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네온싸인..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호객꾼들과
반쯤 벗은 아가씨들이 자신을 팔기위해 몸짓하는 홍등가..
그 끝에는 그곳과는 전혀 어울리지않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낡은 2층짜리 건물이 있다...1층은 비워진지 오래고
2층엔 젊은 남자 혼자서 철학연구원 이라는 낡은 간판을 내걸고
수상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소문에 의하면 많은 이들이 그 건물을 철거하기위해
여러가지 수단을 썼지만 번번히 실패했었다고 한다...그건물의 주인인
젊은 남자는 어떠한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를 한번 건드렸던
사람들은 다시는 그곳 주변으로도 오기 꺼려할정도의 공포감을 심어줬다고 한다..
그래서 홍등가일대를 모두 접수한 미명파 두목 춘배는 그 건물만큼은
절대 건드리지않았다....
[다음 뉴습니다..어제 새벽 OOO동에서 살고있는 일가족이 전원 살해당했습니다.
범인은 아들인 25세 구모씨로 밝혀졌습니다.
구씨는 현재 도주하여 자취를 감추었으며 경찰은 수배령을 내려.....]
뉴스를 보던 유신은 직감적으로 령과 관련된 사건이라고 느꼈다.
"허 그놈 참....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겠지.."
낡고 허름한 2층건물..그곳이 유신의 사무실이자 집이었다..
약간 마른체격에 큰 키..창백하리 만큼 하얀얼굴에 높게 솟은 코,
날렵한 눈매..붉은 입술로 굉장한 미남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를 공포심을 자아내게하는 얼굴이었다..
홍등가의 창녀들은 얼음장과도 같은 유신의 차가운 분위기와 외모때문에 그를 뱀파이어라 부르고 있었다..
또한 차갑고 샤프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유신은 창녀들 사이에서는 알게모르게 흠모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낡은 사무실서 꾀째째한 모습으로 홀로 소주잔을 훌쩍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평소의 유신을 본다면 그런 생각이 달아날지도....(날렵하고 차가운 모습은 대외적인..즉 가식이다)
유신은 벌써 일주일째 의뢰가 들어오지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3개월전부터 자신의 구역에서 불과 몇블록밖에 떨어지지않은 곳에
어디서왔는지 용하다는 무당하나가 떡하니 자리잡고는 자신들의 손님을 다 뺏어갔기때문이다.
최근에는 단골이었던 고객들마저도 자신을 저버리고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낮은가격으로 퇴마뿐만 아니라 점이나 사주 관상등 자잘한것들까지
봐주고 무엇보다는 마치 절에 다녀온것처럼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해주는 그곳의 외관이나
운영방침등이 유신과의 고객경쟁에서 성공한 요인중 하나였다.
사실 누가봐도 홍등가의 구석진곳에 위치한 낡고 허름한 유신의 건물은 께름칙하기 마련..
정말 단골이 아니래서야 그저 용하다는 소문만으로는 절대로 출입하고 싶지않으리..
유신은 이래저래 고민이 많아졌다..
이렇게 고객을 빼앗긴다면 결국 얼마안가 수중의 돈이 떨어질테고
그렇게 되면 결국 사무실의 문을 닫아야 되는 지경까지 이르게될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다시..그 "갑갑한곳" 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럴바에야 차라리 굶어죽는편이 낫다고 생각한 유신이었다..
다음날 한 사내가 유신의 사무실에 찾아왔다..
들어오자 마자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반갑습니다..어제 전화로 문의하신 유신 사장님 맞으시죠? XX디자인의 장영실 대리입니다.."
건장한 체격의 말끔하게 생긴 사내였다..어딘가모르게 조금은 재수없는 인상이었다..
장대리는 유신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뒤 가방에서 이것저것 자료들을 꺼내어 보여주며 건물리모델링에 대한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아...그래서 그러면 비용이 어느정도 들겠소?"
유신은 장대리의 속사포같이 쏟아지는 말을 끊고 물었다..
"글쎄요..외관부터 내부까지 싹 밀고 여기저기 보수하고 뭐 보자..대충.."
장대리는 혼자 중얼거리며 계산서를 두들겼다..
"아..예..크게 3장정도는 각오하셔야 할겁니다..뭐 다른곳으로 이전하시는편이
더 좋긴 하겠지만 크큭..요즘같은때에는 물건이 잘 안나올건데..어떻게 하시겠어요?"
'3..억!!!'
유신은 겉으론 태연한척 했지만 속으로 크게 놀랬다..
계속해서 고객을 잃던 유신은 조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그동안 벼뤄왔던 내외 리모델링을 생각했고 일을 하면서부터 모아왔던 돈으로
충분할꺼라 생각했었는데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으니 말이다..
유신은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혹시..3천은 아니겠죠?"
"예?"
장대리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내지었다.
"하.하.하.농담이었습니다."
"하.하.하. 사장님 농담도..."
둘은 어색한 분위기에 웃기만 할뿐이었다.
장대리가 돌아가고 유신은 장대리가 놔두고 간 명함과 디자인북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곳을 떠날수는 없다..내가 떠나는 즉시 이곳은....휴우..그렇담 어찌해야하나'
"우웅~우웅~~"
그때 거진 일주일만에 유신의 핸드폰에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유신..방금 뉴스 봤나?? 또 연쇄살인이야..벌써 3일동안 스무여명이 죽었네..
뭔가 감이 다른데...혹시 자네..뭔가 느끼지못했는가? 아무래도 령의 짓이야..
혹시 지금 만날수있나? 내 당장 사무실로 찾아가겠네.."
전화를 건 사람은 강민호 반장이었다...
강반장과의 인연은 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년전 희대의 연쇄살인마였던 이진국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강반장은 귀접을 하게 되었고 당시 최고의 퇴마사였었던 유진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할수있었다..(그 사건후 유진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 사건후 강반장은 약간의 영기를 느낄수있게 되었고 령과 관련된듯한
사건은 사라져버린 유진을 대신해 그의 동생인 유신에게 부탁하여 함께 해결하였었다..
30분정도의 시간이 흐른뒤 강반장이 유신의 사무소를 방문했다..
유신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냥 들떠서 강반장을 맞이했다..
그도 그럴것이 강반장의 의뢰는 다른 의뢰들보다 훨씬 짭짤했었기 때문이다.
"혹시 자네 몇일전 자신의 가족을 전원 살해하고 도주한 구영수라고 아는가?
그가 불과 몇일사이에 벌써 20명이 넘는 사람을 살해했다네..
인간의 범행이 아니야...목격자의 증언을 봐도.."
"목격자의 증언을 봐도 인간이상의 괴력과 잔인함으로 귀신의 소행이다?
이거죠?"
유신이 강반장의 앞에 캔맥주를 놓으며 끼어들었다..
"그렇네..그리고 계속 께름칙한 기운이 느껴져..알잖는가..내가 령 냄새만큼은
귀신보다 더 잘맡는다는거...지금 서내가 발칵 뒤집혔어..
우리 관할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위에서도 말이 아닌가봐...
놈을 잡기위해 2개중대가 출동해서 샅샅히 뒤졌지만 머리카락 한올도 찾지못했다네..
정말 귀신같은 은신이야...뭐 귀신이 맞긴하지만...휴우.."
깊은 한숨을 쉬곤 자신의 앞에 있는 맥주를 벌컥벌컥 삼켰다..
이런일이 있을때마다 6년전의 사건을 재현하는것같아 가슴이 타들어가는 강반장이었다..
"딱잘라서 말씀드리죠..못하겠습니다.아니 안합니다..저한테 오기전에
저쪽 보살을 먼저 찾아가셨군요.."
"아..아니 그걸 어떻게..알았나?"
"더러운 잡내가 납니다..들어올때부터 약간 나더니...지금은 진동을 하네요..
그 싸구려 부적 냄새가요..."
강반장은 무의식중에 부적을 넣어두었던 안쪽주머니를 만졌다..
"죄송합니다..이중의뢰는 안됩니다..이쪽업계 나름의 상도입니다..돌아가세요.."
속이 타는건 유신도 마찬가지..6년전에는 언제나 형의 그늘에 가려져 2인자 소리를 들어왔던지라
형에게 라이벌 의식을 많이 느꼈었다..유진이 사라졌을땐 오히러 잘됬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유진이 사라진후 업계 1인자로서 자리를 굳혀가며 누구못지 않게 자부심을 느껴왔던
유신이었는데...자신보다 먼저 다른곳, 그것도 하필이면 자신의 생계를 위협하는
라이벌업체에 선의뢰를 했으니 열등감이 폭발할수 밖에...
강민호에게 한순간에 배신당한 느낌이었다..유신이 남은 맥주를 모두 들이켰을때
강반장이 갑자기 자리에 일어나 유신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미안하네..하지만 자네를 못믿어서 그랬던건 아니야..유진이 사라진 후부터는
내가 자네를 얼마나 믿는지 자네도 알지않는가..."
"내앞에서 그자식 이야기 하지말라고 했잖아!!"
유신은 유진의 이야기에 강반장의 말을 끊고 고함을 쳤다..
그와 동시에 티끌하나 없이 깨끗한 그의 미간이 구겨져버렸다.
극도로 화가 났다는 뜻이다..그가 화가났을때는 어떠한 일을 당할지 아무도 장담못한다.
그렇기에 강반장은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벌벌 떨어댔다.
유신이 한개피의 담배를 모두 연소하고 "그래서 계속 이야기 해보시죠"
라고 말할때까지....
식은땀을 닦으며 강반장이 말을 이어갔다.
"그..그게..내가 일부러 그쪽으로 간건 아니고..상부에서 그쪽 보살과 안면이 있는 자가 있는모양이야
내게 그쪽으로 한번 가보라고 하더군..알잖는가 자네와 나의 협력관계는
서의 그누구도 알지못한다는거..그래서 부하직원들 데리고 혹시나 하고 가봤었다네..
헌데.."
"헌데? 못하겠다고 하지요?"
"아..아니 그걸 어떻게?? 그래..못하겠다더군..
보살이라고 이름난 사람은 아직 20살도 채 안된 앳된 꼬마애였어...
그 소녀도 자신이 손댈 문제가 아니라더군..그래서 자네밖에 없어서
이렇게 찾아왔네..제발 한번만 도와주게..다시금 6년전의 악몽을 재현할순없어!!"
강반장은 유신에게 무릎을 꿇고 통사정을 했다..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유신이 크게 웃었다..강반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런 유신을 바라만 봤다.
"당연합니다...그런 하찮은 능력으론 덤볐다간 되려 당하거든요..크하하하하
그래서 받아온게 겨우 귀신쫓는 부적한장이었습니까? 우습군요..좋습니다..
제가 이 의뢰를 받아들이지요...크큭"
강반장은 왠지 너무 통쾌한듯한 유신의 웃음을 이해할수는 없었지만
한순간, 유신을 못믿고 다른곳에 의뢰를 맡겼던 미안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뢰를 받아준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돌아갔다..
유신은 창문으로 강반장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맥주를 홀짝였다..
"그리고..무엇보다..그 보살이라는 년은 절대로 나댈수가 없을거야..자신이 초래한거니깐"
유신은 작업복(도복)으로 갈아입고 퇴마에 필요한 도구를 챙겨
거리로 나섰다...
그 시각....
최근의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한숨을 쉬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유신 생업을 위협하며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던 라이벌업채의 사장..
아니 보살 소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