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문화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사업설명회를 했는데, 분위기 타다가 '가끔은 직접 만든 간식을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걸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만들어보는 오늘의 도서관 간식, 이탈리아식 우유 푸딩인 '판나코타'입니다.
이탈리아어로 '요리한 크림'이라는 뜻을 가진, 그야말로 직관적인 이름이지요.
재료 역시 별다른 게 없습니다. 우유, 유크림, 설탕, 소금, 그리고 젤라틴이 전부지요.
CIA 레시피에 따라 버터밀크 850, 크림 910, 설탕 340, 판젤라틴 7장(과 물110), 소금 약간을 기준으로 하되 버터밀크는 구하기 힘드니 우유로 대체하고 그 대신 양을 늘려 우유 910에 크림 910으로 맞춰줍니다.
이걸 모조리 세 배로. 우유와 크림을 1리터 단위로 팔기 때문에 각각 3리터씩, 설탕과 젤라틴도 이에 맞춰 양을 늘려줍니다.
또 한가지 차이점이라면 마트에서 판젤라틴을 팔지 않아서 가루 젤라틴을 대신 사용했네요.
가루젤라틴은 판젤라틴에 비해 골고루 녹이는데 주의가 필요합니다.
물에 10분 정도 불렸다가 따뜻한 우유에 녹이는데, 덩어리 없이 다 녹았는지 확실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녹이는 것보다도 더 신경쓰이는 건 비율 환산.
레시피를 세 배로 늘려야 하고, 판젤라틴 무게를 계산해서 가루 무게로 환산하는데 가루는 점성이 강해서 75%만 사용합니다.
판나코타는 젤라틴을 제대로 넣는게 거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니 신경을 써야 합니다.
젤라틴을 너무 적게 넣으면 굳지를 않고, 너무 많이 넣으면 푸딩이 아니라 젤리가 되어버리니까요.
그렇게 계산 다 끝내고 우유를 부으면서 알아차린 사실.
"냄비가 작다!"
그래도 나름 커다란 국냄비라서 신경 안썼는데, 부어보니 4리터가 한계입니다.
어쩔 수 없이 두 번 작업하게 됐네요.
우유와 크림을 두 통씩 넣고, 설탕과 젤라틴은 계량했던 것의 2/3씩만 넣어줍니다.
팔팔 끓이면 안되고, 김이 살짝 올라오는 수준으로 가열해서 설탕과 젤라틴이 다 녹도록 잘 저어줍니다.
그리고 어지간히 식으면 플라스틱 컵에 넣어 냉장고에서 식혀줍니다.
이래저래 계산해서 만들었는데 딱 계산한대로 30개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며 '오늘도 쩔었다!'를 외칩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도 잠깐.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굳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마다 툭하면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얘들아, 아빠가 수학만 잘했어도 서울대를 갔을거야."
수능 때 수학 빼고 다른 과목 다 합쳐서 3개 틀렸는데 수학은 정확하게 절반 틀렸거든요.
그 실력이 어디 안갔는지, 중간에 뭔가 계산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아니면 미국 요리학교에서 사용하는 판젤라틴 국내에서 쓰는 젤라틴의 강도나 무게가 달랐을지도 모르지요.
결국 다시 냄비에 다 붓고, 젤라틴을 더 녹여 넣었습니다. 그제서야 제대로 굳기 시작하네요.
요리학교에서 셰프가 학생이 망친 요리를 되살려내며 "진짜 요리사는 맛없는 걸 맛있게, 맛있는 건 더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게 떠오릅니다.
냉장고에서 굳을 생각을 안하는 판나코나를 보며 "망했다, 망했어. 그냥 마트에서 과자나 사서 간식으로 줘야지"가 아니라 "이걸 어떻게 되살려내지?"라고 궁리하는 것 역시 그런 배움의 결과물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 날 아침.
탱글탱글하게 굳은 판나코나 29개를 일렬로 쫙 깔아놓고, 밀크 저그에 옮겨담은 캐러멜 시럽을 부어줍니다.
국내에는 바닐라빈이나 바닐라 에센스를 넣는 레시피가 많은데 이번 요리에서는 생략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쓰는 시럽이 1883인데 이 회사의 캐러멜 시럽이 냄새가 좋거든요.
뚜껑 닫아놨다가 여는 순간 강력하고 달콤한 캐러멜 향이 솟아오르는데, 굳이 비싼 바닐라를 또 넣을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판타코타 30개에 들어갈만한 바닐라 빈의 가격은 무시무시하다는 게 더 큰 이유지만요.
시원하면서도 고소하고 달콤한 판나코타 완성입니다.
제대로 될까 조마조마했는데 순두부마냥 탱글탱글하면서도 사르르 녹는 식감이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만족스러운 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게 뭐예요?" 물어보며 조심스레 가져가서 한 입 살짝 먹어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엄청 맛있다를 연발하며 다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는 겁니다.
"카페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맛있어요!"를 외치는 모습에 오늘도 흐뭇한 기분입니다.
...사실, 재료 원가를 생각하면 카페보다 맛있을 수밖에 없지만요 ㅎㅎ
판나코타 맛있죠..... 집에 판젤라틴이 썩어가고 있었는데 자극받았습니다. 만들어야겠어요.
여전히 요리 솜씨가 대단하시네요!
이거 30개인줄
탱글탱글 맛있어 보이네요
뿌듯하시겠네요 ㅎㅎ
탱글탱글 맛있어 보이네요
판나코타 맛있죠..... 집에 판젤라틴이 썩어가고 있었는데 자극받았습니다. 만들어야겠어요.
뿌듯하시겠네요 ㅎㅎ
와... 대단하시네요 ㅎ
어느 도서관입니까!!!!
우와 대단하세요!! 버터밀크가 없으면 우유+레몬주스 아님 요거트+우유로 대체하셔도 되요. :)
도서관에서 공짜로?컼
와 이거 너무 맛있겠다...!
여전히 요리 솜씨가 대단하시네요!
어지간한 쉐프들뺨치는 힘을숨긴 사서님!
저는 라즈베리 시럽을 뿌린 레몬 판나코타를 좋아합니당ㅎㅎ 판나콬타 마시쪙
동남아 뷔페에서 코코넛 판나코타를 먹어보고 맛있어서 깜짝 놀랐었는데 저 판나코타는 진짜 기절맛일듯요; 맛있겠다
우와, 맛있겠다
맛있습니당!
힘든 일을 하시는군요... 저거 하면서 다른 업무까지 할 시간이 있는지 저도 도서관에서 일하지만 기본 업무 하면서 행사까지 준비하는 거 정말 힘든데...
900명분 주문 처내던 경험 덕분이죠 ㅋㅋ
수제 간식이라니 ㅠㅠ 너무 좋겠습니다 다만 과학적인 상식으로(안믿으시는분들이 꽤나 돼더라구요;;;) 따뜻할 때 냉장고에 넣으면 입자의 활동이 더 많아서 더 빨리 식혀 줍니다 굳이 밖에서 온도를 좀 떨어뜨려서 넣기 보다 뜨거울 때 바로 냉장고에 넣는 게 훨씬 더 빨리 식습니다
얇은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라서 식혀서 담아야 합니당... 글구 그게 아니더라도 냉장고에 뜨거운걸 바로 넣으면 다른 음식 보존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외부에서 식혀서 넣거나 급속냉각기를 사용한 다음 냉장고에 넣는게 좋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되시겠지만 조금만 검색을 해보시고 관련 자료들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앏은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는 담을때 부터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더 빨리 식혀 주는게 더 좋습니다 그리고 냉장고에는 (사진으로 봤을때) 다른 음식이 없고 판나코타만 보입니다 나중에 소량으로라도 한번 시도 해보시면 바로 냉장고에 넣는게 훨씬더 맛도 좋고 빠르게 식는다는걸 아시게 되실겁니다
냄비에서 식혀서 플라스틱 컵에 옮겨담은 다음 냉장고에 넣었는데요... 플라스틱 컵에 담을 때는 안뜨거웠어요. 환경 호르몬이나 미세 플라스틱 이슈때문에 조심해야하는 처지라... 그리고 냉장고에 뜨거운 음식 넣지 말라는건 요리학교 다닐 때 배운거입죠. 그래서 집에도 못 가고 얼음물에 스탠 베인마리 띄워놓고 육수 얼른 식으라고 열나게 저었더랬죠. ㅠㅠ
참고로, 가정에서 소량을 냉장보관할 경우에는 말씀대로 뜨거울 때 바로 냉장고에 넣는게 식품위생상으로 더 안전합니다. 대량의 국물같은 경우엔 얼음물 받아서 식혀넣는걸 권장하구요.
이거 30개인줄
왜 안 나오나 했네
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