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보였다. 푸른 강이었다. 주변엔 꽃이 피어 있었다. 붉은 꽃이었다. 저 멀리 나룻배가 보였다. 선착장도 보였다. 꽃밭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떤 소녀가 보였다. 소녀는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소녀의 모습은 익숙했다. 분명 기억속에 남아있지 않지만, 익숙한 소녀였다. 소녀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날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소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매여 있었다. 소녀는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을 만난 듯했다. 하지만 소녀는 울지 않았다. 속으로 삼킬 뿐이었다.
“혹시…”
소녀는 날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자신을 못 알아본다는 사실에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처음 뵙는데 누구 신가요?”
소녀를 향해 직설적으로 질문을 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입니다.”
인연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기억상이 맞다면 여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없었다.
“어떻게 인연을 맺었기에…”
“이미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혹은 그 이상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저희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저희가 맺은 인연으로 이 자리를 만들었네요.”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소녀에겐 이 상황이 익숙한 모습이었다.
“모든 존재는 비어 있고 비어 있는 것은 존재하는 법이에요. 그러니 모든 감각, 생각, 의식도 없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 않아요. 그렇기에 우리가 겪은 모든 감각, 생각, 의식도 결국에는 존재하지 않아요,”
소녀는 이어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겪은 감각, 생각 의식도 결국에는 계속 변하고 사라지는데, 결국 남는 것은 무한히 반복되는 삶과 죽음 속에서 만드는 인연이에요.”
소녀는 내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죽기 직전과 같은 온기가 느껴졌다. 내가 마지막으로 병원에 실려갔을 때, 고양이는 안절부절 못하였다. 고양이는 끝까지 내 옆에 있길 바랐다. 구급 대원은 아니었다. 그는 고양이가 따라오지 못하였다. 고양이는 내가 실려가자 서글프게 울었다. 둘을 그렇게 헤어졌다. 고양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다. 나 이외에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고양이에요. 길에서 떠도는 기형의 고양이였어요. 어떤 남자를 따라갔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좋았어요.”
나도 모르게 소녀를 끌어안았다. 눈물이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쏟아졌다. 소녀는 기뻐하고 있었지만, 울고 있었다.
내가 적고 있지만 손발이 오그라드네
붉은 꽃이 핀 푸른 강가에서 기억을 흘려보낸 두 남녀가 서로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푸른 강가는 그 눈물도 말 없이 흘려보내고 있었다
원래 문학은 오그라들게 써야 맛있어
그거 치고는 항마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