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보이의 여름방학
―21세기 소년에서 20세기 소년에게로
*
내 별명은 리틀보이랍니다. 다른 꼬마들처럼 꼬추 만지는
게 버릇이라서 곧잘 부모님께 꾸중을 듣곤 합니다. 친구는
가끔 내게 이런 말을 합니다. 리틀보이! 내 꼬추는 우리 아
빠가 잡아온 메기만큼이나 크다구! 무척이나 메기를 좋아하
는 녀석이었죠. 불쌍하게도 그날 밤 녀석의 엄마가 아빠의
메기를 먹어버렸지만 말이에요. 나 리틀보이는 키가 작아
서 학교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습니다. 내 꼬추만큼이나 짧
은 거리에 언제나 선생님이 계십니다. 나 리틀보이처럼 키
가 작으면 꼬추를 함부로 만지지 못해 참 불편합니다. 그래
서 내 별명은 리틀보이이랍니다.
*
오늘은 나 리틀보이의 즐거운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입
니다. 지구의 어떤 꼬마들보타도 꼬추 만지기를 좋아하는
나 리틀보이는 스쿨버스를 타고 집으로 갑니다. 그런데 어
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울립니다. 사이렌 소리는 선생님 몰
래 나 리틀보이가 지퍼를 열고 꼬추를 만지작거릴 때마다
양배추 머리 짝꿍이 앙, 하고 터뜨린 울음처럼 시끄럽습니
다. 스쿨버스는 도로 한가운데 멈춰 섭니다. 창밖으로 막대
사탕처럼 서 있던 사람이 피식, 쓰러집니다. 막대사탕은 들
것에 실려 갑니다. 자세히 보니 머리통이 빨간 피로 물들어
있습니다. 저 막대사탕은 딸기 맛인가 봅니다. 막대사탕은
들것 위에 누운 채 막대사탕을 손에 쥔 개구쟁이처럼 키득
키득 웃고 있습니다. 도로엔 놀이공원에 놀러 갔을 적에 귀
신의 집에서 보았던 하얀 연기가 나직이 깔립니다. 방독면
을 쓴 군인 아저씨들이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을 트럭에
옮겨 싣습니다. 그때 어떤 녀석이 우리 아빠다! 아빠, 하고
소리칩니다. 녀석의 검지 끝에 누워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
나 손을 흔들고 재빨리 바나나 껍질처럼 널브러집니다. 나
리틀보이가 꼬추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보면 엄지손가락
을 치켜세우던 스쿨버스 운전사 털보 아저씨도 핸들에 머
리를 박고 죽은 척을 합니다. 버스 앞 유리창은 지리 시간
에 보았던 세계지도 모양으로 금이 쩍쩍 갈라져 있습니다.
나 리틀보이의 나라는 어디쯤일까요? 나 리틀보이의 꼬추
처럼 너무 작아 보이지 않습니다. 라디오에선 데이트 약속
시간에 늦은 나 리틀보이의 막내 누나 하이힐처럼 높고 가
는 목소리가 다급하게 흘러나옵니다. 살짝 열린 창문 틈새
로 비릿한 피 냄새가 풍깁니다. 친구 녀석의 엄마가 또 메기
를 맛있게 잡아먹나봅니다. 광장에 삐죽 솟은 시계탑의 시
곗바늘은 자동차 바위에 깔려 죽은 이웃집 치와와마냥 뾰족
하게 멈춘 채 굳어 있습니다. 건물 옥상 커다란 텔레비전에
선 뉴스를 방영합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은 민방위 날입니
다……라는 글자가 달팽이보다 느리게 기어갑니다. 달팽이
가 겨우겨우 화면 끝으로 사라져갈 때 즈음 두번째 사이렌
소리가 울립니다. 깜짝 놀란 나 리틀보이는 바지 지퍼를 올
립니다. 다행히 오늘 양배추 머리 짝꿍은 감기에 걸려 학교
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품에 들고 다니던 양배추 인
형의 눈동자 같은 신호등이 반짝, 하고 깜빡이자 도로 위 차
들이 쌩쌩 달리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하얀 연기는 사라지
고 스쿨버스 창밖으로 주말 아침마다 재방송하는 만화영화
같은 낯익은 마을 풍경이 펼쳐집니다. 언제나처럼 과일가게
아줌마는 과일을 팔고 복권가게 할머니는 꾸벅꾸벅 졸고 스
쿨버스 운전사 털보 아저씨는 멍청한 창작동요를 틀어 우리
를 괴롭힙니다. 쨍쨍한 태양 아래 나 리틀보이는 스쿨버스
를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
나 리틀보이는 지하방에서 삽니다. 나 리틀보이는 불 꺼
진 지하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스위치를 찾습니다. 캄캄한
바지 속에서 꼬추를 찾는 건 쉽지만, 스위치를 찾는 건 수학
문제처럼 어렵습니다. 손끝엔 끈적끈적한 거미줄만 자꾸 묻
어나옵니다. 나 리틀보이의 썩은 어금니처럼 냄사 나는 검
은 벽을 더듬거릴수록 문득 나 리틀보이는 이 오래된 방공
호가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합니다. 멀리서 휘파람 소리가
들립니다. 천장이 흔들, 흔들립니다. 콘크리트 조각들이 후
드득 후드득 떨어집니다. 나 리틀보이가 호주머니에 넣고
깜빡한 초콜릿처럼 흐물흐물 불에 탄 가족사진이 보입니다.
나 리틀보이는 주섬주섬 바닥에 떨어진 썩은 비스킷을 주워
먹습니다. 배급이 끊긴 지 이미 오래입니다. 지하 방공호는
늪지처럼 매캐하고 습하고 더럽습니다. 늪지 속에서 나 리
틀보이의 조그만 메기 한 마리가 꿈틀거립니다. 나 리틀보
이는 늪지에 발을 담그고 앉아 메기를 만지작거립니다. 나
리틀보이가 메기를 쪼물쪼물 만지작거릴수록 자꾸만 기분
이 좋아지는 메기가 쑥쑥 자라납니다. 쑥쑥! 방공호 전창을
뚫고 불뚝 튀어나온 메기가 쑥쑥 자라납니다. 쑥쑥! 구름
끝에 머리가 닿는 거인처럼 메기가 쑥쑥 자라납니다. 쑥쑥!
나 리틀보이가 사는 작은 마을과 쑥쑥! 작은 도시와 쑥쑥!
작은 나라를 뒤덮고 쑥쑥! 지구 밖까지 메기가 쑥쑥 자라납
니다. 쑥쑥! 저 먼 우주 끝까지 메기가 쑥쑥 자라납니다. 쑥
쑥! 빛보다 빠른 타임머신처럼 메기가 쑥쑥 자라납니다. 21
세기 소년에서 20세기 소년에게로. 키가 쑥쑥! 자라는 메기
에게. 나 리틀보이는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합니다. 나 리
틀보이의 메기야. 안녕히 잘 가!
*
나 리틀보이는 그때 죽었다.
거대한 폭음과 빛과 태풍과 열과 함께.1)
1)고형렬의 장시집『리틀보이』중에서.
방독면
조인호, 문학동네시인선 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