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나가지 못한지 3달이 지났다.
아파트 22층에서 올려다 본 먹구름은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유독 짙어만 보였다. 비대한 먹구름으로 살찌운 하늘이 어찌나 우중충하고 묵직한지,
금방이라도 땅 위에 곤두박질쳐 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다.
하늘 따위 무너지면 좀 어떠하리. 적어도 비소식이 찾아 온 것은 분명했다.
내 방 천장에서도 비가 내렸으면, 그래서 몸을 좀 적실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방에서 나간다면 다른 무엇보다 샤워가 하고 싶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물의 세례가 찬송가처럼 쏟아지는 샤워기 앞에 서서.
한 줌 가득의 샴푸와 몸에 흘러넘칠 만큼의 바디샤워로 도배되고 싶다.
양털 같이 두툼한 거품 옷을 입는 그 순간이
너무나, 진저리나게, 몸서리 쳐질 만큼, 간절하고 간절하다.
어깨춤을 간지럽히는 머리칼을 고쳐 묶으려 머릴 풀었다.
엉덩이 골을 덮고도 남정네들 솥두껑 손으로 두 뼘즘 남을 검은 색 기름융단이 펼쳐졌다.
엄마가 가져다준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었다 풀기를 벌써 몇 번 반복했는지 기억조차 없다.
기름덩어리 머리칼은 항상 내 신경의 칼날을 바짝 세운다.
맨 살에 닿는 그 께름칙한 감촉이 싫다. 소름이 끼칠 만큼 지저분하고, 끈적거린다.
누가 내 방에 자물쇠를 걸어 놓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 방문은 24시간 열려있다.
우리 집 현관은 허술하다 못해 무방비하다. 우리 아파트는 담장이 낮기로도 유명하다.
이 아파트 단지를 좀 벗어나고 싶다.
매일 풍경이 똑같은 창문 밖의 풍경에도 이젠 신경질이 난다.
나가서 좀 걸었으면, 아니 뛰었으면. 냉수 같은 아침공기 마시면서 커피 같은 오후 햇살 마시면서.
세 달 전 그 날. 그날 아침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아침 일찍부터 샤워를 했었고, 여유 있게 머리를 말렸다.
머리가 마른 후 30분간 대강대강 화장을 했다. 출근 복장은 즐겨 입던 검정색 스커트와 흰색 블라우스였다.
커피색 2호 비비안 스타킹을 신었었고, 아침 회의를 위한 서류봉투와 핸드백을 챙겼었다.
마지막으로 방을 나가기 전 확인한 핸드폰 충전상태가 98%였던 것까지도 기억한다.
그리고 화장대에 올려 둔 열쇠 꾸러미를 챙겨 내 방을 나서던 순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불빛이 깜빡 하고 점멸했다.
내 방을 나서고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나는 방문을 나섰다고 생각한 순간.
시야에 들어 온 것은, 그것은 다시 내 방이었다.
“어라?”
고개가 갸웃하고 돌아갔다. 어깨의 핸드백을 다시 고쳐 걸었다.
슥하고 뒤를 돌아보니 거실이 보였다. 나는 등을 돌려 다시 방을 나섰다.
깜빡….
“어라?”
그리고 나는 다시 방이었다.
아직도 하루 한 번씩은 다시 시도를 해보곤 한다.
방 문 앞에 서서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천천히 심호흡 하고, 굳게 마음을 가다듬고선 한 발짝.
그리고 또 깜빡…. 석 달째 나는 아직 방 안이다.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시간도 1, 2주. 컴퓨터를 붙잡고 있는 것도 지친지 오래였다.
이곳은 무음과 잡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심심함의 공간이다.
내 보폭으로 가로 여섯, 세로 네 걸음. 이 좁은 곳엔 엄마가 사다 준 생수병이 방구석에 탑처럼 쌓였고,
1주 동안 내가 만들어 낸 쓰레기가 철옹성 요새처럼 방벽을 단단히 하고 있다.
얇은 이불 두 겹과 높이 낮은 베개가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고,키 낮은 화장대는 소복하게 먼지만 쌓여간다.
그나마 화장실이라도 붙어있어 다행이었다. 작은 세면대 하나 없는 화장실이지만, 그마저도 없었다면 지금 즘 미쳐버렸을 것이다.
핸드폰을 열어 엄마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뭐해? 하고.
지금 보내면 아마 엄마는 30분 즘 지나서 답을 할 것이다.
부모님은 회사에서 보내준 여행을 떠났다. 원래는 가족여행이었다. 4박 5일간의 가족여행.
하지만 나는 이 지경이었고, 부모님은 그 놈의 ‘푸켓’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했다.
태국의 이색적이고 영롱한 그 바다를 나도 한 번은 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시도 해봐도 나는 방을 떠날 수 없었다.
엄마는 2주일 치의 레토르트 식품, 아니 식량 아니? 사료를 남겨두고 떠났다.
겉보기엔 2주일 치는커녕 한 달 치도 넘는 것 같다. 매몰차다 생각했지만 이해 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집에 남아있더라도 내가 방을 나서지 못하는 것엔 변함이 없다.
효도는 못 할망정 부모님 여행길의 발목을 잡는 딸이 되고 싶진 않았다.
-지금 바다야. 너무 좋다.
엄마는 거짓말 같이 푸르른 바다를 배경으로 아빠와 오붓하게 찍은 사진을 전송했다.
기운이 빠진다. 어깨가 주저앉는다.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하는 것으로 내가 포기한 것이 얼마인가.
푸켓 여행은 물론이었다. 회사도 겨우 3일 연속으로 무단결근 했다는 사유로 해고당했다.
나와 부모님의 터무니없는 설명은 해고 사유에 쐬기를 박았다.
“방을 못 나간다구요!”
내가 평범한 사람 같았어도, 그따위 핑계를 대는 사람에게는 손가락질을 했을 것이다.
아마 그런 말도 함께 했겠지. 그.것.도.변.명.이.라.고. 말끝에 그런 말도 덧붙이면 구색이 좋을 듯하다.
개념 없는 년.
회사에 대해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조금 섭섭했던 건 내게 전화가 딱 한 번뿐이 걸려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의 사회적 입지가 겨우 그 정도였을까? 겨우 전화 한 통? 싶은 서운함이었다.
어떻게 연락도 없이 출근 안는 여자에게 전화를 딱 한 번만 걸 수가 있어? 첫마디도 가관이었다.
“너, 이제 안 나와도 돼.”
내가 그만두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쩜 그렇게 앙칼지게 말을 뱉을까. 나쁜 년. 무슨 일 있어? 묻는 법도 없이.
그때 생각을 하자, 머리에 도는 열기가 ‘슝슝슝’하며 스팀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쯧 하고 혀를 찼다. 생각에서 깨어나자 창문턱에 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갤 들어 창을 보니 빗발이 들이친다. 나는 창문을 닫지 않고 그대로 방에 누웠다.
투둑 하며 빗방울이 팔꿈치까지 튀기는 게 기분이 좋다.
머리를 내밀어 머리를 적실까? 아니… 수건도 없는 걸….
눈을 감았다. 촤르르 흐르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끝없는 나락에 몸은 던진 듯 5분도 안되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시간 이었을까. 덜커덩하는 큰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덜커덩 소리와 거실에선 부산스런 발소리도 들려온다. 한 개? 두 개? 아니, 가늠이 되질 않는다.
“야! 조심히 들어, 씨! 귀퉁이 상하면 변상이야!”
귀퉁이가 왜? 거기 누구세요?
“반장님! 저기 문 닫힌 방은 어떻게 할까요?”
문 닫힌 방? 내 방? 발소리 하나가 터벅터벅 내 방으로 다가왔다.
나는 혼비백산하며 방문의 잠금장치를 눌러버렸다.
그러자 ‘탕!’ 방아쇠를 당긴 듯 잠금장치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3초간의 일시정지. 방 밖의 발소리가 멈췄다. 쥐죽은 듯 하던 거실 밖은 금방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야, 안에 사람 있는 거 아니야?”
“몰라? 사람 아무도 없을 거라고 했는데?”
“방금 무슨 소리 들렸는데?”
조금 전에 다가오던 발소리가 내 방 앞까지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군지 모를 이가 방의 문을 노크해왔다.
똑똑, 똑똑똑. 방 앞의 목소리는 “방에 아무도 없어요?” 큰 목소리로 묻더니
방의 문고리를 휙 하고 돌렸다. 덜커덩거리는 내 방문을 양손으로 눌러 막았다.
문 밖의 목소리는 계속해 닦달했다.
“방에 아무도 없어요? 이삿짐센텁니다!”
귀를 의심해야했다. 이삿짐센터? 우리가 이사를 가? 왜? 어째서? 나 아직 여기 있어요.
서둘러 엄마에게 메신저를 다시 보냈다. 엄마!! 이삿짐센터에서 왔데!!! 우리 집 물건 막 가져가나봐!!!!
그 와중에도 문은 계속 덜컹거렸다.
“저기요! 방금 소리 다 들었거든요? 문 좀 열어주세요!”
“뭐 잘못 알고 오신 것 아니에요?! 저희 이사 안 가는 데요!”
“예?! 여기 차 정표 씨 댁 아닌가요?”
맞다. 차 정표 씨. 우리 아빠.
“그럴 리가 없는데요! 저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셨…”
번뜩하고 떠올랐다. 부모님은 정말로 푸켓 여행을 간 것이 맞는가?
엄마에게서 답신이 금방 도착했다. 믿을 수가 없다.
-미안해…
문에 등을 댄 채 몸이 미끄러져 내렸다. 산더미 같이 쌓아놓은 레토르트 식품의 의미를 지금에서야 알 것만 같다.
나는 지금 마치 길거리의 유기견과 같은 것이다. 방에서 안 나오는 바람에 집에다 버리고 떠나는 처치불가의 딸년입니다.
이름은 차 수연이구요. 스물일곱 살입니다. 주워가실 분, 누구라도 좋으니 주워가세요. 하고 노란 박스에 담겨 길거리에 버려진 것과 같다.
다음부턴 엄마에게 무슨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같았다. 미안해…. 나는 버려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식량이 바닥나고, 물이 다 떨어지면 나는 이곳에서 굶어서 죽는 건가.
생각하니 점점 나의 현재 상황이 명확해 졌다.
유기되었다. 내 방 안에. 내 방이란 노란 박스 안에.
그 후, 며칠이나 지났는지 샘하지 않았다. 창문 밖을 바라보다, 잠을 자다,
그런 일상으로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냈다.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압박감이 밀려올 때마다 방문을 나서보았다.
하지만 또 깜빡… 하며 내 방 안일뿐이었다.
엄마는 메신저 답장이 없다. 식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갑갑할 때면 물을 들이켰기 때문에 생수도 금방 떨어지고 있었다.
때때로 문 밖으로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도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다. 도저히 가만히 있는 것만으론 하루를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ㅁㅁ처럼 내 방을 청소했다. 청소하고, 청소하고. 별반 치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하루에 열 번은 청소를 하는 것 같다. 화장대 위치를 옮겨보기도 하고, 이불을 접었다가 폈다가….
인터넷은 끊겼다. 누군가에게 SOS를 보내야 할 핸드폰도 끊겼다.
핸드폰은 부모님이 정지시킨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철저하게 유기시킨다는 인상이 들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죽을 때까지 기다리마. 하고.
왜 이리도 갑자기, 이리도 매몰차게 내게서 돌아섰는지는 알 수 없다.
혹시 몰랐다. 내가 수준 이하의 버러지 같은 딸내미였던 것이었을지도….
심심해서 창밖 밤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걸음 느린 할머니, 소란스런 꼬맹이들.
외로워 보이는 가로등 불빛. 그 옆으로 매번 보이는 음식점 간판들. ‘오가네 설렁탕’ 간판을 보며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설렁탕이 모락모락 김 피우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오늘 막 버무린 겉절이 김치 하나 얹어서 한 입에 몽땅 털어 넣었으면,
딱 한 입만. 그러면 소원이 없을 텐데.
저벅저벅.
방 밖으로 또 발소리가 들렸다. 굉장히 선명한 발소리.
반사적으로 “엄마?!” 하고 불렀다. 그러자 밖에서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소름이 끼쳤다. 남자? 모르는 사람이다. 모르는 남자다. 모르는 남자가 집에 들어왔다.
그렇게 인식된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턱턱하고 남자의 뒤꿈치가 거실을 차며 내 방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쏜살같이 방문으로 달려갔다. 잠금장치를 누르고 허겁지겁 문을 온 몸으로 틀어막았다.
“거기 누구 있어요?”
콩콩콩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물었다. 숨이 저절로 멈춰 섰다.
대답이 없자 밖의 남자는 문을 열려고 들었다. 당연히도 잠겨있는 문은 열릴 생각조차 않았다.
달칵달칵하고 잠긴 문고리가 흔들린다. 종잇장만큼 찔끔거리며 문이 앞뒤로 움직였다.
그 때마다 내 몸도 같이 들썩였다. 문의 흔들림이 멈추자 밖에서 쇳소리가 들려왔다.
동전이 샤르르 쏟아지는 소리. 아니, 동전보단 열쇠란 말이 더 맞을 듯싶었다.
곧 문고리로 수욱 하고 열쇠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방문이 찰칵하며 손쉽게 열렸다.
잠겨 있을 때와는 다르게 문을 밀고 들어오는 힘이 괴력적으로 느껴졌다.
당해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저기요! 저기요! 저 여기 있어요. 들어오지 마세요!”
몸이 밀려버렸다. 열린 문틈이 주먹 하나 정도의 공간을 만들었다.
틈을 따라서 거실의 형광등 불빛이 기어들어 왔다. 나는 소리쳤지만, 밖에선 한참 대답이 없었다.
몸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흰색 티셔츠에 속옷 바람이었다.
속옷도 아래밖에는 입지 않은 상태였다. 이마가 말라 버리는 듯 피가 빠졌다.
빠진 피가 다리로 콸콸 쏠리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아찔하게 시선이 멀어지다, 가까워지길 반복했다.
관자노리로 심장이 이동해버린 듯 혈관이 벌떡거리며 뛰는 게 선명히 느껴진다.
한참동안의 침묵을 깨며 밖의 남자가 물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여기서? 저는, 저는 여기 사는 사람인데요. 대답이 안 나온다. 대답 대신 사례가 들어 기침만 쏟아졌다.
“저기요?”
다시 남자가 문을 밀었다. 남자의 힘 때문에 몸이 방바닥을 타고 또 스윽 미끄러져나갔다.
나는 뒤돌아 문에 매달리 듯 온 힘으로 문을 밀어붙였다.
“들어오지 마세요! 저 여기 사는 사람이에요!”
남자는 뜸을 드리다 말했다.
“…제가 이 집 주인인데요?”
벌써 팔렸어? 그 짧은 시간동안? 아니, 이미 팔고 떠났을 지도 몰랐다.
방 안에 있는 나는 나 몰라라 하고. 왈칵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그렇게 귀찮은 존재야? 엄마? 아빠?
“저기요.”
남자는 이내 방의 문을 열어버렸다. 몸이 더 떠밀려 났다.
남자는 열린 문 틈 사이로 손을 내밀어 방의 불을 켰다.
남자의 머리가 들어오려는 듯 머리칼이 문틈으로 불쑥 들어왔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문을 세차게 밀었다. 남자가 문에 머리를 찧었는지 “아.” 하고 작은 소릴 냈다.
“들어오지 마시라구요!”
“……제 방에 제가 왜 못 들어가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집이 팔렸다면, 이곳은 내 집도 내 방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방을 벗어 날 수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해할 수 있도록 주인에게 설명은 할 필요는 있다.
붙박이장도 아니고 방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채 집주인을 무시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저 옷만이라도 좀 입을게요.”
“벗고 있어요?”
벗고 있어요? 바보다. 바보처럼 괜한 소릴 했다. 다시 시야가 아득해졌다.
나는 왜 이토록 당황하고 있는가. 그 이유가 뇌리를 스쳤다. 무섭다.
저 남자는 내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나는 저 사람을 몰라. 나는 이곳에 버려졌어.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는 몸이야. 저 남자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든 그것은 둘째야.
아무리 저 사람이 선량하고 마음씨 좋은 착한사람이라고 해도,
만약에 하나 저 사람이 내게 나쁜 맘을 먹는다면, 나는 저항을 할 수도, 경찰을 부를 수도 없어.
“……그냥 조금만 기다려줘요. 문 열지 마세요. 부탁드릴게요.”
엔진이 가동하는 것처럼 머리가 폭발적으로 회전했다.
남자가 문을 마저 밀고 들이닥치는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저 사람이 덤벼든다면, 하고 생각하니 주위에 무기가 될 법한 물건을 서둘러 눈으로 찾게 되었다.
하지만 딱히 날카로운 것도, 그렇다고 몽둥이처럼 묵직한 무엇도 있지 않았다.
절망감이 밀려오는 와중에 남자가 말했다.
“그럼 옷 입고 불러주세요.”
남자가 먼저 문을 닫았다. 닫히는 문을 따라서 몸이 뒤로 넘어졌다. 가볍게 머리가 문에 부딪힌다.
방에서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나는 안심해도 좋은 건가? 지금의 선의를 평면적으로
선의라 받아들여도 좋은 건가? 아무것도 지레짐작 할 순 없다.
그래도 집주인이라면 설명은 해야 했다.
서둘러 옷장 속 청바지를 주워 입었다. 속옷을 꺼내 입기보단 위에 갈색 가디건을 하나 겹쳐 입었다.
나도 모르게 거울을 찾았다. 거울을 찾으려다 흔들린 끈적끈적한 머리칼이 뺨에 달라붙었다.
내가 놀란 만큼, 나의 거지같은 꼴을 봐야하는 집주인도 놀랄 것만 같다. 주눅이 들었다.
거울보다 고갤 내려 내 몸을 보았다. 흘러내린 기름장 머리칼을 매만졌다.
그러자 머리칼의 소름끼치는 감촉이 나를 현실로 불러들였다.
정신이 번쩍 든다. 방심해선 안 된다. 책상을 뒤적이니 모나미 볼펜이 나왔다.
볼펜심이 잘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소매 속으로 펜을 숨겼다.
방문을 열고 문턱 앞에 섰다. 먼저 눈을 사로잡은 건 집주인이 아니었다. 확 변해버린 거실의 풍경이었다.
TV가 새 것으로 바뀌었다. TV선반도 처음 보는 물건이다. 거실 밖 베란다로 가득한 화분들.
거실에도 하나 우뚝하고 자리 잡은 키 작은 나무 한그루.
거실에선 익숙하지 않은 풀냄새와 담배냄새가 풍겼다. 언제 집이 이렇게 바뀌었을까.
“나오셔서 설명 좀 해주실래요?”
집주인은 놀랍도록 담담하다. 그리고 예의바르게 나를 거실 밖으로 유도했다.
사실 나보다도 당황스러워야 하는 건 집주인이다. 기껏 마련한 보금자리에 웬 거지가 붙어있다니.
그의 침착한 태도와 바른 첫인상이 그를 신뢰하게 만드는 것 같다.
신뢰감과 함께 안심도 들었다. 저 사람은 나를 헤치지 않을 것만 같다. 하는 안도감이었다.
소매에 숨겨놓은 볼펜이 살살 팔뚝을 간질였다. 어째해야할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어쩌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이 방을 떠날 수 없다는 설명을 어떻게 하는 가였다.
그가 아무리 예의가 바른 사람이라도 이런 날 납득할 수 있을까?
“제가 방을 나서기가 좀 그런데요.”
집주인은 “왜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내가 방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깜…빡…하고 나니 역시나 내 방이다.
뒤를 돌아 집주인을 바라보았다.
“이해하시나요?”
집주인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게슴츠레한 눈 밑으로 입이 아 벌어졌다.
집주인은 아 벌어진 턱을 왼쪽 오른쪽 하며 슬슬 움직였다.
그가 침을 꼴깍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긴장이 됐다.
나도 그를 따라서 침을 한 모금 삼켰다. 기묘한 시간이 흘렀다. 집주인은 말없이 턱을 돌렸다.
저절로 거실 바닥을 향해 고개가 떨궈졌다.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집주인이 물었다.
“그러면, 이렇게 서서 이야기 할까요? 아니면, 제가 방으로 들어가야 하나요?”
방으로 들어온다는 말에 소매 속 볼펜을 손으로 내려 꾹 쥐었다.
볼펜의 심을 뽑아내고 만일을 대비했다. 손에 땀이 찬다. 땀이 차서 볼펜이 미끄럽다.
“이대로 서서 이야기 할게요.”
목소리가 떨렸다. 염소처럼. 들킬 것 같다. 불안하다. 불안해서 비명이 나올 것 같다.
내가 지금 얼마나 무방비한 상태인지. 내 스스로가 나의 절망적인 처지를 잘 알고 있는 탓일까.
선해만 보이는 집주인이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
그가 지금이라도 뛰어오면 얼른 문을 닫아야겠다는 생각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손에서 나는 흥건한 땀이 거실 바닥으로 똑 하고 한 방울 떨어질 것만 같다.
볼펜을 손에서 꽉 쥐려고 하면 할수록 볼펜이 미끄러져 내린다.
땀 때문에 마찰력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태로 저 남자에게 깨알 같은 볼펜자국 밖엔 남길 수 없을 듯싶다.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럼 그렇게 해요.”
그는 다시금 덤덤히 대답했다. 그에 부드러운 말투가 주는 안도감에 몇 번이고 주저앉을 것 같았다. 남자가 불쑥 물어왔다.
“얼마나 살고 계셨죠?”
“그쪽이 이 집 사기 전부터요.”
억울해서 눈물이 터질 것 같다. 억울해. 나는 그냥 버림받은 건데, 왜 이렇게 죄를 진 기분이야? 왜 이렇게 창피해?
“이 집, 전 주인이세요?”
“네….”
전 주인. 전의 주인이다. 더 이상은 내 방도 내 집도 아니다.
남자는 가슴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하나 피워도 될까요?” 물었다.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말이 떨리며 나왔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거기서 계속 사시면, 제가 곤란한데요.”
“하지만… 방금 보셨잖아요. 저는 방을 나갈 수가 없어요.”
그는 내 말을 듣고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담배를 한 모금 집요하게 빨았다.
시선은 나에게 고정한 채. 독사처럼 긴 담배연기를 뱉는 그를 보니, 그다지 선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다시 한 번만 나와 보시면 안 될까요?” 그가 물었다. 다시 거실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는 말했다.
“신기하네…. 가까이 가 봐도 될까요?”
“네?”
별말 아니었지만, 남자는 말을 이으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랐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섬뜩한 소름에 몸서리가 쳐졌다.
손에 힘이 풀렸다. 아니, 온 몸에 힘이 풀렸다.
그 잠깐의 찰나, 손아귀 속 볼펜이 땀에 미끄러지며 바닥을 굴렀다.
볼펜은 문턱에 코를 박더니 거실 쪽으로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마치 고자질 하는 것처럼. 저 여자가 주인님 이거로 찌르려고 했데요. 이르는 것처럼.
나와 볼펜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볼펜을 주울 수 있는 거리가 도저히 되질 않는다.
남자는 거실에 멈춰선 볼펜을 내려다 봤다.
“이게 뭐에요?”
그는 거실의 볼펜을 주웠다. 그는 볼펜을 한 번 보고, 나를 한 번 보고하며,
볼펜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가 볼펜을 손에 쥐고 내게로 다가 올 때,
불안감은 머리끝까지 치달았다. 나는 잽싸게 문을 닫으며 방 안으로 숨어버렸다.
숨을 쉬는 게 고통스러웠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떨려서 숨을 뱉는 것도 내는 것도 간격이 짧다.
“혹시 제가 무서운 거예요?”
그가 물었다. 울음이 터져버렸다. 뻔히 문 밖까지 흐느낌이 전해질 울음이었다.
“네! 무서워요!”
밖에서 움직임이 느껴지질 않는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몸을 납작하게 웅크린 채 문에 붙어있었다.
한참이 지나 문 밖에 ‘틱’하고 탁음이 들렸다.
“저 지금 나갈게요. 겁줘서 미안해요. 그럴 생각 아니었어요…….”
밖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철소리가 거실을 통해 들려왔다.
문에 귀를 붙이고 밖을 엿들었다. 문에 가 들러붙은 내 눈물이 흘러내린다. 밖은 조용했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혹시 몰라 문고리를 꼭 쥔 채 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없었다.
방의 문턱에는 모나미 볼펜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나는 볼펜을 손에 꼭 쥐며 다시 문을 잠갔다.
몸이 녹아내릴 듯 긴장이 풀려버렸다. 그대로 맨바닥에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
집주인을 의심하고 두려워 한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내가 너무 미련스럽게 느껴졌다.
잘못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그는 그저 이 말도 안 돼는 상황을 설명 받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그를 ㅁㅁ마나 살인자 취급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도 몸이 떨렸다.
잠이 들기까지 죄책감과 불안감을 가슴에 부둥켜안고 있었다.
집주인이 돌아온 것은 다음날 정오 즘에서다. 그는 예의 바르게 문을 노크하며 물었다.
“밥은 먹었어요?”
뻔히 알아들어 놓고도 “에?” 반문이 나왔다.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는 “밥이요. 밥.” 두 차례 연달아 물었다. 다 들린다.
한 번만 말해도…. 방에 널브러진 3분 카레며 햇반 따위를 돌아보았다.
이젠 레토르트 식품을 보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날판이다.
그가 무슨 음식을 준비해 왔을까, 하는 기대가 들었다.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 되고 싶지 않아 금방 다시 대답했다.
“밥은 괜찮아요!”
“그동안 굶은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먹을 거 여기 다 있어요.”
바스락 거리는 봉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입 안에 침이 가득 들어찼다.
“별건 아니지만, 요 앞에 빵집에서 샌드위치랑 우유 좀 사왔어요. 미안해요, 괜히 귀찮게 해서.”
샌드위치? 먹고 싶다. 방부제 첨가되지 않은 음식이 얼마만인가.
당장이라도 문을 열어 봉투를 빼앗고만 싶다. 하지만 무슨 염치로.
어제 내 손에서 흘러내린 볼펜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무슨 생각으로 볼펜을 손에 쥐었는지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겁줘서 미안해요. 그럴 생각 아니었어요.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사과를 하려면 문을 열어야 하지만, 문을 여는 건 또 겁이 났다. 미련하다.
곰 같다. 미련 곰 같다. 문 밖에 비닐봉투가 바스락바스락 하더니, 집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베란다 즘까지 나가서 소리치듯 하는 소리였다.
“저 멀리 있으니까, 문 앞에 샌드위치 드시려면 드셔도 괜찮아요.”
아아, 나는 왜 저 사람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까.
그의 호의가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불안한 가슴에 손을 얹으며 심호흡 했다.
내 방에 한 구석에 있는 모나미 볼펜이 보였지만 무시해버렸다. 방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문 열었어요?”
그는 보이질 않았다. 내 방 문 앞에는 천정부터 바닥까지 닿는 커튼이 처져있다.
나와 그의 사이에 두꺼운 커튼 벽이 생긴 것이다. 그의 배려일까. 그가 다시 소리쳤다.
“얼마나 지나야, 대화를 좀 해볼 수 있을까요?”
“……하실 말씀이 뭔데요?”
“가까이 가도 될까요? 커튼 안으론 안 들어갈게요.”
집주인을 위한 배려는 내 쪽에서 해야 맞는 것이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배려는 고작 의심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 정도였다.
“괜찮아요….”
“예?”
“괜찮아요. 가까이 오셔도.”
그는 커튼 앞에 와 앉았다.
거실에서 쏟아지는 빛에 의해 그의 실루엣이 은근히 커튼에 그려진다.
“커튼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커튼은 왜 치신건가요?”
그의 코웃음이 들렸다. 커튼의 실루엣이 자신의 턱을 어루만진다.
그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곧 한숨처럼 이야기를 했다.
“저는 인테리어 업자에요. 실내 디자인과 공사 두 가지를 전부 하는 사람이죠. 아! 샌드위치 드세요. 지금 막 만든 거라서 더 맛있을 거예요.”
그도 나의 실루엣이 보이는 걸까. 대답 없이 샌드위치를 먹으며 그의 말을 들었다.
그는 빠르지 않게 이따금 이해가 되나요? 아시겠어요? 되 집어가며 두런두런 이야기했다.
자신이 집을 꾸며 파는 방식이며 자기 자신이 특히나 좋아한다는 벽지와 고급 필름지의 질감.
집과 선의 만남과 공간과 식물의 조화. 창문과 빛과 주거공간의 멋들어진 세계관.
그는 이 집을 새롭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같은 모양 같은 공간 안에서 펼칠 수 있는 마법 같은 설명들로 그는 가슴을 벅차했다.
“이 집을 꾸미기 위해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신이라고 하기도 뭐하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수연이요. 차 수연.”
이 집을 꾸미기 위해, 내가 방 밖으로 나와 주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 그의 설득이었다.
나와 함께 방 밖으로 나오는 일에 힘써주세요. 돕겠습니다.
내쫓는 게 아니라, 당신을 그리고 저를 위해 우리 힘써요. 그런 설득이었다.
그는 조바심 내지 않으며 천천히 말했다. 상냥한 말투가 가슴을 울린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이 커튼은 벽 대신입니다.”
“어떻게 커튼이 벽을 대신하죠?”
“그렇군요. 벽보단 문이네요. 이 커튼이 수연 씨의 새로운 방문입니다. 앞으론 이 커튼 안의 모든 공간이 수연 씨의 방문이고요.”
조금은 어설펐지만, 그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방을 정식으로 넓혀 주었으니, 이전까지의 방문쯤은 넘어 올 수 있을 거다.
내가 이 집의 주인이니, 내가 당신의 방을 할당하겠다. 그러니 방문을 나서보아라. 하는 시늉이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상냥하게 나를 설득해 줄 것이라 예상치 못했다.
어설펐지만, 그가 설치한 커튼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가 고마웠다. “한 번 해보실래요?” 하며 그가 물었다.
커튼이 동그랗게 처져있는 공간 안으로 내 방과 안방. 그리고 꿈에 그리던 욕실이 있었다.
꿈에 그리던 샤워기. 꿈에 그리던 물줄기. 눈을 감고 그 시원한 감촉이 얼굴을 때리는 것을 상상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수건 좀 있을까요?” 물었다.
그는 “욕실 안에 다 있어요.” 대답했다. 그리고 금방 덧붙여 말했다.
“이게 안 된다면 우리, 방의 벽을 부숴 봐요.”
“예?”
“하하하, 문 같은 게 없다면 못 나온 다는 것도 논리에 어긋나지 않을까요?”
벽을 부숴 버린다? 생각도 못해봤다. 내 방의 문과 벽은 그저 그 곳에 있어 존재하는 것이지,
부수고 지우며 재구축 되는 것이라 생각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과연 인테리어 업자다운 말솜씨다.
몇 마디 말로, 내 방을 네 배나 늘려버리고, 같은 공간의 세 가지 방을 하나로 묶어버렸으며,
내 방과 문을 허물어트렸다. 그래서인지, 정말 커튼 안의 모든 공간이 내 방처럼만 느껴졌다.
마음이 포근했다. 이전까지 없던 깊은 안도감이 몸을 감싸왔다.
“저는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해요. 혼자서 자기 방 정도는 한 번 돌아다녀 보세요. 새로 꾸며 드린 방이니까요.”
꾸며드린 방? 그는 공간의 마법사가 아니라 언어의 마법사라도 되는 걸까.
사람을 쉽게, 쉽게 설레게 만든다. 이다음은요? 그 다음은요? 또 있어요? 더 줄 건가요?
자꾸만 묻고 싶어진다.
그가 떠나고 방문턱에 발목을 올려놔 보았다.
아직 깜빡… 하는 징조는 보이질 않는다.
다리를 문턱에서 빼고 욕실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꿈에 그리던 욕실이 보이고 있었다.
고갤 돌려 커튼을 올려다보니 집주인의 말이 메아리친다.
“이 커튼이 수연 씨의 새로운 방문입니다.”
빼꼼히 내민 머릴 따라서 오른 팔을 가만 밖으로 뻗어보았다. 깜빡… 하지 않는다.
내친김에 오른 다리도 문턱을 넘겼다. 몸의 거진 반이 문턱을 넘었다.
벽을 잡고 똑바로 일어났다. 방 안에 있던 왼쪽 다리를 오른 쪽다리와 교차시키며
거실로 내딛었다. 아직도 깜빡… 하지 않는다.
“거짓말….”
숱하게 시도하고 또 실패했던 것들이 거짓말만 같다. 나머지 왼팔을 잡아 빼자,
드디어 몸이 방 밖으로 완전히 나왔다. 허탈했다. 허탈하고 기뻤다.
허탈하고 기뻐서 기가차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어버렸다.
집주인이 오면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할까.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욕실의 문을 열자 상콤한 비누향이 진동했다. 눈을 감고 그 그리웠던 비누향을 깊게 들이마셨다.
꾸며준 방은 안방일까? 당장 안방으로 가보려 휙 몸을 돌리는데, 끈적거리는 머리칼이 찰싹하고 뺨을 때렸다.
긴 머리칼을 뒤로 젖히고 옷을 벗어 던졌다. 허물을 벗듯 옷을 팽개치며 욕실로 들어갔다.
세수를 먼저 할까? 샤워기 앞에 서서 몸을 먼저 적실까?
집게손가락으로 세면대의 물 손잡이를 툭 처서 올렸다.
솨 하는 물소리가 욕실을 가득 채운다.
물줄기에 오른손을 태우니 미지근한 물이 손을 감싸며 흘러내린다.
세면대의 물을 잠구고 샤워기를 틀었다. 욕실 바닥으로 비가 내리는 듯하다.
처음엔 왼손을 그리고 오른손을 물에 적셨다. 미지근한 물이 은근하게 시원한 것이 청량감이 느껴진다.
수십 가닥의 물을 뿜는 샤워기 밑으로 들어가 머리를 적셨다.
끈적거리는 머리칼을 따라 물줄기가 무수히 갈라지며 몸을 타고 흐른다.
머리끈을 풀었다. 두꺼운 머리칼이 마치 한 묶음처럼 느껴진다.
그 묵직하고 두꺼운 한 올의 머리칼은 철썩하며 허리를 감았다.
샴푸를 다섯 번을 짜내어 머리를 빨았다. 다섯 번을 짠 샴푸도 모자라 다섯 번을 더 짜내어 머리에 덧발랐다.
빳빳하고 거칠던 머리칼이 점차 부드럽게 손가락 사이로 감긴다.
머리에 잔뜩 샴푸를 묻힌 채 온 몸을 바디샤워로 도배했다.
집요하게 온 몸에 거품을 만들었다. 거품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세면대에서 세수를 했다.
얼굴에 뽀득뽀득 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몇 번이고 비누와 헹굼을 반복했다.
샤워기로 샴푸와 바디샤워를 말끔히 지워냈다.
지워내고도 한 참을 물줄기 앞에 서선 시간을 보냈다.
맨살 위에 또르르 흐르는 물방울들이 정겹다. 샤워기를 끄고, 거울 앞에 섰다.
말끔한 내 모습이 거울에 비춘다.
조금은 살이 빠졌을까. 전에는 갈비뼈가 이렇게 도드라져 보이진 않았던 것 같다.
머리를 말리는데 수선 한 장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세 장 째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내며 욕실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얼어버렸다.
“다 씻었어요?”
집주인이 소리쳤다. 거실 바닥에 냉큼 주저앉으며 수건으로 몸을 가렸다.
커튼이 원래 자리가 아니라 저 멀리 현관에 가서 달려있다.
집주인은 그 커튼 밖에서 소리치고 있는 듯 했다.
“아무래도 방이 좀 좁을 것 같아서, 더 넓혀봤어요. 문을 여기에 달아봤는데? 어때요? 괜찮나요?”
집 전체를 내 방이라 주장하고픈 그의 설득은 잘 알아듣겠다.
하지만 지금은 맨몸이었고, 아직 물기를 말리지도 못했다.
“혹시 다시 방 안으로 몸이 이동해 버린 건 아니죠?! 괜찮아요?!”
“느느느 네! 거기에 가만 계세요! 들어오시면 안 돼요!”
“당연하죠. 천천히 하세요. 저는 점심이나 좀 사올게요.”
샌드위치 먹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안았다. 점심은 너무 이른 것 아니야?
생각이 들면서도 임에 침이 고인다. 뭘 사올까? 말리고 싶지 않다.
그가 현관문을 닫으며 떠나는 소릴 듣곤 얼른 방에 들어가 옷을 주워 입었다.
머리를 아직 한참은 더 말려야 했지만, 일단 뽀송뽀송한 새 옷을 입고 싶었다.
집주인이 곧 돌아올 테니 브레지어도 입어야 했다.
오랜만에 입는 브레지어의 압박감이 거슬리면서도 반가웠다.
그동안 열지 않았던 옷장을 열어 흰 면 티셔츠 한 장과 암갈색 면바지를 꺼내 입었다.
내 방 전신거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니, 드디어 좀 거지같지 않고 사람다웠다.
아직 스물일곱 먹은 여자사람. 그렇게 생각하자, 자기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
왈칵 눈물이 터지지만 동시에 기쁘고 또 고마운 마음도 가슴에 일었다.
집주인이 돌아오면 뭐라고 고맙다 전해야 하지?
나는 그에게 도대체 얼마만큼의 빚을 지는 거지?
그는 그 후로도 자주 집에 찾아왔다. 그동안 나는 내 넓어진 방을 만끽했다.
비록 집을 벗어 난 것은 아니었지만, 방에 가두어졌던 그 나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는 스스럼없이 물었다. 먹고 싶은 건 없어요?
가지고 싶은 건 없어요? 필요한 게 있을 텐데요?
그 때마다 난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흔들었다.
그는 엄마 대신의 집의 쓰레기를 가져다 버렸다.
아빠를 대신해 내 끼니를 챙겨줬다.
그가 없었다면, 집에 전기도 끊어졌을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컴컴한 방 안에서 홀로 웅크린 채 지냈을 게 눈에 선하다.
쫄쫄 굶으며, 매일 언제 죽을까, 불안에 떨며, 엄마가 돌아오는 건 아닐까,
헛된 희망을 품으며.
정우. 김 정우. 내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의 이름이었다.
“오늘은 방을 더 넓혀 보는 건 어떨까요?”
그가 물었다. 그는 평소처럼 나와 식탁에 마주 앉아있다.
그가 손수 장을 봐, 차려진 밥상.
김치찌개며 갖은 반찬들이 총천연색으로 식탁을 수놓고 있다.
방을 더 넓혀 보는 건 어떨까요.
그에게는 무엇이든 협조하고 싶다.
하지만 얼마 전 집 현관 앞의 커튼을 넘어가려던 기억이 난다.
그는 기대에 찬 눈으로 내가 현관을 벗어나는 모습을 바라보았었다.
그의 기대에 못 미치고 깜빡… 해버렸을 때의 그 미안함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의 “괜찮아요. 울지 말아요. 우리 천천히 해요.” 다독이던 따뜻함이 잊혀 지질 않는다.
“이 이상 방을 어떻게 더 넓혀요?”
“사실 얼마 전에 이 아파트 맞은 편 집을 사버렸어요. 어제부로 그분들은 이사를 가셨구요. 이제 이 층의 모든 공간이 저의 집이에요.”
그의 너그러운 웃음이 시야에 가득 찬다. 당신은 정말 기상천외하네요.
당신의 관대함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네요. 설마 저를 위해서 맞은 편 집을 산 것은 아니죠?
울컥울컥 생목오름 하는 말들이 많았다. 보답하는 길은 어서 빨리 그의 집에서 떠나주는 일 뿐이다.
“밥 천천히 먹고 우리 해봐요.”
그는 천천히 라고 말 했지만, 밥을 뜨는 수저가 바빠져 있었다.
그와 난 식탁도 정리하지 않은 채 커튼 앞에 섰다.
“문 치운다고 방 안으로 사라지면 안 돼요?”
“…알았어요.”
그가 현관을 커튼을 치운 순간이었다.
현관 앞의 커튼이 사라지는 그 순간 또 깜빡… 하고 시야가 멀어졌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와 나의 방이었다. 그가 가만 엄지를 들어 내 뺨을 훔쳤다.
흘린 줄도 몰랐던 눈물이 그의 엄지에 넘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울 것 없어요. 시간은 충분해요.”
“아니에요. 저 때문에….”
그는 빙긋 웃었다. 그가 고갤 숙인 내 얼굴을 빤히 보려고 내 얼굴 밑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말했다.
“커튼을 사방에 칠 순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커튼이 없이는 수연 씨가 또 깜빡! 해버리구요. 그만 울어요. 괜찮아요.”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나를 위해 마련한 실험들로 아직 준비해 놓은 게 많고 많다고,
그렇다고 말하는 여유 같았다. 그는 눈가리개와 이어폰을 내밀었다.
고양이 눈이 동그랗게 그려진 우스꽝스런 눈가리개를 내 눈 앞에 흔들린다.
“이거 한번 차볼래요?”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 내가 어디에 있는 줄 모르게 해 볼 생각인가?
하지만 냄새는요? 밖엔 풀잎이 한창 키를 키우고 있는데.
바람의 감촉은 어떻게 가릴 건가요? 봄바람 따뜻한 기운이 다 느껴질 텐데.
“해볼게요.”
그의 실험에 의문을 품는 것은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진지했고, 나를 위한 선의로 가득했다. 안대를 쓰려는 데 긴 머리칼이 방해다.
그는 선뜻 내 귀 옆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나는 넘어가는 머리칼을 따라서 안대 끈을 정리했다.
그와 손이 닿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그와 한 집을 쓴 시간이 쌓여서 그런 것인지, 그가 내게 해 될 만한 사람이 아니라서 인지,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곧 이어 이어폰도 귀에 걸었다. 그는 이어폰에 연결 된 핸드폰을 내 손에 쥐어줬다.
“제 말이 안 들릴 만큼 소리를 키워 봐요. 소리로 감지되는 공간감각을 차단하는 게 도움이 될 거에요. 분명히. 음악 취향은 잘 몰라서, 아무 노래나 넣었어요.”
“음악 잘 몰라요. 아무거나 들어요. 그냥.”
“그래요? 저랑 같네요. 그럼 이제 소리를 키워 봐요.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음악에 그의 목소리가 가려졌다. 이제 어찌하면 될까요? 물었지만, 대답이 들릴 리 없다.
가만 기다렸다. 내 손을 잡아 이끌지도, 정중히 허릴 감아올지도 몰랐다.
진중한 왈츠가 귀를 꽉 메운다. 약간 귀가 아파올 만치 소리를 더 높였다.
쿵짠짜 쿵짠자 하는 리듬감이 기다리는 마음을 괜히 울렁이게 만든다.
조금 기다리니 그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어깨를 건드린 방향으로 돌아서려는데, 허벅지와 등으로 갑작스런 힘이 느껴졌다.
헛바람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는 나를 손으로 이끌지도, 등에 업지도 않고 그대로 들고 다닐 생각인 것 같았다.
몸의 무게 중심이 그의 가슴께로 자꾸만 몰렸다. 손을 어디다 둬야할지 민망했다.
그의 목을 감자니 괜히 쑥스럽고, 가만 내 품에 모으고 있자니 그가 불편할 것 같았다.
가린 안대에 의해 그는 보이지 않았지만, 연한 숨결이 손등으로 떨이지고 있었다.
그가 어디론가 걸어갈수록 그의 품에 깊게 안기는 모양이 되어간다.
그가 나를 들고 회전하는 느낌이 들 때마다 마치 왈츠를 추고 있는 기분이었다.
빙글 또 빙글 하고.
스산하고 습한 시멘트 냄새 비슷한 것이 느껴지더니 곧 밍밍한 철가루 향이 느껴졌다.
그가 나를 이끄는 곳이 어딘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혹시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고갤 들 수가 없다.
얼굴에 핏기가 돌아 화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안대를 쓴 게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 갈 거예요?”
당연히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햇볕에 바싹 말라가는 풀잎 향이 느껴졌다. 어디 즘일까.
머리로 주위의 풍경을 그려보려 했지만 키 작은 풀이 담장을 두른 아파트 단지 밖엔 떠오르질 않는다.
바람이 머리칼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들썩이는 머리칼 밑으로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것이 너무나 쾌청한 느낌이다.
그냥 이대로 시간을 보내기만 해도 좋겠다.
지금 이대로. 그가 나를 어딘가에 가만 내려놓았다.
손으로 바닥을 더듬자 차가운 나무가 만져진다. 그는 내 이어폰을 벗겼다.
“아무래도 성공인가본데요?”
“여기, 어디에요?”
그의 코웃음 소리가 들린다.
코웃음 따라서 풀잎이 산들산들하고 사부작사부작하고 흔들리는 소리도 들렸다.
봄 냄새가 맡아진다.
“걸어 볼래요?”
“눈 가리구요?”
그가 내 손을 빼앗아 잡았다. 덥석 부여 잡힌 내 손이 그의 손 안에 전부 들어가는 듯하다.
흠칫 놀랐지만, 순순히 그를 따라 걸었다. 맹인이 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안내 받으며 길을 걷고, 부축 받아 집을 나서고. 어쩌면 평생이 이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 눈이 멀어 병들고 털도 다 빠져버린 버려진 개처럼, 이 사람에게 부축 받으며.
그는 정처 없이 나를 이끌었다. 내 보폭을 맞춰 걷는 그의 곁에서 왠지 재활치료를 받는 기분이다.
“아직 눈은 뜨지 말아요.”
그가 안대를 벗겼다. 안대 밑에 있던 콧잔등이 시원하다.
“지금,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기 직전이에요. 눈 한 번 떠볼래요?”
깜빡…하지 않는다. 한참을 어둠 속에 있었던 탓인지 눈이 시리다.
아파트 담장과 푸른 나무들이 반갑다고 손을 흔든다. 오랜만이야, 하고.
“단지만 벗어난다면, 해결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해봐요. 우리.”
그와 맞잡은 손에 점점 땀이 차고 있었다. 안대를 벗고 나니 저절로 숨이 가빠왔다.
세상에 공기가 반절로 뚝 줄어 든 것만 같다.
숨을 쉬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다.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그가 물었다.
“힘들어요?”
“아니요. 좋아요. 너무 좋아요.”
밖에 나왔다는 감각보단 꿈을 꾼다는 감각이었다.
숨은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져 있지만 그래도 적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었다. 그리고 잠깐사이였다.
깜빡…
팔에 통증이 왔다. 그와 잡고 있는 손이 뒤틀렸다.
팔을 따라 바라본 곳엔 그가 있었다. 방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아직 아파트 담장 앞이다. 나는 그를 등지고 서있다.
그와 잡은 손에 의해 팔이 꺾인 채.
“어떻게 된 거에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그에게 물었다. 그의 게슴츠레 한 눈이 말한다. 이럴 리가 없다, 분명, 하고.
그의 흔들리는 모습이 지진처럼 느껴진다. 내 세상을 모두 뒤흔드는 지진.
내 근간이 모두 금이 가고 깨져나가는 지진.
***
수연 씨가 돌아보며 물었다. 당황한 기색이 얼굴에 자욱하다.
수연 씨의 팔을 놓이지 않도록 반대 손으로 수연 씨를 잡으며 꺾인 팔을 다시 정리해주었다.
“돌아서셨어요.”
“돌아서요?”
“예, 수연 씨, 돌아서셨어요.”
수연 씨의 부모님이 처음 날 찾았을 때. 그 날의 당혹감을 잊지 못한다.
수연 씨 부모님은 수연 씨를 병원까지 끌고 오지도 못 했다.
증상을 알리기 위한 핸드폰 동영상만 소중히 가슴에 끼고 오셨다.
세상에 이런 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있을까. 정신과 의사를 하며 10년을 지냈지만,
그녀와 같은 증상은 처음이었다.
말로만 설명을 들었을 땐 단순한 방구석외톨이의 전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설명과 동영상은 판이했다.
“방에서 나오질 못 해요.”
수연 씨의 어머니가 호소했었다. 방에서 나오지 못 한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싶었다.
말 그대로였다.
수연 씨 어머니 손에서 재생되는 동영상 속 수연 씨는 방문턱을 넘는 것과 동시에 휙 하고 자리에서 회전하며 돌아섰다.
눈을 꼭 감은 채. 동영상 속 수연 씨는 말했다.
“세상 모든 불빛이 깜빡…한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눈을 감아버리는 것일 뿐, 괴현상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 이 현상을 괴현상이라 느끼는 것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순식간에 기억을 잃을 수 있는 것인가?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뒤를 돌아서며?
도대체 왜?
“고쳐주세요. 선생님. 제발 부탁입니다.”
수연 씨의 아버지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슴이 아렸다.
아린 것은 아린 것이지만, 이런 증세의 원인을 짐작 할 수가 없었다.
왜 이런 형태로 외출을 거부하는 것인지도.
수연 씨의 부모님도 그 원인을 알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어디가 아픈 줄도 모른 채 사람을 치료한 다는 것이 가능할까.
시도는 해 볼 수도 있겠지.
그래도 실마리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 수연 씨의 부모님과 대화를 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이해해보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행적을 부모님의 기억에 한해 모든 것을 들었다.
도무지 이런 증상을 보이는 환자라 짐작 할 수 없는 평범한 여자의 인생에 대해 장시간 설명을 들어야했다.
쾌활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평안한 가족 밑에서 평범하게 자란 여자.
방구석외톨이가 외형적 콤플렉스에서 찾아오는 일도 많았지만,
그녀의 외모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되려 미인이라고 하는 게 그녀에겐 걸 맞는 평가였다.
세상에 벽을 치고 사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 부모님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궁금증은 깊어만 갔다.
혹시나 ㅁㅁ을 의심해 봤으나, 부모님은 극구 부정했다.
ㅁㅁ을 당한 듯한 기미가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기미는 없을 수 있다.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것부터 마음의 병이 찾아 왔을 수 있다.
그것을 염두하며 수연 씨의 부모님의 설명을 계속해 듣던 중,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실마리는 튀어나왔다.
어떻게 받아들이려 노력 해보아도 이야기가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직장에 며칠씩이나 출근을 안는데, 연락이 한 번 밖에 오지 않았어요?”
“예….”
바보 같은. 그런 직장이 세상천지에 있는가?
10분만 무단으로 지각하더라도 전화통에 불이 나는 게 보통 아닌가?
“수연 씨가 이 일이 있기 전에도 무단결근을 자주 했었나요?”
“아니요. 성실히 매일 출근했었어요. 휴일에도 출근해서 일 하기도 마다치 않았는걸요.”
ㅁㅁ이란 짐작은 속단이었다. 그녀의 인생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숨기고 싶은 게 있었다면, 그 것은 몸을 유린당한 것이 아닐 것이란 추정을 다시 내렸다.
새로운 짐작은 강렬하게 머리를 때렸다. 겨우 연락 한통? 그것도 퇴사 통보만?
그런 회사는 없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내가 알고 있는 한으로는.
어렵게 그녀의 회사 동료와 접촉할 수 있었다.
동료의 말을 들으며 짐작은 확신으로 확신은 다시 확인으로 변모했다.
수연 씨의 부모님에게 물었다.
“수연 씨가 친구가 많은 편인가요?”
“예, 어릴 때부터 친구들을 우르르 끌고 다니는 아이였죠. 인기가 좋은 아이였어요.”
“수연 씨가 직장을 다닌 것이 몇 년이나 됐죠?”
“전문대 졸업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니까 4년? 5년?”
짧아도 4년. 왜 이토록 무모하게 회사를 다녔을까.
그녀의 낮은 학력을 보며 그저 짐작하는 것 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듯 했다.
그저 내가 생각하기론, 재취업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고,
그렇게 짐작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수밖엔 없었다.
수연 씨의 직장 동료가 해준 설명에 눈앞이 컴컴해졌다.
“처음엔 그저 거슬린다, 로 시작됐어요. 회사의 그 누구보다 학력이 낮았거든요. 그녀는 실력으로 취직한 훌륭한 케이스죠. 아아, 어느 날인가? 부장님이 수연 씨에게 그러는 거예요. 수연 씨는 얼굴로 취직했구만? 당연히 농담이었죠. 짓궂지만 다들 알아들었어요. 짓궂은 칭찬이라고. 제가 듣기에도 그랬어요. 얼굴이 참하고 예쁘다는 칭찬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왜였을까요. 그게 신호탄이 됐어요. 수연 씨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사람이 있던 모양이에요. 그게 누구였는지는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시작된 거죠. 수연 씨를 미워하는 목소리가. 이후론 걷잡을 수가 없었어요.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수연 씨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식이었죠. 수연 씨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면,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했어요. 그저 미움의 대상이 되었죠. 남자 직원들에게 은근히 인기가 있는 것도 한 몫을 했어요. 여자 직원들 전체가 수연 씨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봤죠. 정작 수연 씨는 열심히 일만 했지만요. 수연 씨는 작은 잘못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 잘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수연 씨가 작은 실수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가세요? 얼마나 가차 없고, 신랄한 비판이 쏟아질지. 하지만 대놓고는 표시하지 않죠. 꾸준하고,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히는 거예요. 사소한 명목을 만들어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출근한 마지막 날이요? 수연 씨가 회의 자료를 집에 두고 오는 일이 있었어요. 그 바람에 미팅이 지연됐죠. 별일은 아니었어요. 하루정도 미뤄서 회사 일에 지장이 있는 일이라면, 수연 씨를 집에 돌려보내 자료를 찾아오게 시켰겠죠. 간부들은 사람이 일하는 것이니 그런 실수도 할 수 있다는 반응이었어요. 평소 수연 씨를 좋게 본거죠. 하지만 동료직원들의 반응은 달랐어요. 그날따라 수연 씨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굴었어요. 왜 그날따라 그랬냐구요? 저도 잘은 모르죠. 하지만 그때가 타이밍 이었던 거예요. 수연 씨는 웬만해선 실수 같은 거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명목에 목마른 사람들이 그 기회를 놓일 리 없는 거죠.”
4년간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지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지.
한 치의 실수도 범하지 않으려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이지?
수연 씨를 알기 위해 받아온 사진들이며, 일기들 친구들의 녹취자료.
도저히 어디 한부분에서도 그녀의 따돌림에 대한 흔적이 없었다.
전화가 한통 밖에 오지 않았다면, 수연 씨의 가까운 상사가 그녀를 따돌리는 주축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다 함께.
ㅁㅁ을 당하지 않았다는 짐작도 속단이었다.
평범하고 활달했던 그녀에게 4년간의 견딤은 평생 처음 겪는 고통이었겠지. 차라리 ㅁㅁ이란 말이 어울린다.
따돌림, 그렇게 쉬운 말로는 망가져버린 수연 씨 병의 근간을 설명하기에 너무 보잘 것 없게만 보였다.
겨우… 따돌림. 따돌림이라는 말이 너무 가벼운 것일까. ㅁㅁ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영혼의 ㅁㅁ. 아니 살인이 더 맞는 것이다. 난도질 살인.
인격을 난도질당하며 축적 된 스트레스가 어느 날 갑작스런 형태로 바로 지금 수연 씨의 증상으로 나타났다.
결론이 지어졌다.
문제는 치료가 시작되는 지금부터였다. 이 상처를 덮어 자연스런 치유를 기다리는가,
아니면 상처 위에 소독약을 끼얹고 실, 바늘을 들어 봉합 하는가….
주변에 한 번도 내색하고 싶지 않았던 수연 씨였기에 전자를 택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핸 그녀가 나를 정신과 의사로 판단해선 안 됐다.
그녀를 그 좁은 방에서 구조해내고, 그녀를 치유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
이 방법에 대해 병원 선배는 주의를 주었다.
“너무 환자에게 거리를 가깝게 두지 않는 게 좋다는 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기본이야 기본.”
거리를 유지해라. 동시에 그녀를 구출하라. 부모님의 협조를 요청하자,
수연 씨의 부모님은 적극 찬성하며 두 손 두 발을 다 벗고 나섰다.
부모님과의 단절, 스스로가 버려졌다고 느끼는 과정, 집을 잃었다는 확신을 주고.
그리고 그녀의 공간을 재배치한다. 조금 씩 더 넓게, 더 밖을 지향해서.
세상 밖으로 그녀를 구출하자.
“돈 따위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선생님 말씀만 따르겠어요!”
수연 씨, 아버님의 열의가 강했다. 어머니께선 의문이 있는 듯 했지만,
아버님은 내게 의문을 던지지 못하도록 어머니를 만류했다. 다행이었다.
어머니께서 “이 방법이 통할까요?” 묻는다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는 답 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환자는 처음이었다. 학계 어디에서도 이런 증례는 없었다.
이것을 치료라고 말 할 수 있는지도 불분명했다. 그저 구조라고 칭하는 게 맞았다.
실험을 겸하는 치료는 순조로웠다.
겁을 주며, 자신이 오롯이 세상에 혼자 남았다고 각인시켰다.
볼펜을 손에 쥐며 저항하려던 흔적은 효과의 명확한 증거였다.
세상에 혼자 남은 사람을 달래는 것만큼 손쉬운 일이 있을까.
그녀에게 계속해서 달콤한 기억만을 심었다.
하찮은 음식거리도, 방치된 그녀에겐 최상의 선물이 될 것이었다.
혼란의 틈에서 의심의 장벽을 무너트리는 템포를 올려 서둘렀다.
수연 씨에게 나를 완전히 구세주로서의 인상을 심는 것에 치중해야했다.
다행히도 타이밍은 적절 한 듯싶었다.
한 번 열리기 시작한 마음은 박차를 가했다.
그녀는 느꼈을지 모르나, 그녀는 나와의 살갗이 닿는 것에도 자연스럽다.
일부러 확인 차 그녀의 귀를 쓰다듬거나, 손을 잡아 보며 누차 확인을 했다.
그녀는 나에게 무방비 상태였다.
키를 낮춰가는 그녀의 벽을 느낄 때마다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환자에게 거리를 가깝게 두지 않는 게 좋다는 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알고 있다. 수연 씨는 직관적으로 말해 정신병자였다.
그들은 마음이 심약하다.
마음에 틈이 있다. 틈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널찍한 공간.
구멍.
그들은 쉽게 의사에게 기대려 한다.
벽이 높은 환자들도 많다.
항상 그들의 벽을 허물고 그들의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 정신과 의사의 일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공감대를 만들되 환자에게 빠져들지 말라. 이는 나의 정신과 의사생활 철칙과도 같다.
환자와 의사가 공명하게 되면 그 끝을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걷잡을 수 없다. 수연 씨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조사해왔다.
한 환자에게 빠져들어 치료를 한다는 것.
이런 것은 의사 생명을 썩뚝 칼질해대는 것만 같은 짓이었다.
가랑비에 온 몸을 적시듯, 그녀에게 공감대를 가지게 된다. 그녀에게 강한 연민을 느꼈다.
함께 한 공간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그녀가 익숙해진다.
그녀가 나를 대하는 살가움이 내게 만족감을 준다.
그녀에게 깊이 빠져들었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수연 씨의 부모님에게 통보했다.
“제가 말씀드리기 전까지는 따님과 접촉을 금해주세요. 수연 씨는 지금 제가 만든 세계관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희소식이에요. 치료는 성공적입니다.”
또 며칠 후 다시 통보했다.
“치료가 난조입니다. 어느 날은 호전을 보이다가도, 어느새 다시 방으로 돌아가 버리곤 합니다. 죄송합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음엔 다시 부모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그리고 다시 절망을, 그리고 약간의 희망을 주고 빼앗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벌었다.
그녀가 집 안을 돌아다닐 때부터 치료를 멈췄다.
그녀는 충분히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있다는 전제하에. 그녀가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것이 싫었다.
그녀를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었다.
그녀가 완치된다면 나는 그녀를 놓이게 될 것이다.
내가 정신과 의사였고, 치료의 일환으로 그녀에게 선의를 보였다는 사실을 감춰야했다.
그녀가 만에 하나 내게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면 모든 게 끝장이다.
수연 씨가 물었다. 꺾인 어깨가 접질린 듯, 어깨를 움켜쥐고 있다.
“미안해요. 다음에는 성공할게요.”
미안함에 또 그렁그렁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력해온 사람. 가여운 사람. 이젠 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좋아요. 제가 당신을 지켜 줄게요. 저 밖은 수연 씨에게 너무 차갑기만 해요.
제 곁에만 있어요…….
“괜찮아요. 천천히 해요, 우리.”
수연 씨를 가만히 안았다. 품에 안긴 그녀의 긴긴 머리칼에서 아득한 향기가 퍼진다.
가슴에 안고 있는 그녀에게서 이 전엔 몰랐던 따뜻함이 느껴졌다.
나는 평생 이 여자를 놓을 수 없다.
“미안해요. 다음엔… 노력할게요.”
“괜찮아요.”
당신은 이 아파트를 벗어 날 수 없겠죠.
괜찮아요. 저는 그저 당신과 봄 산책을 즐기고 싶었을 뿐인걸요.
미안해요.
당신을 놓아 줄 생각 없습니다.
괜찮아요.
영원히 내 곁에 있어요.
영원히….
-끝-
오오오 숏다리코뿔소님 이제 직접 루리웹에 글을 쓰시는건가요? 지난번 우연히 보게 되었던 '독신녀의 방에 어서오세요'를 보고 코뿔소님의 필체에 반했습니다. 이번 작품도 정말 재밌게 봤어요! 마지막의 반전또한 두근거리네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
이번에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조심스럽지만 네이버 베도에도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호러물이 있었죠.
항상 참고삼아 먼저 보여주는 분이 있으신데, 그 분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 같은 소재가 존재한다. 좋은 웹툰이었다. 굳이 찾아 읽어보진 않았습니다. 혹시나 그 작품에 딸려가거나 아니면 비슷한 부분 때문에 신경쓰여 글 쓰는 게 혼잡해 질 것같아서요. 같은 소재를 다른 사람이 떠올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내용은 판이할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머여...소설이였네 진지하게 읽었는대 ㅡㅡ
오오오 숏다리코뿔소님 이제 직접 루리웹에 글을 쓰시는건가요? 지난번 우연히 보게 되었던 '독신녀의 방에 어서오세요'를 보고 코뿔소님의 필체에 반했습니다. 이번 작품도 정말 재밌게 봤어요! 마지막의 반전또한 두근거리네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
고마워요 :)
이번에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조심스럽지만 네이버 베도에도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호러물이 있었죠.
항상 참고삼아 먼저 보여주는 분이 있으신데, 그 분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 같은 소재가 존재한다. 좋은 웹툰이었다. 굳이 찾아 읽어보진 않았습니다. 혹시나 그 작품에 딸려가거나 아니면 비슷한 부분 때문에 신경쓰여 글 쓰는 게 혼잡해 질 것같아서요. 같은 소재를 다른 사람이 떠올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내용은 판이할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와, 글을 너무 재밌고 몰입되도록 잘 쓰시네요! 저도 글 쓰는 걸 좋아하는데, 정말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재밌는 글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괴게에 많이 써 주셔요
전에 올라온 글 보고 진짜 울컥했는데 심리묘사가 참 제 감성에 맞네요 ^^ 네이버에 웹툰하고 비슷한 소재이긴 하지만 내용은 확실히 틀리네요 재밌게 잘봤습니다 ^^ 다음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기묘한 이야기처럼 영상화 해도 될 것 같은 이야기네요.
소름앱으로 작성자 표기 후 퍼갑니다.
와 엄청 좋네요
우아아아... 진짜 저번거도 그랬지만 이번것도 ...!!!!! 진짜 좋네요 ! 잘봤습니다~!!
완전 팬이 된 저는 선추천후 감상하겠습니다
'독신녀..' 보고 난 이후로 팬이 됐습니다.. 이번 작품은 결말이 새드도 아니고 해피도 아닌데, 어째 마음에 드네요(?) 잘 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