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네놈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하나같이 취업할 생각은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면서 부모의 돈이나 축내고 있지.
부모의 돈으로 4년이나 탱자탱자 놀고 다니며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은을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아직까지도 부모에게 손을 빌리며 생활하고 있다!
이게 쓰레기가 아니고 무엇이냐! 집안 사정에 의해 대학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고졸인 채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봐라!
네놈들이 4년, 5년 동안 대학에서 편하게 놀고먹는 동안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부모가 더 잘 산다는 이유로 취직할 땐 그들보다 더 대접을 받을 수 있지.
그런 축복받은 상황에서도 구직 활동을 포기하고 집의 돈이나 축내고,
친구들이랑 놀기 위해 용돈이나 타 쓰는 너희들은 쓰레기다!
아니, 쓰레기 이하다! 이런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얼른 죽어서 더는 숨을 쉬지 않는 것이 한국을 위한 길이다!
나라를 위해서 죽어라! 축구 경기할 때 밤을 새우며 응원하는 애국심이 있다면, 그 잘난 애국심으로 나라를 위해 죽으라는 말이다!"
크흑. 제기랄.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그래. 내가 쓰레기라는 건 인정한다. 부모 돈이나 축내는 한심한 놈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
세상에서 제일 쓰레기가 백수는 아니잖아!
대기업 공채를 통과했다고 해서 모두 착한 놈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들 중에서도 성격이 형편없거나 자기밖에 모르거나…인간쓰레기들은 있을 거 아니야!
연쇄 살인범 중에서도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놈들도 있었잖아? 그럼, 그들은 쓰레기가 아니란 말인가!
나라를 위해서 쓰레기를 제거한다고? 웃기지 마!
그렇다면 우리보다 더 질 나쁜 쓰레기들을 먼저 죽여야 할 거 아니야!
왜 백수가 최우선이라는 말이냐!
정말 나라를 위해서라면…협박만 하고 놔줘야 하는 거 아냐?
만약 1주일 안에 취업을 한다는 조건으로 풀어준다면. 내일부터라도 일할 수 있어.
당장 취업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라도 일단 구해보겠어.
그렇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더 좋은 거잖아.
당신은 그저 우리를 마음대로 다루고 싶은 것 뿐이잖아? 애국이라는 핑계를 대며 정당화하지 말란 말이다!
"웃기지 마!"
그때 무리 가운데 있던 한 남자가 우리를 대표해서 소리친다.
"취직을 못 했다고 쓰레기라니, 우리가 놀고 싶어서 노는 줄 알아!
우리라고 마음이 편한 줄 알아!? 취업이 안 되는 걸 어쩌란 말이야!
대졸자인데도 취업이 안 되는 건 경제가 안 좋아서 그러는 거 아냐! 대통령이 잘못이지 왜 우리가 잘못이라는 거야!"
크윽. 그만해!
그런 건 변명이 될 수 없어! 내가 들어도 구차하게 느껴질 정도다.
오히려 기분만 더 상하게 할 게 뻔하다.
"제일 쓸모없는 놈이로군."
입을 연 그의 목소리는 매우 싸늘했다.
마치 컴퓨터의 음성 재생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낸 소리 같았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종이 다발을 꺼내 펼쳐든다.
"자네 이름이 김진용이지? 지방대 4년제 졸업에 학점도 형편없군.
그렇다고 다른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취미나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야.
즉, 아무것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지. 그저 대학 졸업장 하나 믿고 까부는 꼴이군.
형편없는 놈. 대학 졸업장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어.
고등학생 중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한국에선 대학 졸업 여부 따윈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한단 말이다!
4년 동안 빈둥빈둥 놀기만 했으면서 취업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렇다고 이력서를 꾸준히 쓰는 것도 아니군.
지금까지 고작 10여 개 남짓 썼을 뿐이고, 그것도 모두 대기업뿐이니. 당연히 탈락할 수밖에.
이 스펙이라면 자기소개서는 읽지도 않고 떨어지겠군. 대기업에서 년간 100만 명씩은 뽑는 줄 아나 보지?
게다가 이력서를 마지막으로 쓴 것도 벌써 몇 달이나 지난 예전. 현재는 그것조차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놀고만 있을 뿐이군.
한심해. 너무 한심해서 더는 읽어보기도 싫다.
이런 천하의 쓰레기 주제에 경제가 어쩌니저쩌니 떠들다니. 한심해서 말도 나오지 않는군.
분명히 말하지만, 아무리 경제가 좋고 일자리가 남아돈다고 하더라도 너 같은 쓰레기를 환영하는 기업은 어디에도 없다."
자기의 신상 정보가 낱낱이 노출된 그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쩍 벌릴 뿐이었다.
나도 놀랐다. 저 녀석이 그만큼 쓰레기라서 놀란 게 아니라, 저 상세한 정보 때문에 말이다.
대학이나 학점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력서를 어디에 몇 개 넣었는지 같은,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파악하기 힘들만한 개인 정보까지 상세하게 꿰고 있다.
대체 어디서 저런 정보를 손에 넣은 거지?
그렇다면 나를 비롯한 여기에 있는 다른 녀석들에 대해서도 저 정도 정보를 갖고 있다는 말 아닌가?
"나, 난 억울해요. 난 분명히 노력을 했단 말이에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서 내 뒤에 서 있던 여자가 입을 연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비교적 좋은 대학을 나왔고, 졸업 후에도 계속 스펙을 쌓고 있어요. 물론 이력서도 계속 쓰고 있어요.
하지만, 취업 카페에 가면 나와 비슷한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취업해가는데 전 면접까지 살아남은 적이 손으로 꼽을 정도에요.
왜 그런 줄 알아요? 제가 여자고, 어문계열이기 때문이에요.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비인기 전공이라는 이유로 자기소개서를 읽지도 않고 떨어트린단 말이에요.
이게 제 잘못인가요? 그렇다고 다시 대학에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하긴. 나도 비인기 전공인 수학과라서 그런지 조금 이해가 된다.
기업에서는 상경계열과 공과계열을 원하지, 순수 수학 쪽은 어딜 가도 환영받질 못한다.
그러나 그의 평가는 가차없었다.
아무 말 없이 종이 다발을 잠시 뒤적거리던 그는, 그 여자의 신상정보를 찾아냈는지 강연대 위에 올려놓는다.
잠시 그 문서를 읽어보면서 한숨만 내쉬던 그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마음이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