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놀룰루의 열대우림에서 처음 보는, 마치 동화나 게임 속 요정들이 모여사는 마을과도 같은 이 곳. 이하 요정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우는 아까 산 비탈길에서 굴러떨어지면서 삐어버린 자신의 오른쪽 발목을 치료받고 있었다. 마을의 의사가 말하길 다행이 뼈가 부러진 것은 아니고, 떨어진 그 충격으로 가볍게 인대가 늘어난 것 같다고 하여 부목을 대고 간단하게 냉, 온 찜질을 치료를 받고 있었다.
“골절된 곳은 없습니다. 아마 떨어질 때 충격으로 인대도 조금 늘어나고, 전반적으로 근육이 크게 놀라서 그런 것 같네요.”
“이 상태로 휴식을 좀 취해주신다면 오늘내로 다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금방 나을 겁니다. 단, 너무 무리해서 움직이지는 말아주세요.”
“가, 감사합니다...”
훈련 대열에서 이탈해버린 제2중대 제1소대 제1분대에게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사실이었다. 아마 뼈가 골절이 된 거였다면 우에게 있어서는 임관하는 데에도 크게 문제가 갔을 테니깐 말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불행 중 다행일 뿐이라는 것이고, 이 상태라면 적어도 오늘, 늦으면 적어도 내일까지는 훈련에 복귀하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순항훈련은 임관 직전에 치르는 가장 큰 훈련이었으며 생도들에게 있어선 가장 중요한 훈련이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훈련이냐면, 좀 까놓고 말해서 1학기에 훈련 성적을 망쳤어도 순항훈련에서 평균 이상으로 점수를 거두면 중위권으로 임관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임관 시 성적 비중이 높은 훈련이었다. 사실 자신들이 겪는 이번 순항훈련이 조금 특이한 케이스였다. 원래라면 순항훈련은 모항을 떠나 각 기항지를 돌아다니면서 장교로서 필요한 군사적 전문지식과 실무 적응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 기항지를 돌며 항해를 하는 동안에도 수시로 시험과 수시로 실전 상황을 가장한 훈련을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무려 140일이 넘게 말이다.
현재 제7함대 소속 항모 항공단 파일럿으로 있는 유빈이도, 이러한 각고의 노력과 갖은 훈련을 통과하고 장교로 임관한 것이었다. 심지어 유빈이는 임관 시 사관학교 수석이었다.
요환, 카를, 서준, 에드가, 우 형제들 모두 유빈이처럼 수석, 차석 임관은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무사 임관을 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래서야 임종평 끌려가는 건 거의 확정이지 않냐.”
“이러다 진짜 윈터솔져 되겠네, 아버지들처럼.”
통칭 “윈터솔져” .
사관학교의 44주 교육기간 중 임관종합평가에서 최종 성적 미달인 자들이 임관 직전에 겨울에 사관학교에 남아 추가적으로 받는 훈련을 의미했다. 소위 임종평 끌려간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임종(사망)하러 간다기도 하지만, 대체로 성적 미달로 임관 직전에 끌려가는 이 훈련을 두고 많은 이들은 윈터솔져라고 표현한다. 대체로 부족한 성적 과목에 대한 보충 수업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여기서마저 떨어지면 진짜 얄짤이 없다. 최악의 경우 재입교하여 다시 훈련을 받는 절차를 밟아야만 할 수도 있다.
대체로 그렇게까지 가는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갈대같아야지, 다른 동기들 전부 임관식 전까지 그간 받았던 44주의 교육 기간을 마무리하고 쉬고 있을 동안, 홀로 사관학교에 남아 보충 교육과 훈련을 받는 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남들 쉬는 동안 홀로 겨울에 훈련받으러 갔다가 임관 직전에 떡- 하니 나타나는 모습을 두고 윈터솔져라고 부르게 된 것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용어 자체는 무려 멸망 전, 2세기도 훨씬 전부터 사용되는 언어라는 점이었다.
무려 요환과 서준의 아버지인 민하준 원수가 먼 옛날 학군단 사관후보생 시절이었을 때부터 많이 사용되던 용어였다.
그 당시에도 똑같은 이유로 성적 미달로 임관 직전에 임종평에 끌려가서 윈터솔져가 된 장교 후보생들이 많았었다나 뭐라나. 특히나 민하준 원수는 자식들뿐만 아니라 큰 아버지 라자르와 작은아버지 유진과 다르게 대학생활을 병행하면서 훈련과 교육을 받았던 탓에, 윈터솔져에 계절학기까지 겹쳐져서 제 때 임관을 못하는 후보생들도 간혹 있었었다고 하였더랜다.
물론 아버지들이 진짜 이런 폐급 과정을 거쳐서 임관해서 윈터솔져인 것은 아니었고, 인류 멸망 후 문자 그대로 냉동이 된 채로 오르카에 의해 발견된 덕분에 그 아들들이 윈터솔져라고 장난 식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농담삼아 그렇게 말한 것이 정작 자기네들이 잘못하면 윈터솔져가 될 처지였지만...
“뭐... 어떡하냐. 해야한다면 해야지, 뭐 어째.”
“아, 임종평이라니~ 윈터솔져라니~!”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불안해 하고 있냐, 니들은.”
“아니 근데 그렇잖냐. 우리 지금 뭐 무전기도 안 되고, 응? 나침반도 전부 망가졌고, 응??”
“그 와중에 훈련 지역에서 벗어나 버렸고.”
“그나마 우는 다리 다친게 큰 게 아니라서 다행이긴 한데...”
“... 사실, 냉정히 말하자면 우리는 괜찮은데, 성적 때문에라도 임종평 끌려가기 딱 좋은 사람이...”
“거, 시끄럽다.”
“넵.”
“거 애 아픈데 앞에서까지 그렇게 말하고 싶냐, 니는? 어유...”
“야, 니 부탁인데 앞으로 한 10분만 입 열지 말고 있어봐라, 제발.”
우를 향해 그저 악의 없이 빈정대던 요환은 끝내 분대장 서준에 의해 발언권을 잃었다.
한 편 우가 치료를 다 받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 자신들을 마을로까지 안내해주었던 블랙웜이 들어왔다.
“아, 블랙웜 씨.”
“평안하신지요, 몸은 좀 어떠신가요?”
“다행이 뼈가 부러지거나 한 곳은 없다고 해서... 휴식만 좀 취해주면 금방 낫는다고 하였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곤경에 처한 분들을 그냥 두고 지나칠 수는 없으니까요.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원래라면 저희들의 리더에게도 소개시켜드려야 하는데, 지금은 개인적인 용무가 있으셔서 나중에 다시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신기하네요.”
“인간 님들은 분명 철충의 침공으로 죽은 걸로 알고 있는데, 아직 이렇게 살아계신 인간 님들이 계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인간 님... 이요?”
“아, 그러고보니 아까 저희 처음에 만났을 때에도 저희더러 고귀하신 분들이라고 하셨었었는데...”
“... 연합전쟁 이후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인권을 박탈당했었다고 빨렉센세가 가르쳐줬었었잖아.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
“네? 연합전쟁 이후... 요...?”
“혹시 죄송한데, 실례가 안 된다면 블랙웜 씨는 언제 태어나셨나요?”
“네, 네? 제 출고일자 말씀이신가요...?”
“야 인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처음 보는 여성 분한테 나이를 묻고 있냐, 니는?”
“아,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인간 님들께서 궁금해 하시는 것이니 친히 답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삼안 그룹에서 만들어진 대인 보호용 메이드 바이오로이드로서, 2082년에 3월에 처음으로 출고되어졌습니다.”
“출고일자라니...”
“...?”
“제 출고일자에 무슨 문제라도...?”
“아니 그게 아니고...”
제1차 연합전쟁 이후에 태어난 바이오로이드들은 제1차 연합전쟁 이전에 태어난 바이오로이드들과 달리 처음부터 상품으로 태어난 덕분에 이전 과거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굳이 상품에게 너희들은 원래 인간이었단다, 라고 말을 해줄 필요도 없었고. 테마파크의 매니저였던 키르케 조차도 제1차 연합전쟁 이전에 자신들 바이오로이드들이 원래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블랙웜도 그래보였다. 자신이 태어난 날짜를 생년월일이 아닌 출고일자라고 말하고, 계속해서 생도들 자신들을 향해 인간 님, 고귀하신 분이라고 칭하고 있었으니깐.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을 블랙웜은 생도들의 반응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하며 물었다.
“저... 제가 감히 인간 님들께 질문을 드리는 것이 실례가 안 된다면...”
“방금 연합전쟁이라는 것도 그렇고, 바이오로이드들한테 인권이 있었다는 말도 그렇고...”
“제가 이해가 잘 안 가서 그런데, 혹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원래 제1차 연합전쟁 이전에 바이오로이드들은 법적으로 인간이었었거든요.”
“... 네? 그게... 무, 무슨...??”
“어... 그러니깐...”
“어우야 이거 보니깐 설명 해드릴려면 한참 걸릴 거 같은데...?”
듣기로는 키르케 이모도 자신들 바이오로이드들이 원래는 인간이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제법 오래걸렸었다고 했으니, 블랙웜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이 사실을 설명해주는 것이 아버지들이 아닌 자신들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생도들 입장에서도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아버지들과 다르게 자신들은 멸망 전 인류의 사회를 겪어보지 못했다. 지금 자신들이 사는 부산시나, 사관학교 생활 모두 멸망 전 인류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멸망 전 인류 사회를 몸소 겪어봤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아버지들을 제외하면 오르카에서 인간 남성은 형제들 열 다섯 명이 전부였으니 말 다했다. 아버지들 이외의 다른 인간 남자도 만나본 적 없는 자신들이, 역사학자인 것도 아니고 교과서 내용으로만 배운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여 주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훈련 다 끝나고 돌아가서 아버지들이나, 아니면 라비아타 통령님이나 다른 저항군의 지도자 이모, 누나들에게 가서 저항군과 또 다른 바이오로이드 사회공동체가 있으니 대신 좀 설명해달라고 하는 것이 블랙웜이 이해하기에 훨씬 빠를 일이었다. 형제들은 굳이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기를 포기했다. 블랙웜도 그들의 의중을 눈치챘는지 먼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인간 님들의 말씀을 이해하기에는 생각보다 이해력이 많이 높지 않은가 봅니다...”
“아,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충분히 그러실 수 있어요!”
“저희들도 이 사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하하...”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인간 님들은 분명 멸망하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버젓이 살아계신 인간 님들을 만나게 되다니...”
“뭐... 굳이 따지자면 저희도 멸망 이후에 태어난 거긴 한데 말이죠...”
“그렇다면 다른 인간 님들도 있으시단 말씀이신가요?”
“그러고보니 인간 님들도 따로 어디에 소속되어 활동하시는 것 같긴 한데...”
“저희는 오르카 인류 저항군 소속의 사관생도들입니다.”
“저항군의... 사관생도들이요?”
“네, 그렇습니다.”
“하와이에는 훈련을 하러 온 거고, 원래는 저희 모두 부산에서 왔습니다.”
“부산이라면... 오, 상당히 먼 곳에서 오셨군요...!”
“부산을 아세요?”
“제가 출고된 삼안 그룹도 대한민국의 기업이었으니까요. 가본 적은 없지만 들어서 알고는 있습니다.”
“바다가 아름다운 도시라고 주변에서 말하는 걸 들었었죠.”
“바다가 진짜 끝내주게 아름답긴 하지.”
“... 해변의 누나들도 아름답고...”
“네, 네? 누나... 들이라니...?”
“야, 너 앞으로 한 15분만 더 입 다물고 있어.”
“하는 김에 숨도 참아라.”
“흡!...”
“아, 아하하하...”
“방금 저항군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저항군 여러분들도 철충이랑 싸우시는 중이신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본격적으로 설명을 드리기에는 이야기가 복잡해지니, 일단은 그렇게만 알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블랙웜은 바이오로이드 공동체 이외의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을, 그것도 인간 님을 정말 오랜 만에 봤던지라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생도들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그 때였다.
- 투콰아아아아앙!!!!
“뭐지?!”
“폭발인가?!”
“읍!! 으읍!!! 읍읍읍!!!!”
“야, 그냥 말을 해!!!!”
“아니 아깐 또 입 다물고 있으라면서?!?!”
지축을 흔들리는 강력한 진동과 굉음이 바깥에서부터 울려퍼졌다. 그리곤 곧 바로 창문 너머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폭발이었다. 원인이 어찌되었든 간에 일단은 폭발이었다.
병실 밖으로 나가보니 폭발의 여파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검붉은 화마가 집 몇 채를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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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입니다.
100화 기념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을 좀 해봤는데, 역시 저는 Q&A 빼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습니다.
2세인 아이들을 위주의 Q&A를 진행해보고자 하니,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거든 댓글로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아이들이 대답해 줄 예정입니다.
추가적으로 바니 슬레이어 니바 임나빈의 이름 성 씨를 임 씨에서 송 씨로 바꾸려고 합니다.
앞으로 송나빈으로 나올 것이며, 이전 회차에서 임나빈으로 나온 부분들은 전부 송나빈으로 바뀔 예정입니다.
100화까지 오는데 무려 1년이 넘게 걸렸네요. 정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묘사를 보아하니 여기 흑츙은 인권 줬다뺏은 이후에 나왔나보네요...
키르케랑 비슷한 상황인거죠...
100화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