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선 (金忠善 1571 ~ 1642, 본관 사성김해)
임진왜란 때 왜군의 선봉장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그때 나의 21살로 3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부산에 상륙했다. 선조25년 4월 13일이었다. 상륙한 지 일주일 만에 경상좌우병사 김응서에게 은밀하게 글을 보냈다. "내가 비겁하고 못난 것도 아니고 내 군대가 약하지도 않다. 조선의 문화가 일본보다 발달했고, 학문과 도덕을 숭상하는 군자의 나라를 짓밟을 수 없다. 그래서 귀순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하여 우리나라에 귀화해 장수가 된 그는 부산, 경주, 영천등에 포진하고 있던 왜군을 무찔렀다. 또 우리군대에 화포와 조총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왜군이 점령하고 있던 18개의 성을 되찾는 공을 세웠다. 그의 무공과 충절에 감복한 선조는 친히 불러 김해 김씨라는 성과 '충선'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서른 살 때 진주목사 장춘점의 딸과 결혼하여 경상도 달성군 우록에 터를 잡아 살게 되었다. 선조 36년 여진족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내방소를 설치하고 그에게 북방 경비를 맡겼다. 그 뒤 병자호란이 일어나 자신이 10년 간 지켰던 북쪽 땅이 짓밟혔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창의했다. 그때 나이 66세, 의병을 남한산성으로 달려가던 중 조정에서 항복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자 "예의의 나라 군신으로서 어찌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겠는가, 춘추의 대의도 끝났구나."하고 땅을 치며 통곡했다고 한다. 72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지증추부사,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호는 모하당, 상호군 경원, 부호군 계인의 아버지, 선전관 진명의 조부
데프콘에도 나오는 이름이군요.한일전에서 나포한 일본 이지스함에 저사람 이름을 붙이자고 북한군 사령관이 얘기하죠.
호오...멋진 사람이군요. 일본의 입장에서라면 쳐죽일 사람이겠지만.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1&dir_id=110107&eid=OpKPXtFKnqGTTHVa4ZriTe1WyvJcG/rF&qb=sejD5ryx 귀화배경이 여기에 나와있네요
멋진 사람이네요.
이런 이야기도 있더군요. ^^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토요토미 히데요시(일본 대빵이죠)가 사야가의 악혼녀에게 수청(잠자리)을 들자고 했는데 수청을 거부했던 사야가의 약혼녀를 그냥 죽여버렸다고 합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죽움을 당한 사야가의 약혼녀. 사야가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죽어 빡 돌아었겠죠. -_-;; 그래서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일을 꾸몄던 것 같습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나를 조선에 보내면(전쟁에 내보내면) 난 데리고 온 부하들을 버리고 조선에 꼭 귀화해 배신자가 되겠다고!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부름을 배신하겠다고!! 조선에 귀화해 일본군과 싸워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복수를...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