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잔 칸과 안드로니코스 2세가 아나톨리아 베이국들 토벌을 위해 연합하고 올제이투 칸이 안드로니코스 2세의 사위가 되면서 3만의 지원병력을 보냈다 합니다.
실제로 오스만을 공격해서 비티니아의 여러 도시를 수복했다고 하는데...일단 올제이투 이후 훌라구 울루스 최전성기를 이룩한 아부 사이드 칸은 베이국 보단 원-주치-차가타이 간 균형에 중점을 둔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안드로니코스 3세 시기 훌라구 울루스가 붕괴하고 주치 울루스와의 관계에 금이가고 이후론 뭐...
올제이투 칸이 프랑스 왕에게 원나라 황제의 인장으로 몽골 제국 칸국들이 화평을 맺었다는 서신을 보내고 프랑스 왕이 축하의 답신을 했던것 보면 적어도 올제이투 시기엔 칸국들 사이 큰 문제는 없었던듯 합니다.
아부 사이드 시기 초기에 주치 울루스의 침공과 에미르들의 반란 수습으로 정신 없었던것 생각하면 베이국에 신경쓸 힘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로도 아부 사이드는 칸국 들은 물론 맘루크, 베네치아, 델리 술탄국 등 주변국과의 우호관계에 집중했다고 하니 로마와 연계에 집중하기보단 전방위로 우호관계를 맺는데 치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올제이투 시기까지 훌라구 울루스의 칸은 적극적으로 대 맘루크 전선에 주력하며 유럽 국가들로부터 지속적적인 동맹관계를 맺어왔습니다.
훌라구는 물론이거니와 미하일 8세의 사위가 된 아바카가 9차 십자군에 참전한게 대표적이죠.
지속적으로 예루살렘 왕국을 구원하기위해 원군을 보낸건 물론 아크레가 무너진 이후에도 훌라구 울루스는 지속적으로 십자군측을 지원해 레반트의 여러 도시를 공격하거나 유럽에 십자군 원정을 요청했습니다.
이때문에 서아시아 지역 기독교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맺는건 필수적이었습니다.
다만 가잔 칸 시기 예루살렘 왕국이 멸망하자 결국 훌라구 울루스 쪽에서도 열의를 잃고 올제이투가 죽고 내부 혼란이 발생함으로써 외부 관계를 새로이 정립한 듯 합니다.
_ 잉여잉여칠면조
그래도 오스만 1세 당시 부족국가 오스만 베이국 상대면 3만 정도면 충분한 지원병력일텐데... 심지어 저때는 부르사 함락 한참 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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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잔 칸과 안드로니코스 2세가 아나톨리아 베이국들 토벌을 위해 연합하고 올제이투 칸이 안드로니코스 2세의 사위가 되면서 3만의 지원병력을 보냈다 합니다. 실제로 오스만을 공격해서 비티니아의 여러 도시를 수복했다고 하는데...일단 올제이투 이후 훌라구 울루스 최전성기를 이룩한 아부 사이드 칸은 베이국 보단 원-주치-차가타이 간 균형에 중점을 둔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안드로니코스 3세 시기 훌라구 울루스가 붕괴하고 주치 울루스와의 관계에 금이가고 이후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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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제이투 칸이 프랑스 왕에게 원나라 황제의 인장으로 몽골 제국 칸국들이 화평을 맺었다는 서신을 보내고 프랑스 왕이 축하의 답신을 했던것 보면 적어도 올제이투 시기엔 칸국들 사이 큰 문제는 없었던듯 합니다. 아부 사이드 시기 초기에 주치 울루스의 침공과 에미르들의 반란 수습으로 정신 없었던것 생각하면 베이국에 신경쓸 힘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로도 아부 사이드는 칸국 들은 물론 맘루크, 베네치아, 델리 술탄국 등 주변국과의 우호관계에 집중했다고 하니 로마와 연계에 집중하기보단 전방위로 우호관계를 맺는데 치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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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제이투 시기까지 훌라구 울루스의 칸은 적극적으로 대 맘루크 전선에 주력하며 유럽 국가들로부터 지속적적인 동맹관계를 맺어왔습니다. 훌라구는 물론이거니와 미하일 8세의 사위가 된 아바카가 9차 십자군에 참전한게 대표적이죠. 지속적으로 예루살렘 왕국을 구원하기위해 원군을 보낸건 물론 아크레가 무너진 이후에도 훌라구 울루스는 지속적으로 십자군측을 지원해 레반트의 여러 도시를 공격하거나 유럽에 십자군 원정을 요청했습니다. 이때문에 서아시아 지역 기독교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맺는건 필수적이었습니다. 다만 가잔 칸 시기 예루살렘 왕국이 멸망하자 결국 훌라구 울루스 쪽에서도 열의를 잃고 올제이투가 죽고 내부 혼란이 발생함으로써 외부 관계를 새로이 정립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