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정확히 말하자면 네 꿈의 주인이라 할 수 있지. 그러니 꿈속에서는 확실하게 예의를 갖추도록."
"별 웃기는 인간 다 보겠네? 내 꿈의 주인은 나야, 이 자식아! 헛소리 그만 하고 빨리 꺼지시지!"
이 사람이 내가 꿈 속에서 창작해낸 인물이라고 한다면…난 지금 혼자서 개꿈을 꾸며 쇼를 하고 있는 것뿐일 수도 있지만
부아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내 반응을 보고 같이 화를 내는 대신, 어이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흠. 이 녀석. 아무것도 모르고 있잖아?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설명은 제가 하겠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서 우리들의 대화에 끼어든 사람은 바로 그 소장님이었다.
뭐야. 이 두 사람, 서로 알고 있던 사이였나?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도 느꼈지만, 동시에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도 들었다.
그런데 소장님이 이 꿈 속에 나타났다는 것은…아저씨가 꿈속의 인물이 아니라면….
"이, 이봐요. 아저씨. 지금 내 꿈에 들어온 겁니까?"
"그렇다네."
"실험은 끝났는데 왜 들어온 겁니까? 아니, 그런 것보다 기계가 없는데 어떻게 내 꿈에 들어온 거죠?"
그는 내 말을 가로막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자. 자. 하나씩 설명해 주겠네. 일단은 얌전히 들어주게."
"…좋아요."
나는 꺼림칙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 채로 그가 설명해 주기만을 기다렸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했던 연구는 루시드 드림을 꿀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아니었네."
"네? 그럼 대체 뭐였습니까?"
"다른 사람의 꿈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네."
"뭐라구요? 꿈을 조종한다고요?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깁니까?"
"실제로 우리는 이렇게 자네의 꿈속에 들어와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결국 기계 없이도 꿈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가만. 생각해보면 그 기계는 뇌파를 측정하고 루시드 드림을 유도하는 장비라고만 했지,
제 3자가 꿈속에 침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 지금까지 대체 어떤 방법으로 들어온 거지?
궁금하지만 물어봤자 대답해줄리 없겠지.
나는 다른 의문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꿈에 들어오는 것과 꿈을 조종하는 것은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예상대로 그 질문에는 선선히 대답을 해 주었다.
"후후. 해킹을 생각해보면 되네. 해커들은 다른 사람의 컴퓨터를 해킹하여 그 컴퓨터에 원격 접속해서 마음대로 조종을 할 수 있지."
"그거랑은 좀 다르죠. 컴퓨터는 명령대로 움직일 뿐이지만, 사람은 자기 생각과 의지대로 움직이는 거니까요."
"결국 몸을 지배하느냐, 마음을 지배하느냐의 차이일 뿐, 결과는 같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그건 앞으로 차차 알게 될 걸세."
그 남자는 흡족한 듯이 미소를 짓는다.
점점 나쁜 예감이 맞아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이 남자는 분명히 나를 안 좋은 상황에 집어넣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는 건 지금까지 했던 실험이라는 것은 결국 루시드 드림하고는 전혀 상관도 없는 거였군요."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에는 루시드 드림을 연구했었던 게 사실이네.
그런데 연구를 하는 도중, 이 기술을 잘 이용하면 꿈에 침입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떠올리게 되었지.
결국 연구의 방향을 바꾸게 된 것이네."
"아니, 남의 꿈에 들어가는 방법을 연구해봤자 뭐합니까?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기술 아닌가요?
나라면 차라리 계속 루시드 드림을 연구했을 겁니다."
"후후후."
그는 대답 대신에 웃기만 했다. 바보 취급을 당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지만 일단 잠자코 있었다.
"자네는 사람들이 왜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나?"
뭐야. 또 질문인가….
이 아저씨는 설명을 해야할 일이 있으면 먼저 질문부터 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도 대답해 주지. 어려울 것도 없다.
"높은 곳에 있어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그렇겠죠."
그야 대리보다 과장이, 과장보다 부장이 되고 싶은 이유는 당연히 돈이다.
물론 승진을 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구조조정 당하기 때문에, 진급을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겠지만…궁극적인 목적은 역시 돈이다.
"후후. 물론 그것도 이유가 되지.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피라미드형 조직의 이야기. 다른 예를 들어보지.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왜 그렇게 국회의원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하는 걸까?
대통령이 되면 번거로운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왜 후보자들은 대선에 출마하는 걸까?"
"그것도 마찬가지죠. 국회의원이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지.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기본 월급은 1,037만원에 불과하니까.
물론 일반 샐러리맨보다는 훨씬 많이 버는 것이지만, 어차피 돈이 많지 않으면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잖는가?
그들에게 있어서 그 1,037만원이 그렇게 큰 액수라고 생각할 수는 없네."
국회의원들에게도 월급이 지급되나?
나는 그 사실을 지금 처음 알았지만 바보 취급 받을 것 같아 내색하진 않았다.
그나저나 월급이 1000만원이나 된다고? 보너스 제외하고 순 월급만? 은근히 열받는구만….
"그렇지만 뒷돈 같은 게 오가지 않습니까?"
"설령 부정으로 벌어들이는 금액이 많다고 쳐도, 국회의원 자리에 오를 정도의 사람이라면 국회에 진출하지 못하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돈을 충분히 벌어들일 수 있을 걸세. 괜히 출마했다가 떨어지게 되면 손실도 제법 클 텐데
그것보다는 안정적으로 벌어들이는 게 더 나을 수 있지."
하기야 그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도 국회의사당 좌석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내겐 거친 몸싸움을 해가면서까지 지킬 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만약 일반적인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에게 '다음 대통령은 당신이 해달라.' 라는 요청이 왔을 때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해도 말이지.
감당을 하기 어려울 테니 말일세."
"그럼 당신은 왜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더 이상 계속 말을 나누어봤자 무의미할 것이다. 점점 내가 알고 싶어 하는 주제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는가?
그는 싱긋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충격의 전개! 다른사람의 꿈을 침입하는 것이 원래 목적이었군요ㄷㄷㄷ 근데 그래서 국회의원이랑 루시드 드림..이 아니라 꿈을 침입하는 거랑 당최 뭔상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