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밤의 아리아
짧았다. 시야가 가려지는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시야가 가려지고 난후, 그들의 동공에 비쳐진것들은 너무나도 어이없는 것들이었다. 유신은 허탈한 웃음만 내뱉을뿐이었고, 세리아와 크라인은 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유신은 너무나도 잘 안다는 듯이 한쪽입고리를 올린체, 허탈한 웃음을 짓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크하하, 흐흑, 아니길.. 바랬는데! 크흐흑!”
허탈한 웃음소리는 어느 순간 한 맺힌 울음소리로 바뀌어버렸고 세리아와 크라인은 그런 유신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할만큼 그들의 시야에 보이는 물체에 대해서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으아아아! 아니길 바랬는데! 왜!!”
유신은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흐느꼈다. 그의 동공에 비춰지는 물체, 어둠속에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할만큼 어두웠지만 그 물체는 그들의 시야에 정확하게 보이고 있었다.
“.....아니길 바랬는데”
유신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공허한 눈으로 그 물체를 응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주먹크기만한 물체는 그 에메랄드 색의 영롱한 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젠장”
유신은 에메랄드 빛의 조그만한 구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생겨난 결계에 의해서 그의 손은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의 손이 튕겨나가자, 에메랄드빛을 뿜어내는 조그만한 구는 놓여있던 둥그런 탁자위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안돼!”
유신은 떠오르고 있는 구를 잡으려고 손을 다시 뻗었지만, 또 다시 결계에 의해서 막혀져 버리고 말았다. 너무나도 위험해 보이는 물건, 영롱한 에메랄드 빛을 뿜어내는것과 달리 암기를 뿜어내고 있는 구.
“.....용봉석”
용봉석, 드래곤의 힘을 가두어서 그것을 보석같은 돌로 가공시켜 만든것, 하지만 그것의 대가는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도 금지되어있는 행위중 한가지이다. 용봉석의 재료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아니 드래곤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끔찍했다.
“도대체, 왜!”
드래곤의 마나를 가둠으로 인해서, 많은 암기와 선기가 뿜어져 나오는 용봉석, 하지만 지금 유신의 눈앞에 놓은 용봉석은 암기만을 뿜어내고 있었다. 용봉석의 마력(암기) 때문에 아까 전의 사건들이 일어날수가 있었다. 흑마법사가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용봉석의 암기라면 저정도는 식은 스프먹기보다 쉬웠을테니까 말이다.
“.....어리석다”
암기를 띄고 있다는 것은 블랙드래곤 계통의 드래곤일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용봉석에서 선기를 빼낼 방법은 하나밖에 있지 않았다. 암기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 제물을 바치는 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암기는 선기를 집어삼키게 되고 선기를 쫓아내는것보다 더욱더 큰 효력을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제기라알!”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용봉석의 힘을 막을수는 없다. 아니, 막을수는 있겠지만 자신보다 더욱더 오래산 드래곤의 힘이라면 절대로 막지 못한다. 그리고 그 힘에 먹혀버린다면 그대로 소멸해버린다. 그렇기에 유신도 성급히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크라인과 세리아는 유신이 암흑속으로 사라져 버리자.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특별히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신은 드래곤이 아니던가? 그래서 조금더 여유를 가지고 담소를 나눌수가 있었다.
“그런데 아까 본 에메랄드 빛은 뭐지? 유신님은 그걸보고 뛰어갔잖아”
세리아의 말에 크라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모르겠어, 드래곤의 일을 우리가 알게 뭐야. 한가지 확실한건 우리는 도움이 안될거라는 사실이야”
크라인은 자신의 검 손잡이를 매만지며 실소했다. 나름대로 실력을 자부하던 자신이었지만, 여기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드래곤이 있어서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이 너무나도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인간이란 것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느낄때야 말로.....’
크라인은 조금씩 몸을 일으키면서 조용히 속삭였다..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것이다.“
“뭐라고 했어?”
세리아는 크라인이 알 수 없는 말을하자. 자신도 몸을 일으키면서 물었다. 하지만 크라인은 그 말에 대답을 해주기는 커녕,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리아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양 골반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쳇, 이상한 사람이야”
“그리고 넌 이상한 사람의 동생이지”
“흥! 그런거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다구”
“중요한거는 지금은 그따위라는 거지, 안그래?”
“......”
세리아는 크라인의 말에 아무말하지 못하고 경직되어버렸다. 그리고는 콧웃음을 치며 돌아섰다. 하지만 세리아와 오랫동안 지내보았던 크라인은 그런 세리아를 오히려 추궁했다.
“세리아, 지금 상황에 만족해야지. 안그러면 너에게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찾아오지 않을꺼야,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것은 안좋은거야, 어느정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만족하면서 살아가야지. 너무 그렇게 부정적으로 사는 것은 좋지 않아”
크라인의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추궁이 끝나자, 세리아는 평소같은 모습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에휴, 오빠의 추궁에 당할자가 있으리?”
“세리아, 유신이라는 분이 있잖니”
“그 사람은 드래곤이잖아!”
“근데, 넌 ‘당할자’ 라고 했지 ‘당할사람’ 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어”
크라인의 추궁이 또 다시 정곡을 찌르자, 세리아는 한쪽 가슴을 감쏴지며 쓰러지는 시츄에이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크라인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물론, 세리아가 눈치채지 못할정도로 옅은 미소였지만 말이다. 세리아는 원맨쇼를 끝내고 일어나서는 유신이 사라져버린 암흑에 눈길을 주면서 물었다.
“언제 쯤 돌아올까요? 유신님은.....”
세리아는 약간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고 크라인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 분이 걱정이 되는것이냐? 참으로 희안하군”
“...뭐가 희안해요.”
“희안하지, 니가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껄?”
크라인은 아까 지었던 씁쓸한 미소를 입에서 떠나보내며, 진심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세리아가 다른 사람을 걱정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금시초문인 사실이었다. 항상 남 앞에서 연약한 척을 하며, 다른 사람을 걱정하기는커녕 걱정받는 것을 좋아했던 세리아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모습은 이번이 처음으로 보는 것 같았다.
“오라버니도 참, 저 같은 연약한 소녀가 다른 사람을 걱정할시간이 어디있다구요”
갑자기 연약한 듯이 한손으로 입을 가리며, 앙탈 같지도 않은 앙탈을 부리는 세리아를 보며 크라인은 크게 웃었다. 이 암흑의 공간이 떠나갈 정도의 그의 웃음소리에 세리아는 흠칫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푸하하하하하!”
갈수록 잦아들생각 않고 더욱더 커지기만 하는 크라인의 웃음소리, 너무나도 호탕한 웃음소리여서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도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세리아의 얼굴을 크라인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더욱더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자, 크라인의 웃음소리가 잦아들면서 크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리아, 이 오라버니가 말했지? 지금의 순간을 만족해야된다는 것을 아니면 너처럼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바란다”
크라인은 뾰로퉁한 얼굴의 세리아의 머리를 다독여주며 말했다. 참으로 남매같은 풍경이 아닐수가 없었다. 크라인의 손길속에서 찰랑거리는 세리아의 긴 플라티나 브론드, 그 둘의 모습은 너무나도 친근해 보이는 남매의 모습이었다.
“.....너만의 모습을 찾거라, 세리아”
혼잣말을 속삭이는 크라인. 세리아는 그 말을 듣지 못했는지, 크라인의 손길 밑에서 행복한 얼굴을 하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꾸밈이 있는 가면이 아닌 자신만의 가면을 쓰기바란다.’
그 시점, 유신은 자리에 주저 앉은채, 공중에 떠있는 용봉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초첨이 없이 흐릿해져 있는 그의 눈동자, 공허한 눈동자에는 조그만한 이슬이 맺혀있었다.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눈가에 조그만한 이슬이 맺혀있었고 이윽고 중력에 의해서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무언가에 홀린듯한 느낌을 주는 유신, 그의 모습에는 핏기란 찾아볼수가 없었다.
“.....케..아..린”
그의 바짝 마른 입술이 떨어지며 말한말 ‘케아린’ 어떻게 본다면 여성의 이름같은 느낌을 주는 말이었다. 그의 마른 입술은 떨리고 있었고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 그의 손 또한 떨리고 있었다. 오로지 그의 공허한 눈동자만 가만히 용봉석을 응시하고 있을뿐이었다.
“.....인간들은 어리석다. 그리고 그 어리석음의 결정체가 여기있다. 언제까지나 믿었던 인간들에게 우리는 배신을 당했고 씻지못할 치욕을 당했다. 너무나도 분했지만 우리는 참았다. 그들은 신에게 축복을 받았다. 우리는 버림받은 존재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 하지만 그들은 불완전한 존재. 그렇기에 축복을 받았고 그들을 받들었다. 그 결과가 여기있다.”
유신은 공허한 눈동자로 용봉석을 응시한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가까이 있어야 들을수 있을정도로 미세한 목소리였다. 그의 마른 입술은 꼭 죽다만 시체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드래곤들은 너무나도 완벽한 존재였기 때문에 신들의 축복을 받지 못했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였기에 신들을 받들고 축복을 받았다. 인간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드래곤들에게도 완벽하지 못한점이 있었다. 그것은...
“‘기억’ 지우고 싶다.”
망각의 축복, 그 긴 세월동안 인간들에게 씻을수 없는 치욕을 당하며 농락당한 그들의 기억은 망각의 축복을 받지 못해서 그 기억들을 평생토록 안고 살아갔다. 죽고 싶지만 쉽게 죽을수 있는 몸이 아닌 것이 바로 드래곤의 몸, 자살이라는 것을 하지도 못하는 그런 존재. 망각의 축복을 받지 못해서 미치는 드래곤들도 속속히 있었다.
“케..아..린”
계속해서 들려오는 이름같아보이는 말. ‘케아린’ 그것이 이름이라면 과연 누구를 뜻하는 말일까? 하지만 유신은 ‘케아린’ 이라는 말을 반복할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눈물만 그의 뺨을 타고 내릴 뿐이었다.
“.....케아린”
아까보다 조금 더 뚜렷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분노’ 라는 감정이 섞여있었다. 용봉석을 보고 있던 그의 눈에서는 아까 전과 다른 맑디 맑은 이슬이 아닌 붉은 색의 선혈이 눈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분노라는 감정에 너무나도 격해져 붉게 변하며 드래곤 아이가 개방되어있었다.
“케.아.린!!!”
너무나도 서글퍼 보이는 분노의 외침, 하지만 그 목소리 조차 어둠에 뭍혀질 뿐이었다. 그의 눈에서는 멈출수 없을 정도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드래곤 아이가 개방되어버린 눈동자로 용봉석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괴성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튀어 올라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팟!
그대로 도약해버린 유신은 완전히 개방되어버린 드래곤 아이로 용봉석을 응시하며 괴성을 지르며 마나가 주입되어있는 주먹을 날렸다.
쾅!
모든 것은 불공평이라는 단어에서 시작이 된다. 그리고 그것에 분노한 생물들이 그것에 반대라는 것을 외친다. 그리고 전쟁이란 것이 일어나게 되고 주종관계라는 것이 성립 하게 되며, 먹이사슬이라는 것이 성립한다. 강자는 약자를 먹는다. 약육강식의 공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인한지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을 강하다 라는 것보다는 지혜롭다 라는 말이 너무나 들어맞을것이다. 그리고 그 지혜롭다 라는 말을 가지고 많은 생물들을 짓밟고 정상에 올라섰다. 약육강식의 피라미드에서 제일 꼭대기에 선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신과 가까워지려고 애썼다. 그들은 신이라는 존재를 믿었고 그들을 받들었다. 모든 것은 약육강식이라는 공식에서부터 시작된것이다.
- 공허한 밤의 아리아 終 -
스토리 2 공허한 밤의 아리아가 막을 내렸습니다.
스토리 전개가 빨랐던 이유는 이제부터가 이야기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극악연재였던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뭐, 기다리는 분이 있는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다음 연재는 14일 졸업식후가 될듯 합니다.
ㅎㅎ 수고하써요..~ 돌아와서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