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그 뒤로 한동안 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궁금한 것은 다 해결되었고, 더는 물어볼 것도 없었기에 적당히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아주머니가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를 보고 그렇게 경계하더니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서,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술술 털어놓는 아주머니의 행동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원래 사람들은 공감 요소가 생기면 훨씬 친근함을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민감한 사항이라 주변에 대화를 나눌 만한 상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마침 그 피해 여성과 아는 사람(이라고 자칭하는)이 나타났으니, 이야기를 털어놓기 안성맞춤인 상황인 것이지.
대충 그런 사연이 있었던 것이리라.
내 상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아주머니는 그 여자가 입원한 병원 이름을 어딘가에 적어놨을 거라며
집 안에 들어가서 직접 찾아주기까지 하셨고.
정말 아는 사이도 아닌 나로서는 병문안 갈 일도 없음에도, 의심받지 않고자 그걸 받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풀려나고 나니 한시름 놓긴 했지만.
막상 혼자가 되고 나자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불안이 우르르 기어 나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 나도 그놈들에게 실컷 장난감 취급받다가 살해당할 운명이라는 말인가.
그걸 알면서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현실에서 위협을 받았다면 경찰에 몸을 맡기거나 야반도주라도 하겠지만,
꿈속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둘 다 불가능한 일이다.
경찰에 신고해서 '누군가 꿈속에 들어와서 저를 죽이려고 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경찰차 대신 구급차를 보낼지도 모른다.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지하철에 올라탄 일도, 여기까지 걸어온 과정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젠장. 그럴 수밖에 없지. 지금까지의 인생 중에서 최악의 위기 상황이 다가왔으니까.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닥에 벌렁 누워 버렸다.
생각을 좀 해보자.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을지를.
어쩌면 그들에게 속은 것일지도 모른다.
즉, 그 여자는 사고든 사건이든 다른 이유 때문에 의식을 잃은 것뿐이고,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이 나를 협박하기 위해 그 여자를 이용해 그럴싸한 거짓말을 만들어냈다…는 건 어떨까?
그 여자가 쓰러진 것은 그들과 전혀 무관한 일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서로 아는 사이조차 아닐 수도 있다.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만약 그 가설이 맞는다고 하더라도…정확한 근거도 없이 그 불안정한 가설만 믿고 버틸 수도 없는 일이다.
아니, 왜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이면 나를 선택했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처음에 그 인간이랑 만났을 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지.
그때만 해도 하늘이 나를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굉장히 좋아했지만, 상황이 달라진 지금은 정 반대의 기분이다.
아마 이유는 같을 것이다. 내가 선택된 것은 단순한 우연에 불과하다.
큰돈 이야기에 혹할 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았던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이제 와서 그때의 선택을 번복할 수도 없는 일이니, 생각해봤자 후회만이 남을 뿐이다.
지금은 후회할 시간도 없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나느냐.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놈들은 어떻게 내 꿈을 조종할 수 있는 거지?
처음에 그가 내 꿈에 난입해 왔을 때 그것에 대해 확실하게 물어봤어야 했다.
나는 그저 루시드 드림이라는 게 신기하기만 했고,
그가 내게 했던 질문이나 여러 가지 실험에 대해 응답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렸었으니….
하기야 그들이 처음부터 이 상황을 염두에 뒀다면,
그런 중요한 것은 물어본다고 하더라도 사실대로 대답해 줄 리가 없었겠지.
젠장. 꿈속에 들어오다니…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내가 꾸는 꿈이 내 목을 조인다는 말인가.
꿈을 절대로 꾸지 않는 방법 같은 건 없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침입 자체가 불가능할 테니 회피할 수 있을 텐데.
….
잠깐만.
방법이 있잖아!
꿈을 꾸지 않는 제일 확실한 방법.
그건 바로, 잠을 자지 않으면 된다.
그거다! 이런 쉬운 방법이 있었다니.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사고의 맹점이다.
물론, 사람이 잠을 자지 않고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수면 시간을 바꾸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즉,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버티고 있다가 낮에 자면 된다. 쉽게 말해 낮과 밤을 바꾸는 생활을 하면 된다.
그가 내 꿈에 들어오려면, 내가 자는 동안에 그 또한 '내 꿈속에 들어오기 위한 어떠한 행위'를 해야 할 것이다.
그 시간에 내가 깨어 있다면 내 꿈속에 들어오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내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그는 출근을 해야 할 테니 내 머릿속에 들어올 시간이 없을 것이다.
간단히 정리해서
그가 일할 때 - 나는 잠을 잔다.
그가 퇴근하고, 내 꿈속에 들어오려고 할 때 - 나는 일어나 있는다.
이대로만 하면 100% 방어할 수 있다.
이건 내가 24시간 자유로운 백수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의 계획은 완벽했을지 모르지만, 백수라는 오차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겠지.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언제 자는 거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내 꿈속에 들어온다면 잘 시간이 없잖아?
설마, 그놈들도 백수인가? 복권에 당첨되었거나, 잔뜩 돈을 벌어들이고 퇴직해버린 돈 많고 시간도 많은 놈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가 하루 종일 시간이 많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피할 방법은 있다.
내가 비정기적으로 취침 시간을 계속 바꾼다면, 그로서는 내가 언제 잠들지 파악할 수가 없다.
자는 시간을 모른다면 꿈꾸는 시간도 알 수 없고, 따라서 꿈속에 들어갈 수도 없다.
물론 그렇게 생활 패턴이 엉망이 되면 점점 취업의 길에서는 멀어질 것이고,
폐인으로서 한 걸음 더 가까워지게 되겠지만…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다.
어떻게든 한 달 정도만 버티면 그도 나를 포기하고, 백수가 아닌 다른 제물을 찾아다니지 않을까?
좋아. 해보자. 일단 오늘 밤을 새우고, 내일 낮에 잔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시차적응이 되겠지.
오늘이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생활 패턴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새벽이 되면 굉장히 졸릴 것이다.
밤샘을 할 때면 몇 번의 고비를 맞이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 고비를 어떻게든 넘겨야 한다. 넘지 못하고 잠들어버리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
밤 11시.
이제부터 서서히 밤샘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우선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된다. 배가 부르면 자연스럽게 졸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각오를 다지고, 긴장 상태라고 할지라도 졸음은 언제라도 찾아오는 법이다.
그리고 음악을 틀었다. 귀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
오랜만에 커피도 한 잔 타서 마셨다.
학생 시절 시험 기간에 마시려고 사놨던 커피 믹스가 아직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좋아. 완벽하다. 이제 아침까지 게임이나 즐겨야지.
학교 다닐 때는 밤을 새워서 게임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다. 방학뿐 아니라 학기 도중에도.
그때는 아무런 불안이 없었으니까…다음날 오전 수업이 있다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었지.
하지만, 이렇게 비장한 각오로 밤을 새우는 건 처음이다. 조금이라도 졸면 끝장이다.
나는 온라인 FPS 게임을 실행시킨다.
역시 집중을 잃지 않으려면 사람들과 같이 하는 온라인 게임, 그중에서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총 게임이 최고다.
하다가 질리면 다른 게임으로 바꿔가며 하면 된다.
한 8시까지 하다가…아침을 먹고 10시쯤에 자면 되겠지. 설마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진 않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결정하고 개설되어 있는 게임 대기실에 들어간다.
실제로 저런 좋은 조건에 쉬운 일을 맡는다고 할때 저같았으면 덥썩 물었을 것 같네요. 역시 이런건 생각을 하고하고 또 해봐야 된다능.. 어쨌든 그럴듯한 탈출구를 발견!.. 했으나 얼마나 통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