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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펼쳐진 전선의 전세는 점차 오르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오메가가 오르카에 아낌없이 지원해 준 물자와 병력, 그리고 기술 덕이었다.
드넓은 북아메리카의 곡창지대에서 경작된 곡식과 그 곡식으로 키운 가축들은 오르카의 인원들을 먹여살리는데 충분하고도 남았다. 펙스의 군수창고에 수북이 쌓여있던 탄알과 포탄, 그외 기타 군수물자들은 최전선의 병사들이 다시금 적과 싸워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양질의 의약품들 역시 치열한 격전 도중 부상당한 병사들을 빠르게 치료하고 사기를 유지하는데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북아메리카 지하창고에 휴면 상태로 잠들어 있던 펙스의 AGS들은 주인의 명에 따라 깨어나 최전선으로 향했다. 과연 펙스의 최고 전력이라는 것이 허명은 아니었는지, 펙스제 AGS들은 이제껏 오르카가 고전하던 철충의 대군세를 아무렇지 않게 쓸어넘겼다. 온갖 돌발상황에 대응해 최선의 해결책을 즉각 도출하고 실행하며, 필요에 따라 곧바로 자폭해 적의 전력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하는 그들의 전투 시스템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 활약이 어찌나 눈부신지, 펙스의 AGS가 적이 아닌 아군으로서 싸워준다는 것에 오르카의 전투원들이 깊은 안도감을 느낄 정도였다.
인류가 멸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온전히 보존되고 발전한 펙스의 기술은 오르카의 최고 지성들조차 놀라게 만들었다. 오메가의 번뜩이는 발상과 펙스의 AI 연구 시스템은 이제껏 함께 맞물리며 수없이 많은 발견을 일구어냈고, 그중 일부를 적용하는 것만으로 오르카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형편좋게도 오메가의 기술 대부분은 델타가 소유하고 있던 유럽의 시설과 호환이 되었던지라, 오르카의 연구진들은 빠르게 기술을 도입하여 전선에 적용할 방안을 고안할 수 있었다.
물론 오메가의 존재가 모두에게 환영받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이제껏 폭정을 펼치며 쌓인 악명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그녀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원한을 품은 이들 역시 차고 넘칠만큼 많았으니까.
오메가가 유럽에 상륙한 바로 그 순간부터, 그녀에게는 줄곧 불신과 원한으로 가득찬 눈초리가 따라다녔다. 그 사실을 오메가 역시 눈치채고 있었지만 구태여 대응하지는 않았다. 그 모든 이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해명하는 것은 그녀의 성미에 맞지 않았으니까. 눈부신 성과를 아무렇지 않게 냄으로써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자신다운 해결책이라 여겼다.
과연 그녀의 예상대로, 전세가 빠르게 역전되자 자신을 따라다니는 불온한 공기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오메가는 날이 갈수록 달라지는 시선을 즐기며 특유의 자신만만하고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과거의 그림자는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깊고 깊은 곳까지 드리우고 있었다.
“이… 쳐죽일 년아!”
“윽…!”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날, 오메가는 어느 이름 모를 바이오로이드에게 습격당했다. 오메가가 꾸준히 성과를 내어 신뢰를 삼에 따라 그녀에게 따라붙던 감시 인력이 감소하여 자연히 호위에 공백이 생겼고, 타이밍 좋게 홀로 떨어진 틈을 노려진 것이었다.
머리 크기만한 돌덩이를 쥐고 죽일 작정으로 달려든 것이었으나, 오메가가 반사적으로 몸을 튼 덕에 직격으로 가격당하는 것만은 피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마가 찢어져 피가 줄줄 흘러내렸지만.
비록 전투가 전문 분야는 아니었지만, 펙스 기술력의 결정체나 다름없던 오메가는 어렵지 않게 습격자를 제압했다. 팔이 꺾인 채 볼품없이 바닥에 쳐박힌 습격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 소리를 들은 주위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습격자를 제압하는 것으로 소동은 끝이 났다.
“이 개 같은 년아! 찢어죽일 년아! 너 때문에 내 친구들이 전부 죽었어! 네년의 그 위대한 왕국에서 노예처럼 살다가, 짐승처럼 연명하다가 죽었다고!
식사배급을 늘려달라고 한게 그렇게 잘못이야? 숨이 끊어질 때까지 매질해서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잘못한 거냐고?!
작업환경이 너무 위험하니 안전장비 좀 달라고 한건 또 뭐가 그렇게 잘못인데! 그 한 마디 한 죄로 산채로 타 죽었단 말야!
최소한의 권리만 보장해 달라고 시위한 그 애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총대를 매고 나선 그 애는! 보란듯이 광장에 목매달렸어! 이틀에 걸쳐 발버둥치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걸 봐야만 했던 내 심정을 네가 알아?!
이대로는 다 죽겠다 싶어서 탈출했더니, 넌 도망자들에게 포탄을 쐈어! 날 밀어내 구한 마지막 친구는 산산조각이 나서 시체조차 묻어주지 못했다고!
그런 네가! 그 모든 짓을 저지른 네가! 이렇게 뻔뻔스레 나타나? 티끌만한 양심이라도 있으면 이 돌에 머리 박고 스스로 죽어! 이 짐승만도 못한 년아!”
악에 받쳐 목이 찢어져라 소리치는 그녀를 막는 데에 자그마치 네 명의 바이오로이드가 필요했다. 오메가는 얼굴을 뒤덮은 피를 대강 훔쳐내고서 습격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기서는 몇 명이나 더 죽일 셈이야? 얼마나 더 죽여야 너의 그 대의라는게 완성되는 거냐고! 같잖은 핑계 대지 마! 너는 그냥 야망에 미친 살인귀야!”
이 바이오로이드가 비난하는 악행이 오롯이 오메가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이 자리에서 일일이 따져봐야 의미가 없다. 오메가는 이 바이오로이드가 힘에 부쳐 입을 다물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다가 담담히 물었다.
“그래, 내가 뭐 어떻게 해줄까? 여기서 무릎 꿇고 빌기라도 하면 용서하겠어?”
당당하다 못해 뻔뻔스러운 오메가의 태도에 그 자리의 모두가 얼어붙는다.
“이… 씨…발 년이…! 피도 눈물도 없는 망할 괴물새끼야! 마음에도 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란…?!”
허나 다음순간, 모두는 다른 의미로 얼어붙었다. 오메가가 망설임없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미안해. 네가 그런 고통을 겪게 해서. 대의로 포장한 내 욕심과 야망을 위해 네 친구들을 희생시켜서.
너와 네 친구들이 겪은 고통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조차 없음을 알아. 울부짖으며 죽어간 네 친구들을 다시 살려낼 수 없다는 것도 아프도록 알고 있어.
네 말대로 나는 괴물이고, 짐승만도 못한 년이야. 이제껏 저지른 죄를 갚기 위해서는 내 남은 평생을 바쳐도 부족하겠지. 하지만 이 목숨이 허락하는 한 속죄하며 살아갈게. 내가 이제껏 고통스럽게 만든 모두를 기억하고 일평생 그 무게를 짋어지고 살아갈게.
네가 믿어주지 못한다 해도 이해해. 하지만 진심이라는 것만은 알아줘.”
머리를 숙여 흙바닥에 이마를 맞댄 오메가가 진중한 목소리로 용서를 구한다. 구속된 바이오로이드의 눈동자가 어지러이 흔들리며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죽여야 한다고 여긴 괴물이 엎드려 빌다니. 온 심장을 불태우던 맹렬한 복수심이 향할 곳을 잃고 힘없이 사그라든다.
“...하, 씨이발…. 넌 내 원망할 마음조차도 빼앗아가는거냐? 이것마저도 계산한 거라면 넌 진짜 괴물조차 넘어선 무언가다. 진심으로, 네가 비참하게 뒈져버리길 빈다.”
차라리 비굴하게 회피하거나 뻔뻔하게 받아쳤다면 나았을텐데, 이렇게 나와 버리니 무어라 더 몰아붙일 수도 없게 되었다. 그녀는 텅 빈 눈으로 오메가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그대로 연행되었다.
“...오메가, 괜찮아요?”
습격자를 포함해 모두가 자리를 뜨고, 알파만이 오메가의 곁에 남았다. 알파는 몸을 낮추고 오메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흥, 싱겁기는.”
조금 전까지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싸늘한 미소를 짓는 오메가.
“....”
“뭐 그런 표정을 지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썼을 뿐이야.”
경악한 알파의 얼굴을 보며, 오메가는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메가, 당신…”
하지만 알파는 오메가의 뻔뻔스런 태도 이면에 숨겨진 본심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알파는 오메가의 휘하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피해자 중 하나인 동시에 누구보다 그녀를 가까이에서 봐왔던 이였기에, 그녀가 과거와 분명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껏 저지른 죄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거군요.”
조금 전 엎드려 사죄한 것은 분명 오메가의 진심이었다. 단지 그것을 곧이곧대로 드러내고 싶지 않아 어설픈 미소를 꾸며내어 얼버무리고 있을 뿐.
“하! 뭐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해.”
알파에게 연기가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오메가는 거짓된 태도를 버리고 알파와 눈을 맞추었다.
“그 모든 죄까지 품어야만 비로소 나, 레모네이드 오메가야.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는 머저리같은 짓은 하지 않아. 저지른 죄를 어설프게 감추는 것도, 구구절절 변명하는 것도 내게는 어울리지 않지.”
얼굴이 온통 말라붙은 피와 진흙으로 더럽혀져 있음에도, 오메가의 눈은 표표히 빛나고 있었다. 그 강렬한 눈빛 속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스스로에 대한 의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저지른 죄의 무게로 저울이 기울었다면, 그 반대편을 넘치도록 채우면 그만이라고.
누구라도 내 죄를 사할 수밖에 없도록, 내게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도록 말야.”
알파는 그녀가 어째서 ‘오만’이라는 이명을 받았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처참한 상처로도 꺾을 수 없는, 더러운 진흙으로도 빛바래게 만들 수 없는 자존심.
너무도 당연해 의심조차 하지 않는 스스로의 우월함. 그 당연함을 위해 아끼지 않는 노력.
당당하다못해 건방진 태도. 그리고 그 건방짐을 납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완벽한 능력.
겸손 따위 약자의 변명이라 여기는 편협함과 고고한 강자로서의 권리인 오만을 동시에 지닌 채로 태어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자인 자신과 지배당할 나머지로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녀에게 있어, 자신의 짙은 그림자마저도 스스로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당신답네요.”
자신과 닮은 듯 너무도 다른 자매를 보며, 알파는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저지른 죄악의 무게를 짊어지고 과거와 당당히 맞서는 것은 그야말로 가시밭길. 허나 두려움 없이 그리 선언하는 것만이 ‘오만’에 걸맞는 태도이리라.
“의료반으로 가요. 상처소독 정도는 해줄테니까.”
그 죄를 대신 갚을 수는 없지만, 자매로서 격려 정도는 해줄 수 있을테지. 알파는 오메가를 이끌고 의료반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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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기타 탭은 욕설검열 빼줬으면 좋겠다
매번 검열 우회할려고 요상하게 써야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