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갑작스러운 상급생의 등장.
게다가 그 상급생이 찾는 대상은 1학년 중 가장 열등생인 비이 제스텔.
이 일은 아이들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유발했다.
애들 대부분이 하던 걸 멈추고 에이와 비이를 번갈아보며 대체 무슨 일인가 신기해하거나 궁금해했다.
비이를 둘러싸고 있던 애들 역시 둘을 보며 의아해했다.
“야, 제스텔. 뭐냐?”
“저 사람 3학년의 그 괴짜 아냐?”
비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가만히 있던 그때였다.
에이가 교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비이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는 비이의 손목을 낚아채듯 잡아 일으켜 세웠다.
“비비. 무얼 하고 있나. 어서 나오라니까. 가세.”
“앗….”
비이는 자신을 억지로 끌고 가는 에이를 따라 교실을 나갔다.
복도로 나온 애들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에이가 노래라도 부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버려진 기숙사의 창고 안.
비이는 어제 마력을 조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일단 비비, 자네에게 내가 하려는 실험이 어떤 건지 설명해 주지. 그래야 자네도 안심하고 내게 몸을 맡길 수 있을 테니까.”
비이는 몸을 맡긴다는 말을 듣자마자 불안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교실에 남아 있었을 때보다 편하다는 생각이 들자 아무래도 좋아졌다.
“비비. 마력이란 무엇인가?”
“…원래 존재하는 세계의 법칙을 무시하고 자기 의도대로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이라고 배웠어요.”
“그래. 그러면 마력의 근원은?”
“이 세계 모든 것이요.”
“그러면 세계의 마력과 마법사의 마력에는 무슨 차이가 있지?”
“세계의 마력은 순마력으로 그 자체는 이용할 수 없어요. 마법사는 순마력을 흡수해서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용마력으로 바꾸고요.”
“수업은 성실히 듣는 모양이군 그래.”
에이의 말에 비이는 볼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 말이 너는 마치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자네가 방금 말했듯 마법사는 순마력을 가용마력으로 바꿔서 마법을 사용하지. 가용마력은 마법을 쓰면 사라지고 다시 충전하기 위해서는 명상이 필요해. 휴식을 취하면 자연히 차기도 하지. 자, 그러면 이제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자 본론으로 넘어가 볼까.”
에이가 웃으면서 마법봉을 들었다.
“마법사가 가질 수 있는 가용마력, 즉 마력 보유량에는 한계가 있지. 이 한계는 개인마다 달라. 누군가는 3급 마법을 다섯 번 정도 사용하면 가용마력이 전부 사라지는가 하면 누군가는 1급 마법을 수십 번 사용하고도 마력이 남지. 그렇다면 이 마력 보유량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그녀가 마법봉을 가볍게 흔들자 빛나는 문자가 허공에 떠올랐다.
비이는 반짝거리는 단어를 눈으로 읽었다.
[재능]
“…….”
위장이 뒤틀리며 입안에 쓴맛이 감돌았다.
“물론 재능이 전부는 아니야. 꾸준한 명상으로 마력을 흡수해서 가용마력으로 바꾸고 마법을 사용하는 걸 반복하다 보면 마력 보유량은 늘어난다네. 그러나 그 늘어나는 속도와 최대치는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지. 수십 년 동안 수련을 쌓은 마법사의 마력 최대치가 3년간 마법을 배운 천재보다 적은 건 불합리하지만 실재하는 사례지.”
“그래서 선배는 그 재능을 뛰어넘을 방법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비이가 에이의 말을 자르듯이 물었다.
그녀의 얼굴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바로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자네를 실험체로 데리고 온 거라네.”
에이가 마법봉을 휘둘렀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커다란 물체가 붕 뜨더니 의자에 앉은 비이 앞에 날아와 내려섰다.
“…….”
비이는 자기 발 앞에 있는 물체를 살폈다.
금속 직육면체에 역시 금속으로 만들어진 밧줄 같은 것이 네 개 달려 있었다.
그 촉수(?)들 끝에는 둥글게 굽힌 금속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자마자 비이는 죄수들의 손발을 묶는 구속구를 떠올렸다.
에이는 경직되어 있는 비이를 보며 히죽 웃더니 마법봉을 또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기계의 구속구가 비이의 양팔과 양다리를 붙잡았다.
“뭐, 뭐 하는 거죠?”
비이가 눈을 크게 뜨고 에이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네.”
에이는 기계 앞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이건 내가 만든 마도구인 마력 자극 장치일세. 이걸 이용하면 굳이 명상에 잠기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어도 보유한 가용마력에 자극을 줌으로써 깊은 명상을 한 것보다 더 빠르고 강력한 마력 증가 효과를 가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네.”
“그렇군요……. 그런데 왜 팔다리를 묶는 거죠?”
“안전을 위해서라네.”
“안전……?”
“그럼 시작하지.”
“잠까….”
에이가 기계 위에 손을 얹은 다음 순간.
“히익!?”
비이가 몸을 크게 떨었다.
덜커덕!
“이런.”
에이가 한 손은 기계에 댄 채 다른 손으로 마법봉을 휘둘렀다.
그러자 비이가 앉은 의자가 바닥에 고정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 위에 있는 비이는 계속해서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힉! 하악! 헉!! 흐아아!!?”
숨을 삼켰다가 토했다가 몸을 떨었다가 고개를 젖혔다가 하면서 비이는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30분 뒤.
바닥에 엎드려 마치 죽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비이 앞에서 에이는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가? 마력이 좀 늘어난 것 같나?”
“…….”
비이는 입을 벌리려고 했으나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따라주질 않았다.
그로부터 5분이 더 지나서야 그녀는 간신히 스스로의 힘으로 자세를 바꿔 앉을 수 있었다.
“비비. 어떤가?”
에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이전과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비이는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으음. 역시 그런가.”
‘역시?’
비이의 관자놀이가 꿈틀 튀었다.
“하긴 마력 보유량을 늘리는 데는 오랜 시간의 수련이 필요하니……. 아무리 내가 만든 마도구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마력을 자극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해도 30분 만에 마력 보유량을 늘리기는 힘들다 생각은 했네. 그러면 계속해볼까.”
“…네?”
비이의 몸이 경직했다.
“자. 의자에 앉게. 바닥에서 했다가 쓰러져서 머리를 부딪치면 마력이 늘어나도 무의미한 일이 될 수 있으니.”
“…….”
“뭐 하고 있나. 일어나서 의자에 앉게.”
비이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뭔가?”
“얼마나 더 할 생각인데요?”
“이상한 걸 묻는구만. 당연히 마력에 변동이 생길 때까지가 아니겠나.”
“…….”
비이의 얼굴이 굳었다.
“걱정하지 말게. 기숙사 통금시간은 당연히 지킬 테니까.”
비이는 지금 당장 이 창고에서 달아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망설이던 그 잠깐의 순간에 이미 에이는 마법봉을 휘둘렀고―
찰칵!
네 개의 구속구는 비이의 양팔과 양다리를 꽉 붙잡았다.
이어서 의자가 비이 뒤로 다가와 오금을 꾹 밀며 강제로 앉혔다.
“자, 잠깐―”
“준비 끝났으니 다시 시작하겠네.”
에이가 기계에 손을 올렸다.
“아히익!?”
비이의 몸이 또 경련했다.
“힉! 흐엑! 아응흫!!”
창고에 그녀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