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즈 밴드 크라이,
누가 뭐라해도 나는 나로서 살아가겠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답은 없어, 패배란 없어
나는 평생 나일 뿐
-1화 삽입곡, 빈 상자-
쿠마모토에서 갓 상경한 이세리 니나는 복잡한 지하철 노선과 낯선 도쿄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다 트위터로 알게 된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맨의 노상 라이브 소식
역대 가장 성가시고 외골수에 시끄러운데 성격도 난장판인,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오히려 응원하게 되는 주인공 이세리 니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격전의 2분기는 반가운 후속작들과 유명 회사의 10주년 기념작, 강력한 ip파워를 가진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 등 경쟁이 아주 빡셌던 분기였습니다.
하지만 끝나고 보니 3D+쌩신인 성우+자체 제작이라는 무모하다는 말 이상의 도전을 한 걸즈 밴드 크라이가 예상치 못한 압도적인 포스를 내뿜으며 패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2번 이상 정주행을 맞힌 후에 하려했지만 늦기 전에 가볍게라도 남기고 싶어 쓰는 걸즈 밴드 크라이의 리뷰보단 후기에 가까운 글입니다.
작품 내에서 니나는 정말 성가신 녀석입니다. 초반부에 살갑게 다가오는 스바루를 마구 밀어내는 장면들이나 야밤에 전등 풍차 돌리기를 하는 모습들은 자칫 답답하게 비춰질 수도 있었죠.
하지만 저에게 니나는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서사의 진행을 위해 혹은 사건을 심화시키기 위해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내의 이야기로 충분히 납득한 그 이세리 니나라서 저런 행동을 하는구나 싶었거든요.
1화부터 나오는 어두운 학교생활과 자퇴, 아버지와의 갈등 그리고 도쿄 상경까지 일련의 과정들로 니나의 환경을 설명하고 심리 상태를 진하게 전달 받으니 처음부터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로서 다가왔던 거 같습니다.
이런 니나의 성격은 애니메이션이 끝날 때까지 꺾이지 않습니다. 보통 완전히 제로베이스인 주인공이 무언가를 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게 될 경우 내적이든 외적이든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을 전제로 서사를 쌓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걸즈 밴드 크라이는 처음부터 신생 밴드의 성장기라기 보단 니나에 포커스를 맞추어 갈등과 상처를 봉합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서사가 펼쳐지게 됩니다.
니나는 1기의 이야기를 모두 진행하면서 학창시절에 학교폭력을 당했던 상처, 아버지와의 갈등 그리고 히나와의 대립까지 전부 어느 정도 매듭짓는데도 불구하고 성격이나 모습은 1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게 걸즈 밴드 크라이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니나는 모모카를 만나 밴드에 대한 꿈을 처음 꾸게 되고, 스바루와 함께 티격태격하며 밴드맨으로서의 길을 찾아나가며 베니쇼가 듀오가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토게나시 토게아리로서 자리를 잡아가게 됩니다.
분명 전체적으로 보면 니나는 꾸준히 성가시고 시끄러운 녀석입니다. 한 번 도망친 모모카를 거의 독단으로 프로의 세계에 끌어들이고 그로 인한 갈등을 꾸준히 겪습니다.
초중반부 거의 매화 치고 박고 싸우던 것들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부 니나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바루한테 날카롭게 굴었던 것도 모모카를 긁었던 것도 멋대로 베니쇼가와 합치게 된 것도 니나의 비중이 상당하죠.
마지막에 기껏 들어간 소속사를 나가게 되는 것도 생각해보면 니나가 밀어붙인 것에 가깝습니다. 현실과 타협하면, 과거의 자신이 미련했다고 인정하면, 스스로를 조금 내려놓고 남들을 따라가면 훨씬 좋고 편한 길을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요.
되돌려보면요. 토게나시 토게아리는 니나가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밴드입니다.
처음부터 음악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모모카를 잡은 것도 스바루가 작은 일탈로서 여기던 드럼을 프로를 목표로 하는 본격적인 밴드활동으로 만든 것도
이전에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둘이서만 작게 활동하고 있던 토모와 루파가 다시 밴드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도
전부 니나가 자신의 뜻이 있다면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고 집중하는, 그렇게 들이받는 성격이었기에 성립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학교폭력을 당하는 친구의 눈빛을 그냥 무시했다면, 아버지가 묵살하고 대신 추천장을 받아 대학에 가자는 말에 동의했다면, 모모카의 귀향을 그냥 바라만 보았다면 니나는 더 나은 삶을 살았을지 모릅니다.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며 절친한 친구와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지도, 자퇴하지 않고 졸업해 추천장으로 좋은 대학을 갔을 수도, 밴드 같은 불확실한 길이 아닌 입시학원을 다니며 보통의 행복을 쫓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니나는 말합니다. 나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세리 니나는 외골수에 모난 성격인지라 트러블을 일으키는 문제아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하고 원하는 바를, 스스로의 진심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기에 주변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인생을 뜻대로 그려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작품이 이세리 니나처럼 살아라. 외골수여도 타협하지 말고 들이받으면서 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니나의 뜻대로 이어지는 결과가 항상 옳지 않고 반대편이 틀리지 않듯 모든 상황은 현실처럼 복합적이고 어렵습니다.
왕따를 당하던 친구를 구한 자신에게 모진 말을 하던 히나의 의견 또한 현실적으로 보면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고 갈등을 겪던 아버지도 나름의 고민이 있었으며 결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고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죠.
걸즈 밴드 크라이는 이런 입체적인 시점을 제공하면서 니나의 외골수가 절대적으로 옳은 길은 아니라는 것을 계속 비춰줍니다.
최후반부의 다이더스와의 대결도 그렇습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지명도를 올릴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이고 명목상으로나 대결이지 이러나저러나 패배가 확정된 상황이라 함께하는 것이 어떻게 보아도 더 나은 선택이죠.
개인적으로 9화부터 이어지는 토게나시 토게아리가 프로로서 길을 걷는 과정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뛰어난 공연 씬과 스바루, 토모, 모모카의 서사의 깊이를 부여하는 것들은 좋았지만 애니메이션의 중심인 니나의 색깔이 조금씩 옅어지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하지만 13화에서 그걸 그대로 뒤집었고 다소 아쉬웠던 과정까지 전부 엔딩으로 나아가는 장치로서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익에 따라 흔들리고 현실에 타협하며 논리적으로 더 나은 길을 찾는 게 아닌 스스로가 믿는 옳은 방법을, 진심을 관철하는 니나와 그 빛남을 보고 따라 모였기에 함께하는 멤버들.
그게 걸즈 밴드 크라이를 특별하게 만드는 가장 뛰어난 지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니나처럼 살고 싶다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 저런 녀석이 있다면 정말 피곤하고 힘들겠죠. 귀여우니 망정이지 진짜 힘든 타입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빛에 이끌렸습니다. 나는 하지 못할 선택들을 스스로의 진심에 방향을 맞춘 채 끊임없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이세리 니나 라는 주인공에게 반했고 분명 반도 안 찬 공연장에서 목표로 하던 프로를 그만두고 다시 인디로 돌아가게 되었음에도
1화에서 외친 빈 상자의 ‘나는 평생 나일뿐’ 이라는 말을 끝까지 이어가 이제껏 걸어온 길들을 긍정하는 토게나시 토게나리에게 반했습니다.
분노도 기쁨도 슬픔도 모조리 담아 진심을 노래하는, 변함없이 뜻을 관철하는 것에 빛남을 깨닫게 해준 걸즈 밴드 크라이가 말합니다.
사라지고 싶던 나는 이제 없어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야 너와 만나 싹이 터버린
운명의 꽃
-13화 삽입곡, 운명의 꽃(I'm here)-
동의합니다. 이거 완전 2기를 위해 남겨둔 거 아니냐구
마지막에 등장인물들의 후일담이 없다는건 2기를 내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ㅠ
현실이 앞을 막아도 틀리지 않앗음을 말하는 락 그 자체인 애니엿습니다 벌써 3번은 돌려본듯..
그쵸ㅋ 노래야 충분하고 풀3D라 기존꺼 쓰면되니 시간도 얼마안걸릴듯 다만 2기에서는 다이아몬드 더스트한테서 좀 졸업했으면 좋겠어요 입만 열면 모모카상 아님 다이몬드 더스트...
마지막에 등장인물들의 후일담이 없다는건 2기를 내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ㅠ
동의합니다. 이거 완전 2기를 위해 남겨둔 거 아니냐구
박유수
그쵸ㅋ 노래야 충분하고 풀3D라 기존꺼 쓰면되니 시간도 얼마안걸릴듯 다만 2기에서는 다이아몬드 더스트한테서 좀 졸업했으면 좋겠어요 입만 열면 모모카상 아님 다이몬드 더스트...
오타쿠는 수미상관 연출을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2기 출연을 사퇴하면 안돼! 지난 분기 음악들 중에 가장 귀를 매료 시켰던 곡이 空の箱였어요. 空の箱가 토게(가시) 아리아리(가득한) 느낌이였다면 運命の花는 그린데이의 명곡을 떠올리게하는 인트로로 시작되는 토게 나시나시 분위기의 좋은 곡이였다고 생각해요. 운명의 꽃이 2기를 꽃피울 운명의 꽃이기를 (새끼 손가락을 세우며) 2기 나시? 2기 아리!
저도 빈상자 제외하면 노래가 취향에 잘 맞지는 않았는데 운명의 꽃은 확실히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옆집 봇치처럼 노래만 내지말고 제발 2기도 같이 오기를..
현실이 앞을 막아도 틀리지 않앗음을 말하는 락 그 자체인 애니엿습니다 벌써 3번은 돌려본듯..
볼수록 연출이나 구도도 다시 보이는 게 여러 번 볼 가치도 충분한 작품입니다!
엔딩에서 스바루 머리자른게 다음편 제작을 편하게 하려는 밑밥이었으면 좋겠네요.
엔딩영상이 후일담을 그린 거라는 설이 있던데 그린 김에 그대로 2기까지 제발..
2D 연출이 나오면 더 어색한 작품. 작품 자체는 너무 잘만들었음. 그래서 극장판이나 2기는 언제?
극장판이라도 좋으니 나와다오..
진짜 적으신 글에 동의하며 읽었습니다. 특히 후반부에 니나같은 타입이 옆에 있으면 힘들고 피곤할거라는 문구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네요. 저도 이 작품은 니나라는 인물이 이 작품의 개연성과 주제를 담당하면서 이 작품만의 매력을 잡아주는 중요 역할을 했다 생각합니다. 때문에 13화에서 토게나시 토게아리라는 밴드가 맞는 엔딩이 정말 좋았습니다. 2기가 빨리 나오길 소망하며.,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ㅎㅎ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엔딩이 조금 평범하게 프로로 성장하는 내용이 되지않을까 걱정했었는데 토게나시 토게아리 답게, 걸즈 밴드 크라이 답게 뜨거운 엔딩을 보여줘서 너무 좋았습니다. 2분기는 유독 2기 결정된 애니메이션이 많던데 걸즈 밴드 크라이도 부디 2기가 빨리 확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까진 "올해의 애니" 다음이야기 얼른 보고 싶어요
맞아요. 토모, 루파의 자세한 이야기도 궁금하고 인디 전환 후의 토게토게의 이야기도 너무너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