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이 많아서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사쿠라이 마사히로 (별의 커비,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제작자)
여러분 그동안 신세를 졌습니다.
마지막 잡담이라고 하면
이와타 사토루 전 닌텐도 사장님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겠죠.
이 채널은 짧게 요약하는 걸
모토로 하기 때문에
기억의 극히 일부를 소개합니다만
어느 한 사람이 바라본 사소한 기록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와타 씨와의 첫 만남은
제가 HAL 연구소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면접관으로서 처음 만났고
그 당시에는 개발 부장이셨습니다.
면접 당시 인상깊었던건
타자가 빨랐던 거하고
그리고 미소였습니다.
억지 미소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러 나오는 미소였습니다.
그걸 저는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개발에 들어가고나서
이와타 씨와 현장에서 같이 일을 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이와타 씨는 우수한 프로그래머였지만
기본적으로 경영측 리더였기 때문에
저에게 있어서는 멀리 있는 존재였습니다.
초대 별의 커비의 개발이 끝난 전후로
HAL 연구소는 화의 신청을 하게됩니다.
즉 경영난으로 차입금을 갚을 수 없게 된 것이죠
그 시기에 이와타 씨는 HAL 연구소의 사장이 되어
HAL 연구소의 재건에 들어갑니다.
물론 저도 초대 별의 커비와
별의 커비 꿈의 샘 이야기 개발로
어느정도 회사에 공헌했습니다만
이와타 씨와는 서 있는 스테이지가 달랐습니다.
그 기간에 급여가 밀린 적은 없었고
적지만 보너스도 나왔습니다.
꿈의 샘 이야기 개발에 있어선
다함께 힘내서 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당시를 떠올려보면
신인이 만드는 두번째 작품에
다른 부서였던 사람들도 다 함께 모여서
총동원해서 만들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리스크가 있던 선택이였는데
좋은 결과를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유일하게 이와타 씨와 직접 같이
프로그래밍을 했던건
닌텐도 64용 초대 스매시 브라더스의 프로토타입인
'격투 게임 용왕'과 어드벤처 게임이였습니다.
이와타씨는 다른 프로젝트로 바쁜 와중에도
휴일에 이 프로토 타입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와타 씨는 이 프로토 타입을 만드는 걸 즐기셨다고 합니다.
또 이와타 씨는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타이틀 명 결정에도 관여했습니다.
타이틀 명을 결정하는 회의에서
이토이 시게사토 (마더 제작자) 씨와 미팅을 하던 와중에
'브라더스' 부분을 제안한 것이 이와타 씨였습니다.
"형제" 같지 않은 사람들 뿐이지만
단순히 그냥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 사이에 작은 싸움 같은 뉘앙스라 좋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후 닌텐도의 경영 기획 실장으로 발탁되어
HAL 연구소에서 떠나게 됩니다.
게임큐브용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DX가
최종 단계에 들어갔을 때
프로그램 버그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파라미터 설정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 이와타 씨가
다른 프로그래머 옆에서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셨습니다.
저는 이걸 정말로 죄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이와타씨는 닌텐도 소속의 경영기획실장이셨고
또 많은 닌텐도 타이틀 중 하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 해주시니 정말 죄송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짠 프로그래밍을 보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와타 씨는 이걸 해주셨습니다.
이와타씨가 없었다면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DX는
2001년 내에 발매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와타 씨는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머리가 좋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좋다고 해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감성"보다는
"이론"으로 가장 좋은 길을 나아간다는 느낌이였습니다.
단순히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노력가에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등 심리에 대해서도
생각하시던 인상이였습니다.
그 후에 이와타 씨는 닌텐도의 사장이 됩니다.
저도 상당히 놀랐습니다.
닌텐도는 전통적으로 야마우치가의 족벌경영이였으니까
거기서 입사 2년차인 이와타씨가 사장으로 발탁된 것은
이례 중에 이례입니다.
하지만 물론 저는 이걸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후에
여러가지로 변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일반적인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사장이 묻는다'가 참신했었지요.
홍보 수단으로서도 지금까지도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닌텐도 다이렉트도 이와타씨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와타 씨가 사장이 된 후에도
가끔 만났습니다.
교토에 있는 닌텐도 사장실에는 자주 불러갔었고
도쿄에서는 숙박하고 있는 호텔에 불러나가서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와타 씨는 사람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HAL 연구소의 사장이셨을 때부터
사원 한 사람 한 사람과 면담을 실시했고
그걸 굉장히 효과적으로 느끼셨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이와타 씨는 도쿄에 오면
다른 회사들을 직접 돌아다니시곤 했습니다.
그 후 2014년 이와타 씨는 담관암 수술을 받게 되고
몸 상태가 안좋아지기 시작합니다.
2015년 1월 대난투 for가 발매된 후
회복한 이와타 씨가 시애틀로 가기전에 만나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후 나리타 공항까지 제가 차로 배웅해드렸습니다.
그 때만해도 그럭저럭 괜찮으셨고
"고기를 이 만큼이나 먹을 수 있게 됐어"라고 기뻐하셨습니다.
즉 그전까지는 그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였죠.
체중도 급격하게 내려갔었죠.
그 외에도 여러가지 대화를 하면서 웃었는데
그것이 이와타 사장님과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2015년 7월 쯤에 이와타 사장님과 다시 만날 예정이였지만
그걸 이루지 못하고
이와타 씨가 사망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와타 씨는 저에게 있어서 최고의 이해자였습니다.
덕망가셨고 엄청난 노력가 이셨고
서비스 정신이 넘치던 게임 업계를 바꾼 사람이셨습니다.
제가 처음에 이와타 씨를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전혀 다른 걸 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닌텐도 다이렉트에서
이와타 씨가 여러가지로 분장하여
개그 영상 처럼 나왔었는데
이와타 씨의 자제분에 의하면
'본인은 그걸 즐기면서 하셨다'고 합니다.
"명함 속의 저는 한 회사의 사장입니다. 제 머릿속의 저는 게임 개발자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의 저는 게이머입니다."
자기가 짠 프로그래밍도 아니고 최종본만 보고 버그를잡다니 진짜 천재긴 천재였네요..
진짜 요절하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였음.
진짜 난 사람이셨네... 그립습니다
스위치를 못 보고 가셨어...
진짜 난 사람이셨네... 그립습니다
스위치를 못 보고 가셨어...
자기가 짠 프로그래밍도 아니고 최종본만 보고 버그를잡다니 진짜 천재긴 천재였네요..
진짜 여러모로 엄청난 천재..단순히 하나만 잘한게 아니라 여러모로 두루두루 잘하신..
진짜 요절하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였음.
"명함 속의 저는 한 회사의 사장입니다. 제 머릿속의 저는 게임 개발자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의 저는 게이머입니다."
스위치 성공을 봤어야 했는데 이와타 사장의 마지막 작품
포켓몬 팬으로써 이분 이름은 절대못잊죠 금은 관동은 따위일 정도로 포켓몬ip 장수의 근간을 만드셨고(포켓몬 컴퍼니는 이와타의 구상에서 시작) 아마 이분께서 끝까지 도와주셨던 포고 아니었으면 요괴워치에 밀렸을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제갈량 같은 스타일이셨구먼 능력은 쩌는데 오히려 그 쩌는 능력을 발휘하느라 과로가 따라오는...
주변인들 썰 보면 엄청난 워커홀릭;;
게임 회사 리더의 모범 개발자들 입장에선 경영 최고 리더가 게임과 개발에 대한 높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게 엄청 든든했을것 같음