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기병방위권 플래티넘트로피 달성 이후 개인적인 감상을 적어봅니다. 글 자체는 존칭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혹여나 이 게임을 플레이하신 유저분들께서 저와 같은 지점을 사유해보셨다면, 부족하지만 담론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글을 작성하는 이유,
자신이 언급라는 일본의 노스탤지어에 포함되어 있는 국군주의의 요소로 인해 단순히 이 작품을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으로 단정 지을 생각은 없다.
나 자신이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감상,
관심이 가게 된 지점들, 서사의 내면에서 느꼈던 자신의 감정의 행방을 글로 적어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며, 이 글을 통해서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반대의 감상을 가진 사람들과 담론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평가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라는 일차원적인 감상을 넘어서, 서브컬쳐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 각자의 관점을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이기에 게시판에 글을 적어본다.
게임 장르란 형식, 그 제약을 극복한 듯한 미스터리의 매력과 노스탤지어의 문제점...
우선 일상의 단편, 게임 장르상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형식으로, 각각의 인물들을 통해 세계관을 제시하고 확장시켜가는 각본은 굉장하다.
인물들의 프롤로그는 특히 인상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SF 장르(의 원류)를 시작으로 E.T, 월E, 맨인블랙, 대중친화적인 오마주의 힘(레퍼런스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짐작케 하는 비쥬얼등)으로 세계관을 보충하고 서서히 넓혀간다.
그리고 다리 하나가 더 많은 트라이포트를 마주하는 우리들에게 허버트 조지 웰즈의 우주전쟁을 선언함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바닐라웨어 사장이기도 한 카미타니 조지씨가 3여년간 혼자서 인물들의 스크립트와 행동까지 모두 고려하면서 심사숙고하여 써내려가며, 화면상 움직임에 맞춰 조율, 감독하고 만들어낸 시나리오이므로, 이것의 대단함을 부정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플레이 전부터 우려했던 것, 쇼와를 향한 노스탤지어가 문제를 일으킨다. 1944년, 1945년 패전직전과 직후의 시기에 맞춰진 인물들, 1985년 급격하게 발전된 전후(끝나기 전의 쇼와)시대를 명확하게 호명하지만, 그 시기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려내는 방식은, 이 작품을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의 바람이 분다와 같이, 작품성과 별개로 역사를 향한 윤리의식과 태도를 의심하게 만들어버린다.
그 시대를 꺼내는 순간, 결코 피할 수 없는 지점들, 그 문제들을 이 작품은 어떻게 그려나갔는가, 개인적으로 짚어보면서, (게임을 플레이 후 사유해본 유저가 있다면) 각자의 감상 또한 나눠보고 싶은 기분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마주하게 되는 SF장르의 컨벤션, 특정 작품의 레퍼런스를 끌어오면서, 미스터리하게 질문이 남겨지고 또 회수되며, 차근차근, 주도면밀하게 미스터리는 확장되어간다.
단순히 확장만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인물로부터 다른 인물간의 네트워크 또한 타이밍 좋게 늘어난다.
(좋지 않은 수많은 서브컬쳐 작품들 대부분이 시나리오의 부족함을 미스터리로 상쇄하려 하지만, 안일하게 꺼내든 미스터리 및 반전요소는, 그 억지스러움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 하고 기존 설정과의 충돌을 일으키며, 작품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우리들은 많이 보았을 것이다.)
단순해보였던 네트워크는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파편적으로, 복잡하게 엮여나가며, 유저가 맵핑할 수 없는 파편적인 시공간에 길을 잃으려고 하는 찰라, 길을 잃지 않도록 인간의 그 순수한 감정과 욕망을 활용해 긴장감과 유저의 플레이(궁금증)을 유지시킨다.
그리고 인물들의 서사가 100%가 되는 순간, 이야기가 확장될 때마다 공식의 답이 변화&진화하는 와중에도, 완전히 맞아 떨어지지 않았던 몇 가지 블랙홀들은, 맞춰지지 않았던 퍼즐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갔을 때 비로소, 하나의 완전한 거대한 그림을 탄생시킨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장르의 제약을 탁월하게 서사의 형식과 일치시키며, 그간의 스크립트와 소품들이 단순히 일차원적인 오마주 뿐만 아니라, 이 거대한 서사의 사전예고이자, 서사를 진행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지금 눈앞에 펼쳐진 세계의 말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유저가 스스로 받아들이고 납득하게 만든다.
쇼와의 노스탤지어 자체는 오타쿠 입장으로 오히려 환영할 정도였다. 그 시절을 느끼게 하는 집의 형태, TV의 디자인, 오른쪽 부엌에서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가스레인지를 키는 소리, 도마에서 원재료를 손질하는 소리, 그리고 맛있는 냄새와 함께 모여앉아 있는 모습은, 그것 자체로 식사하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노스탤지어이며, 그것에 오늘날 잃어버린 향수를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하물며 비디오테이프란 존재, 특촬물의 시작, 거대괴수, 거대로봇, 일본만의 소프트파워를 느끼게 할만한 장르의 계보들을 소환하는 것 또한 반가운 일이었다. 문제는 그 노스탤지어에, 날것 그대로의 국군주의의 노스탤지어까지 함께 끌어온다는 것이었다.
"이 작품이 대단하다. 각본이 정말 대단하다." 라고 사람들이 극찬하였을 때, 나는 내심, 패전전의 일본과 전후시대의 일본을, 포스트에바 이후 세카이계과 루프물의 계보를 통한 반전요소, 봉인된 역사적 트라우마를 제대로 마주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정작 1945년이란 년도를 정확하게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서사에서 미군은 괴수로 치환되지만, "패전"이라는 역사는 고스란히 남아, 몇몇 등장인물들의 씻어내고 싶은 오욕처럼 그려내며, 전후 일본 서브컬쳐에서 부정되고, 터부시되었던 군인의 남성어른상이 되살아나게 한다.
이 시점에서 쇼와의 일상을 향한 노스탤지어는 사실상 연막에 가깝게 변질되고, 정말 끌고 오고 싶었던 것은(끝까지 남겨지는 것은), "패전직전의 이 믿음직한 일본의 군인에게" 독일과 같은 신병기(작중 스크립트에서 표면적이지만 실제로 사용한다.)를 사용할 수만 있었다면... 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이다.
또한 실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일본의 역사라며 유저에게 책읽기를 강제하는 부분은, 일본의 종전일(패전이라고 사용하지 않는다.)과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이며, 신병기 두방에 끝나버렸다는, 어떠한 아쉬움, 회한조차 느끼도록 인물이 연기한다.
오키나와에서 수많은 희생이 있었던 총력전의 실상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다이모스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게임을 본뜬 배틀 파트는, 괴수로 치환된 미군을, 서사의 진행을 통해서, 이 성사될 수 없었던 본토방위전이란 또 다른 로망의 구현을 위해 쓰였다고 느껴지게 한다.
그 중요한 서사의 진행 중, 히지야마란 인물이 외치는 "야마토정신"을 발휘하며, (인류의 존망이자 최후의 희망으로서의) 방위전에 성공하고, 그렇게 얻어낸 육체와 제2의 세계, 이 작품에서 제시한 엔딩은, 리셋이나 루프보다 더 끔찍한 엔딩일 것이다. 오히려 SF의 원류와 계보가 국군주의의 노스탤지어에 덮어 씌워져 오염된 인상마저 들게 한다.
봉인된 기억을 마주해야만 시작할 수 있었던 인물의 이야기가, 정작 텅 비어있는 것은 제쳐두고, ...결과는 그렇게 되었지만, 속마음은 이러했다. 라고 말하는 변명의 형식(싯뽀 = 2루프전의 이즈미 주로)은 오히려 이중,삼중의 각본과 인물관계, 세계관의 설정에 들였던 노력에 비해, 너무 자기긍정(자기변명)적인 것은 아니었을까?
이 기분은, 할복이란 키워드를, 결코 져버릴 수 없는 올곧은 인간의 진실성을 지키기 위한 신념의 키워드로 치환시킨 귀멸의 칼날을 관람했을 때의 감상과 비슷하다.
적을 죽이는 전쟁은 게임으로 표현되고 조국을 위해, 이루어지지 않았던 본토방위전이란 로망을 실현시키며, 쇼와의 노스탤지어는 더 나아가 인간의 기적을 일으키는 어떠한 의지의 힘처럼 그려낸다.
의지의 발현은 군국주의 상징과도 같은 전중의 군인캐릭터(히지야마 타카토시)가 연기한다.
이 기적의 중심에 야마토 정신을 직접 소환하기에, 클라이맥스 전체는 꺼림칙하기만 했다.
닛뽄난세이!! 라는 발언에 여성도 있다. 라고 반론하는 것은 (성)차별주의가 없다고 작품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인물의 시대상을 통해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국민, 개인으로는 더 이상 멈춰 세울 수 없었던, 당시 일본의 광기가 아른거릴 뿐이다.
이 작품은 끝까지 현실의 역사가 개입할 수 없는, 현실을 무시하는 계산식을 유지한다.
전중과 전후 인물을 메인으로 활용하여, 패전의 상처를 안고, 기병을 통해 그 패전을 역전시키려고 했던 초반부가, 미스터리가 풀려가면서, 미군의 공격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폐허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괴수라는 진실을 마주한다.(그것을 매우 중요한 타이밍에 진실처럼 그려낸다.)
2188년을 시작으로 하는 이 작품의 세계에서는 이렇듯 현실의 역사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미군은 없다(하지만 독일의 신병기에 대한 동경을 언급하는 아이러니한 오작동)은 있다.
그리고 국군주의의 노스탤지어가 포함된 신념이 마지막 방위전의 신념을 떠받치고 있다.
때문에 우직하게 생각했는데, 실상은 믿음직하다고 오카타가 히지야마를 칭찬하는 모습은,
단순히 캐릭터간의 드라마라기보단, SF의 계보를 자신의 색으로 칠하고 싶어하는 욕심마저 느끼게 한다.
2차세계대전의 폭력성과 역사의식은 이렇게 허망하게 작품의 드라마트루기에 맥없이 사라(지게 만들어)진다.
남게 되는 것은 1980년대 전세계를 선도하는 듯처럼 보이는 일본제일의 그 향수만이 남는다. 때문에 이 향수가 작품이 지금껏 오마주했던 SF와 그 계보들을 모두 오염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엔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엔딩후의 세계는 오히려 루프전과 시간여행처럼 나뉘어진 섹터보다 더 혼란스럽고 소름끼치는 이유는, BJ를 포함한 죽은 인물들 모두가 되살아나고, 루프전의 인물과 루프후의 인물이 마치 거울을 마주보듯 대면하기 때문이다. 성별 또한 마음대로 변화시킨 듯한 묘사들,
우리들은 많이 봐왔던 것이다. 마치 현실이 된 세카이계 그 자체이지 않는가?
작품의 절대악처럼 그려내었던 426은 싯뽀의 자기변명 이후로는 모리무라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초점이 맞춰지며, 엔딩에서 기어코 이즈미 주로란 인물과 모리무라의 재회이자, 이루지 못 했던 사랑, 그 낭만을 현실화시킨다.
다음 세대가 제2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배워야하는 어떠한 통화의식처럼 그려냈지만, 그동안 일어났던 전쟁, 살인, 질투란 감정들은 가상현실과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던 AI와 같이 치부하며, 오히려 SF의 오마주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호기롭게 시작한 프롤로그에 비해, 엔딩은 그 오마주의 힘을 답습하는 것을 넘어서, 각본을 써내려간 인물의 네셔널 어젠다(지난 일본의 노스탤지어를 여전히 놓지 못하면서도, 정작 과거의 역사적 과오를 청산은커녕 제대로 마주하지도 못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로 오염시켜버린다.
그래서 엔딩의 제2의세계에서의 발걸음은 도약이 아닌, 소름끼치도록 퇴행(과거의 반복이자 또 다른 루프의 시작)처럼 느껴진다.
오마주를 통해 보고 싶지 않은 것은 편리하게 지워버리고, 보여주고 싶은 향수만 오마주에 녹여내는 것,
시노노메 료코의 편집증적인 행동과 지워진 기억(이자 스스로 봉인한 기억)을 통해 서사가 해답에 도달하는 것을 지연시키고, 교란시키며 오히려 자신의 피해자의 위치로 이동시키는 모습과, 메구미가 정작 총을 겨눠야만 하는 존재로 자기자신을 향하는 것을 작품의 자기반성적인 면으로 이 작품을 옹호하려고 해도 너무나 확대해석에 가깝다.
그것만으론 이 작품이 스스로를 비판하며 자아성찰을 한다고 생각하기엔 큰 무리가 있다.
(어째서? 인류이자 국가단위의 죄악을 개인단위로 축소시킴과 동시에 책임 또한 이동시키니까...)
또한 무리해서라도 알레고리화를 시도하려 해도, 키워드들이 절묘하게 이어지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해석해낼 여지를 부여한다.(시노노메 료코의 피해자 입장에서 펼쳐지는 스릴러적인 서사의 전개 이후, 봉인된 기억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그 책임이나 청산의 문제가 아닌, 지금까지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던 키워드들, 그 블랙홀과 같은 서사의 퍼즐이 이제서야 겨우 제자리를 찾아갔다는 안도감뿐이다.
히지야마와 미우라는, 현실의 (날것과 같은)제국주의 캐릭터가 온전하게 이 서사에서 주인공입장이라는 핍진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은 SF란 장르의 컨벤션으로 괴수란 적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노노메 료코란 캐릭터가 주인공 입장이라는 핍진성은 기억을 잃어간다는 설정과 편집증적인 단편적인 기억들의 허점을, 서사의 형식/장르의 융합시키고 전복시키는 것으로 얻어낸다.
미스터리파일에서 섹터의 해설은 “새로운 세계에 내려선 15명에게 인류의 문화와 지식을 계승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 공간”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이즈미 주로와 쿠라베 주로, 각각의 둘은 별개의 존재이다.
쿠라베 주로가 이즈미 주로가 될수 없고, 이즈미 주로가 쿠라베 주로가 될 수 없지만
이즈미 주로의 기억을 마주한 쿠라베 주로(이즈미 주로를 만나기 전의 쿠라베 주로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과 동시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쿠라베 주로가 될 수는 있다.
그렇다면, 13기병방위권을 플레이한 우리들은, 이 작품에서 현실처럼 그려냈던 리얼리티(꿈)을 넘어, 진정한 현실, 우리가 살고 있는 그 현실에서의 인류의 문화와 지식을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최소한의 가치를 발견해본다면, 그 환상을 구분할 수 있는 관점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수많은 SF의 오마주를 끌어오지만, SF의 계보라기보단, SF를 경유한 세카이물처럼 느껴진다.
우리들은 브라운관TV의 전원을 끄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있을까... 사유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