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학생 시절, 이 녀석은 편도로 1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집에서 통학하고 있었는데,
가끔 내 방에 놀러 올 때도 있었고, 시험 기간에는 자고 갈 때도 있었다.
물론 졸업하고 나서 놀러 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야. 졸업하고 나서도 방이 하나도 안 바뀌었냐?"
들어오자마자 녀석은 신나게 떠들어댔다. 재미있다는 듯 냉장고도 열어본다.
"졸업이랑 방이 무슨 상관이야? 너도 졸업 후에 방 인테리어를 바꾸진 않았을 거 아냐?"
"아니. 그만큼 그립다는 뜻이지. 그것보다 뭐냐? 이건. 수학의 정석은 왜 꺼내놨어?"
녀석은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수학의 정석 책을 집어든다.
그립다는 표정을 지으며 후루룩 넘겨보기도 했다.
"말했잖아? 수학 문제가 많이 나왔다고.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닥치는 대로 수학 공부만 했다."
"아까 이야기론 그다지 정석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던데….
어쨌든 네가 얼마나 급한지 알겠다. 그래도 기특한데? 아직도 정석을 버리지 않았다니."
"관둬 인마. 기특은 무슨."
녀석은 히죽히죽 웃더니 멋대로 컴퓨터의 전원을 누른다.
부팅이 되는 동안 정석 책을 넘겨보며 이 공식 힘들게 다 외웠는데 아무 쓸데도 없었다느니,
지금 보니 아무것도 아닌 개념이 그땐 하나도 이해가 안 되어서 통째로 외워버렸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잠시 후 부팅이 다 되었고, 나는 바탕화면에 설치되어 있는 전송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그 프로그램의 화면이 나타난 후, 녀석은 웃음기를 지우고 책을 내려놓으며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흠. 이게 그 프로그램인가 보지? 잠깐만. 만약을 위해서 백업부터 해두자."
녀석은 지갑에서 USB 디스크를 꺼내 컴퓨터에 연결한다.
컴퓨터 회사에서 일하면 이런 것도 항상 가지고 다니는가 보다.
"그 남자는 이 프로그램을 어디에서 가져왔어? CD? USB? 아니면 메일?"
"무슨 웹하드 서비스인 것 같던데?"
"웹하드라…이따가 인터넷 방문 내역을 한 번 찾아봐야겠군.
웹하드에서 받았다면 이 프로그램의 원본 파일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설치 파일이나 압축 파일이 어디 있는 줄 아냐?"
"그, 글쎄? 그 남자가 지운 것 같은데?"
사실 그런 게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난다. 녀석도 별로 기대하고 말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설치된 파일이라도 백업을 해 두자고."
확실히 컴퓨터 앞에 앉은 녀석은 굉장히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나는 수학과 동문으로서의 녀석의 모습밖에 모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복사를 마친 그는 프로그램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한다.
"굉장히 심플한 프로그램이군. 정보를 찾을 것도 없겠는데?"
"그럴 거야. 대충 보니까 기계에 들어있는 파일을 전송하는 기능밖에 없는 것 같더라."
"음. 그렇다면 그 전송한 파일을 분석해보는 게 빠를 것 같은데? 혹시 파일은 가지고 있냐?"
"그 파일이 기계에서 곧바로 메일로 전송이 돼서…컴퓨터에 파일이 남지 않는 것 같더라고."
"그래. 참 재미있는 일이야. 분명히 컴퓨터를 경유해서 파일을 보내는 건대도 컴퓨터엔 흔적 하나 남기질 않는다니….
그냥 메일의 첨부 파일 기능을 이용해서 보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이런 프로그램까지 사용하게 한 것도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겠지."
녀석은 안타깝다는 듯 그렇게 말한다.
실험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느끼고 받아들였던 것들이,
다 끝나고 꿈을 침입당한 후에 다시 생각을 해보니 모든 게 다 계산적이었던 것 같이 느껴진다.
"사실 나도 대체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서 파일 하나를 하드에 카피했던 적이 있었는데…."
"뭐라고? 어디 있는데?"
그는 반색하며 나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 파일이 남아 있었다면 나도 진작에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미 예전에 지웠어. 용량이 작더라면 귀찮아서라도 지우지 않고 놔뒀을 수도 있었을 텐데 수백 메가나 하더라고.
어차피 내겐 가치도 없는 파일이라고 생각해서 곧 지워버렸지."
대체 이게 뭔데 수백만 원이나 지급하나 싶어서 메모장으로도 열어보고 동영상 재생기에도 담아봤지만, 반응이 있을 리가 없었다.
몇 분을 그러고 있다가, 갑자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 강렬하게 느껴져 그냥 지워 버리고 말았다.
"어느 폴더에 담았었는데?"
"야. 야. 지웠다니깐 그러네."
"잘하면 복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복구?"
그는 미소를 지으며 탐색♡로 USB 디스크에 접속해서, 빠른 속도로 폴더를 뒤져 어떤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프로그램 로고가 떠오르고 사라진 뒤, 잠시 후 윈도우 탐색♡와 비슷하게 생긴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탐색♡처럼 폴더와 파일들의 리스트가 표시되었지만, 상단의 아이콘이나 메뉴의 구성 등이 조금 달랐다.
"파일을 삭제한다는 건 사실 하드디스크 내에서 파일을 소멸시켜버리는 게 아니라, 그 파일에 대한 정보만 없애는 거야.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뿐, 삭제한다고 해도 파일은 남아있는 거지.
즉, 그 파일 위에 다른 파일이 덮어 쓰이지만 않은 상태라면 삭제된 파일도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건 내가 지운 파일을 복구할 수도 있다는 말인 것 같다.
녀석은 다시 한 번 어느 폴더에 카피했었는지를 물어본다.
"그냥 바탕화면에 깔았었는데…. 내 문서였나?"
"파일 이름이랑 용량, 삭제한 날짜 혹시 기억 하냐?"
"어…파일 이름은 숫자로만 되어 있었던 것 같고, 좀 길었어. 용량은 1기가 좀 안 됐던 것 같고…."
"아, 이거군."
그는 그 복구 프로그램이란 것으로 어떤 파일을 선택하고서 아이콘을 몇 번 클릭하니…수십 초 후,
바탕화면에 파일 하나가 떡 하니 생겨 있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너무나도 신기한 광경이었지만, 녀석에게 있어서는 아무 일도 아닌 듯 전혀 표정 변화가 없었다.
"다행히 아직 남아 있었군. 문제는 이제부턴 데…."
그는 손깍지를 껴서 머리를 받친다.
"솔직히 이 거대한 용량의 파일을 내가 분석할 수 있을지나 의문이다.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오늘 내로 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단 말이야."
"부탁 좀 하자.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잖아?"
"음. 나도 솔직히 뭐가 들어 있는지 굉장히 궁금하긴 한데…최선을 다해보긴 하겠지만 100%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마."
와우!!! 멋진 컴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