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쟁이의 염원을 이뤄줄 모니터 어디 없을까?
PC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염원하는 게 하나 있을 겁니다. 바로 PC로 모든 걸 다 하는 거죠. PC는 실제로 대부분의 작업을 소화할 수 있으니 다른 기기에 비해 다용도에 가장 근접한 기기이기에 게임도 영상시청도 작업도 모조리 컴퓨터 하나에서 하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을 겁니다. 스마트폰으로 mp3, 전자사전, 휴대전화 같은 전자기기들이 하나로 합쳐진 것처럼 말이죠.
불행히도 컴퓨터 부품은 주변기기가 하나에 여러가지를 할 수 있는 물건을 찾기 어렵습니다. 4K블루레이는 인텔 10세대 CPU까지만 지원하고(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작업용 그래픽카드는 게임을 돌리기에는 가격대비 성능이 매우 후달리는 것처럼요. 그 중에서 특히 모니터는 색재현력, 크기, HDR, 비율 등등 용도에 따라 온갖 것들이 있기에 이 분야에서 가장 통일이 어렵다 할 것입니다.
저도 작업용으로 34WK95U를 마련했는데 게임용도가 강화되면서 기존 모니터의 단점이 부각되는 바람에(늦은 반응속도, 프리싱크 등 게임기능 미지원, 작은 세로 크기) 새로운 모니터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림작업을 하니 색재현력은 기본이 되어야 하고, 영상시청도 하니 HDR성능도 좋아야 하고, 거기에 게임성능도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업글은 쉬워도 다운그레이드는 어려운 법. 5K에서 QHD로는 도저히 못 돌아가겠고, 최소한 4K는 되어야 할 터인데 게이밍 모니터는 아무리 크기가 커도 죄다 QHD급 해상도더군요. 그렇다고 OLED로 가자니 고정화면이 많은 PC특성상 번인이 많이 우려되었고요.
그러다 LG에서 최근에 낸 4K모니터가 원하는 조건을 대부분 충족하여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이번에 살펴 볼 32GQ950입니다.
흔함이 겹쳐서 생기는 유니크함
제가 제품을 고를 때의 기준은 '특징이 있다'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필립스 436M6VBP를 골랐을 때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고성능 HDR을(VESA HDR1000인증)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고, 34WK95U는 당시에 몇 안 되는 5K모니터였죠. 이번에 고른 32GQ950도 그런 점에서는 선택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이번에 삼은 기준은 '4K,영상,게임,색재현'이었는데, 대부분을 만족하는 모니터는 많았지만, 전부 만족하는 모니터는 이것뿐이었습니다. 스펙을 보시면 그게 무슨 얘기인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해상도: 4K(3840x2160) - 이거 충족하는 모니터는 요즘 많죠. 30만원짜리까지 나올 줄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영상: VESA HDR1000 인증 - 436M6VBP이후에 HDR1000급이 많아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없더군요. 그래도 급 되는 모니터에서 종종 지원합니다.
게임: 반응속도 1ms - 어지간한 게임용 모니터는 사실 다 이 수준을 광고모토로 삼습니다. / Freesync 등 지원 - 역시 어지간한 게임용 모니터는 다 지원하죠.
색재현: 일반작업은 NTSC 72%만 넘으면 된다지만, 어느 정도 가격대 되는 모니터는 색재현율이 상당히 빠방한 편이죠. 그리고 작업용 모니터는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36M6VBP가 꽤 우수한 제품이었지만 넓은 픽셀(?)로 낮아지는 화질과 낮은 반응속도가(4ms) 문제였고, 34WK95U도 반응속도에서 걸림돌이었습니다. 다른 모니터들도 상당부분 충족하는 것들이 있었지만(알파스캔과 기가바이트, ASUS 모니터는 해상도, 영상, 반응속도, 색재현 모두 거의 근접권이었습니다) 색상관리를 위한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이 없어서 탈락. 결국 작업과 영상, 게임을 모두 만족할 선택지는 이것뿐이더군요.
첫인상: 34인치보다 작은데 더 크다
맨날 27인치 모니터 쓰다 처음 32인치 4K모니터를 썼을 때 느낌은 '광활하다'였습니다. 그만큼 넓은 크기에 많은 인상을 받았죠. 43인치, 34인치 쓰다가 다시 32인치로 돌아왔는데, 처음 32인치를 쓸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 '크다'는 느낌은 그대로였습니다. 비록 34WK95U처럼 꽉 찬 21:9 와이드는 못 하지만 위가 널찍한 게 오히려 안정감을 주는 듯해서 잘 돌아왔다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성능: 많이 지원한다고 꼭 나사빠진 건 아니다
보통 이런 제품들은 다양한 기능을 넣는 대가로 성능이 깎입니다. 예전에 쓴 필립스 436M도 패널에서 성능을 어느 정도 희생했고, 이 정도 기능을 갖춘 제품 대부분이 QHD급 해상도가 한계였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기능을 갖췄으면서도 성능을 희생하지 않은 부분은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이 됩니다.
1. HDR(영상): 436M을 통해 HDR뽕을 많이 느끼긴 했지만 32GQ950을 통해 느끼는 HDR뽕은 또 다른 느낌이더군요. 패널을 희생하지 않아서 그런지 TV전시품을 그대로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HDR홍보용 영상을 틀어 확인한 탓에 차이가 더 부각된 것도 있지만 34WK95U나 필립스 436M과 비교해도 더 큰 차이를 보여 주었습니다. 나노IPS 2세대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셋 중에서는 제일 좋더군요.
다만 게임에서는 결정적이라고 할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광원을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게임에서 HDR은 아무래도 영상보다는 효과가 적더군요. 그래도 광원이 근접한 데서는 HDR에 따른 차이가 제법 체감됩니다. 영상만큼 크지 않아서 그렇지...
그 외에도 마음에 들었던 점은 HDR모드 전환이 매우 빠릿빠릿했다는 겁니다. 이전 모니터들은 HDR모드 전환하면 한 번 껌뻑이면서 2초는 걸렸는데 얘는 깜빡임 없이 바로 전환됩니다. 그래서 HDR쓰기가 많이 편합니다.
2. 게임: 여기서 중요하게 치는 것은 영상을 제대로 송출하면서 입력지연, 인풋랙을 최대한 줄이는 능력입니다. 수직동기화하면 똑같이 화면찢어짐 없어지는데도 프리싱크니 지싱크니 쓰는 이유도 이런 입력지연 때문이죠. 화면 주사율도 역시 중요하게 여기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캐치해서 입력하기 위함이라 합니다. 저같은 후잡떼기는 큰 의미는 없지만 보조효과로 화면이 부드럽게 나오는 건 있어서 보기 좋더군요.
32GQ950은 프리싱크 계열(지싱크는 호환지원)에 주사율 144Hz(오버클럭시 160Hz)로 게임용 모니터의 기본은 갖춘 성능입니다. 144Hz가 높은 주사율은 아니지만 4K가 버거워 DLSS, FSR같은 기술도 나오는 걸 감안하면 적절한 수준이라 봅니다.
3. 색재현: 표기 색재현률은 DCI-P3 98%로 되어 있고,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을 통한 자체보정을 지원합니다. 캘리브레이션 도구(별매)와 같이 진행하니 신티크 프로처럼 자체보정을 하더군요. 소프트웨어 캘리브레이션처럼 RGB조정하고 별 짓 할 필요가 없으니 많이 편합니다.
패널의 아쉬움: 기능이 화려해서 검은색도 화려하게 칠했나?
전에 436M을 샀을 때 그 모니터의 가장 큰 약점은 백색균일도였습니다. 보는 데에 지장은 없었으나 패널 자체의 한계 때문에 좌우 끝이 한 대 맞은 검은 멍처럼 보였죠. 제가 받은 32GQ950은 그 점에서는 한결 나았습니다.
하지만 어두운 부분에서는 34WK95U의 잔상만큼 큰 약점을 드러냈습니다. 이 놈이 엣지 디밍을 하면서 가장자리에서 빛을 주는 식인데, 그게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두운 화면에서는 그 빛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합니다. 사진으로 보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그럼 이게 영상에서 어떤 영향을 주느냐가 문제일 텐데요, 생각보다 눈에 제법 띕니다. 게임이건 영상이건 가장자리가 어두운데 밝은 색이 나오게 되면 여지없이 가장자리의 빛이 흘러나옵니다. 불량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이게 IPS의 종특이라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습니다. 34WK95U는 밝기가 낮아서 못 본 건가 싶더군요.
총평: 강력하지만 대가도 크다. 그리고 아쉬운데 대안도 없다.
암부에서 많이 까긴 했지만 HDR이나 주사율, 색감 등에서 이 모니터는 제가 써 본 것들 중에서 가장 좋긴 합니다. 다양한 기능에 좋은 화질과 주사율까지 거를 부분이 없는, 제가 생각했던 고성능 다용도 모니터에 가장 근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암부에서 드러나는 엣지디밍의 약점이 너무 크고, 거기에 가격도 정가가 166만원이나 합니다. 올레드TV 42C2가 비슷한 가격대고, 상위 올레드 모니터인 48GQ900도 200만원이죠. 기능을 많이 우겨넣었다 해도 크기에 비해 대단히 비쌉니다. 아마 엣지디밍으로 인한 암부 성능저하만 아니었으면 아주 좋은 모니터였을 텐데 20만원 이상 할인해서 산 저조차 아쉬움으로 느껴질 정도면 말 다 한 거겠죠.
하지만 위에서 썼듯 경쟁 모니터에 이런 제품이 없습니다. HDR1000과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이 동시에 되는 제품은 얘 말고는 다 작업용이고 거기에 게임기능까지 되는 모니터는 정말로 32GQ950뿐입니다. 일반적인 환경에서 다용도를 고르면 얘 말고는 진짜로 없습니다...
전에 리뷰를 쓴 436M은 HDR1000외에 결점이 많았지만 가격으로 커버가 되는 케이스였다면, 이번에 쓴 32GQ950은 드러나는 결점이 한두개 뿐이지만 가격이 비싸니 더 부각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이패드 프로 12.9 5세대도 화질은 끝장나지만 어두운 데서 블루밍 현상 나는 문제가 있었죠. 그래도 아이패드처럼 일상 환경에선 화질도 우수하고 엣지디밍 문제도 특정 상황 아니면 심하지 않아서 그냥 쓰려 합니다. 뒷맛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겠지만요.
제품 선택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