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여 떠올리기 시작했다.
'은행 은행 은행 은행 은행 은행…기관총 기관총 기관총….'
잠시 후,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진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그곳은 틀림없는 은행이었다. 마지막으로 가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긴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나는 오른손에 거대한 기관총을 쥐고 있었다.
서, 성공이다! 성공했다! 정말로 성공한 거야!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 쉽게 될 줄은 몰랐는걸!?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난 무적이다!
"우하하하핫! 이 자식들! 가진 현금을 다 쌀자루에 쑤셔 담아!
안 그러면 이 7.62mm 탄환이 가득 들어있는 기관총에서 가차 없이 불이 뿜어져 나올 것이다!"
나는 시험 삼아 기관총을 들어 올리고 천장을 향해 세 발을 쏘았다.
사실은 한 발만 쏘려고 했을 뿐인데 하도 연사력이 좋아서 순식간에 세 발이나 나간 것이다.
소리와 반동도 엄청났다. 쏜 나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였으니,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경비원을 포함한 모두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벌벌 떨었다.
"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은 순식간에 쌀자루(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에 돈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쌀자루는 오만원권 지폐로 가득 차 버린다.
이 정도 크기라면 한 수십억은 들어갔을 것이다. 나는 그 돈 보따리를 가볍게 들어 올리고 의기양양하게 은행문을 박차고 나간다.
좋았어. 이제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이 돈을 모두 써버리는 일만 남았다.
아니, 가만. 이렇게 귀찮게 은행을 습격할 바에 차라리 '돈 자루' 를 강하게 소망했으면 됐을 일 아닌가?
에잇. 어찌 되었든 좋다 이거야. 이제 난 왕이니까! 크하하하!
서두르자! 루시드 드림은 한 시간정도 지나면 깨어나니까.
나는 그 후 놀라운 속도로 방송국을 습격하여 소녀시대와 카라를 포함한 아이돌 스타들을 모조리 납치해왔다.
아마 대한민국에 데뷔한 걸 그룹은 모조리 데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내가 한 일들은 너무 음탕하기에 생략한다.
아무튼 소녀시대 팬에게 내가 한 일들을 자랑스럽게 들려주었다면, 당장 정수리가 깨질 만큼 얻어맞을 정도의 일이었다고만 해둔다.
꿈속에서 깨어난 후에도 여운이 남아 걸 그룹 노래를 들으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날 저녁, 약속대로 그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는 두툼한 비밀 봉투를 들고 왔는데, 얼결에 받아들고 보니 따끈따끈한 치킨 박스와 맥주 피처가 들어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치킨 & 맥주 콤비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아마도 이것이 그가 말했던 선물인가 보다. 이런 거라면 부담도 되지 않고 대환영이다.
"혹시 저녁을 이미 먹었나?"
"아뇨! 뭘 먹을지 생각도 안 했는걸요."
생각도 안 한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냉장고 사정은 뻔하다.
그가 오지 않았더라면, 보나마나 오늘도 찬밥에 고추장 한 숟갈 넣고 비벼서 김치와 김만을 올려놓은 채 쓸쓸하게 먹을 것이 분명했다.
돈이 생기긴 했지만 아무래도 빚졌던 경험이 있으니 함부로 사용 할 수가 없어서
여전히 궁핍한 식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터라, 이런 선물이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이런걸 다 사오십니까?"
짐짓 그렇게 말했지만 스스로도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후후. 아닐세. 자네의 도움은 막대했네. 오히려 이 정도밖에 해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네."
나는 소장님을 방 안으로 모신 후, 부리나케 움직였다.
치킨 박스를 개봉하고, 치킨 무 표장을 뜯고, 잔을 2개 가져와 맥주를 따르기 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워서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건배를 하고 잔을 내려놓자마자 치킨을 허겁지겁 집어먹었다.
양념 치킨 특유의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맛있나?"
"너, 너무 맛있습니다!"
"많이 먹게. 나는 별로 배고프지 않으니까."
그가 사온 순살 양념 치킨은 정말 너무 맛있어서, '닭으로 이런 엄청난 맛을 내는 게 가능하다니!
이런 굉장한 요리는 대체 누가 생각했을까!' 하는 감탄을 내뱉을 정도였다.
이런 맛을 알아버렸으니 돈 걱정은 잊어 버린 채 내일 또 시켜 먹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아저씨 없이 나 혼자 있었더라면 감동의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먹었을지도 모른다.
맥주는 또 어떤가. 위장에 흘러들어가는 노란색 액체가 나의 아드레날린을 폭주시켰다.
적당히 차가운 이 온도! 뼛속까지 시원하다!
그날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마음껏 먹고 마셨다.
치킨과 맥주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그는 체인점 치킨 집에 전화를 걸어 치킨 한 마리와 생맥주 2000cc를 추가로 배달시켰다.
나는 입으로는 아이고. 이정도면 충분합니다. 죄송해서 어떻게 하나요. 이런 소리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고기를 먹어본 게 얼마만이냐.
시원한 생맥주를 마음껏 마셔보는 게 얼마만이냐…!
이럴 줄 알았으면 점심부터 굶을걸 그랬다!
나는 체면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마구 먹었다.
어잇-----음탕한 부분을 생략하면 안되잖아요!?!?! ...농담40진담60...
온가족의 루리웹이라..어쩔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