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어김없이 만들어 본 슈톨렌.
CIA 재학 당시 먹어 보고는 그 맛에 반해서 한국 돌아와서도 계속 만드는 중입니다.
제과제빵 교과서인 "Baking and Pastry: Mastering the art and craft - Third edition"에 나온 레시피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단, 책에 나온 레시피대로 하면 너무 많기 때문에 절반으로 줄여서 계량합니다.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은 과일 절임. 노란 건포도(없으면 일반 건포도) 500g, 레몬 껍질 설탕절임 150g, 오렌지 껍질 설탕절임 65g을 다크 럼 50g에 버무려서 최소 8시간에서 24시간 상온에 보관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건 슈톨렌 만들면서 아예 그 자리에서 내년 크리스마스에 사용할 과일 절임을 미리 만들어두는 겁니다.
당도도 높고 알콜도수도 높으니 건과일을 럼주에 담가서 냉장고 구석에 박아두면 일 년 동안 상할 걱정 없이 계속 절여둘 수 있습니다.
중간중간 파운드 케이크나 다른 빵, 과자류 만들 때마다 덜어낸 만큼 채워넣으면서 계속 사용해도 좋구요.
아몬드190g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껍질을 벗겨 준비합니다. 숙성된 과일 절임과 함께 섞으면 과일너트 믹스 완성.
강력분 310g, 29도 정도로 따뜻하게 데워준 우유 190g, 인스턴트 드라이 이스트 15g을 반죽기에 2분 정도 돌립니다.
글루텐이 형성되면서 반죽에 탄력이 생기면 24도 정도에서 3~40분 가량 발효시킵니다.
뒤에 히팅 보울은 27도로 설정해놨는데, 전문적인 발효기가 아니라서 빵 반죽 만들 때는 원하는 온도보다 3~4도 정도 높게 설정해햐 하더라구요.
이렇게 만든 발효용 반죽을 '스펀지'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빵에 비해 소금이나 알콜 등 이스트 번식을 막는 재료들이 많아서 한 번에 다 섞어버리면 잘 부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미리 스펀지를 만들어서 빵이 잘 부풀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스펀지 반죽, 강력분 310g, 실온에 둬서 말랑해진 버터 340g, 아몬드 페이스트 30g, 설탕 30g, 소금 15g, 레몬 제스트 3.5g, 향신료(클로브, 생강, 올스파이스, 시나몬) 약간을 반죽기에 넣고 3분 정도 돌려줍니다.
원래 레시피를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데, 이 재료들을 다 넣으면 가정용 반죽기 용량으로는 거의 한계에 가까운 분량이 나옵니다.
크리스마스 슈톨렌은 많이 만들면 만드는대로 주변에 나눠줄 곳은 많으니 남는 걸 걱정할 이유는 없지만, 두 번에 걸쳐 나눠서 반죽하려면 손이 너무 많이 가거든요.
반죽이 끝나면 35분 정도 기다려서 반죽이 두 배 가량 부풀어 오르도록 합니다.
발효가 끝난 반죽은 밀방망이로 펴서 과일절임을 위에 깔고, 반으로 접어서 다시 편 다음 과일 절임을 또 까는 것을 반복하며 섞어줍니다.
그냥 무작정 다 섞어버리면 이스트가 급성 알콜중독으로 사망할 수 있으니 이런 식으로 조심스럽게 반죽합니다.
빵 반죽과 과일 절임이 골고루 섞이면 다시 15분 가량 발효시킵니다.
슈톨렌은 뭐 엄청난 기술이나 고급 재료가 필요한 건 아닌데, 이렇게 매 단계마다 쉬어가야해서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게 특징입니다.
덕분에 설거지를 바로바로 해치워버릴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요.
반죽을 약 450g 정도의 덩어리 네 개로 나누어서 둥글게 모양을 잡고, 다시 15~20분 가량 내버려둡니다.
처음에는 450그램짜리 하나와 300그램짜리 5개를 구울까 생각도 했는데, 오븐에 하나씩 구워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6개와 4개는 한 시간 십 분 차이. 이미 밤이 깊었는데 한 시간 넘게 더 걸릴 것을 생각하니 그냥 450그램짜리 네 개로 타협합니다.
반죽을 밀방망이로 밀어서 편 후 반으로 접습니다. 날개(?)부분을 얇게 밀면 사진처럼 한 쪽은 얇고 다른 한쪽은 불룩 솟아나오게 됩니다.
불룩 솟아나온 부분을 밀방망이로 꾸욱 눌러서 계곡을 만든 다음, 얇은 날개 끝부분부터 둘둘 말아서 움푹 들어간 계곡 속으로 넣어줍니다.
혹자는 이 과정을 "포대기로 돌돌 감싼 아기 예수님을 요람 대신 말구유에 넣은 성경 구절"을 형상화한 거라고도 하더군요.
이 방법 외에도 그냥 심플하게 반으로 접거나, 반죽 덩어리에 쿠프(칼집) 내는 방식 등 사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모양을 잡습니다.
모양이 잡힌 슈톨렌은 오븐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30분간 휴지시켜줍니다.
180도 오븐에서 35분 가량 구워줍니다.
당연히 집집마다 오븐 온도가 다르므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부 온도가 93도가 되었는지 온도계로 찔러서 확인하는 겁니다.
심지어는 제 경우엔 작년에 했던 셋팅 그대로 했는데도 좀 덜 구워지는 바람에 굽는 시간을 더 늘려야 했더랬지요.
다 구워진 빵이 살짝 식어서 손으로 만질 수는 있지만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을 때, 녹인 버터를 듬뿍 바르고 설탕에 파묻어버립니다.
설탕을 듬뿍 바르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이왕이면 높이가 있는 팬에 설탕 깔고 빵을 얹은 후 설탕을 다시 부어서 덮어버리는 것을 선호합니다.
이쪽이 더 효과적으로 빵의 수분을 제거하고, 달콤한 맛을 더하고, 무엇보다도 눈이 내려 파묻힌듯한 풍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설탕에 파묻은 슈톨렌을 하루 정도 묵혀둡니다. 다음날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설탕 무더기를 보면 정말 갓 내린 눈을 보는 기분이 듭니다. 그 하얀 눈밭에서 겉부분이 딱딱하게 굳은 슈톨렌을 꺼낼 때면 마치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처음으로 밟는 기분도 들지요.
이렇게 해도 어차피 설탕 2~3kg 정도면 충분한데다가, 슈톨렌을 파묻었던 설탕은 다시 지퍼백에 담아서 '슈톨렌 설탕'이라는 라벨을 붙인 뒤 제과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낭비도 아닙니다.
반면에 버터는 제과점에서 만들 때는 커다란 통에 왕창 녹여서 슈톨렌을 아예 담갔다 빼는데, 집에서는 그런 식으로 하려다간 버터값만 해도 무진장 나가게 됩니다.
설탕에 재워뒀던 슈톨렌은 마지막으로 슈거파우더를 듬뿍 바르고 뿌려서 한 조각씩 썰어먹으면... 안됩니다.
슈톨렌의 진가는 이렇게 슈거파우더에 묻어놓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맛있어지는데 있기 때문이지요.
일단 한 조각 먹어보고 '이 맛이 슈톨렌인가!'라고 느낀 다음, 일주일 지나서 다시 먹어보고 '이 맛이 진짜 슈톨렌이구나!'라고 놀라게 됩니다.
그래서 슈톨렌은 크리스마스 2~3주 전에 만들어서 한 조각씩 집어 먹으며 점점 더 맛있어지는 그 과정을 즐기는 케이크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점점 다가오는 것을 축하하듯, 빵도 점점 더 맛있어지는 거지요.
넉넉하게 구워 주변에 나눠주면서 기쁨을 나누기도 좋은 빵입니다.
사진도 찍었겠다, 잘라놓은 슈톨렌을 진공 포장합니다.
원래 슈톨렌은 가운데 부분을 썰어서 먹고, 잘린 단면끼리 붙여서 보관하는게 원칙입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덕에 미리 몽땅 썰어놓고 진공 포장해버리면 먹을 때마다 썰어야 하는 귀찮음에서 해방됩니다.
물론 슈톨렌이 사라지는 속도 역시 그만큼 빨라지는게 단점이지만요.
450그램짜리 네 개를 만든 게 벌써부터 후회가 되네요.
여기저기 선물할 곳은 많은데 슈톨렌 사라지는 속도를 보니 이대로 가다간 다 먹어치우겠다 싶어서입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반죽기 하나 더 주세요!'라고 편지를 써놓고, 슈톨렌 한 조각과 따뜻한 우유를 선물로 바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조개빵 맞습니다. 성 야고보가 죽고 나서 그의 관을 조개들이 덮어 보호한 뒤로 조개가 산티아고의 상징이 되었고,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걷던 순례자들은 조가비를 달고 다니면서 보여줌으로써 식사와 숙박을 제공받곤 했거든요. 그런 순례자들을 위해 조개 모양으로 빵을 구운 것이 마들렌이니, 조개빵 맞지요 ㅎㅎ
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입니당! 이쪽이 중앙정보부보다 더 빨랐습니당 ㅋㅋ
CIA라기에 코로먹는크리스마스슈톨렌인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제과제빵은 너무 어려워보여서 집에서 해볼엄두가안납니다.
빵은 뭐랄까.. 처음에 좀 어렵다가 손에 익으면 쉬워졌다가 제대로 만들려면 다시 엄청 어려워지는 그런 느낌이죠 ㅎㅎ 기본 도구만 갖춰지고 계량만 잘 하면 그래도 일정 수준 이상은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역시 잘만드시는군요 ! 잘봤습니다
역시 잘만드시는군요 !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CIA라기에 코로먹는크리스마스슈톨렌인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제과제빵은 너무 어려워보여서 집에서 해볼엄두가안납니다.
빵은 뭐랄까.. 처음에 좀 어렵다가 손에 익으면 쉬워졌다가 제대로 만들려면 다시 엄청 어려워지는 그런 느낌이죠 ㅎㅎ 기본 도구만 갖춰지고 계량만 잘 하면 그래도 일정 수준 이상은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와 맛있어 보여요
맛있습니다! ㅎㅎ
옛날에 여자친구랑 데이트 할 때 마들렌 보고선 야 이거 조개빵 맛있다~ 했다가 여자친구가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빵 이름들 너무 어렵...
조개빵 맞습니다. 성 야고보가 죽고 나서 그의 관을 조개들이 덮어 보호한 뒤로 조개가 산티아고의 상징이 되었고,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걷던 순례자들은 조가비를 달고 다니면서 보여줌으로써 식사와 숙박을 제공받곤 했거든요. 그런 순례자들을 위해 조개 모양으로 빵을 구운 것이 마들렌이니, 조개빵 맞지요 ㅎㅎ
순간 나도 CIA 라길래 어딘가의독재자가 즐겨먹던 레시피인데 너무맛있어서 보관한건가 싶었네…..
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입니당! 이쪽이 중앙정보부보다 더 빨랐습니당 ㅋㅋ
맛있어지는 과정을 즐기는 케이크라니 참 멋진 표현이네요
CIA 라는 단어는 알고 있어도 볼때마다 흠칫하게 됩니다 ㅋㅋㅋㅋ
넘나 맛있겠네요. 슈톨렌 받은 지인분들 부럽습니다.
슈톨렌 맛있겠네요!ㅎㅎ 전 전직하고 이사다니면서 레시피랑 도구 다 버렸는데 가끔 왜그랬을까 후회하면서 이불을 찹니다... 새로 하나씩 사는데 눈물이 닙니다ㅋㅋ
역시 발효가 들어가는건 품이 장난 아니군요
CIA에서 나왔습니다
다음엔 FBI 레시피로 만든 슈톨렌을... 40075km 글은 술~술~ 읽혀서 좋습니다. 즐거운 연말 되시기 바랍니니다.
검정색 정장 입은 분들은 안보이네요? ㅋㅋㅋ
루리웹-2623096615
아마 조금 덜 달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래도 마지팬 역시 설탕 덩어리다보니.. 슈톨렌이 독일의 가정식이다보니 레시피도 천차만별이고 그 중에 어떤게 오리지널이라고 콕 찝어 말하기도 애매하고 그렇습니다 ㅎㅎ
이거 설마 제빵이 취미는 아니신거죠?
취미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직업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좀 애매합니다 ㅎㅎ
보는내내 [언제 랭글리가 튀어나와서 코에다 빅맥을 넣는가] 두근두근 하면서 봤는데 제 기대를 배신했군요. 맛있겠다... 하지만 집에 오븐은 커녕 냄비 하나뿐인 살림으론 그냥 빵집가서 사먹는 수밖에 없네요.
요즘 첩보원들은 요리도 잘하네~
미국 세글자 기관이 다 무서운곳만 있는건 아니군요? ㅎ
이제 저걸 미국의 적에게 항문으로 먹이겠군요.... 근데 제가 만들어본건 마지팬을 반죽으로 싸는 거였는데, 이 레시피에는 마지팬이 안 들어가나 보네요?
볼 때마다 첩보기관으로 착각하다 아 여기 요리 관련 기관이였지 하고 바로잡게 되네욬ㅋㅋㅋ 품도 많이 들고 저거 만들 기자재가 없기도 하니 저는 그냥 근처 빵집에서 저걸 팔길 바라면서 사먹거나 아니면 비슷한걸로 때워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CIA에서 독살용으로 쓰는 슈톨렌 만드는법인줄 알았습니다.
저 빵 안에 도청기가 숨어있어!
먼저 드세요 님먼저 ㅎㅎ
와 슈톨렌 진짜 맛있던데.. 직접 만드시다니 완전 금손이시네요
이게 독일 가정식에 속하는거라 의외로 만드는 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ㅎㅎ
슈톨렌을 대전 성심당에서 파는것밖에 못먹어봤지만 진한 향이 나는 빵이라 커피,홍차가 마시고 싶어지는 맛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