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구마라집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다양한 대승경전들을 한역한 이야기가 주로 나오지만
사실 구마라집은 또 다른 업적이 하나 더 있음.
구마라집이 중국에 오기 전 중국 불교계는
불교 도입 초창기라는 그 시절의 시대적 한계로 인해
기존 중국철학과 불교를 결합시키며 왜곡된 격의불교와 더불어
정통 불교 교리에서 인정되지 않는 실체론을 교리로 내세운
독자부(소승 상좌부의 한 분파)계통의 현주부가 영향을 준 상태였음.
이 때문에 당시 중국 불교는 윤회를 설명하면서
여산 혜원의 신불멸론으로 대표되는 실체론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이는 무아와 연기, 공에 기반한 정통 불교의 가르침과 어긋나게 됨.
그런데 구마라집이 중국에 와서 수많은 경전/문헌을 번역하는 것 외에
제자들을 키우고 무아, 연기, 공에 기반한 올바른 불교 교리를 중국에 전파하면서
본격적으로 격의불교가 바로잡히고 실체론이 비판받기 시작하였음.
다시말해 중국 불교가 기존의 한계와 오류에서 벗어나
올바른 불교 교리가 자리잡는 과정에 있어서도
구마라집과 그가 양성한 제자들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
아비담심론이었나 뭐였나 혜원이랑 대론한거 재밌던데
아비담심론이었나 뭐였나 혜원이랑 대론한거 재밌던데
구마라집과 혜원 필담토론이라면 '구마라집법사대의'일걸
타이쇼 찾아보기 귀찮음.. 여튼 구마라집이 중국화 되던 불교에 카레가루 첨가한건 맞는데 그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는 잘 모르겠음.
뫄 그래도 구마라집이 그때 카레가루 안 부었으면 중국불교는 카레가 아니라 마라탕이 되었을걸(.....)
카레 어설프게 흉내낸 마라탕을 수백 수 천년 간 카레라고 알고 먹어야 하는 상황은 구마라집 덕분에 피했으니 뭐...
왜냐하면 구마라집 직속 라인이 제자가 없었잖음. 서역 역경승이라 교단 형성에 실패한거 같던데..?
외국 출신+파계 논란이 있었으니;;; 뭐 율장 상 강요로 인한 성관계 등은 죄로 치진 않지만 당시에도 논란이었고 구마라집 본인도 그 문제에서 떳떳해하지 못했잖음.
여튼 구마라집 이후에도 계속 중국화된 불교는 유지되었던거 같더라.
인도 외 다른 문화권으로 넘어가면서 변하는 거야 뭐...중국이나 동남아나 티베트나 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은 감안할 수밖엔;;;
중국을 거쳐 오면서 강화되는게아니라 열화된거냐고
애초에 구마라집 이전은 중국부터 아직 불교 교학발달이 많이 부족한데다 본토인 인도부터 수많은 부파들이 서로 난상토론하던 부파불교 전성기임
그렇구나 중국은 초창기 들어와서 발달도 안됬을때구나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던 당시부터 체계적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 이런저런 불교 승려들이 저마다 책보따리 하나씩 들고 혹은 외워서 들어오던 상황이라 체계가 전혀 없고 들쭉날쭉이라 제대로 된 불교 교리 이해가 힘든 상황이었음.
아쇼카왕이 체계적인 전법단을 보냈다는 이집트 쪽조차 외국 쪽 자료보니 마야부인과 이시스 신을 동일시해서 석가모니를 이시스의 아들로서 신전에 모시고 섬겼다고 하던데 전법단조차 가지 않은 동북아의 혼란상은 뭐 말할 것도 없지.
그래서 그렇구만 성경마냥 이 얘기 저 얘기 섞였었구만 덕분에 배워감
그렇구나 덕분에 배워감 불교쉽지않구만 온전한 부처가르침받으려면 타임머신이 시급 히필요하네
ㄳㄳ. 뫄 암튼 불교나 기독교나 경전부터 체계가 잡히는 건 5세기는 가야 함. 불경이 기원전후부터 문자화되었다 기원전 대소승 경전이 간다라에서 나왔다 뭐다 하지만 것도 우리가 아는 형태로 틀이 잡히는 건 5세기 경이라서.
타임머신이 있어도 힘들걸? 전에도 다루었지만 당장 율장에서부터 석가모니 본인이 사실상 경전내용 창작을 풀어놓는 식이었는지라 그 시절부터 논란의 여지가 없었는가 하면 그게 아님. 당장 가장 오래된 불전이라는 숫타니파타조차 자이나교 성전과 겹치는 부분이 나오고.
중국에 불교 들어오고 한 100년간 불교 수입이 아예 끊겼던 시기가 있었어서 그 시기에 중국-불교? 가 자생해버린거임.
5세기경기술의 진보가있었나 신기하게 그때 잡히는구나
그렇구나 하루아침에 다 퍼진게아니구나 덕분에 배워감ㄱㅅㄱㅅㅍ열심 히공부하는 그대가 아무쪼록 만수무강하길 기원함
아하 그게 또 그렇게되는구나 게이들 덕분에 알아감
ㄳㄳ. 여튼 5~6세기 즈음 그 시점이 묘하게 기독교든 불교든 경전의 체계가 잡히는 동시에, 고향을 떠난 기독교/불교가 각 지역별로 정착하면서 독자적인 색깔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더라고. 중세 기독교 철학 발달이나 인도에서 대승/부파 정체성 확립, 동남아/중국 스타일 불교 확립이 이 시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