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나미의 도키메키 메모리얼이 대성공을 거두자 많은 게임 회사들이 연애 시뮬레이션 시장에 뛰어든다.
이미 1992년에 졸업 시리즈를 출시하여 미연시 시장의 포문을 열었던 NEC 인터채널은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성공을 보고 자극을 받아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NEC 인터채널에서는 졸업 ~Graduation~의 PC 엔진판 프로듀서인 타베타 토시오(多部田俊雄)가,
마커스(マーカス)라는 게임 기획 회사의 대표 쿠보타 마사요시(窪田正義)와 함께 '넥스트 도키메모'라는 가제를 달고
게임 - 애니 - 콘서트 - 방송 등의 종합 미디어 믹스 기획을 추진한다.
도키메키 메모리얼에 뒤지지 않는 게임을 만들겠다고 발표 때부터 호언장담을 했는데,
그 말대로 도키메키 메모리얼에 필적할 정도의 종합 미디어 믹스 기획이었기에 게임 출시 전부터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아낌없이 예산을 쏟아 부었다.
히로인 12명 중 6명은 오디션을 거쳐 아오니 프로덕션 소속의 성우를 기용했고,
나머지 6명은 일반인이나 성우 지망생을 상대로 1997년에 대규모 오디션을 1997년 개최하여 주목을 끌었다.
방송사(TBS)와 대형 출판사였던 카도카와 서점과 연합하여 방송 프로와 잡지 기획물이 쏟아져 나왔고
성우들을 동원한 전국 콘서트도 열었다.
무엇보다 이 게임에 대한 기대도를 높였던 것은 일러스트. 그래픽 디자이너 신인 카이 토모히사(甲斐智久)를 기용하여
당시로는 보기 드문(셀화나 도트 그림이 아닌) 유려한 컴퓨터 그래픽 일러스트를 자랑하며 기대치를 높였다.
당시 그래픽은 주 판매 대상이었던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에게까지 호평을 들을 정도였다.
당시 미연시의 패권은 코나미의 도키메키 메모리얼이었고,
Leaf의 To Heart가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었으며,
Key는 원화가가 히노우에 이타루였고,
에로게의 거장 ELF는 이제 막 DOS의 도트 그래픽에서 벗어나 윈도우로의 운영 체제 전환에 나름 악전고투하고 있었던 상황.
그런 속에서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먹힐만한 그림체의 일러스트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이 그림 그대로만 나와주면 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전 광고 계획이 멋지게 성공, 관련 상품은 나오기가 무섭게 불티나게 팔렸고
거기에 낚인 수많은 유저들이 파닥거리며 몰려들었다.
특히 출시 전 체험판 + 팬디스크 성격으로
'센티멘탈 그래피티 퍼스트 윈도우'(センチメンタルグラフティ ファーストウィンドウ)라는
세가 새턴 타이틀을 3만 장을 발매했는데, 정가 3500엔 정도의 물건이
한때 1만 5천엔 이상으로 치솟았을 정도로 프리미엄이 붙었을 정도였다.
이대로 가면 당시 미연시의 1인자였던 도키메키 메모리얼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장담할 만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게임은 연기를 거듭하면서 팬들을 애타게 만들었고 게임이 나올 쯤에는 거창했던 홍보 열기가 식었다.
CG 작업에 카이 토모히사가 참여하지 않아서 캐릭터 디자인도 여러 군데 다르고,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을 동원하여 셀화로 제작한 CG들은 팬들의 기대치를 전혀 채워주지 못했다.
CG의 품질이야 당시 기준으로 심각하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기대하고 원한 것은 이런게 아니었다.
게다가 게임성도 딱히 특출난 것이 없었고, 이야기나 설정도 당시 기준으로도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졸업을 1년 앞둔 고등학교 3년생이 입시 준비도, 취업 준비도 안하고 1년 동안 여자를 꾀러 전국을 배회하는(…),
현실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내용.
게임 출시 후 3달 뒤인 1998년 4월부터 동년 7월까지 반프레스토와 미츠비시 상사가 스폰서였고
선라이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센티멘탈 져니를 방영했는데
게임 본편의 프리퀄 격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소재로 1998년 9월엔 같은 이름의 PS판 게임을 발매하였으나
역시나 출시 지연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게임 퀄리티 때문에 매출량 저조를 겪었다.
결국 게임판 센티멘탈 져니의 인기가 식으면서 시리즈 전체의 열기가 식었고,
센티멘탈 그래피티 발매 1년 뒤에는 7800엔짜리 초회 한정판이
미개봉품 500엔이라는 염가로 게임 소매점에 나돌정도로 몰락했다.
일러스트에 속았어... 게임 켜보고 '이거 사기아닌가?' 라고 생각 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