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전
레드는 태초마을에 살았다. 물이 맑고, 희귀한 포켓몬이 많이 살고, 최고의 박사 오박사도 살고 있었다. 그러나 레드는 피카츄만 좋아하고, 배틀을 하려 하지 않았다.
하루는 오박사가 포켓몬 세 마리를 들고 레드를 찾아왔다.
"너는 배틀을 하지 않으니, 피카츄는 키워 무엇 하느냐?"
레드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피카츄가 좋은 걸 어떻게 하겠소?"
"그렇다면 라이츄로 진화시키는 건 어떤가?"
"피카츄가 라이츄보다 좋은 걸 어떻게 하겠소?"
"그렇다면 전기구슬을 지니게 하는 건 어떤가?"
"전기구슬은 너무 희귀해 구할 수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오박사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피카츄와 놀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익혔단 말인가? 내가 이상해씨, 파이리, 꼬부기를 줄 터이니 태초마을에서 꺼지거라!"
레드가 피카츄를 어깨 위에 올리며 말하길,
"아깝다. 피카츄 외에는 어떤 포켓몬도 잡지 않으려 했거늘......"
하고 휙 여행을 떠나 버렸다.
레드는 여행을 하는 방법을 몰랐다. 바로 가장 가까운 상록 시티에 가서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가장 강한 트레이너요?"
목호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레드는 곧 포켓몬 리그를 찾아갔다. 레드는 목호를 대하여 길게 읍하고 말했다.
"내 포켓몬이 약해서 무얼 좀 해보려고 하니, 망나뇽을 빌려 주시기 바랍니다."
목호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망나뇽을 내주었다. 레드는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사천왕들이 레드를 보니 초짜였다. 가진 포켓몬 중 가장 강한 건 흔한 피카츄였고, 그나마 희귀한 이상해씨, 파이리, 꼬부기는 레벨이 낮았다. 레드가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 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렙 망나뇽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목호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다. 대체로 포켓몬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뱃지 개수를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트레이너는 포켓몬 레벨은 낮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포켓몬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트레이너다. 그 사람이 해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망나뇽을 빌려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 하겠느냐?"
레드는 망나뇽을 입수하자, 그 등에 타고 바로 사파리존으로 날아갔다. 사파리존은 희귀한 포켓몬이 많은 곳이요, 강한 트레이너가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레드는 15번 도로로 가서 망나뇽으로 협박해 연구원에게서 학습장치를 빼앗았다. 그리고 만렙 망나뇽으로 강한 트레이너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서, 레드의 포켓몬들은 모두 만렙을 찍게 되었다. 레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학습장치 하나로 모두 만렙을 찍을 수 있으니, 성도 지방의 수준을 알 만하구나."
레드는 만렙 포켓몬들로 체육관 관장을 쓸어버리며 말했다.
"이제 체육관 관장은 모두 물갈이될 것이다."
레드가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체육관 관장들이 모두 물갈이되었다.
레드는 게임센터로 가서 주인에게 말을 물었다.
"혹시 이 지방을 괴롭히는 못된 악당들이 있는가?"
"있습지요. 로켓단이라고 해서, 사람들의 돈과 포켓몬을 빼앗고, 포켓몬을 이용해 돈을 벌며 생체 실험을 하는 극악무도한 것들이 있습니다."
레드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로켓단의 아지트를 알려준다면 함께 영광을 누릴 걸세."
라고 말하니, 게임센터 주인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게임센터 구석에 버튼을 조작하자 비밀 통로가 드러났다. 레드가 그 안을 둘러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아지트가 이렇게 좁으니 악당이 무엇을 하겠는가? 은신하기 좋으니 단지 실험을 하기에만 편하겠구나."
"이렇게 넓은데, 대체 뭐가 좁단 말씀이오?"
입구를 지키던 로켓단 조무래기의 말이었다.
"진짜 나쁜 짓을 하려면 이런 땅굴이 아니라 제대로 된 아지트가 있어야지."
이 때, 로켓단 조무래기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레드는 만렙 포켓몬들로 조무래기들을 박살내놓았다. 조무래기들을 한 곳에 모은 레드는 그들을 달래었다.
"너희를 풀어줄 테니, 두목에게 가서 좀 더 제대로 된 아지트를 구해 나를 대비하라고 이르거라."
로켓단 조무래기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우리가 다 모이면 당신 하나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장낼 텐데, 왜 풀어준단 말이오?"
레드가 웃으며 말했다.
"할 수 있으면 해보거라."
레드가 정말 로켓단 조무래기들을 풀어주자, 조무래기들 모두 레드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로켓단 전원이 모여 실프 주식회사를 장악하자, 레드가 만렙 포켓몬을 이끌고 그들 전부를 몰살시켜버렸다. 비주기가 대경해서 레드 앞에 절했다.
"상록 체육관 뱃지를 넘기겠나이다."
레드가 탄식하면서,
"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세상의 희귀한 포켓몬들을 수집해 모두 만렙을 찍었다.
그리고 그 중 피카츄, 이상해꽃, 리자몽, 거북왕, 잠만보, 라프라스 6마리를 제외한 포켓몬들을 야생에 풀어주며,
"잡을 수 있는 트레이너가 있다면 잡아가겠지."
했다. 그러고도 만렙 망나뇽이 2마리가 더 남았다.
"이건 목호에게 갚을 것이다."
레드가 가서 목호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목호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피카츄가 아직도 진화하지 않았으니, 혹시 망나뇽으로도 실패하지 않았소?"
레드가 웃으며,
"힘이 탐나 포켓몬을 진화시키는 것은 당신들 말이오. 어찌 피카츄를 진화시키겠소?"
하고, 만렙 망나뇽 두 마리를 목호에게 주었다.
"내가 피카츄 외에는 키우지 않으려 했지만 실패하였으니, 당신에게 망나뇽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목호가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챔피언 자리를 주겠다고 했다. 레드가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그린으로 보는가?"
하고는 망나뇽이 든 몬스터볼 두 개를 던져놓고 가버렸다.
목호가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레드가 은빛산으로 가서 조그만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목호는 은빛산 근처의 포켓몬 센터에 가서 간호순에게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동굴이 누구의 집이오?"
"레드의 동굴이지요. 언젠가 만렙 피카츄를 데리고 오더니, 은빛산의 강한 포켓몬을 다 잡아버리고는 은빛산의 망령이 되어 저 동굴에 틀어박혀 있지요.
목호는 비로소 그의 이름이 레드인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골드는 본래 목호와 잘 아는 사이였다. 골드가 목호를 무찌르고 챔피언이 되자, 목호에게 혹 더 강한 트레이너가 없는가를 물었다. 목호가 레드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골드는 깜짝 놀라면서,
"기이하다. 그 악명 높은 은빛산에서 은거하다니? 그는 이인이야. 자네와 같이 가보세."
레드는 동굴 안에서 피카츄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골드가 몸둘 곳을 몰라 하며 배틀을 신청하자, 레드는 손을 저으며 막았다.
"네가 가장 아끼는 포켓몬은 무엇이냐?"
"블레이범입니다."
"그렇다면 블레이범으로 만렙 거북왕을 이길 수 있겠느냐?"
골드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상성 때문에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레드는 크게 꾸짖어 말했다.
"상성이 불리하다며 자기가 아끼는 포켓몬을 꺼내지도 못하는 것이 자칭 트레이너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그럼 내가 직접 죽여주마."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몬스터볼을 꺼내려 했다. 골드는 놀라서 급히 동굴을 빠져나와 도망쳐서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동굴은 텅 비어 있고, 레드는 간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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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전 장편은 안 어울립니다.
Cryi님의 글 잘보고있습니다. 이번에도 제목 그대로 고전느낌이 드는 어체라 더 재밌던것 같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