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왔습니다. 차를 한 잔 대접하지 않을 수 없겠죠?
그래서 엘카페의 미얀마 누 수엘리 원두를 40그람 계량했습니다.
대략 커피잔으로는 4잔, 머그로는 3잔 조금 모자란 만큼의 양입니다.
이렇게 세 잔 이상의 커피를 만들어야 할 때 손드립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건 드리퍼 세개 정도를 깔고서 순서대로 내리는 건데,
가정집에서 이렇게까지 쓰고 싶지는 않죠.
그래서 이런 날에는 그냥 커피메이커로 쭉쭉 뽑아 버립니다.
이때 저를 도와줄 친구는 테크니봄 모카마스터 커피머신입니다.
한때는 60-70만원도 하던 제법 고가의 커피메이커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저렴해져서
신형 모델도 30만원 초반대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많은 분들이 커피 관련해서 오해하시는 부분이, 이런 고가의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면
차원이 다른 커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신다는 겁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겠지요???
한우 꽃등심이 맛있는 건 한우꽃등심이라서지 우리 집 후라이팬이 비싸서가 아니니까요.
위와 같은 상대적으로 고가의 장비가 아니더라도, 이삼만원 하는 저렴이 커피메이커로도 충분히 훌륭한 커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고가의 커피메이커를 쓰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거고... 일반적으로 커피를 즐기는데는 저렴이로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아무튼.
내릴 준비를 하기 위해 우선 드리퍼 부분을 꺼내서...
드리퍼 안쪽 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에서처럼 토출구 구멍이 하나고 그나마도 매우 작습니다.
멜리타 드리퍼와 흡사하게 느껴지지만 물길이 되는 리브의 모양은 칼리타 드리퍼와 닮았습니다.
아무래도 멜리타와 칼리타의 중간 정도의 성향을 가진, 강한 바디의 커피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커피 필터는 마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멜리타 정품 필터를 사용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표백된 필터를 선호하는데, 하필 품절이라 이 놈을 구매했습니다.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 많이 나아졌지만 보통 표백필터가 종이의 잡향이 덜합니다.
심지어 멜리타 필터는 다른 필터에 비해 두께도 상당해서 추출 전에 가급적 린싱을 해주는 게 나아 보입니다.
위의 이유로 추출 전에 린싱을 하는 모습입니다.
또한 커피메이커를 사용한지 좀 오래된 것도 있어 기기의 내부세척을 위함이기도 합니다.
린싱한 필터지 위에 분쇄한 원두를 올립니다.
원두의 분쇄도는 드리퍼의 특성, 필터지의 두께와 성향, 사전 린싱의 여부 등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합니다.
미얀마 누 수엘리 커피 자체가 고수율 저농도일 때 가장 훌륭한 맛을 보여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따라서 좀 더 가늘게 분쇄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사용 원두량도 그렇고
드리퍼와 필터가 가진 특성상 자칫 텁텁해질 우려가 있어
일반적인 손드립에서 사용하는 분쇄도보다는 조금 굵게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커피메이커 특성과 제법 좋은 궁합을 보여줄 걸 기대해 봅니다.
드리퍼를 장착하고 물탱크에 물을 채웁니다.
물은 650ml 정도 사용합니다. 추출 결과물은 대략 600ml 정도가 될 듯하네요.
일반적으로 메이커를 이용할 경우 커피와 물의 비율을 1:15 정도를 사용하지만
원두의 품질을 믿고 조금 더 사용했습니다. 나중에 그만큼 후회도 했지만요. ㅎㅎㅎ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면 스위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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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추출과정의 사진은 깜빡하고 찍지를 않았네요.
어차피 온도를 보존하기 위해 드리퍼 위에 뚜껑을 덮어놨기 때문에 찍어봤자 별 의미없었겠지만요.
암튼 이렇게 4분 정도 기다리면...
물이 모두 빠지고 추출이 멈춥니다. 이때,
드리퍼의 토출구 마개를 잠그는 스위치를 내린 다음 아래의 서버를 분리합니다.
위와 같이 하는 이유는 아직 드리퍼 안에 남은 추출액이 아래로 흘러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멜리타 계열의 드리퍼의 경우 드리퍼 상에 물이 다 빠질 때까지 커피를 추출하면 심하게 텁텁한 맛이 나곤 합니다.
아무래도 드리퍼의 구조상 커피가루가 물에 잠기는 침지가 일어나기 쉬운 탓으로 여겨집니다.
드리퍼를 분리한 후 남아있는 추출액을 다 제거한 상태의 모습입니다.
전반적으로 골고루 잘 추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반 저렴이 커피머신에 비하면 물이 균일하고 넓게넓게 잘 퍼져나가거든요.
이제 얘는 잘 치워서 버리면 그만이고....
분리한 서버에 약 100ml의 물을 가수합니다.
대략 700ml의 커피를 얻었습니다.
참고로 테크니봄 서버는 보온기능이 있습니다.
뚜껑을 닫아두면 서너 시간 정도는 충분히 온도유지가 되더라구요.
이제 컵에다 옮겨 담고 커피를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커피가... 으음... 욕심이 과했습니다. 조금 과다추출이 되었어요.
50ml 욕심부려 더 부은 것이 독이 되었습니다.
40에 600을 사용하고 100의 물을 가수했으면 훨씬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왓을텐데.
아니면 30의 원두에 450의 물을 사용해서 좀 더 깔끔하게 즐겼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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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커피입니다.
위와 같은 고민이야말로 커피생활의 즐거움이기도 하죠.
다음 번의 커피를 더더욱 기대하게 만드니까요.
아무튼 커피메이커도!!! 잘만 내리면 손드립 못지 않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더더욱 훌륭한 결과물을 제공해주기도 하구요.
제가 항상 느끼는 거지만 대중적으로 가장 평가절하된 커피기기가 바로 이러한 일반 커피메이커라고 생각해요.
유지비, 커피품질, 사용편의성 모두 여타 기기들을 압도하지만 왠지 사람들은 싸구려라고 생각하더라구요.
제가 위에서 사용한 비교적 고가의 머신의 경우, 비싼 이유가 별게 아닙니다.
매회 추출때마다 거의 동일한 추출양상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추출변수 통제가 용이하고 어떤 원두든 간에 최고의 퍼포먼스로 추출이 가능하다는 건데....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그 정도의 차이, 딱히 욕심날 정도는 아니거든요.
톡 까놓고 전혀 추출 통제가 되지 않고, 좋은 품질의 원두도 그다지 많지 않은 캡슐커피들에 비하면
일반 메이커로는 커피의 질과 향을 차원이 다른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게 가능합니다.
심지어 관리도 더 편해요. 아닐 거 같죠?
그런데 실제로 써 보면.... 깨끗하게 쓰기로 하면 캡슐머신이 손 갈 일 더 많고
지저분하게 쓰기로 작정하면 반대로 일반 커피메이커 쪽은 수고로울 일이 없어요. ㅎㅎ
그냥 일반 커피메이커와 10만원 정도 하는 그라인더만 구매하시고,
커피와 물의 비율 1:15만 잘 지키시면 그걸로 그만입니다.
여기에 커피 뜸 들이는 법만 조금 응용하시면 웬만한 동네 까페는 다 씹어먹는 커피를 매일매일 저렴하게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커피 마시면 마실수록 참 재미있습니다. ㅎㅎㅎ
그러니,
다들 즐 커피들 하세욥.
- 끝 -
정성글은 추천!
최적의맛을 위해 추출하는건 항상 어렵네요 각각 원두에 대해 잘 알아야 하겠죠 ㅋ
최고가 나오지 않아도 이정도면 되었다... 하고 마시면 그만인 것도 커피의 매력인 거 같아요. ^^
사실 커피메이커가 편하긴 하져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