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권력일세. 충분한 돈을 수중에 넣은 사람은 크게 세 갈래의 길을 걷게 된다네.
더욱 더 돈을 벌어들이려고 하는 사람. 적당한 한도에서 만족하고, 소비하며 즐기려는 사람.
그리고 권력으로 눈을 향하는 사람. 특히 계급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마지막의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
권력이란 한 번 맛을 보게 되면 어지간한 사람이라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네.
권력의 맛을 체험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만약 그 힘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그 길을 걸으려고 할지도 모른다네."
"…그런가요."
무직자인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였기에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어서 계속 설명했다.
"그렇다면 권력이란 무엇일까? 남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뜻하지.
즉, 인간은 남을 지배하는 행위에서 강한 쾌감을 느낀다는 말일세."
"…."
"그러나 일반적인 사회에서 누군가를 지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그쯤 되자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남의 꿈을 지배하는 것으로 대리만족하겠다는 겁니까?"
"그렇다네."
"나 참."
거창하게 말을 시작하긴 했지만 결론은 어처구니가 없었고,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작 그런 제멋대로의 생각 때문에 지금까지 나를 실험대로 삼았다니. 화가 치밀어오를것 같았다.
"우선 그 발상부터가 이해가 안 되네요. 누군가를 지배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니.
그런 건 빵셔틀을 부려먹는 것으로 만족스러워하는 일부 유치한 중고딩들이나 그렇지 않을까요?"
내가 말한 것 치고는 제법 괜찮은 비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네. 가령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옛날부터 개는 제일 훌륭한 애완동물로서 인간에게 사랑을 받아왔지. 그 이유는 복종심이 뛰어나기 때문이네.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개가 애완용으로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동물이 복종하는 것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에 애완동물을 기른다는 겁니까?
"그렇다네."
나는 애완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애견가의 기분이 되어서라도 이 불쾌한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싶었다.
"요즘은 반려동물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세상이에요. 동물을 정말로 자식같이 생각하고 돌보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나는 성악설을 믿고 있네."
그는 갑자기 그런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말에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분명히 이 세상에는 선하고 순진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
그런 사람들처럼 인간의 본성에서 벗어나서 행동하게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네."
나는 그가 한 말이 얼른 이해되지 않아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잠시 생각해 본 나는 하나의 추측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당신은, 인간에게는 누군가를 복종시키고 싶어 하는 본성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비정상이라는 말입니까?"
"비슷하네. 비정상이라기 보단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하지."
그는 빙긋이 웃었다.
황당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그는 보충설명을 했다.
"개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고, 물건을 물어오게 하는 등의 행동이 그 기본일세.
자신이 하는 말을 그대로 듣는 개를 보며 희열을 느끼는 것이지.
정말 있는 그대로 개를 사랑한다면, '훈련'을 시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닐까?"
"그건 관점의 차이겠죠!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뿐 아닙니까?"
"자네는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라는 이름을 들어봤나?"
"뭐, 뭐요? 그게 뭡니까?"
또다시 전문 용어인가…내가 그런걸 알리가 없다.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서 나를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애니멀 호더는 동물들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말하네. 그들은 수십 마리의 동물을 기르기 때문에
얼핏 보면 동물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쉬워. 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동물을
데려와서는 방치하거나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결국 동물들은 한 마리 한 마리 병으로 죽거나 굶어 죽게 되어 버리지.
결국 일종의 동물 학대라고 할 수 있네. 이미 법으로 처벌 기준까지 마련되어 있는 국가도 있지."
동물을 우표 수집 하듯 모으는 사람이란 말인가?
참 세상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구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그게 지금 이야기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나는 그 애니멀 호더들이 그런 이상한 일을 하는 이유는 우월감 때문이라고 생각하네.
데려온 동물들은 자기가 먹이를 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자기 마음대로 죽일 수도 있는 등 자신이 압도적인 위치에 설 수 있지.
실제 그들은 동물들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슬퍼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아.
동물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지배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네.
노예가 죽을 때 슬퍼하는 귀족이 없듯 말이지."
"그건 그 사람들이 좀 이상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법으로 처벌하는 거겠죠."
"아니. 그들은 다른 계기로 극단적이 되었을 뿐 누구나 조금씩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네.
그렇지 않고서야 서로 연관도 없고, 애니멀 호더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그런 특이한 증상을 보인다는 것을 해명할 수가 없지."
나는 머리가 아파올 것 같아서 토론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 사람은 나와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이래서야 서로 아무리 언쟁을 해봤자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만 하죠. 당신이 변태라는 건 충분히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어쩌죠?
난 당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싶은 마음 따윈 조금도 없거든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실험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나는 비아냥거리듯 그렇게 선포했으나, 그는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은 채로 말했다.
저도 사실 성악설을 지지합니다....가 아니라 소장님은 역시 나쁜놈이었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