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실험이라면…제가 또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까?"
"일단 내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게. 종이 한 장이 들어있을 테니 꺼내보게."
나는 아저씨가 시킨 대로 그가 입고 있는 가운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작게 접혀 있는 흰색 종이를 꺼냈다.
"꺼냈으면 종이를 펴서 거기에 적혀 있는 글자를 읽어주게."
나는 종이를 펼쳤다. 세 번 접혀 있던 그 종이는 펼쳐놓자 A4종이 정도의 사이즈가 되었다.
그 종이에는 '펭귄은 남극에서만 살지 않는다.' 라고 적혀있었다. 아무래도 동물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다.
나는 그대로 읽었고, 그러자 그는 매우 흡족한 듯 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것으로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군. 이 정도라면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하는 것 정도는 문제가 없겠지."
그렇군. 지금 이 아저씨가 내 꿈속으로 가져온 물건을 내가 읽어낸 건가?
생각해 보니 굉장히 신기했다. 나는 이 실험에 흥미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 후 나는 꿈에서 깨어날 때까지 여러 가지 테스트를 했다.
시력 검사 같은 것도 했고, 간단한 계산 문제, 어렸을 때의 겪었던 특정한 일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현실에서 면접을 보는 것처럼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그대로 행동하고, 뚜렷하게 사고를 할 수 있었던 적은 이번 꿈이 처음이었다.
다음날 나는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알람 같은 것은 맞추지 않은지가 오래다. 이건 전화 벨소리인 것이다.
나는 누운 채로 손을 이리저리 뻗어 핸드폰을 집어 든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가 떠있었다.
"여보세요."
나는 비몽사몽한 채로 전화를 받았다.
"날세."
"아. 소장님."
그에게서 직접 연락이 온 것은 그때 만난 이후로 이번이 처음이었다.
명함은 받았지만 전화번호 등록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지 몰랐던 것이었다.
"남극에는 북극곰이 살지 않는다네."
"…네?"
이게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람?
나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신종 인사법인가?
"이런. 꿈에서 깨어나면 모두 잊어버리는 건가?"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분명히 어제 꿈에서 이 아저씨가 전화로 자신을 인증하겠다고 말했었지.
꿈에서 일어났던 일이라 잊어 버렸던 게 아니라, 단지 비몽사몽한 상태라서 정신을 못 차렸을 뿐이었다.
"아, 네. 네. 기억했습니다."
"이제야 떠올랐나 보군. 그래. 이젠 믿을 수 있겠나?"
사실 어제도 의심 같은 건 안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 확인을 하니 더욱 신기했다.
타인의 꿈에 접속할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기술이다.
"네. 신기하네요. 솔직히 설명만 들었으면 절대로 안 믿었을 겁니다."
"후후. 자네도 내 연구에 대해 이해를 한 것 같군. 그나저나 어제는 허락도 없이 함부로 자네의 꿈에 들어가 미안했네."
"네? 아니오. 어차피 제가 선택한 연구였고…."
게다가 어차피 꿈이다. 현실과는 전혀 무관한 세상이니 사생활 침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임상 실험같이 꺼림칙한 것보단 훨씬 낫지.
"그럼 다행이군. 앞으로 2~3일 정도 더 이 실험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나?"
"물론이죠."
어제같이 완벽한 가상현실을 구현할 수 있다면 더는 실험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굉장히 철저한 성격이신가 보다.
"오늘 데이터도 기계로 보냅니까?"
어차피 직접 눈으로 확인하신 일이니 굳이 데이터 같은 건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반대였나 보다.
"물론이네. 오히려 오늘 데이터가 지금까지 했던 테스트들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라네."
그런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필요하다면 보내야지. 별로 귀찮은 일도 아니다.
이젠 기계를 다루는 것도 완전히 익숙해졌다.
오히려 실험이 끝나면 컴퓨터에 연결할 게 없다는 사실이 허전하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파일을 전송하면서 어제의 꿈에 대해 생각했다.
보통 꿈이란 건 그 당시에는 아무리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깨어나면 급속도로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다.
깨어나자마자 계속 꿈을 생각해내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기 마련이고, 만약 잊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흐릿하고 모호한 기억만 남을 뿐이다.
그건 루시드 드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제 그 꿈은, 눈을 뜨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마치 어제 밤에 직접 겪었던 일처럼 말이다.
그 선명함…게다가 외부의 개입까지 가능하다면…정말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꿈의 내용까지 내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면…폭넓은 활용이 가능하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꿈속에서 기절할정도로 술을 퍼마셔도 다음날 전혀 숙취를 느끼지 못한 채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밤새도록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수험생들은 한국 최고의 독서실보다도 더 좋은 환경에서 보충 학습을 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이건 단순한 꿈이 아니다. 또 하나의 완벽한 세계다.
이래서야 현실이 재미없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이 테스트가 끝나고 제품이 나오게 된다면…내가 제일 먼저 사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테스트 제품이라도 나한테 선물로 주지 않으려나?
흠... 과연.... 상용화가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는데 '현실이 재미없게 느껴진다'는 대목때문에 상용화가 된다고 해도 문제가 발생할듯한 예감이..; 어쨌든 두근두근두근하며 보고있슴다 제발 연중은 안되여ㅠㅠ
넷. 연중은 없습니다. 이 작품은 저도 상당히 심혈을 쏟는 작품이라서 어떤식으로든 완결은 냅니다. 이미 초안 구상도 끝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