을 묶어둔 듯 그대로 있었다.
사람이 넘쳐나고 소리가 북적이는 런던에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아온 뉴턴의 기분도, 이곳에 오니 조금은 풀어졌다.
그는 최근 라틴어로 된 책의 초고를 기획하고 있다. 굳이 어려운 라틴어를 쓰는 이유는 자신의 책을 겉으로 핥고 적당히 아는 체 하는 녀석들이 나오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흑사병의 마수가 런던에서 물러날 때까지는 요양 겸 집필의 시간을 가지며 이곳에서 생활할 계획이다.
그는 마을에서 당분간 머물기 위해 작은 집 하나를 세 들었다. 집 넓이가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집필 및 연구 목적으로 사용할 탁자 하나, 사람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식탁과 의자 둘, 주방, 작은 벽난로까지 하나 있었다. 넓다란 앞마당도 있었다. 런던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집이었다.
뉴턴은 마부로부터 가방을 받아들고 집에 들어가 짐을 탁자에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수백 장의 종이, 잉크가 가득 담긴 병 세 개, 펜, 그리고 가루를 낸 납, 구리, 돌, 유리, 용해액, 플라스크……. 지구본과 수많은 책.
“잠깐.” 뉴턴이 플라스크를 들고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말했다.
“하아. 금이 갔잖아.”
뉴턴은 플라스크를 그대로 들고,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부에게 다가갔다.
“이보시오. 내 물건에 금이 갔잖소. 조심히 다뤄달라고 당부했는데.”
상대는 나이가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마부였지만 뉴턴의 태도에는 거침이 없었다.
“변상 해주셔야겠소. 아니면 마차 이용비를 까거나.”
마부는 난색을 표했다.
“그게 깨져 있었던 물건인지, 제가 싣고 가다가 깨졌는지 어떻게 압니까.”
“깨졌으면 진작에 버렸지. 내가 내 실험 도구를 관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시오?”
뉴턴과 마부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여자 두 명이 뉴턴을 찾아왔다. 나이 든 여자는 뉴턴이 미리 고용한 가정부였지만, 뉴턴과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여자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가정부는 미안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뉴턴은 묻는 대신 찡그린 표정으로 의문을 표했다.
“제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유감스럽게도 일을 못 하게 되었어요, 선생님.”
뉴턴은 이마를 쥐었다. 가정부는 재빨리 옆에 서 있는 여자의 등을 두드렸다. 여자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자, 뉴턴은 마찬가지로 한쪽 눈썹만 치켜 올렸다.
“캐서린이라는 아이예요. 이 애도 저희 쪽 사람인데, 싹싹하고 고분고분해요.”
캐서린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안녕하세요, 선생님!”
캐서린이 대뜸 인사하자 뉴턴은 눈을 찡그렸다. 저 여자를 가정부로 들이면 괜히 일이 귀찮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가정부를 다시 찾아 고용하는 것은 더 귀찮은 일이었다. 혼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은 더더욱 귀찮은 일이었다.
뉴턴은 다시 마부를 보았다.
“아무튼, 난 이 물건 값을 꼭 받아야겠소. 내가 이걸 깰 원인이 어디 있겠소?”
마부는 안 된다고 잡아뗐다.
“그거, 제가 낼 게요!”
캐서린이 끼어들었다. 뉴턴은 캐서린을 힐끔 돌아봤다.
“그 쪽이 왜?”
“그냥요!”
“세상에 그냥은 없어. 이유가 있겠지.”
“선생님이 좋으니까요!”
“난 그 쪽이 싫어.”
뉴턴은 마부를 보았다. 마부는 팔짱을 끼고 굳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뉴턴은 한숨을 쉬었다.
“좋을 대로 해.”
캐서린은 영국에서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의 외동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에서 행복한 가정은 거의 없다.
캐서린이 세 살도 되지 않았을 때, 영국에서는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의 내전이 일어났다. 그 때 아버지를 잃었고, 내전 과정에서 아버지가 관리하고 있었던 농민들까지 들고 일어나 가문은 인력도 재산도 잃고 말았다. 이제 막 젖을 뗀 캐서린을 안은 어머니는 지방으로 피신하여 전전긍긍 하며 살았다.
어머니는 해본 적 없었던 ‘노동’이란 것을 겪고, 씀씀이를 최대한 줄이며 생존을 위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기술도 없는 그녀는 사람들에게 데여 상처 받곤 했다.
그러나 교양과 기품을 갖고 살았던 과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 캐서린을 위해 어머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
캐서린은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으나 자신이 알게 된 지식들을 보물처럼 간직할 줄 아는 소녀였다. 아침이 되었을 때 하늘에 뜨는 저 눈부신 공은 뭐라고 부르는지, 밤이 되면 왜 공의 생김새가 달라지는지, 들판에 피는 예쁜 꽃들은 무슨 이유로 존재하는지를 어머니에게 들었고……. 알 때마다 즐거워 했다.
그러나 캐서린은,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싶어 했다. 당시 마을의 여자 아이들 중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아이는 캐서린 뿐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아껴가며 캐서린에게 책을 사다주곤 했다.
그러나 캐서린의 어머니는 지금 세상에 없다. 캐서린이 10살 생일을 맞이했을 때, 어머니는 유독 기침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정확한 병명도 없었던 결핵이 그녀의 호흡을 망가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 기침을 연신 토하는 어머니를 보며, 캐서린은 어머니가 더 이상 자신을 책임져줄 수 없을 것임을 직감했다. 캐서린은 일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캐서린이 15살 생일을 맞이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한 공간이었던 집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캐서린은 하숙집에서 다른 여자 아이들과 함께 살며 가정부 일을 했다.
그렇게 3년이 더 흘렀고, 이젠 일에도 능숙해져서 가사에 관한 것이라면 못 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노동으로 점철된 8년의 시간도 그녀의 천성을 해치진 못했다. 아주머니가 대학생의 가정부 의뢰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캐서린은 눈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부탁했다.
“보수로 받는 돈을 열 개로 떼어서, 하나를 아주머니에게 그냥 드릴게요. 그러니까, 제가 그 일을 하게 해주세요.”
소액이지만 불로소득이 들어온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캐서린은 하루 12시간을 일하며 1페니를 벌었다. 종이 한 장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캐서린은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한 나머지는 꼬박꼬박 저금했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하며 저금한 돈이 200펜스에 달했다. 1년은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러나 캐서린은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 돈으로 깨끗한 옷을 살 수도 있었고, 더 많은 빵을 사서 먹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으고 모으다 보면 언젠가 자신에게도 ‘배울’ 기회가 왔을 때 사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학생의 가정부로 들어간다고?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심지어, 학비를 쓰지 않고도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옷감이 많네요. 빨래부터 해야겠어요. 그리고 무슨 음식을 좋아하세요? 아, 그 전에 먼지 쌓인 이 공부터 닦아도 될까요?”
“천천히, 하나씩 물어봐. 그리고 지구본은 건들지 마.”
“지구본이요?”
“네가 손 올리고 있는 그 공.”
“아, 이걸 지구본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이게 무슨 물건이에요?”
“이 세상의 생김새를 표현한 물건이다.”
캐서린은 입을 벌리고 그대로 굳었다. 뉴턴은 두 종류의 사람을 싫어했는데, 여자,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캐서린은 둘 다였다.
“하지만, 이거, 동그랗잖아요. 하늘에 뜬 태양처럼.”
“지구는 모르면서 태양은 아는 건가. 지식이 편향돼 있군.”
“이거, 동그랗잖아요?”
“그렇지.”
“사람이 위에 서면 미끄러질 텐데요?”
“안 미끄러져.”
“왜요?”
“안 미끄러지니까. 그 전에, 빨래 한다고 하지 않았나?”
“왜 안 미끄러져요?”
“빨래 해.”
“네.”
뉴턴은 잉크병을 열고 펜을 들었다. 펜촉을 잉크에 찍어 글을 쓰려 했는데, 잡생각이 몰려왔다. 그렇다. 안 미끄러진다. 그렇지 않아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다. 최근 쓰고 있는 책의 내용-운동하는 물체에 대한 세 개의 법칙-과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선생님! 저건 뭐예요?”
캐서린은 탁자 한쪽에 몰려 있는 플라스크와 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뉴턴은 이제 짜증이 난다. 저 여자는 귀가 좋지 않은 것일까. 조용히 말을 하는 방법을 모르는 듯 했다. 빨래감을 품 안에 한아름 안은 캐서린은 빨래감 위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연금술 연구.”
“연금술?”
“돌을 금으로 만드는 거야.”
“와. 세상에. 어떻게요?”
“그걸 모르니까 연구하는 거다.”
“아하…….”
캐서린은 뉴턴을 보면서 입을 뻐끔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서린은 마음을 다짐한다. 기회가 있다면, 잡아봐야 한다.
“부탁이 있어요.”
“안 돼.”
“과학, 가르쳐 주세요.”
뉴턴은 지긋이 눈을 감았다. 오늘 들어 가장 기분 나쁜 말이었다.
“일 해.”
책의 이름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로 정했다. 전체 중의 반 정도를 저술해둔 상태였는데, 뉴턴은 어쩌면 저 여자 때문에 이 마을에서 책을 끝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차라리 저 여자를 정말 자르고 혼자 집안일을 하는 편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었다. 내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가정부를 고용했는데 가정부는 학생이 되려 하고 있었다. 자신은 저런 학생들 가르쳐줄 정도로 할 일이 없지 않았다.
캐서린은 삶은 감자 껍질을 벗겨서 먹기 좋게 으깬 후, 우유를 곁들여 탁자에 놓아두었다. 그러면서 책을 쓰는 뉴턴의 등 뒤로 조용히 걸어가 종이에 쓰여진 것을 염탐하기 시작했다.
글자 깨나 읽을 줄 아는 캐서린이었지만 선생님이 쓰고 있는 책의 내용은 ‘완전히’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만약 글자를 읽을 수 있었어도 못 알아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며 웃었다.
뒤에서 쿡쿡대는 소리가 나자 뉴턴이 캐서린을 쏘아봤다.
“뭐 하는 거지?”
“죄송해요. 무슨 책이에요?”
“운동 법칙에 관한 책.”
“네?”
“넌 알 필요 없어. 알아도 안 돼.”
“알아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요?”
“어중간하게 알 바엔, 확실히 모르는 편이 더 낫지.”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일 그만 둘래?”
캐서린은 사색이 되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정작 말 한 뉴턴도 조금은 놀랄 정도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저 여자에게 있어 자른다는 말은 특효약임을, 뉴턴은 파악했다. 조금은 저 여자를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거 내가 다 먹을 때까진, 밖에 나가서 풀이라도 뽑아. 그리고 이따가 돌아와서 빈 그릇은 깨끗이 닦고 찾기 쉬운 곳에 올려놔. 그것까지 다 하면 집에 돌아가. 그 전에 이거 받고.”
뉴턴은 천 주머니를 뒤적여 1페니 꺼내 캐서린에게 주었다.
“네, 네!”
캐서린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태도로 튀어나갔다.
캐서린은 선생님의 집 한 구석에 몸을 기댔다. 아주머니에게서 듣기로는 그는 링컨셔가 고향이었고, 최근 흑사병인지 하는 것 때문에 ‘잠깐’ 여기로 돌아온 입장이었다.
달리 말하면 언제 다시 도시로 떠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한 달 뒤, 아니 어쩌면 일주일 뒤, 아니 어쩌면 흑사병이라는 것이 떠나가면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지 못한다면, 혹시, 영원히 지식이라는 것을 제대로 모르고 살아가게 되진 않을까. 깜깜한 천으로 둘러싸인 세상. 그 너머엔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살다가,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두려운 일이다. 캐서린은 그 너머를 엿보고 싶었다. 아니, 엿봐야만 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궁금할 뿐이다.
하지만 저 분은 좀처럼 입을 열려고 하지 않으신다. 사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태도도 본인 나름대로는 선심을 썼다는 모습이다.
‘물론, 내가 바보 같아서 짜증은 날 수도 있겠지만…….’
캐서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이렇게 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닌 걸.’
태양은 이제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색깔도 노란 색에서 점점 빨간 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왜’ 그런 것일까. 게다가, 놀랍게도,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늘 비슷한 시기에 태양은 다시 떴다. 그런데 비는 왜 오는 것일까. 누구도 대답해주지 못했다.
‘나도 열심히 배우면, 선생님처럼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을텐데.’
캐서린은 바닥을 발끝으로 툭툭 차면서 생각했다. 겨우 잡아낸 기회인데, 눈 앞에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지식을 그저 부러워만 해야 한다니 이상했다. 지식은 빵이나 돈처럼 준다고 사라지지도 않는데. 울컥한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의 여러 현상들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는 건 캐서린 뿐이었다. 모두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그것도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삶을 생각할 때마다 캐서린은 가슴 한 쪽이 비는 느낌을 받았다.
이상하게도 주변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런 게 궁금해?’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사람들은 ‘그딴 것’보다는 더 적은 돈으로 사람을 사용할 방법, 여자 혹은 남자에게 먹히는 말을 하는 방법에 더 관심이 많았다. 물론 자신도 그런 것에 무관심한 여자는 아니었지만…….
그것 말고도 사람은 알아야 할 게 더 있을 것이라고 캐서린은 생각했다.
“선생님. 뉴턴 선생님.”
캐서린의 발이 바닥을 차다가 멈췄다.
“세상을 알려주세요. 과학을 알려주세요. 선생님이 아시는 지식을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선생님은 그러실 수 있잖아요…….”
캐서린은 터벅터벅 선생님의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자신이 들어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반응하지 않고 책을 쓰고 있었다. 탁자에는 빈 접시가 남아 있었다.
캐서린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조용히 그릇을 집어 들어 닦기 시작했다. 수건의 반대편까지 사용해 그릇을 깔끔하게 닦은 후 주방에 올려놓았다.
캐서린은 뉴턴을 몰래 돌아봤다. 뉴턴은 분주하게 펜을 놀리고 있었고, 자신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선생님.”
뉴턴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상을 알고 싶어요.”
뉴턴은 대답하지 않았다.
“제가 바보 같아 보이시겠지만, 저는 그저 배울 기회가 없었을 뿐이에요. 배운다면, 선생님 못지 않게 똑똑한 사람이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세상을 알고, 더 많이, 더 많이 알아서, 저는 선생님처럼…….”
툭, 하고 뉴턴이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일어났다.
“확신했어.”
“네?”
“해고하겠어.”
뉴턴은 1페니를 꺼내 캐서린 앞의 바닥에 던졌다.
“난 가정부를 고용했어. 짜증나는 여자를 집에 들인 게 아니야. 이건 내가 잘못 선택한 것에 대해서 추가로 내는 비용이야. 그리고 다시는…….”
“선생님!”
캐서린이 뉴턴의 말을 끊고 소리쳤다. 그녀는 두 주먹을 가슴 앞에 꾹 쥐었다. 뉴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급으로 일해도 좋아요!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날까지 계속 무급으로 일 할게요! 제발 뭐라도 좋으니까, 가르쳐만 주세요! 종이도, 펜도, 제가 쓸 물건은 전부 제가 알아서 살 거예요! 원하신다면, 교육비라도 드릴게요! 저한텐 돈이 있어요! 지금까지 200펜스 정도를 모았는데, 이거, 다 드릴게요! 많은 돈은 아니지만 선생님께서 생활하시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니까…….”
“시끄러워. 네가 나가주는 게 내겐 가장 큰 도움이야.”
“선생님…….”
“가정부한테 돈 받아가면서 가르칠 정도로 여유가 없진 않아. 잘 못 알아들었나 본데, 뭐든지 간에 너한테 가르쳐줄 건 없어.”
“무엇이든 할게요! 제발!”
“무엇이든? 왜, 몸이라도 파실 건가? 무엇이든 하겠다면, 부탁이니까, 나가.”
캐서린은 울상이 되었다.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선생님이 아니면, 영영 이렇게 살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길 원하시는 거예요?”
“이젠 협박까지 하는군. 내가 네 앞길을 틀어막고 있다,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나?”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아니면, 나가.”
캐서린은 두 팔을 늘어뜨렸다. 캐서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젠 질질 짜는군. 이래서 여자들은. 울면 뭐라도 될 것 같나?”
“아니에요. 저도 모르게 그만…….”
캐서린은 코를 훌쩍였다.
뉴턴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탁자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펜촉에서 잉크가 조금 튀어 종이에 먹물 방울이 묻어 있었다. 뉴턴은 혀를 찼다. 뉴턴은 다시 캐서린을 돌아보았다. 저 여자는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나가라고 몇 번을 말 했지만 그 발은 여전히 그곳에 박혀 있었다. 뉴턴은 더 이상 말 하지 않았다. 그저 검지를 들어 문 밖을 가리켰다.
캐서린은 사형 집행이라도 당하는 모습으로, 어느 때보다 느린 발걸음으로, 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5초에 한 발자국 씩 걸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뉴턴은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캐서린이 문 앞에 선 이후로, 족히 1분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뉴턴은 물건을 집어던지는 상상을 하며 캐서린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할래요.”
뉴턴은 떠는 한숨을 쉬었다.
“저는 세상을 너무 몰라요. 그런데, 왜일까요. 저도 왜 자신이 이런지 모르지만, 이 세상의 비밀을 알고 싶어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그저 너무 궁금하고 너무 알고 싶어요. 제가 배운 게 없어서, 이 기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기분을, 제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표현할래요. 선생님께서도 저와 같은 기분이 아니신가요? 왜 세상에는 규칙이 있을까. 신께선 세상을 왜 이렇게 만드셨을까. 내 일상,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은 왜 이렇게 만들어져 있을까. 왜, 왜, 왜…….”
뉴턴은 대꾸하지 않는다.
“죄송해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뉴턴은 대꾸하지 않는다. 캐서린은 죄송하다는 말을 한 번 더 붙인 뒤,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는 소리는 늦게 들렸다.
뉴턴은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보았다. 자신이 사람 하나를 찢어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흑사병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이렇게 기분이 불쾌하진 않았다. 그저 책을 쓰고 싶었을 뿐이다. 그저 이 일에 집중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차라리 런던에 있는 게 정신적으로는 더 나을 것 같았다.
캐서린은 울즈소프의 높다란 초원 위를 올랐다. 마을의 풍경은 여유로움 그 자체였지만 캐서린의 심정은 전쟁을 겪은 군인의 것이었다. 캐서린은 어제 일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왔다. 사실상 해고를 당했고, 자신의 기대가 무너졌고, 선생님에게 민폐까지 끼쳤다.
그녀는 갑자기 ‘이대로 살다가 죽어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그녀 일생에 최초로 해보는 생각이었다.
몰라도 된다.
어차피 세상은 뉴턴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 알아서 비밀을 밝혀줄 것이다. 그들에 의해 세상은 좀 더 넓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 이야기. 자신의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세상의 규칙? 이유? 그보다는 ‘그딴 것’에 관심을 가질 시간에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서, 더 많은 것을 사고, 더 많이 즐기다가 미련 없이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더 현실적인 문제가 앞에 있다. 그리고, 결혼도 해야지!
“뉴턴 선생님과는……. 아하하. 난 미쳤어.”
캐서린은 풀밭에 주저앉았다. 바람은 차갑게 불어 캐서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기분이 울적해지니, 마을의 풍경도 다르게 보였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이라기보단, 허전하고 외로운 마을의 모습이었다.
가리지 않고 일을 하느라 도시와 지방을 정처 없이 쏘다녔던 자신이다. 아픈 사람의 수발을 들어주기도 했고, 집채만한 빨래를 하루만에 다 하기도 했다. 아플 때도 일어나 일을 했고, 손발이 다 갈라져도 일을 했으며,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그 고통 속에서도 일을 했다.
그렇게 일을 했다.
“왜……?”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을까.
그 이유는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캐서린은 일어섰다.
“다시 해보자. 방법이 있을 거야.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을 방법이…….”
초원 위에서는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는 선생님이 계신 작은 집도 있었다. 캐서린은 그곳에 다시 들어가야만 했다. 저 작은 집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이 초원, 이 마을, 심지어 저 멀리 있는 런던보다도 클지 모른다. 그녀는 선생님의 집에서 일을 했던 며칠 안 되는 기억을 되짚기 시작했다.
뉴턴은 편하게 잠들지 못했다. 아침, 잠이 덜 깨서 비몽사몽 하다가 계란 대신 시계를 삶은 것도 이런 이유였다. 때문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을 때는 아예 그냥 없는 채 하고 잠들어버릴까 생각했다.
얼굴에 짜증이 가득 찬 뉴턴이 문을 아주 조금 열자, 네모난 봉투에 싸인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캐서린이 인사했다. 뉴턴이 문을 다시 닫으려는 찰나 캐서린이 문틈에 발을 끼워 막아냈다.
“아야야.”
“발 치워.”
캐서린은 고개를 저었다.
“저기, 선생님, 이거…….”
캐서린은 봉투를 건넸다. 두께가 엄지 손가락 만 했다.
“뭐야.”
“책이에요.”
“책?”
캐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런 걸 사왔지?”
“선생님, 저거……. 연금술이라고 하는 그거 맞죠?”
캐서린이 눈치로 뉴턴의 탁자를 가리켰다. 연금술 연구에 필요한 도구들이었다.
“그거에 관한 책이에요. 꽤 비싸더라고요.”
“이런 걸 나한테 왜 주는데.”
“그야…… 선생님이 좋으니까?”
“내가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찾아올 거예요.”
뉴턴은 캐서린의 품에서 책을 빼앗았다.
“이 책은요, 그러니까, 어제 일에 대한 사과의 표시고, 또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고, 또…… 저에게 가르침을 달라는 부탁이자, 학비이기도 해요.”
“뺨이라도 때려야 안 올 건가?”
캐서린은 뺨을 내밀었다.
“미쳤군.”
뉴턴은 봉투를 열어 책을 보았다. 연금술의 역사와 응용법이라. 그가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이었다.
“비싸 보이는데. 얼마 짜리 책이지?”
“50 펜스 정도 해요.”
“거짓말! 보름은 먹고 살 수 있는 생활비라고. 저번에 200펜스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정말이라면 넌 사기 당한 거야.”
캐서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못 배워서 그런 걸지도 몰라요.”
“당장 가서 환불해. 그리고 다신 오지 마.”
“선생님에게 드릴 선물인 걸요. 100펜스라도 샀을 거예요. 아니, 그 이상이라도.”
뉴턴은 이를 갈았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나?”
“네. 반드시.”
뉴턴은 짜증을 내며 문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뺏은 책을 탁자에 올려두었다.
“일단은 들어와.”
캐서린은 눈에서 빛을 내며 웃었다.
“단, 조건이 있다.”
캐서린은 눈을 깜빡였다.
“넌 이미 해고 됐어.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리고 너한테 아직 과학을 가르쳐 준다고도 하지 않았어. 열정은 충분해 보이지만……. 너에게 갖춰진 지성과 재능이 있다는 가정 하에, 조금만, 하루 10분 정도만 가르쳐 줄 거다. 그렇다면 너에게 지성이 있는지는 어떻게 확인할까. 너에게 문제를 낼 거다.”
뉴턴은 탁자에서 백지를 한 장 꺼내들었다.
“내가 쓰고 있는 책에서 나오는, 세 가지의 물리적 현상을 적어서 너에게 줄 거다. 라틴어는 아니니까 읽을 수는 있을 테지. 단, 해설 해주지는 않을 거야. 네가 스스로 해설하는 거지.”
“네……?”
“스스로 물리 현상을 경험하고, 그 현상이 존재하는 이유를 글로 풀어내라. 물론 수학적으로 풀어내면 더 좋겠지만…….”
뉴턴은 스스로도 자신의 말이 웃겼는지 코웃음을 쳤다.
“그런 건 기대 안 해. 만약 네가 똑똑하다면, 기초적인 것부터 다시 배워야 할 거니까. 기한은 내일까지. 잉크랑 펜은 여분 있으니까 하나씩만 가져가.”
“아, 아…… 알겠습니다!”
캐서린은 집 안이 울릴 정도로 크게 대답했다. 뉴턴은 인상을 썼다. 캐서린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세 개의 문제가 적힌 종이를 든 캐서린은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그 문제들을 읽어본 캐서린은 당황했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들이었기 때문이다.
왜 빨리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면 앞으로 넘어지는가.
왜 사람의 등을 밀면 그 사람은 밀려나는가.
왜 사람을 때리면 내 손도 아픈가.
대답은 간단했다. 갑자기 멈추니까. 사람을 밀었으니까. 사람을 때린 것에 대해서 벌 받으라고……?
너무 당연했지만, 그래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질문들이기도 했다. 그것이 세상이고, 그런 현상을 겪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게 사람들이다. 캐서린은 고민한다.
캐서린이 한 일은 일단 직접 몸으로 체험해보는 것이었다. 캐서린은 종이를 집에 두고 나와서, 들판 위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멈췄다.
그러자 ‘당연하게’ 몸이 앞으로 쏠렸고, 캐서린은 앞으로 꼬꾸라졌다. 막상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달리다가 멈추면 그대로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마치 자신의 안에서 계속 앞으로 달려 나가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내친 김에 뒤로도 빠르게 뜀박질 해보았다. 그러다가 멈췄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몸이 뒤로 쏠려, 캐서린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뒤로 달릴 때는 몸이 앞으로 나가려는 느낌 대신 뒤로 튕겨나가려는 느낌이었다.
하숙집에 돌아온 캐서린은 침대에 앉아 종이를 들고 골몰히 생각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가만히 있을 때는 앞으로 계속 나가려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움직일 때만 생겨났다.
즉, 움직임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캐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여야 움직여진다.’ 반대로 말하면‘움직이지 않을 땐 움직여지지 않는다.’
어딘가 이상한 대답이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캐서린은 펜을 들어 질문 밑에 대답을 쓰기 시작했다.
캐서린이 침대에 몸을 굽히고 앉아 골몰히 펜을 놀리는 동안, 어느새 캐서린의 친구인 클로타가 그녀의 옆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아, 응?”
“혹시, 연애편지?”
“아니. 아니야. 아닐…… 지도. 잘 모르겠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클로타는 히죽댔다.
“누구한테 쓰는 거야?”
“선생님.”
“선생님? 아, 저번에 네가 가정부로 들어갔다는 사람?”
“응. 맞아. 지금은 아니지만.”
“그래서 연애편지야 아니야? 확실히 말 해봐.”
클로타는 연애 관련 이야기라면 어디에서든 끼어드는 애였다.
“내 부탁을 들어주면 대답할게.”
“뭔데?”
캐서린은 클로타에게 ‘밀기 게임’을 제안했다. 침대 앞에 서서 서로를 한 번씩 침대로 밀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을 설명할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왜 밀면 밀려나는지 말해볼 것이었다.
“이게 뭐 하는 건데?”
“그게 나도 궁금해.”
“너 이상해.”
캐서린은 웃었다.
캐서린은 침대 앞에 멀뚱히 선 클로타를 밀었다. 클로타가 “앗.” 소리를 내며 침대로 넘어갔다.
“왜 넘어졌어?”
“네가 밀었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안 넘어질 수도 있었잖아.”
“그거야 앞으로 힘을 주면 안 넘어지겠지.”
“그렇지?”
이번엔 캐서린이 밀리는 입장이었다. 클로타가 그녀를 툭 밀자 캐서린은 뒤로 넘어갔다. 굳이 안 넘어가려고 버틴다면 버틸 수 있었지만, 힘을 주지 않으면 그녀는 확실히 밀려났다.
캐서린은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캐서린은 눈을 깜빡였다.
아까 썼던 첫 번째 문제와 어떤 연관이 있진 않을까. 가만히 있으면 움직이려 하지 않듯이……. 밀리지 않으면?
“그래. 그거야.”
밀린 이유는 당연히 상대가 ‘밀었기’ 때문이다. ‘밀지 않으면’ 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설명하는 것도 어딘가 어색했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일까. 캐서린은 방금 한 생각을 놓치지 않고 질문 밑에 적었다.
캐서린을 지켜보던 클로타가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그런데 무거운 사람은 밀어도 안 넘어가잖아.”
“아, 맞아! 밀었는데.”
“밀었는데.”
“맞아. 밀었지. 우린 넘어가는데, 무거운 사람은 안 넘어가.”
“당연한 거 아니야?”
“맞아. 당연해. 맞아. 그런데, 왜?”
“몰라. 무거워서 그렇겠지.”
“그러니까 왜?”
“몰라.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걸’ 알고 싶은 거라고!”
“너 진짜 이상하네.”
캐서린은 답을 적고 나서 그 밑에다 한 줄 또 적었다. ‘밀리는 사람이 가벼워서?’
“가만히 보니까 연애편지 같지는 않네. 뭐 이상한 공부 하는 것 같고.”
“아니야.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연애편지가 맞는 것 같았어. 선생님에 대한 연애편지이기도 하고, 과학에 대한 연애편지이기도 해.”
“무슨 소리래. 근데 그 사람 어때? 잘 생겼어?”
“음, 꽤.”
“성격은?”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아.”
“딱 내 취향인 걸.”
캐서린은 장난스럽게 클로타의 허리를 찰싹 때렸다. 다만 일부러 좀 더 힘을 주어서 때렸다. 클로타도 아야 소리를 내면서 캐서린의 등을 때렸다. 맞은 등이 얼얼했고, 확실히, 때린 자신의 손바닥도 얼얼했다. 당연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대답을 얻자고 클로타를 계속 때려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캐서린은 혼자 침대에 앉아 자기 손등을 때려보고, 손바닥을 마주 쳐보기도 했다. 그렇게 족히 백 번은 때린 것 같았다. 손바닥은 이미 빨갛게 물들었다. 때리는 방법을 바꿔서 손바닥의 방향을 십자 모양으로 해서 쳐보기도 하고,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쳐보기도 했다. 손등끼리도 때려보긴 했다. 이건 꽤 아팠다. 이백 번을 때려보고도 왜 때린 손까지 맞은 손처럼 아픈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 손바닥을 한참 때리는 캐서린을 보면서 주변의 여자들이 이상하다며 수군대기 시작했지만, 캐서린은 개의치 않았다. 캐서린은 두 손을 정확히 일자로 동시에 쳐보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양 손을 동시에 때리면 오른손으로 왼 손을 때린 것일까, 왼손으로 오른손을 때린 것일까? 구별할 수 없었다. 구별할 수 없었다. 구별할 수 없었다……. 분명 손뼉을 친 것은 아까와 똑같은데 말이다. 그렇다면, 오른손으로 왼손을 때려도, 왼손으로 오른손을 때린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기가 때렸지만 동시에 자기가 ‘맞은’ 셈인 것은 아닐까.
캐서린은 눈을 번뜩 떴다. 이 생각을 놓치지 않았다. ‘어느 쪽에서 때려도 동시에 한 쪽으로부터 맞은 셈이다.’ 캐서린은 빠르게 답을 적었다. 물론 이 역시 이상한 생각이었다. 마치 말장난 같았다.
캐서린은 남은 돈의 반절 가까이를 써서 새 옷과 신발을 샀다. 옷에서는 약간의 향수 냄새까지 났다. 어떤 향수인지 종류는 알지 못했으나 그녀의 일상에서 맡아볼 수 없는 향이었다. 이렇게 비싼 옷은 사본 적도 입어본 적도 없었다. 머리도 신경 써서 매만졌다.
하지만 옷이나 머리보다도 이 손에 들고 있는 문제와 답안이 더 중요했다. 캐서린은 답안지를 구김 하나 생기지 않도록 조심히 돌돌 말아서 끈으로 봉하고 리본 매듭을 지었다.
캐서린은 심호흡 했다.
만약, 정말로, 어쩌면 뉴턴 선생님이 이 답안지를 보고 자신을 가르쳐줄 지도 모른다. 아니, 더 나아가서, 어쩌면 자신이 언젠간 세상의 비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현상들을 굳이 의식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얼마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캐서린은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심지어 세상이 벌써부터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캐서린은 뉴턴의 집 앞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길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캐서린은 다시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정적이 흘렀다. 캐서린은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어디로 떠나신 건 아닐까?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먹을 것을 사러 나가신 걸 거야. 아니, 정말로 떠나신 거라면……. 아니면 이 시간에 주무시고 계신 걸까? 설마 기한을 주신 건 떠날 시간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아. 그렇게 빨리 떠날 수는 없어. 어쩌지?’
캐서린은 다급한 마음에 집 주변을 둘러보고, 집 둘레를 빙빙 돌아보며 주변을 살펴보기도 했다. 캐서린은 이제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단 발이 닿는대로 어디든 달려가기 시작했다. 많은 것이 있는 마을은 아니다. 아직 마을에 계신다면, 분명 어떻게든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을 외곽의 한 정원에서, 캐서린은 선생님을 발견했다. 그녀는 안도감에 눈물을 글썽였다. 선생님은 하필이면 나무 뒤에 앉아 계셔서 주의 깊게 찾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캐서린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계신다. 집으로 돌아오시길 기다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괜히 방해를 했다가 또 불쾌하시게 만든다면, 겨우 얻은 기회를 마지막 순간에 놓쳐버리는 게 아닐까. 아니, 뉴턴 선생님은 예민하신 것 같아도 그 정도로 날 포기하시진 않을 거야……. 캐서린은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뉴턴 선생님에게 간절히 부탁했던 것처럼, 그래서 결국 기회를 얻어낸 것처럼. 그리고 알고 있었지만 왜 그런지 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직접 체험해보면서, 조금이나마 아는 것이 많아졌고, 세상을 또 다른 방법으로도 볼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만약에 선생님께서 포기하시더라도…….”
적어도 이번에 얻은 경험과 지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캐서린은 자신의 생각에 새삼 놀랐다. 어제의 자신보다 조금 더 똑똑해진 기분이었다. 그저 넘어지고, 친구를 밀쳐보고, 자기 손바닥을 때리는 ‘이상한’ 일들을 했을 뿐인데!
더 이상의 고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라도 조금만 더 용기를 낸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배우고 싶다. 더 많이 알고 싶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 마음을 위해 지금까지의 고된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자신에게 그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 쯤 살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캐서린은 결국 천천히, 천천히 뉴턴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은 자신이 온 사실을 모르시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데 몰두하고 계신 것 같다. 그 책은 다름 아니라 자신이 선물한 연금술 책이었다. 캐서린은 눈물을 글썽였다.
하지만 막상 선생님을 만나니 더욱 더욱 긴장 되었다.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자신은 분명히 충격을 받을 것이다.
‘실수 하면 안 돼. 그리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거야…….’
캐서린은 숨이 턱턱 막혀오는 기분을 느꼈다.
‘아니야. 나쁜 결과가 아닐 거야.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야. 그래야만 해.’
캐서린은 마지막으로 말을 꺼내기 위해, 나무에 등을 기대어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캐서린이 나무에 등을 기댄 순간, 나뭇가지가 살짝 흔들렸다.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던 사과 하나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뉴턴은 옆에 떨어진 사과를 보았다. 그리고 침묵했다. 그는 사과를 보았다. 보았다. 그리고 또 보았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물건을 높은 곳에서 놓으면 당연히 떨어진다. 그것은 부정된 사례가 없는 세상의 법칙이기도 했다. 모두가 알고, 모두가 ‘당연히’ 여기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든 ‘당연한’ 것에는 그것을 당연하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법칙. 뉴턴은 생각한다. 물건을 높은 곳에서 놓으면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하늘로 솟는 법은 없다. 그러나 누구도 이 현상을 해석하지 못했다. 사실,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다들 그저 떨어지니까 떨어진다고만 생각한다. 이 간단하고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 예수가 탄생한 이래 1600년이 넘었지만 누구도 굳이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어째서? 왜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거지?
‘왜 안 미끄러져요?’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굳이 그런 걸 궁금해 하는 멍청이도 있었다.
뉴턴은 캐서린이 지구본을 건드리며 한 말을 떠올린다.
그야 당연히, 지구의 중심을 향해 만물에 적용되는 어떠한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구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고, 왜 그런지도 모르지만, 모두가 아는 현상이다. 눈에 직접 보이지는 않아도 이 세상에 아울러 적용되는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힘이 존재한다면, 그 힘을 정의할 수 있는 ‘수학적 해석’도 분명히 존재할 수 있다…….
뉴턴은 책을 덮었다. 그리고 일어났다. 뉴턴은 캐서린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 선생님…….”
캐서린이 입을 떼는 순간, 뉴턴은 캐서린을 지나쳐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캐서린은 깜짝 놀랐다. 선생님이 자신을 피해 도망가는 것일까 생각했다.
“서, 서, 선생님! 어디 가세요! 여기 답안 적어 왔어요, 선생님!”
“그건 나중에!”
캐서린은 멀어져가는 뉴턴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내 안심했다. 저 방향은……. 선생님은 분명히 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선생님은 뭔가를 떠올린 게 분명했다.
“똑똑한 사람은, 왜 저렇게 이상한 거야…….”
그녀는 어깨를 늘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