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그렇지만 결국에는 복종하게 될 걸세.
자네도 차차 깨닫게 되겠지만, 피조종자가 조종하는 쪽을 거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네.
이쪽은 자네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지만, 자네가 이쪽을 공격할 수는 없지."
이런 상황에서도 감정 변화 없이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 하듯 떠들어대는 걸 보자 화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흥! 웃기는 소리 작작하시죠! 뭘 하든 간에 소용없어! 어디 마음대로 해보시지! 그렇다고 내가 순순히 말을 들을 것 같아!?"
그건 허세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물론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를 생각해보면, 이자들이 꿈속에서 나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꿈이다. 내가 반항한다고 해봤자 이들이 내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때리든 흉기로 찌르든 어차피 꿈속에서의 일일 뿐. 실제로는 상처 하나 생기지도 않고, 아픔조차 느끼지 못한다.
중요한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꿈에서의 위협 따위에 겁먹을 필요 없다.
"사실 이 실험은 이번에 처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네."
그는 또다시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뭐?"
"3개월 전, 우리는 어떤 여성에게 먼저 이 실험을 했었다네. 그녀는 자네와 비슷한 나이의 처녀였지.
우리는 그 여성에게 이것저것 실험을 해보았다네."
그러자 옆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탈을 쓰고 있던 아저씨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야. 그땐 정말 즐거웠죠. 괜찮은 여자였었는데…나이도 잊고서 완전히 빠져있었으니까요."
탈에 가려져 있어 그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징그럽게 웃고 있다는 사실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선 설명을 하진 않았지만,
태도로 부터 불쾌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소장'은 쓴웃음을 짓고는 그를 잠시 동안 지긋이 바라보더니,
곧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내게 고개를 돌려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여성은 처음에는 복종하는 듯하더니 점차 반항하려는 듯 하더군.
마침 어느 정도 실험을 진행한 상태라, 필요한 데이터도 대부분 얻었고,
서서히 그녀의 반응에 식상해지기도 했던 터라, 반항에 대한 경고를 겸해 새로운 실험을 해 볼 생각을 했다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그 실험이 뭡니까?' 라고 물어주길 바란 것일지도 모르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자들이 그 여자에게 어떤 실험은 했는지는 알 리가 없지만
아무래도 탈을 쓴 남자를 보고 있으면 성적인 부분이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건 바로 그녀를 죽인다는 계획이었네."
"!?"
나는 깜짝 놀라서 잠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내 반응을 본 후 변명하듯 덧붙인다.
"아. 오해는 하지 말게. 물론 꿈속에서 죽인다는 것을 말하는 걸세.
물론 꿈속이라고는 해도 지금까지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현실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
"…."
이걸 지금 변명이라고 말한 건가?
그렇다면 결국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서 실험했다는 말이잖아.
"그리고 우리는 그녀를 죽였네. 그러자 그녀의 꿈은 그것으로 끝나 버렸지.
우리는 그녀가 충격으로 인해 잠에서 깨어났을 거라고 생각했다네.
그리고 다음 날, 과연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라는 기대를 하며 다시 접속을 해 보았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태연하게 그를 마주보려 했지만 점점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자식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접속이 안 되더군. 그건 실험을 한 후 처음 있었던 일이었네.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다음날 그녀의 집을 직접 찾아가 보았지."
"…."
"그녀는…죽어있더군. 꿈에서 죽은 그녀는 현실에서도 눈을 뜨지 않았단 말일세."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가 할 말은 대충 짐작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은 것은 아니었네. 심장도 뛰었고, 호흡도 하고 있었지."
"그럼 살아있는 거잖아!?"
그가 이어서 한 말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눈을 뜨지 않았을 뿐이네."
"…."
"식물인간 상태와 비슷했지. 말 그대로 숨만 쉬고 있을 뿐, 아무리 해도 눈을 뜨지 않았던 걸세. 마치 영원한 잠에 빠진 것처럼…."
식물인간 상태…의식을 영원히 찾을 수 없다면…그건 죽은 거나 다름없다.
"우리는 그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로 연구를 해봤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었지.
지금 상황으로서는 '그녀의 뇌가 꿈속 상황에서 죽은 것을 '실제 상황에서 죽었다' 고 인식하여
살아서 움직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라는 가설만 세워놨을 뿐이네.
'잠에서 깨어나는 신호'를 보내는 기능을 상실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어쨌든 그녀는 생명은 유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눈을 못 뜨고 있네.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말이지.
다만 왕자의 키스가 있어도 눈을 못 뜬다는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군."
…이 자식들은 자신들의 호기심 섞인 장난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어대고 있는 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죄책감이라는 것도 없어? 사이코 패스…그런 정신병자가 분명해.
아니야. 잠깐만.
그 반대일지도 몰라.
이 놈들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이유는…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거짓말은 그쯤 해두시지."
"거짓말이라고?"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이라면…아무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나를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분명하다!
"꿈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다니.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웃기는 소리! 초딩도 안 속겠다!"
그러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분 좋게 웃는 소리가 아닌,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불쾌한 웃음 소리였다.
"웃지 마! 뭐가 웃기다는 거야!"
그래도 그들은 한참을 더 웃어댔다. 그나마 그 소장이라는 인간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말한다.
"못 믿겠으면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게. 그 여성이 사는 곳을 알려줄 테니까."
젠장. 이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니…진짜라는 건가?
"조, 좋아. 알려줘보시지?"
그 순간, 머릿속에 어떤 지형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거리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건 굉장히 새로운 체험이었고, 마치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무섭기도 했다.
"뭐, 뭐야!? 여기는 어디지?"
"너무 놀랄 것 없네. 그 여성의 집의 위치를 데이터화 하여 직접 자네의 꿈속에 전송한 것뿐이라네.
그녀의 이름은 '노선희'이네. 직접 가서 이해가 될 때까지 확인을 해보게."
무…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데이터를 내 머릿속에 주입했다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럼 뼈 빠지게 공부해서 지식을 채워넣는 사람들은 모두 바보들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의 말이 거짓이라면 지금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 자식들…정신은 나갔지만 과학자로서는 굉장한 천재들일지도 모른다.
이런 놈들이 제일 위험한 놈들이다.
"혼란이 심할 테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뭐라고?"
이제 꿈에서 깨어난다는 말인가?
이들 마음대로 모든 게 컨트롤 되는 것 같아 불쾌한 기분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안도하는 마음도 들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또다시 즐거운 밤이 되겠어."
마지막으로 말한 것은 그 탈을 쓴 기분 나쁜 남자였다.
많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입을 열 때마다 나를 짜증나게 만드는 남자다.
끝까지 재수 없는 말을 내뱉는군.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라는 소재를 이런식으로 풀어내는건 처음봐서 신선하네요.. 뭐 따로 드림인베이더를 쓰기전에 영감을 받았던 책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따로 영향 받은 작품이라기 보단..아틀라스의 게임 '캐서린' 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