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는 죠안의 등장에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엄벌하여, 그 누구도 다시는 교주를 사칭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이 가혹한 처사에 불만을 가진 이들은 그를 비호하여, 그의 도주를 도왔다.
부아가 치밀긴 했지만, 그깟 가짜 교주 하나 쯤 놓쳐봐야 뭐가 문제겠냐는 듯, 그녀는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려 했다.
자신이 알던 그때 그 모습으로.
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엄숙한 모습으로.
그러나, 잘 풀리진 않았다. 그녀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녀가 행한 기적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의심하는 이들이 많았으니까.
그녀는 자식을 꾸짖는 부모의 심정으로 그녀들을 꾸짖었고, 그 이후로 그녀에게 대놓고 반기를 드는 이들은 사라졌다.
그리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머니 세계수의 힘을 지닌 이를 붙잡아, 그녀를 황무지로 추방하려던 바로 그때, 교주가 나타났다.
교주 일행은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그녀와 맞섰다.
...아니, 아니다.
죠안을 제외한 모두가, 그녀에게 필사적으로 맞섰다.
어째서? 나는 주교일 텐데? 나는 세계수의 뜻을 따르는 세계수의 딸일 텐데?
까닭 모를 반항에, 그녀는 분노했고, 그런 그녀에게 교주가 말했다.
"가짜 교주."
그 말에, 그녀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표독스러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교주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그녀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넌 교주가 될 수 있었어.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지."
그는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죠안을 비꼬는 걸 시작으로, 갑자기 분노에 찬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역설하기 시작했다.
"날 봐라!!"
"난 그저 키만 큰 멀대에 불과하다. 너희보다 크게 지혜롭지도 않고, 너희들보다 강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
"난 오히려 이곳 주민들의 평균적인 근력에 미치지조차 못하는 약골이다! 난 이곳에서 이 주먹으로는 그 누구도 힘으로 이길 수 없다!!"
"나는 누군가를 지도할 그릇이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난 그저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어쩌다보니 납치되었을 뿐인 범부 중에 하나일 뿐이니까!!"
"내게는 세계수로부터 부여받은 눈에 띄는 권능도 없으며!! 그 어떤 기적조차 이룰 수 없는, 아무런 권능도 없는 범부다!!"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잉여인간에 불과하단 말이다!!"
그를 따르는 모두조차 멈춰세울 정도의 기백에, 죠안은 어안이 벙벙하여 멈춰선 채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한참이나 자신을 헐뜯던 그는, 이내 죠안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러나 봐라!! 지금 네 모습을!! 네 꼴이 지금 어떻지?!"
그건 꾸짖음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빵을 무한히 만들 수 있는 권능과 맹물을 딸기주스로 바꾸는 그 권능!! 잘만 사용한다면 널 따르는 모두를 미소짓게 해줄 수 있는 그 권능을 가지고서도, 넌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네 권능은 그저 자기과시를 위한 것에 불과했고!! 네가 실제로 한 건 가르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억압을 저질렀을 뿐이다!!"
"너는 이곳에서 아무 능력이라곤 없는 한낱 인간 따위에게 지지 않을, 더 훌륭하고!! 더 대단한 교주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넌 그렇게 하지 않았어!! 왜냐고?! 그 니미ㅆㅂ ↗같은 속삭임이 먼저였으니까!!"
"넌 네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네 멋대로 재단해, 세계수의 뜻이라 착각한 너의 뜻을 설파하는 데 바빴다!!"
"넌 네 속삭이는 목소리에 취해, 네가 거머쥘 수 있는 것과 그래선 안 되는 것을 착각했고!! 그래서 사도들의 삶과 평화를 해쳤다!!"
"그리하여!! 넌 이곳에서 나와 나를 따르는 이들과 적대하게 됐다!! 왜냐고?! 넌 모든 걸 할 수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 모든 걸 갖추었음에도!! 넌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래. 꾸짖음. 모두를 적으로 돌린 죠안을 꾸짖는 엄한 외침.
한참이나 계속된 꾸짖음 끝에, 교주는 짐짓 평온한 투로 말했다.
이미 그의 말에 모두가 집중하고 있기에, 점잖고 작은 목소리였음에도, 그녀의 귀에는 막힘없이 박혔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 다시 한번 교주로서 섰다."
말은 평온한 투였으나, 그의 표정은 한심한 자식을 내려다보는 부모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누리던 모든 영광이 네 몫이 될 수 있었음에도, 넌 그걸 걷어차고 네가 하고 싶은 짓만 했지."
"그걸 바로잡기 위해, 내가 다시금 교주의 자리에 섰다."
그리곤, 주변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봐라. 널 바라보는 이들을. 네게 실망한 이들을. 네가 멋대로 재단하고, 멋대로 끌어들였으며, 멋대로 내친 이들의 모습을."
그들의 표정이 죠안의 눈에 들어왔다. 모두의 표정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분노. 적대감. 그리고 슬픔.
이를 볼 시간을 준 교주는 그녀에게 선언했다.
"넌 이곳에 온 이래로 단 한 순간조차 교주가 아니었다. 죠안."
그리곤, 그녀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
"넌 실패자야."
그 말에, 죠안이 발작하듯 외쳤다.
"아니야!!!!!!!!!!!!!!!!!!!!!!!!!"
그러나,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짓는 죠안의 표정에도, 교주는 차갑디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할 뿐이었다.
"넌 무능력자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리곤, 이내 그 경멸짓는 표정이 조금씩 분노가 섞이더니,
"넌 누구보다 뛰어났음에도, 누구보다도 무능했다."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란 말이야!!!!!!!!!!!!!!!!!!"
증오, 그리고 비웃음이 섞인 활짝 웃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이죽거렸다.
"넌 교주 조안이 아니라, 역사에 길이 남을 실패자 죠안으로서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오, 어리석은 찬탈자 죠안이여. 무능력한 인간 하나조차도 할 수 있는 일을 못해서 무너져내린 죠안이여.
모두가 네 어리석음을 비웃는 이야기를 노래할 것이고, 그 덕분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교주로 기억되겠지.
네 덕분에."
그 말에, 죠안은 교주에게 달려들었다.
"교, 교주님!!!!!!"
교주는 죠안과 함께 바닥에 뒹굴었지만, 강한 충격과 고통에 콜록이면서도 이죽거림을 쉬지 않았다.
"오, 새로운 폭력이라! 좋은 선택이다. 당장 직면한 문제를 쳐부수고 모르는 척 하기에 이만한 수단이 없거든!
해라. 죠안. 그 잘난 주먹으로 이 교주를 끝장내봐라!!
네 그 잘나빠진 주먹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네 이름을 새겨보란 말이다!!"
"이이익!!"
죠안은 교주의 허리춤에서 총을 빼냈다. 그리고, 그의 심장에 대고 총기를 겨눴다.
"아아... 느껴져...! 어머니 세계수의 힘이...!"
"한다는 게 그거냐? 살아있는 대상에겐 발사도 안 되는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고물 총?"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나라면 할 수 있어!! 나라면!!!!!!!!!!"
그리고, 방아쇠는 당겨졌다.
탕-!!
"커... 헉...!!"
교주의 몸엔 구멍이 뚫렸다.
"교주!!!!!!!!!!!!!!!!!!!!!!!!!!!!!!"
"교주님!!!!!!!!!!!!!!!!!!!!!!!!!"
"안 돼!!!!!!!!!!!!!!!!!!!!!!!"
모두의 찢어질 것만 같은 비명이 울려 퍼졌고, 교주를 해칠까 봐 겁나서 접근하지 못하던 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죠안은 이미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듯, 반쯤 제정신이 아닌 채로 실실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헤... 헤헤...! 내가... 내가 해냈어...! 내가!! 해냈어!!!!!!!!! 세계수께서!! 어머니께서 쳐내라 이야기하셨던 엇나간 방향으로 길고 곧게 뻗은 가지를 쳐내는 데 성공했어!!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래. 쿨럭... 네가."
그 말에, 교주는 입가에서 피를 뿜으며 비웃었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그는 「해냈다」라는, 성취감을 느끼는 밝은 미소로 피를 흘리며 웃고 있었다.
마치, 이런 결과를 기다렸다는 듯이.
"쿨럭... 너는... 너는 기억될 거다... 쿨럭... 교주였던 인간을... 쿨럭... 죽인... 「살인자」로."
그리곤, 까닭 모를 쇠냄새를 풍기며, 소름 끼칠 정도로 따뜻한 붉은 액체가 뭍은 양 손으로, 죠안의 양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축하한다. 교주의 자리를 차지할 수많은 기회를 걷어찬 걸로 모자라서, 교주의 자리를 되찾을 기회마저 걷어찬 살인마야."
"뭐...?"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그럼, 주변을 보려무나. 이게 무슨 뜻이었는지, 다시는 무시하지 못할 테니."
그 말에 죠안은 주변을 살펴봤다.
그리고, 그제야 모든 게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을 증오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을 혐오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래. 나.
이 가짜 교주 놈이 아니라, 바로 나.
"축하... 한다... 쿨럭...! 역사에... 길이 남을... 쿨럭... 살인... 자...."
털썩.
"안 돼애애애애애!!!!!!!!!!!!!!!!!!!"
배신자, 네르의 처절한 비명소리에, 그녀는 정신차렸다.
그리고 봐버렸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나, 나는..."
그리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녀를 밀친 다음, 바닥에 엎어진 교주의 상태를 살폈다.
교주는 이제 그 자신이 아니었다.
그저, 교주의 형상을 한 무언가일 뿐.
그 온기를 잃고 차게 식어갈 뿐인, 교주의 형상을 한 무언가.
다시는 교주가 되지 못할 무언가.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든 건 자신이었다.
"아... 아니야..."
모두의 증오가 자신에게로 향했다.
"아니야...! 난...!!"
모두의 혐오감이 자신에게로 향했다.
"아니야아아아아!!!!!!!!"
모두가, 자신을 바라본다. 이전에 있던 경외감은 모두 덜어낸, 언제 다시 보더라도 익숙해지지 않을 표정으로.
그래서, 죠안은 도망쳤다.
소름끼칠 정도로 따뜻한 이 액체를 씻어내러.
이 빌어먹을 온기를 덜어내러.
한참이나 달리고 또 달린 죠안은 정령산의 호수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이미 굳은 붉은 액체가, 교주의 손바닥 모양으로 죠안의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죠안은 재빨리 호수의 물로 자신의 뺨을 씻었다.
그 빌어먹을 온기가 사라지길 바라며.
그 소름끼치는 쇠냄새가 가시길 바라며.
교주의 손자국이 사라지길 바라며.
그러나, 그건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어서 달라붙은 검붉은 덩어리를 억지로 떼어내면 떼어낼수록, 교주가 자신의 뺨을 소름 끼치도록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졌을 때가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녀는 그 끔찍한 감각을 떨쳐내고자 자신의 뺨에 물을 끼얹고, 또 끼얹고, 나중에는 아예 호수에 몸을 던져버렸다.
그러나, 지워지지 않았다.
교주가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던 그 감각이.
그 따뜻한 붉은 액체가, 자신의 뺨에 달라붙어선, 방울져 볼따구를 타고 흘러내리던 그 감각이.
그리고, 그 소름끼치는 쇠 냄새가.
그리고, 그 쇠 냄새를 풍기며, 따스한 손으로 자신을 어루만지던, 교주의 「해냈다」라는 표정이.
"싫어..."
그렇게, 그녀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자신의 뺨을 씻다,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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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의 시간이 흘러, 그녀가 다시 요정 마을에 돌아왔을 때.
흠칫! 흠칫!!
자신을 본 요정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두려움이야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같은 두려움임에도, 그 표정은 너무나도 달랐다.
모두가 그녀를 피해 멀리 달아났고, 그녀는 환영도, 질타도 받지 못한 채 요정 마을에 들어왔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떠올라, 교주의 기록이 적힌 책들을 읽고자, 그녀는 기록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키 작은 녹색의 용족이 있었고, 자신을 보기가 무섭게 소스라치게 놀라며 새된 비명을 지르며 무작정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쨍그랑!!!!
무언가가 산산히 부서져, 다시는 원래대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소름끼치는 소음과 함께, 차가운 바람이 죠안의 양 뺨을 스쳤다.
이를 애써 무시한 죠안은 자리에 앉아 교주의 일대기를 읽었다.
교주가 이곳에 와서,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행동하였는지를.
그리고, 이미 한번 읽은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 그녀는 교주의 말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는...."
그래서, 그녀는 힘없이 입을 열었다.
"애초부터... 교주의 자격이 없었구나...."
그렇게, 그녀를 두려워하여 그 누구도 듣지 못한 그녀의 넋두리가, 가장 조용한 장소에 꺼진 촛불의 허망한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래서, 그녀는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녀가 가장 잘 하는 일을 하기 위해 떠났다.
그게 뭐냐고? 정해져있지 않은가. 죄인을 안개 밖으로 보내서, 영원히 황무지에서 떠돌게 하는 것.
그래서, 그녀는 힘없이 안개로 향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의 이야기는 끝났다.
교주의 일대기에 적힌 최초의 살인자이자, 영원히 황무지를 떠도는 운명을 가지게 된 그녀의 이야기가.
몇몇 엘프들은 교주의 세상에서 온 신화의 이야기를 따서, 그녀를 이렇게 불렀다.
"성경에 적힌 최초의 살인자, 카인.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영원히 황무지를 떠도는 카인."
그렇게, 그녀는 원래의 이름도 잃고, 그저 카인으로 전락했다.
언제나. 언제까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