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LTI] 입문을 넘어 고점으로, 하늘의 궤적 the 2nd

| 제목 | 하늘의 궤적 the 2nd | 출시일 | 2026년 9월 17일 |
| 개발사 | 니혼 팔콤 | 장르 | RPG |
| 기종 | PC, PS5, NS, NS2 | 등급 | 청소년 이용불가 |
| 언어 | 자막 한국어화 | 작성자 | Graz'zy |
최근에야 좀 뜸하지만 한동안 리메이크 기획이 유행처럼 돌더니, 특히 ‘드래곤 퀘스트’부터 ‘페르소나’까지 JRPG 구작들이 다시금 즐길 기회가 많아졌다. 사실 전성기 JRPG가 자랑하던 규모감은 일종의 로스트 테크놀로지 같은 거라 그래픽, 시스템 등을 최신화해 남길 가치는 충분하다. 여기에 작년 발매된 니혼 팔콤 ‘하늘의 궤적 the 1st’ 리메이크는 그 취지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입문작의 확립. JRPG 중에는 ‘궤적’보다 오랫동안 이어온 시리즈도 적잖으나 대부분 각 편이 느슨히 얽힌 옴니버스식이다. 반면 ‘궤적’은 비교적 역사가 짧을지언정 작품 간 관계가 매우 두텁다.
즉 리벨 왕국 편의 사건 및 인물이 크로스벨 자치주 편에, 또 에레보니아 제국 편과 칼바드 공화국 편까지 계속 중첩돼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걸 좋아하는 팬이 많지만 신규 유입은 갈수록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 매번 전작을 몰라도 괜찮다며 입문을 권하나 글쎄… 요컨대 ‘the 1st’는 장장 20여 년 치 시리즈에 마중물이 되어줄 더없이 중요한 리메이크였고 그 역할을 잘 완수했다. 직전 ‘계의 궤적’보다 한층 화사해진 비주얼과 적절히 간소화된 필드 & 커맨드 배틀에 본지 역시 긍정적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저 호평받은 ‘the 1st’가 실은 ‘the 2nd’를 위한 전주곡에 다름 아니란 거다.
[지난 리뷰] 입문하려면 지금이다, 편안한 승차감 ‘하늘의 궤적 the 1st’

충격의 엔딩으로부터, 에스텔의 집 나간 남친 잡아오기가 시작되는 '하늘의 궤적 the 2nd'
'the 1st' 오프닝도 그랬지만 리메이크답게 스포일러 가득한 거침없는 장면 선정이 돋보인다
‘the 1st’는 예고였다, 걸 미츠 보이의 클라이맥스
‘the 1st’와 ‘the 2nd’의 원작, 그러니까 ‘하늘의 궤적 FC’와 ‘SC’가 본래 단일 게임이란 비화는 너무 많이 퍼져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故 카토 마사유키 회장의 지시로 한창 만들던 작품을 적당히 나눠 발매했다는 것. 따라서 기승전결로 치면 ‘FC’는 기, 승이고 ‘SC’가 전, 결이라 그 무게감이 균등치 않다. ‘FC’야 종장 왕도요란 외에 작중 세계관에 영향을 미칠 만큼 굵직한 사건이 없다시피 하니까. 팬들이 ‘FC’는 예고편, ‘SC’를 본편 취급하는 게 그런 까닭이다. ‘하늘의 궤적’ 삼부작을 끝맺는 ‘TC’도 암암리 리메이크 중일 텐데 후일담 내지 외전 격이라 무게감은 떨어진다.
당시 간혹 “단일 게임으로서 ‘FC’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인가?”란 날선 물음이 날아들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그 답은 “아니요”일 터다. 전체 서사를 놓고 봤을 때 도입부의 비중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첫 줄을 떼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도 진행될 수 없다. 모든 여행에는 출발점이 있으며 그걸 정하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뭣보다 끽해야 공적이나 쫓고 부패 촌장의 음모를 파헤치다 잠시 학원제에 낄 여유가 남는, 소소하다면 소소한 모험담이 요즘은 되려 드무니까. 앞서 ‘the 1st’ 낼 적 콘도 토시히로 대표 역시 바로 그런 소소함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the 2nd'를 끝내고 돌이켜보면 'the 1st'은 상당히 소소한, 초보 모험가다운 사건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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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의 음모가 본격화되는 'the 2nd'부터 볼거리고 즐길 거리도 몇 배나 스케일 업을 거듭한다
따라서 ‘the 2nd’의 감동을 온전히 느끼려면 당연히 ‘the 1st’ 플레이가 선행돼야 한다. 인트로서 짧게 요약 설명이 제공되긴 하는데 그걸로 게임 한 편을 통째로 갈음하는 건 어불성설. 전작 엔딩서 곧장 이어지는 사실상 하나의 게임답게 성장치가 직접 이어지지 않을 뿐 밸런스 역시 엇비슷하게 조정돼 있다. 전작서 익힌 스킬셋은 다 가진 채로 거기서 더 강한 S크래프트를 얻는다든지, 신형 오브먼트로 상위 아츠를 쓴다든지 말이다. ‘FFVII’ 클라우드처럼 완성형 주인공을 내세운 경우와 달리 ‘하늘의 궤적’ 에스텔은 준 유격사부터 A급까지 차츰 강해진다는 언급, 묘사가 제대로 나온다.
‘하늘의 궤적’이 처음 나올 당시만 해도 ‘바다의 함가’로부터 약 5년 만에 ‘영웅전설’ 신작이란 점이 무엇보다 화젯거리였다. 콘도 대표는 내심 ‘영웅전설’과 선을 긋고 싶었던 모양이나 결과적으로 소싯적 니혼 팔콤 향취가 가장 짙게 묻어나는 ‘궤적’이 바로 ‘FC’, ‘SC’ 두 편이다. 이른바 보이 미츠 걸-이 경우 걸 미츠 보이-, 소년소녀가 세계를 순회하는 여행을 떠나고, 태초 마을에 못 미더운 어른이 실은 옛 영웅이라든지, 작은 만남서 이어지는 큰 사건, 고대 문명이 남긴 장엄한 유적 등등. 어떤 의미로 ‘궤적’의 시작일 뿐 아니라 마지막 ‘영웅전설’이라 여겨도 될 작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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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수치로서의 Lv가 아니라 진짜 주인공의 입지, 실력, 내면이 성장한다는 묘사가 보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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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본작의 제목이 왜 '하늘의 궤적'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멋진 컷신이 종장에 많이 나온다
분량도 연출도, 스케일 업으로 정면 승부하는 속편
이처럼 ‘하늘의 궤적’이 리메이크되기까지 근 20년간 게임 개발 환경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여기에 투입되는 인력, 자본, 시간 또한 과거와 비교 자체를 불허할 정도. 한때 장르에 따라 빠르면 1년도 안 걸리던 속편이 이제 소위 A급부터 기본 3년을 깔고 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the 1st’서 ‘the 2nd’는 원작 ‘FC’서 ‘SC’의 2년 간격을 되려 절반으로 단축시켰다. 물론 당시 니혼 팔콤 사정상 ‘FC’ → ‘SC’ 2년은 순수 개발 기간이 아니지만서도. 아무튼 ‘the 2nd’가 대단히 빨리 나온 건 사실이며, 콘도 대표가 설명하길 ‘the 1st’ 후반 작업 와중에 이미 상당 부분 만들었다는 모양이다.
동시 개발이 가능했던 건 무엇보다 ‘the 1st’와 ‘the 2nd’ 간 공통 애셋이 못해도 2/3은 족히 되기 때문이다. 기존 일행 전원 그대로로 그나마 의상이 바뀌는 게 에스텔과 요슈아뿐이며 추가 동료 가운데 케빈 딱 한 명만 완전 신규 애셋이다. 배경은 종반까지 여전히 리벨 왕국인데다 전작 직후라 시대 흐름이나 계절감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시스템 및 콘텐츠의 변주 역시 다른 니혼 팔콤 게임들과 비교해 소극적인 편. 신규 시스템이라 소개된 브레이브 러시는 잘 쳐줘야 콤비 어택의 발전형이지 싶고 필드 배틀 시 적의 행동 패턴이 다양해졌다는데 솔직히 크게 체감되는 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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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케빈이라도 안 나오면 이 스크린샷이 'the 1st'인지 'the 2nd'인지 구분할 수 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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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비 어택 → 브레이브 러시, 레이지 부스트 → 레기온 부스트 등 신규 시스템이라기보다 발전형
요즘은 무슨 시리즈가 콘솔 한 세대당 신작 하나만 나와도 감지덕지니 넘버링 경신마다 그래픽, 시스템 변화가 당연시된다. 게임 기반은 그대로 두거나 크게 바꾸지 않은 채 콘텐츠를 추가하는 방식은 DLC로나 통한다. 반면 콘솔 한 세대당 게임을 많게는 서너 편씩 내놓던 시절에는 서로 기술적 차이랄 게 없었다. 대신 친숙한 동료들의 다음 여정, 확장된 서사와 세계관, 흥미롭고도 위협적인 새로운 강적처럼 속편서 응당 기대될 내용물에 충실했다. 물론 그래픽, 시스템까지 일신되면야 더 좋겠으나 그 대신 ‘the 1st’ → ‘the 2nd’에 3~4년씩 걸리는 걸 어느 팬이 진심으로 원할까.
비록 ‘하늘의 궤적’이 두 편으로 나뉜 건 故 카토 회장의 지시였을지언정 ‘SC’는 속편으로서 정공법 그 자체였으며 ‘the 2nd’ 역시 마찬가지다. 저마다 개성적인 별칭을 대며 일행과 라이벌리를 이루는 집행자들, 도력 전차부터 거대 로봇, 공중항모와 드래곤, 마지막 무대이기도 한 부유도시까지 그야말로 불타오르는 전개의 연속이다. 원작서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 리벨 아크 컷신은 장중한 BGM과 함께 보는 이를 압도해버렸는데, 그걸 3D로 다시 마주했을 때 휘몰아치는 감동도 여전하다. 괜히 ‘SC’가 팬 앙케이트 “최고의 궤적은?” 부문을 그토록 오랫동안 지켜낸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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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넘치는 수수께끼 악역 집단과 우군의 몇 배에 달하는 붉은 공중항모, 가슴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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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1년 만에 나왔다는 점이 오늘날 3~5년씩 걸리는 속편 전개와 차별화된 장점이겠다
리메이크의 고민들, 난이도와 편의성 그리고 박자감
앞서 ‘the 1st’와 ‘the 2nd’ 사이에 그래픽, 시스템상 큰 변화가 없다고 적었지만 전체적인 템포나 밸런스처럼 확 드러나지 않되 체감되는 개선점은 꽤 많다. 이런 부분이야말로 리뷰서 제대로 짚어 칭찬해야 하지 않을까. 동료 전원의 스킬셋 및 아츠가 곱절로 늘어난 가운데 초반만 잠깐 돕는 아넬라스, 나타났다 사라지길 거듭하는 케빈, 극후반 합류의 뮐러, 율리아, 조제트까지 열 명이 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필드 & 커맨드 배틀 시스템서 어떻게든 굴리는 솜씨가 과연 니혼 팔콤답다. 누구와 파티를 짜든 거슬릴 만치 격차가 벌어지지도, 반대로 다 똑같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난이도 설정 역시 여러모로 고민이 깊구나 싶은 지점이다. 필자가 나름 몇 번 만난 콘도 대표는 게임 난이도에 대해 늘 서로 상반된 피드백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궤적’ 시리즈를 죄 답파한 역전의 용사들은 쉽다고 난리인데, 아이 학교 선생님은 또 너무 어렵다며 손사래쳤다나. 거기다 너무 쉽다는 피드백에 비해 실제 하드, 나이트메어 선택률은 떨어진단다. 그래서 지난 7월 인터뷰서 노멀과 하드 사이로 어드밴스드 설정을 넣을지 검토 중이라 했는데 정말 추가됐더라. 동시에 노멀은 전작보다 쉬워진 듯싶다. 이건 오피셜은 아니지만 여러분도 직접 플레이하면 대번 느껴질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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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어떻게든(…) 굴리는 니혼 팔콤의 노하우는 본작서도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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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밴스드 모드 지원은 꽤 절묘하다. 제발 쉽다고 개발사 쥐고 흔들지 말고 난이도를 높이자
사실 ‘the 1st’서 진즉 이지는 물론 베리 이지까지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재차 노멀 난이도를 손보는 건 이지나 베리 이지 선택률이 떨어지는 기저 심리까지 고민했다는 방증이다. 아니, 내 수준이 베리 이지라니 자존심 상하잖아! 어드밴스드 역시 같은 맥락이다. 상위 난이도가 존재함에도 또 급을 나누는 건 하드, 나이트메어란 명칭이 부담을 준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감탄한 바는 소위 고인물들 피드백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도, 게임이 너무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게 최신 트렌드임을 제대로 읽어냈다는 점이다. 제한 없는 빠른 이동 등 각종 편의 기능도 칭찬하고프다.
다만 개발자의 고집인지 뭔지 ‘the 2nd’서 유일하게 트렌드서 뒷걸음치는 구간이 많이들 지적하는 8장이다. 원작 ‘SC’부터 시쳇말로 ‘FC’ 맵 재탕이라 총 두 차례 백트래킹이 존재한다. 상술했듯 그 자체는 당시 늘 쓰이던 작법이라 흠잡기 뭣하나 리메이크의 경우 요즘 게이머 눈치를 볼 필요도 있다. 최소한 빠른 이동 같은 편의 기능을 충실히 제공하라는 거다. 그런데 본작의 8장은 되려 빠른 이동을 막아 꾸역꾸역 뛰어다니게 만든다. 이미 전작 이상의 플레이 타임을 뽑아낸 와중에 분량 채우기나 다름없는 8장은 잘라내진 못하더라도 넘기기 쉽도록 배려하는 편이 맞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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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1st'와 마찬가지로 빠른 이동 등 각종 편의 기능을 통해 고전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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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원작서 분량 채우기였던 8장인데, 아예 빼진 못하더라도 빠르게 넘겨야 맞지 않았을까
‘궤적’ 입문을 넘어, 니혼 팔콤의 고점을 경험하자
‘the 1st’ 발매 후 커뮤니티를 살피다 보니 “명작이라길래 기대가 컸는데 영 시시하다”고 토로하는 글을 접했다. 그야 물론 아쉬울 수 있다. 필자도 그렇지만 보통 “A가 나랑 안 맞았는데 A+α는 괜찮을까?”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A가 별로면 A+α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답하게 된다. 허나 이번에는 다르다. 설령 ‘the 1st’가 별로였더라도 ‘the 2nd’까지 즐기길 강권한다. 누차 비유하다시피 ‘the 1st’는 예고편, 바로 ‘the 2nd’가 본편이니 말이다. 나아가 ‘the 1st’서 거둔 기술적 성취가 ‘the 2nd’서 크게 확장된 서사, 연출과 만나 현-콘도 대표가 이끄는- 니혼 팔콤의 고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제 남은 ‘하늘의 궤적’은 ‘TC’ 즉 ‘the 3rd’뿐이다. 콘도 대표가 귀띔하길 벌써 어느 개발자 어깨 너머로 리샤르가 움직이는 걸 본 것 같다나. 다만 후일담 내지 외전의 격을 고려할 때 우선 ‘계의 궤적’ 속편부터 챙길 가능성이 크다. 언제나처럼 9월 발매라면 꼭 3년 만이니까. 물론 ‘the 3rd’도 마냥 미룰 수 없는 게 작중 세계관을 관통하는 집단인 칠요교회, 성배기사단에 대해 다루는 작품이라. 금번 리메이크가 마중물이라면 ‘the 3rd’까지 터줘야 물길이 다음 무대로 흐른다. 에스텔이 하모니카 소리를 좇아 요슈아와 다시 만났듯 필자도 제무리아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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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the 1st'서 그렇게까지 큰 재미를 못 느꼈더라도 일단 여기까지 즐기라고 권하고픈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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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저거 미첼 아닌가!? 언젠가 '가가브 트릴로지'도 리메이크 부탁합니다, 니혼 팔콤
작성 및 편집: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