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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이틀째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말다툼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칫솔을 왜 바꿔쓰느냐든가,
왜 소변을 보고 나서 양변기 커버를 내리지 않느냐 등등...
그런 종류의 말다툼이었다.
시작은 어쨌든 간에 중요하지 않다.
오래전부터 나는 아내와의 결혼생활이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서로 사랑했지만...글쎄 결혼이란 건 연애와는 다른 것이니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내는 그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남자는 항상 친절할 수는 없는 법이다.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퉁명스러워질 수도 있는 것이고,
아내의 말을 무시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함께 한다고 맹세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어차피 다들 알고 있다.
내가 문제를 알아차렸을 때,
아내는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시작도 나였고 끝도 나였다.
나는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비록 시들해지고 침체되어가는 결혼생활이지만,
이렇게 끝내기에는 너무나 미련이 남았다.
그 이유중 하나는 딸이다.
이제 겨우 세살을 넘은 딸.
그 아이에게 인생의 초반부터 조각난 가정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부터 우리 딸에게 관심이 그렇게 많았다고 그래?"
차문을 세게 닫으면서 아내가 이죽거렸다.
"우리 딸인데 그럼 관심이 없겠어?"
"웃기고 있네. 쟤 생일 때, 오지도 않은 주제에.
저애가 아빠 찾을 때 당신이 있었어?"
한달 전 있었던 세번째 생일잔치. 나는 오지 못했다.
일 때문이다.
일을 해야, 딸에게 더 나은 인생을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대학등록금이라도 벌어놔야 할 거 아냐."
"하하! 대학 등록금? 지금 당장 오지도 않는 아버지가 무슨 상관이야?"
"닥쳐! 발정난 암캐처럼 남자새끼나 끌어들인 주제에."
나는 안전띠를 매면서 버럭 소리질렀다.
그것도 딸 생일에. 그자식이 아빠 대용품이라도 된다는 건가?
웃기고 있다. 딸 생각한다는 여자가, 어떻게 생일잔치에 애인이나 데려올 생각을 다 하는 건가.
하필이면 그날, 어머니와 내 여동생이 집에 찾아왔었다.
하나밖에 없는 손녀와 조카를 보겠다면서.
두 사람은 뒷뜰에서 찾던 아이대신에, 열심히 짝짓기에 열중하던 남녀를 발견했다.
헐벗은 며느리와 역시 아랫도리를 헐벗은 남자손님을 보면서
어머니는 할 말을 잊었더란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여태 우리한테 해준게 뭔데?
항상 내가 찾을 때 당신은 곁에 없었잖아."
아내는 끝도 없이 말을 내뱉는다.
"엄마, 아빠 싸워?"
뒷좌석에 탄 딸이 겁먹은 목소리를 뱉는다.
"잘한다. 애 겁이나 주고."
아내가 다시 이죽거렸다.
제발...한 시라도 입을 다물어줄 수는 없는 걸까?
친정으로 가는 내내, 아내는 계속 떠들어댔다.
공주화장세트를 들고 있던 딸은 울먹이는 소리를 냈다.
아주 엎친데 덮친 격이군.
"닥쳐, 좀! 너까지 네 에미를 닮아서 이러는 거야? 이 ㅁㅁ아!"
나는 운전대를 잡고 외쳤다.
"으아아앙!"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다 자기 때문이야."
아내가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운전대를 놓아버리고, 손을 들어 아내의 뺨을 때렸다.
"꺄악!"
찰싹. 아내의 비명은 곧 공포의 비명으로 바뀌었다.
"앞을 봐, 앞을!"
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트럭이 바로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핸들을 꺾었다.
그 순간, 엄청난 소음과 함께 차가 한 바퀴 빙그르 돌았다.
콰앙. 차는 그대로 다리 난간을 들이받고 말았다.
허술한 나무 난간이 부서지는 게 보였다.
안돼, 안돼, 안돼!
제발, 하느님, 이것만은 제발....
딸이 비명을 질렀다.
"아빠!"
차는 그대로 시커먼 물속으로 추락해버렸다.
나는 통증속에서 눈을 떴다. 따듯한 모래가 손에 잡혔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 옆에는 잔뜩 찌그러진 차가 모래톱속에 박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검은 강물이 찰랑이는 강변.
그곳에는 한 무리의 악어들이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몰려 있었다.
그들은 한창 잔치중이었다.
잔뜩 신이 난 그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나는 차를 향해 다가가 트렁크를 열고 장총을 꺼냈다.
악어들이 몰려든 곳에는 조잡한 프라스틱 티아라와 어린이용 화장세트가 널려 있었다.
결혼반지를 낀 손가락 파편과 함께.
나는 이순간 내가 무슨 일을 해야하는 지 알고 있었다.
왜 하필 이순간인가.
왜 하필 지금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의문이 떠올랐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나는 탄창을 갈아끼고 강변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내려갔다.
타앙! 탕, 탕!
총성이 계속해서 길게 이어졌다.
그 속에서 나는 울고 있었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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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꿈 속에서 저는 리모컨으로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고 있었는데,
그때 저 장면이 나왔습니다.
저는 관찰자의 심정으로 저 장면을 모두 지켜봤습니다.
영화를 보는 기분이라기보다는
누군가를 훔쳐보는 기분이었죠.
배경은 아마도 호주였던 것 같습니다.
남자의 절망스럽고 끔찍한 죄책감과 공포감을 제대로 옮겼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