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까 말까 고민을 좀 했습니다만, 결국 이렇게 키보드를 잡게 되었네요.
저는 현재 학생이고,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고시텔의 좁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지요. 기숙사도 살아보았고요. 기숙사나 고시텔에서는 딱히 악몽을 꾸거나 가위를 눌려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평안해야 할 집에서 악몽과 가위가 문제라면 문제랄까요.
정확히 언제인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유치원을 곧 졸업할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 즈음에 우리 가족은 49평에 방 4개짜리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심지어 막 건축된 아파트였지요. 첫 분기 입주자..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남쪽에 있는 두 방은 각각 컴퓨터방과 공부방으로 썼고, 안방 바로 옆에 있는 남쪽의 방은 저보다 4살 많은 형과 제 침실로 썼습니다. 침대 두 개를 나란히 붙여놓고 쓰니 남는 자리가 거의 없었지요. 저는 그 중에 방문 옆 벽에 딱 붙어 있는 침대를 썼습니다.
거의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형과 함께 방을 썼었으니, 아마 그때가 저학년(몇 학년이었는진 잘 기억 나지 않습니다) 때였을 것입니다. 형과 저는 어두운 걸 무서워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엄하셔서 그런 티를 낼 수 없었는데, 때문에 뭔 이상한 암호를 만들어서 저희가 잠들 때까지 방문을 살짝 열어놓고, 잠들면 닫아달라고 어머니한테 부탁했었지요. 어머니는 대개 잊지 않고 그래주셔서, 아침에 일어나면 문이 닫혀 있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보통 한 번 잠들면 아침이 될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새벽(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두워서 시계가 안 보였거든요.)에 눈을 떴습니다. 방 안은 아주 새까맸습니다. 시계 소리만 크게 틱, 틱, 틱, 들려왔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을 때 누워 있으면 유난히 시계 소리가 크게 들리는... 다들 그런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방문이 살짝 열려 있었습니다. 자기 전에 형제가 함께 살짝 열어놓는 딱 그 정도요. 부모님이 아직 깨어 있으시면 마루로부터 불빛이 새어들어와야 하는데, 아주 어두웠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였는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엄마랑 아빠가 자나? 싶어서 문 틈에 눈을 갖다 댔습니다. 그때쯤엔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는지 마루가 굉장히 선명히 보였습니다.
문 틈으로.. 마루 소파가 보였는데... 마루 소파에서 웬 흰색 옷(무슨 옷인진 모르겠습니다.. 그냥 치마가 있었다는 정도?)을 입고 머리가 긴 여자가 통통, 뛰어서 놀고 있었습니다. 두 다리를 쭉 뻗고 뛰어오르고 있었어요. 아직도 그때의 광경이 선명한데, 그떄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제 와서 떠올리면 머리카락이 전혀 뜨지 않고 아래쪽으로 뻗은 채로... 통통 튀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칩니다. 어린 저는 무서워져서 형을 깨우려고 눈을 떼고, 막 형의 몸을 흔들었습니다. 형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시 문 틈에 눈을 갖다 댔습니다. 그 여자 몰래 부모님을 깨우러 가려고.... 그런데 그 하얀 옷의 여자는 없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무서워져서, 그대로 이불을 덮고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게 정말 악몽의 일부분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초등학생일 동안은 다시는 그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가 나오는 악몽을 또 꾼 적이 없어서, 중학생이 될 때쯤엔 완전히 잊어버렸었습니다.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었을 때, 이미 형과 저는 다른 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형제가 함께 잠을 자는 데에 쓰던 방은 컴퓨터방이 되고, 집 제일 끝에 있는 공부방이 형의 방, 그 옆의 컴퓨터방이 제 방이 되었습니다. 제 방은 침대 옆에 책상, 그리고 침대 맞은편에 방문과 유리가 달려 있는 장, 그리고 책상 옆에는 마찬가지로 옷의 수납장과 전신거울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밤에 잘 때마다 그 전신 거울이 무서워서, 항상 돌려놓고 잤습니다.
그때도 새벽에 눈을 떠야 했습니다. 첫 가위였습니다. 눈을 뜬 저는 몸이 안 움직인다는 사실에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가위인가, 하는 생각에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데, 전신 거울 쪽을 무심코 보곤 소스라치게 놀라야 했습니다. 항상 돌려놓았던 전신거울이 돌려지지 않았고, 거울 안에는 하얀 옷의 여자가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침대에 누워서 전신거울을 보면 약간 비스듬히 놓여져 있는데, 그 여자는 거울에서 똑바로 정면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곁눈질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여전히 몸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그저 저를 계속 쳐다보고 있기만 했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시선을 돌리려고 했는데, 장과 수납장 등, 방문 옆에 있는 곳을 바라보았는데.. 그 유리에... 전신거울이 평소에도 비추어지는데... 진짜 무의식중에 씨X씨X 머릿속으로 외쳐야 했습니다. 유리에 비친 전신거울 속에도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는 거울 속에서처럼 곁눈질로 보는 게 아니라, 정면으로 똑바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냥 제발 시간이 가기를... 시간이 가기를....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머니가 깨우러 온 때였습니다. 거울은 자기 전에 돌려놓았던 대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잊고 있었던 초등학생 시절의 악몽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 후 한 두어 차례 악몽을 꾸었는데, 그때마다 하얀 옷의 여자가 나왔습니다. 복도를 걸어다니는 여자, 천장에서 조용히 절 바라보고 있는 여자... 정말 무서운 건, 이 여자는 저를 바라보기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한테 아무런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고 있기만 합니다. 저는 그 시선이 너무 선명하게 기억이 나서... 고등학생이 되어 기숙사 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그 눈빛을 잊지 못했습니다.
기숙사 생활, 그리고 고시텔로 이사하며, 저는 그 여자를 또 다시 잊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가끔 주말에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게 되었을 때 빼고요. 고1 겨울이었던가... 당시 이런저런 상황으로 상태가 별로 좋지 않고 자주 피곤해 했던 저는 다시 한 번 그 여자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가위였습니다. 누워 있고 의식은 말짱한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씨X.... 벽이 왼쪽이고 책상이 오른쪽인데, 왼쪽에서 생전 처음 듣는 여자의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뭔가 이상한 말을, 웅웅거린달까... 이명음 같은? 여자 목소리인 것도 간신히 생각이 들 정도로? 계속 빠르게 뭔가를 속닥이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아버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창 뭔가를 속삭이던 그것은, 잠시 후 스윽, 하고 제 몸 위를 지나쳐 왼쪽 침대 아래쪽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를 마지막으로 본 건 고2 때였습니다. 아마 여름인가 가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다시 한 번 가위를 눌렸습니다. 이제 와선 익숙하다 싶을 정도였죠. 인터넷에서 봤던 가위 푸는 방법.. 같은 걸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솔직히 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무서워서...
문 틈이 열려 있었습니다. 닫고 잤는데 열려 있었죠. 문의 틈은 당연히 새까맣게 어둠으로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둠보다 더 새까만... 그러니까 똑같이 어두운데 뭔가 더 어두운? 여하간 좀 이상하지만 분명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런 뭔가가 문 틈으로 슥슥, 계속 지나 다녔습니다. 꼭 뭔가를 찾는 것 같기도 했고, 그냥 복도를 걸어 다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문 틈으로. 익숙한 시선이었습니다. 눈 같으면서도, 눈 같지 않은... 그런 기묘한... 그렇게 그 여자(로 추정되는 눈)는 저를 한참이나 보고 있었고, 그 시선이 사라질 때 예전처럼 다시 가위는 풀렸습니다.
저는 그 가위를 겪은 후로, 처음으로 형에게 그런 꿈을 여러 차례 꾸었다, 라고 상담을 했습니다. 군대에 있다가 휴가를 나온 형에게요. 형은 생각보다 진지하게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약간 창백한 얼굴로 자기도 그런 가위에 눌려본 적이 있다고 하는 거였습니다. 저는 대충 그런그런 꿈을 꾸었다, 고만 말했고, 제가 처음으로 꾼 악몽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형이..
그때 같이 방을 쓰던 때에... 새벽에 눈 뜨니 웬 초록색 머리 세 개가 방문 틈으로 자기를 보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니 없어지고, 문 틈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하얀 옷의 여자를 보는 악몽을 꾸었다고 합니다. 저를 흔들어 깨우려고 했는데, 일어나지 않았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또 고3이었을 때 가위를 서너 번 정도 눌려봤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여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하얀 옷의 여자요.
지금에 와선 그 여자도 나오지 않고, 형도 그런 꿈은 꾸지 않는다고 합니다. 형도 고3의 힘들었던 시기가 끝난 후론 나오지 않았다고 하며, 저도 그 가위를 끝으로 집에 거의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때때로 문틈을 보면 그 여자의 시선이 생각납니다. 제가 항상 문을 아예 크게 열어놓거나 아예 닫아놓고 자게 만드는 주범이니까요. 그 여자는 왜 우리 형제를 계속 보고 있었던 걸까요? 소파에서도, 전신거울에서도, 복도에서도, 천장에서도, 벽에서도... 그리고 문 틈에서도...
시계 소리만 크게 틱, 틱, 틱, 들려왔습니다. 에서 저절로 음성지원 되네여 ㅎㄷㄷ
시계 소리만 크게 틱, 틱, 틱, 들려왔습니다. 에서 저절로 음성지원 되네여 ㅎㄷㄷ
전 그런애들만 수십명입니다 그것도 단편적으로 본것들뿐이지만 각각이 다르고 엄청 시끄러울정도라 한두명이면 뭐 낫겠네요
어릴때 죽음과 그녀와 나. 이던가? 그걸 보고 난 뒤론 살짝 벌어진 틈들이 무서워요 그래서 저도 문이나 창문을 활짝 열어놓거나 아에 닫거나 하죠 문제는 그럴수 없는 틈들 바닥과 물건의 사이 라던가 뭔가가 있을거 같아서 될수 있으면 안보려고 생각도 안하려고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