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펩시증산위원회
추천 0
조회 3
날짜 13:39
|
†백화혼란†
추천 2
조회 7
날짜 13:38
|
그냥그러하다
추천 1
조회 6
날짜 13:38
|
현우의 대모험
추천 0
조회 8
날짜 13:37
|
찢털돼딸
추천 3
조회 63
날짜 13:34
|
나랑드 사이다
추천 1
조회 31
날짜 13:33
|
이름쓰기귀찮아
추천 6
조회 77
날짜 13:33
|
여긴 패러렐월드
추천 1
조회 20
날짜 13:32
|
프로메탈러 MK.4
추천 3
조회 106
날짜 13:32
|
루리웹-797080589
추천 3
조회 24
날짜 13:32
|
XII진핑
추천 1
조회 51
날짜 13:31
|
나랑드 사이다
추천 5
조회 91
날짜 13:31
|
전직프로불편러
추천 0
조회 43
날짜 13:30
|
로제누스
추천 1
조회 53
날짜 13:30
|
게베어43
추천 1
조회 37
날짜 13:29
|
Genoside Cutter
추천 0
조회 44
날짜 13:28
|
공부해서 나줘
추천 1
조회 199
날짜 13:26
|
정지 회원
추천 5
조회 33
날짜 13:26
|
서찬혁
추천 0
조회 25
날짜 13:25
|
유진2024
추천 1
조회 92
날짜 13:25
|
그냥그러하다
추천 4
조회 58
날짜 13:25
|
poiuytqwe
추천 4
조회 90
날짜 13:24
|
나랑드 사이다
추천 14
조회 683
날짜 13:24
|
XII진핑
추천 3
조회 66
날짜 13:22
|
나랑드 사이다
추천 5
조회 97
날짜 13:22
|
루리웹-4885698
추천 6
조회 96
날짜 13:22
|
Whereismo
추천 0
조회 110
날짜 13:22
|
북유한재벌가의손녀
추천 4
조회 92
날짜 13:21
|
ㅇㅇ 딱 그 느낌임.
ㅇㅇ 딱 그 느낌임.
일부러 관리 손 놔서 망가진 다음에 밀고 아파트 지을건가..
창경궁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상왕 태종이 지내려고 지은 별궁인지라 정사를 보는 왕이 거주하는 일은 없었고 이후로도 왕비나 왕실 가족들이 주로 지내는 곳이었음. 법궁인 경복궁이나 조선 후기 실질적으로 정궁이었던 창덕궁이랑은 위상이 많이 다름. 그나마 창경궁에서 있었던 유명한 사건이라면 영조 때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임오화변 정도.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면서 궁전을 공원으로 바꾸고 시민에게 개방하는건 당시 서구권에서 흔한 일이기도 했음. 일제도 나름의 꿍꿍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유화책의 하나로 서구의 방식을 그대로 이식한 것이라고 추측함. 아무래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하는 일을 주도했던 것이 다름 아닌 이토 히로부미였기 때문에 더욱 인식이 안좋은 것일지도(정작 이토는 창경원 개원을 불과 닷새를 앞두고 러시아 순방 후 한국으로 오려다가 안중근 의사의 의거로 개원식에 참가 못함). 그러다보니 45년 해방 이후에도 서울 유일의 유원지로서 30년 넘게 계속 유지되어 온 것이었을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