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가 실린 넓은 발이 쌓인 눈을 짓밟는 소음이 울려 퍼진다.
눈이 내리는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고, 교주가 있는 세상에서만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소음.
교주가 아야의 집에 찾아 놀러오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반가운 소음.
그 소음에, 아야가 미소를 지으며 옷 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주를 맞이하러 뛰어나갔다.
"어서 와, 교주."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만년설의 현자 님."
"후후... 부끄러운 걸.
조촐하지만, 누추하지는 않은 내 집에 온 걸 환영해. 교주."
고개를 숙여 아야의 집 안에 들어온 교주는, 실내 치고는 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녀의 집을 두리번거렸다.
"멋진 집인걸."
"칭찬 고마워. 천장이 조금 낮긴 하지만... 그래도, 교주의 정수리가 닿지는 않을 거야."
"다행이네. 아야에게만 집중하기에도 모자란대 천장에까지 신경을 쓰면 곤란했거든."
"...치사해."
"응? 뭐라고?"
"교주가 너무 좋다고."
아야의 뾰루퉁한 반응에, 잔뜩 부풀린 볼을 보고 푸근한 미소를 지은 교주가, 그녀의 차가운 뺨을 크게 한입 물더니, 이내 쮸와아압-하며 빨아 당기는 것이 아닌가.
"아, 아아아앗."
"귀여워."
교주의 이런 애정행각에도 불구하고, 교주는 자신과 「친구로 지내고 싶다」라니. 이건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잔뜩 볼을 부풀린 아야의 모습에, 교주는 그 이유는 몰랐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안아들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교주의 품에 안겨 좀 더 높은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그리고 그 품에서 교주를 올려다보노라면, 그녀의 작은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그녀의 자매인 비비가, 자신을 품에 안을 땐 자신만을 바라봐 달라고 부탁했던 걸 기억해낸 아야는 자신도 그렇게 부탁해볼까, 고민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차디찬 그녀에게 교주라는 태양은 독점하기엔 너무 뜨거웠다.
"...교주. 너무 차갑진 않아?"
"응?"
도리어, 그녀는 자신을 안아 들은 교주가 차갑지는 않을지 걱정됐다.
"난... 차가우니까. 동상 같은 건 조심해야지."
그 말에 교주는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눈이 쌓이려면 말이야, 조금은 포근한 날씨여야 가능해."
"응? 그, 그렇지? 함박눈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맞아. 함박눈이 내리는 날씨는 그런 법이니까.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포근하니까. 마치, 살 애는 추위가 찾아온 겨울에 쉴 틈을 주러 찾아온 함박눈처럼 말이야."
...또. 또 이런 말을 한다.
교주는 늘 이랬다.
교주는 언제나 이런 따뜻한 말을 건넨다.
언제나, 내 심장을 녹이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내게 고백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고 말하지.
이렇게나 남의 마음을 뒤집어 놓고는, 재미있게 즐겼다는 듯이 혼자서 빠져나가다니.
치사해...
치사해...
"맞다! 생각해보니까, 보여줄 게 있다고 하지 않았어?"
"으, 응? 그, 그렇지! 이제 곧 밤이니까, 교주가 때마침 좋은 때에 와줬어. 이리 와. 위층으로 가자."
교주의 손을 잡고, 아야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으로 올라가자,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창이 나타났다.
이 특이한 인테리어에, 교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야에게 질문을 건넸다.
"햇빛이 너무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왜 이런 창을 냈어?"
"후훗...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이 커다란 창은 햇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용도가 아니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서지."
그리고, 아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붉게 물든 하늘이 마치 차게 식기라도 하는 것처럼, 검푸른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이윽고 교주는 그녀가 사랑하는 풍경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
"후후... 어때? 오로지 정령산 꼭대기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야.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정령산만의 풍경."
넓은 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다름아닌 오로라였다.
"저렇게나 아름다운데도, 저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는 이곳 정령산 꼭대기밖에 없지.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저렇게나 화려하고, 저렇게나 거대하다면, 정령산 꼭대기가 아니어도 보여야 할텐데 말이야."
그렇게, 한참이나 오로라를 지켜보던 교주는, 미소를 지은 채 아야를 바라보며 말했다.
"매일같이 이 풍경을 바라봤기에, 네 눈은 오로라를 품을 수 있었던 걸까?"
"...에?"
교주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 담긴 황홀경에 조금 더 집중하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난 아야 네가 지혜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좀 생각이 바뀌었어.
아야는, 너만 보기엔 아깝기 그지없는 이 황홀경을 네 눈동자에 담아, 정령산 밑에 있는 모두에게 나눠주기 위해 세상을 유랑했던 거야."
"뭐, 뭐라고?"
"헤헤... 좀 기분나빴나?
아무튼, 눈 속에 오로라를 품고 있는 네가 좋아. 아야."
그 말에, 아야의 마음 속의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던 끈이 끊어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아야의 공간에서, 아야가 가장 사랑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교주.
그녀는 이 순간으로부터 운명적인 무언가를 느끼고 말았고,
와락!
"우읍?!"
교주의 입술을 훔치고 말았다.
교주가 오로라에 홀린 것처럼, 그녀 역시 오로라에,
아니.
교주에 홀린 것이리라.
----
교주가 아야에게 ㄸㅁ혔다.
그 이유는 터무니없다.
교주가 아야의 눈동자를 보며,
"눈 속에 오로라를 품고 있는 네가 좋아."
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야는 지금도 교주가 자신에게 그린라이트를 비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